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統領選擧와 함께 치러진 再補闕選擧에서 서울 종로구에 出馬한 崔在亨 前 監査院長이 當選했다. 24代 監査院長 就任 3年次인 2021年 6月 辭退한 그는 7月 15日 國民의힘에 入黨해 大統領選擧 出馬를 宣言했다. 곧바로 大選候補 競選에 參與했지만 10月 8日 2次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以後 再補闕選擧를 앞두고 서울 종로구에 戰略公薦 됐고, 3月 9日 21代 國會議員에 當選됐다.
崔 議員은 法曹界에서 ‘模範 判事’로 信望이 두터웠던 人物이다. 서울 경기고와 서울대 法學科를 卒業하고 1981年 23回 司法試驗에 合格해 1986年 서울地方法院 東部支院 判事로 公職 生活을 始作했다. 서울高等法院 判事, 憲法裁判所 憲法硏究官, 大田地方法院 法院長, 司法硏修院 院長을 지냈다. 文在寅 大統領에 依해 監査院長에 指名됐고, 2018年 1月 24代 監査院長에 就任했다.
就任 當時 숱한 美談이 쏟아져 話題가 됐다. 경기고 時節 小兒痲痹를 앓던 親舊인 강명훈 辯護士를 업고 登下校하며 서울대 法學科와 司法試驗에 나란히 合格한 事緣이 日刊紙에 紹介되기도 했다. 특별한 家族史도 有名하다. 그는 두 딸이 中高生이 되자 두 아들을 次例로 入養해 네 子女를 키웠다.
周邊 知人들로부터 ‘典型的인 模範生’이라는 評價를 받는 崔 議員이 政治를 決心하게 된 契機는 文在寅 政權의 不合理를 目睹하면서다. 그는 監査院長 時節 月城 原電 1號機 早期 閉鎖 決定 過程에서 經濟性 評價가 不合理한 程度로 낮게 評價됐다고 指摘했는데 이를 契機로 靑瓦臺와는 完全히 틀어졌다.
崔 議員은 初選議員으로 活動하며 與小野大 政局에서 尹 當選人에게 힘을 보태는 한便, 大權에 한 次例 挑戰한 만큼 次期 大選走者로서 行步를 繼續할 것으로 展望된다.
● 1956年 慶南 昌原
● 경기고, 서울대 法科大學
*263名 大解剖 全體 記事는 오프라인 ‘신동아’ 4月號와 敎保文庫·예스24·알라딘·밀리의 書齋 等의 電子冊(eBook) ‘尹錫悅 파워 엘리트 263人’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