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민 世界와동북아평화포럼 理事長의 삶에서 ‘金大中’은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는 24歲 때인 1987年 大選에서 平和민주당 大學生 自願奉仕者로 일하며 김대중(DJ) 前 大統領과 因緣을 맺었다. 그 뒤 DJ의 祕書와 국민회의 副代辯人을 거쳐 1998年 2月부터 이듬해 11月까지 김대중 大統領祕書室 國政弘報祕書官, 國政狀況室長을 歷任했다. 2000年 열린 第16代 總選에서 서울 衿川區에 出馬해 當選했다. 30代에 이미 國政 및 議政 經驗을 쌓은 셈이다.
40代에 그는 世界와東北亞平和포럼이라는 團體를 만들어 國際 및 韓半島 情勢 專門家로 變身했다. 2009年에 낸 冊 ‘戰爭과 平和: 김정일 以後, 北韓은 어디로 가는가’는 日本에서도 飜譯 出版될 만큼 關心을 모았다. DJ에게서 배운 讀書의 重要性과 國政狀況室長을 하며 얻은 情報力이 執筆의 動力이 됐다고 한다.
DJ의 赤字(嫡子)이자 湖南이 故鄕인 張 理事長은 지난해 8月 3日 國民의힘에 電擊 入黨했다. 以後 國民의힘 大選 競選에 出師表를 던졌지만 8名을 추리는 1次 컷오프 門턱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10月 9日 尹錫悅 大統領 當選人(當時 國民의힘 大選 競選 候補)과 만난 그는 11月 1日 尹 當選人 支持를 公式 宣言했다. 大選 期間 中 選擧對策本部 外郭에서 尹 當選人에게 持續的으로 助言을 해왔다고 한다.
3月 16日 尹 當選人은 그를 當選人 政務特報에 임명했다. DJ 政權을 높이 評價하는 尹 當選人의 平素 생각이 反映된 人事(人事)로 풀이된다. 尹 當選人이 大統領 任期 中 張 理事長을 政務 分野 參謀陣에 起用할 可能性도 그만큼 높아졌다.
● 1963年 全南 高興
● 서울 영일고, 서강대 政治外交學科, 서강대 大學院 政治外交學 碩士
*263名 大解剖 記事는 오프라인 ‘신동아’ 4月號와 東亞日報社 出刊 敎保文庫 電子冊(eBook) '尹錫悅 파워 엘리트 263人'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