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錫悅 大統領 當選人과의 親分만으로 靑瓦臺에 入城할 人事를 定한다면 신용락 辯護士는 迎入 1順位에 둘 만한 ‘切親’이다. 申 辯護士는 尹 當選人과 서울 冲岩高, 서울대 法學科 動機로 실과 바늘처럼 가깝게 지냈다. 尹 當選人의 側近들은 申 辯護士를 두고 “存在만으로도 힘이 되는 든든한 支援軍”이라고 입을 모은다.
申 辯護士가 記憶하는 學生 尹錫悅은 法과 原則을 守護하는 冷嚴한 檢事 이미지와 溫度 差가 있다. 申 辯護士는 最近 ‘週刊東亞’ 인터뷰에서 “석열이는 親舊들에겐 ‘鳳’이었다. 만나면 一旦 自己 주머니부터 먼저 털었다. 돈이 모자라면 다른 親舊들이 돈을 보태는 式이었다. 斜視 9首를 하는 동안 親舊들, 10年 위아래 先後輩들과 그렇게 지냈다. 후덕한 父母의 品性을 닮았다”고 말했다. 尹 當選人의 父親은 윤기중 연세대 名譽敎授다.
申 辯護士는 “尹 當選人이 斜視 9首를 한 건 無能해서가 아닌 非效率的 工夫法 탓”이라면서 卓越한 記憶力으로 親舊들에게 記憶의 破片을 찾아주던 尹 當選人의 젊은 날을 떠올렸다. 또 “처음부터 큰 그릇으로 태어났고 그걸 채우는 데 時間이 걸렸다” “偏見이 없고 다른 사람 눈치 안 보는 게 本人 品性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人間的이며 疏脫하다” “只今까지 初志一貫 다른 눈치 보지 않고 良心의 命令대로 살아왔다는 게 대단하다”고 評價했다.
이처럼 尹 當選人을 속속들이 아는 親舊지만 申 辯護士가 公職에 參與할 可能性은 높지 않다는 展望도 있다. 申 辯護士는 28回 司法試驗에 合格해 判事로 社會生活을 始作했다. 判事 時節 進步 性向 法官 모임으로 알려진 ‘우리法 硏究會’의 一員으로 活動했다. 水原地方法院 判事를 하다 辯護士로 轉向해 法務法人 원에서 일하고 있다.
● 1960年 서울
● 冲岩高, 서울대 法科大學
*263名 大解剖 全體 記事는 오프라인 ‘신동아’ 4月號와 敎保文庫·예스24·알라딘·밀리의 書齋 等의 電子冊(eBook) ‘尹錫悅 파워 엘리트 263人’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