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核關(尹錫悅 側 核心 關係者).”
尹錫悅 大統領 當選人이 가장 信賴하는 國民의힘 國會議員은 이른바 ‘尹核關’으로 擧論된 張濟元 國民의힘 議員(釜山 沙上區·3線)이다. 張 議員은 이番 大選의 最大 變數였던 ‘尹錫悅-安哲秀’ 單一化 過程에서 尹 當選人에게 全權을 委任받아 協商에 나선 實勢로 通한다.
張 議員은 尹 當選人이 政界에 入門한 直後부터 줄곧 至近距離에 있었다. 黨內 競選을 치를 때 캠프 綜合狀況室長을 맡아 競選 勝利를 이끈 參謀 그룹 實勢다. 初期 競選 캠프 核心 實務陣은 大槪 張 議員을 통해 合流했고 이番 大選 勝利의 主役이 됐다.
張 議員은 한때 ‘2線 退陣’의 屈辱을 겪기도 했다. 尹 當選人의 競選 캠프 綜合狀況室張으로 있을 當時 ‘高等래퍼’ 出身의 아들 龍樽 氏가 飮酒運轉 等으로 口舌에 오르자 스스로 職(職)을 내려놨다. 李俊錫 黨代表가 選對委 運營에 不滿을 품고 黨務를 ‘보이콧’ 했을 때도 尹 當選人의 눈과 귀를 가리는 尹核關으로 張 議員이 指目된 바 있다.
그럼에도 尹 當選人은 對外的으로 “尹核關은 없다”면서 張 議員을 감쌌다. 張 議員은 尹 當選人이 決斷의 고비마다 胸襟을 터놓고 相議해 온 人物이다. 大選 直後 尹 當選人은 張 議員을 當選人 祕書室長에 임명하면서 再次 信賴를 보냈다.
張 議員은 釜山 沙上區에서 18·20·21代 國會議員에 當選된 3選 重鎭이다. 釜山의 私學財團 東西學院을 設立한 高(故) 장성만 前 議員의 次男이다. 20·21代 國會에서 法制司法委원으로 活動했다. 빠른 判斷力과 論理的 搜査(修辭)로 法司委 現場에서 이슈를 主導했다는 評價를 받는다.
● 1967年 釜山
● 汝矣島高, 중앙대 新聞放送學科
*‘尹錫悅 파워 엘리트 263人’ 全體 記事는 ‘신동아’ 4月號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