金秉準 大統領職引受委員會 地域均衡特別委員長의 人生은 ‘盧武鉉’을 빼놓고 說明할 수 없다. 國民大 敎授로 있던 그는 1993年 노무현 민주당 最高委員이 만든 ‘地方自治實務硏究所’의 所長을 맡아 因緣을 맺었다. 金 委員長은 갓 40代에 들어선 少壯 學者였고, 노무현은 40代 中盤의 血氣旺盛한 政治人이었다. 그는 노무현 政府 出帆 뒤 靑瓦臺 政策室長, 敎育副總理 兼 敎育人的資源部 長官, 大統領 諮問 政策企劃委員長, 大統領 政策特別補佐官 等 要職을 涉獵했다.
그는 盧 前 大統領의 任期가 끝날 때까지 한 番도 靑瓦臺나 內閣을 떠난 적이 없다. 韓美 自由貿易協定(FTA), 濟州 海軍基地, 서비스産業 育成 等 進步陣營이 거세게 反撥한 政策은 大部分 그의 손을 거쳤다. 이에 노무현 政府의 ‘오른쪽 날개’라고 불렸는데, 그 탓에 文在寅 大統領祕書室 民政首席祕書官 等 ‘民主化運動 그룹’과 不和했다.
그는 尹錫悅 大統領 當選人과 별다른 連結 고리가 없다. 尹 當選人이 지난해 7月 金 委員長의 서울 평창동 自宅을 찾아 6時間假量 와인을 여러 甁 나눠 마시며 對話를 나눈 게 因緣의 出發點이다. 以後 같은 해 11月 常任選對委員長으로 合流했다.
金 委員長은 지난해 12月 記者와 인터뷰하면서 “尹 (當時) 候補는 盧 前 大統領이 强調했던 成長과 分配의 善循環 構造에 對한 理解가 있다”며 “文在寅보다는 (尹錫悅이) 노무현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金 委員長은 새 政府 出帆에 앞서 地域均衡 政策의 큰 그림을 提示할 展望이다. 金 委員長은 向後에도 尹錫悅 政府에서 무게感 있는 ‘大統領 멘토’ 役割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1954年 慶北 高齡
● 大邱商高, 영남대 政治外交學科, 델라웨어대 政治學 博士
*‘尹錫悅 파워 엘리트 263人’ 全體 記事는 ‘신동아’ 4月號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