吳世勳 서울市長과 尹錫悅 大統領 當選人은 같은 79學番이다. 吳 市長이 1961年 1月生, 尹 當選人이 1960年 12月生이다. 吳 市長은 39歲이던 2000年에 國會에 入城했고 6年 뒤 서울市長이 됐다. 尹 候補는 이番 大選이 첫 選出職 出馬다. 同年輩 政治 後輩가 單숨에 大權을 거머쥔 모습을 보며 吳 市長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사람 間에 微妙한 氣流가 흐른 적이 있다. 이석준 前 國務調整室長은 尹 當選人 캠프에 合流하기 直前까지 ‘서울비전 2030委員會’ 委員長이었다. 李 前 室長이 캠프로 가자 吳 市場 側近 그룹에서는 “事前에 調律된 바 없다”는 말이 나왔다. 以後 尹 當選人 側이 “오 市長에게 諒解를 付託했다”고 鎭火에 나서 事態가 一段落됐다.
大選 競選이 始作된 뒤에도 둘 사이에 妙한 緊張感이 흘렀다. 當時 國民의힘 一角에는 ‘吳世勳 差出論’이 제법 說得力 있는 시나리오로 꼽혔다. 政治 新人인 尹 當選人이 네거티브 檢證에 落馬할 境遇를 對備해야 한다는 趣旨다. 勿論 尹 當選人이 勢(勢)를 維持하며 이 시나리오는 浪說이 됐다.
尹 當選人의 勝利는 一旦 吳 市長의 4線 街道에 유리한 발板이다. 더불어民主黨 獨占에 가까운 서울市議會 議席 構造 亦是 國民의힘 優位로 탈바꿈할 可能性도 크다. 이렇게 되면 吳 市長은 是正을 통해 自己 브랜드를 만들 機會를 얻는다.
大權走者로서 位相이 또렷한 만큼 尹 當選人과의 關係 設定은 큰 宿題다. 그間의 前例를 보면 現職 大統領과 差別化를 꾀한 候補가 執權黨 大選候補職을 꿰찼다. 關鍵은 對立角을 세우지 않으면서 權府와 결이 다르다는 點을 어필하는 데 있다. ‘尹錫悅 時代’는 潛龍 吳世勳에게 새로운 試驗臺다.
● 1961年 서울
● 대일고, 高麗大 法學科, 高麗大 大學院 法學 博士
*263名 大解剖 全體 記事는 오프라인 ‘신동아’ 4月號와 敎保文庫·예스24·알라딘·밀리의 書齋 等의 電子冊(eBook) ‘尹錫悅 파워 엘리트 263人’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