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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俊錫 “保守 政黨의 ‘젊은 正當’火 加速化할 것”|新東亞

李俊錫 “保守 政黨의 ‘젊은 正當’火 加速化할 것”

[사바나] 830 代表走者 李俊錫 未來統合黨 最高委員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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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5-2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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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瞋縛’李 推戴한 黃, ‘親李系 大擧 歸還’ 판 깔아

    • 安, 統合黨과 손잡는 데 마음의 壁 허문 듯

    • 朱豪英, 金鍾仁에 好意的…非對委 拒否 名分 없어

    • 洪 復黨 變數, 金鍾仁 아닌 黨內 ‘洪準杓 트라우마’

    • 金鍾仁은 민주당 있을 때도 40代 經濟專門家 物色

    • 靑年, 地域 維持 만날 時間에 洞네 住民과 페이스북 해라

    ‘사바나’는 ‘ 膾를 꾸는 , 靑年’의 略稱인 東亞日報 出版局의 뉴스랩(News-Lab)으로, 靑年의 삶을 주어(主語)로 삼은 이들 누구에게나 열린 空間입니다. <編輯者 週>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李俊錫(35) 未來統合黨 最高委員은 서울 노원丙에서 세 番째 落選했다. 2016年 總選 때 安哲秀 國民의黨 代表와 맞對決해 31.3%를 得票했다. 2018年 再補闕選擧 때는 바른未來黨 看板으로 노원구廳長 出身 김성환 候補와 붙어 27.23%를 얻었다. 金 議員과 再對決한 4·15 總選에서는 得票率이 44.3%로 올랐다. 그가 이番에 받은 4萬6373票는 노원丙에서 保守政黨이 記錄한 最多 得票다. 統合黨이 首都圈 121個 地域區에서 16席만 챙겼음을 考慮하면 意味가 적잖다. 最近 統合黨에 30代 旗手論이 擴散하는 點도 이 最高委員에 對한 注目度를 높이는 背景이다. 5月 8日 서울 西大門區 동아일보 忠正路社屋에서 그를 만났다.

    “黃, 眞朴·짤朴 건너뛰고 親李와 交流”

    -왜 꼭 上溪洞(怒怨丙)이어야 하나요. 

    “처음 總選 나간다고 했을 때 木洞 出馬하라는 이야기를 周邊에서 많이 했어요. 양천구에서 中學校를 다녔거든요. 그런데 양천구는 政治하겠다는 目的意識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어릴 때 上溪洞 살면서 좋았던 건 全部 住公아파트 團地여서 違和感 없이 자랄 수 있는 點이었어요. 그 모델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게 政治하는 目的 中 하나예요.” 

    -得票가 크게 늘었는데, 雰圍氣가 漸漸 바뀌는 것 같나요. 

    “이番에는 되는 雰圍氣라고 봤어요. 非公開 指標지만 나쁘지 않게 나왔고요. 最高委員을 하면서 選擧를 뛰었는데, 選對委 變數가 크다는 걸 깨달았어요. 2012年 박근혜 非常對策委員長이 指揮하던 選擧와는 달리 宏壯히 無秩序했죠.” 

    -그래도 김종인 前 總括選擧對策委員長이 있었는데요. 

    “金 前 委員長이 늦게 合流했죠. 公薦한 사람과 黨 代表, 選對委員長 間 異見이 많았던 건 否認할 수 없는 事實이에요.” 



    그는 “일찍이 ‘統合만 하면 이긴다’는 論理를 ‘統合무새’라고 批判했다”며 “그렇게 統合하면 無難하게 37% 받고 落選할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거의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洪準杓 前 代表는 未來統合黨을 두고 “黃敎安의 無能과 朴亨埈의 夢想이 만든 雜湯黨”이라고 毒舌을 날렸던데요. 

    “黃敎安 前 代表가 나이브했어요. 黃 前 代表는 親朴 系列로 政治에 入門했어요. 親朴·親李가 나중에 眞朴·非朴으로 再編됐고, ‘짤朴’(짤린 親朴)과 親李가 한 덩어리로 엮였죠. 實際로는 짤朴과 親李 間 關係가 眞朴과 짤박의 關係보다 더 멀어요. 2007年 大選의 앙금이 남은 거죠. 黃 前 代表를 밀어 올린 사람들은 眞朴에 該當하고, 유승민 議員은 짤朴이에요. 그런데 이番 選擧에서 黃 前 代表가 眞朴·짤朴을 건너뛰고 親李와 交流한 거죠.” 

    -親李系가 總選에서 大擧 當選됐죠. 

    “統合 過程에서 새로운보수당은 自由韓國黨과 政黨 代 政黨 構圖로 協商하자고 했는데 黃 前 代表는 直接 協商을 拒否하고 이언주 議員 側, 이재오 前 議員 系派, 朴亨埈 前 委員長을 끌어들였어요. 그 뒤 그분들이 統合推進委員會를 꾸렸는데, 그 안에 들어간 분들이 (親李系인) 金恩慧 當選者, 안형환 前 議員, 鄭雲天 前 長官이었거든요. 黃 前 代表가 本人과 스펙트럼이 더 가까운 짤朴 系列에는 拒否感을 드러낸 거죠.” 

    이 最高委員은 이番 選擧의 意味 中 하나로 “親李系의 大擧 歸還”이라는 表現을 쓰면서 “판을 깔아준 건 逆說的으로 瞋縛이 推戴한 黃 前 代表”라고 말했다. 

    最近 政街의 關心事 中 하나는 統合黨의 比例代表 專用 政黨人 未來韓國黨의 行步다. 統合黨과 韓國黨이 ‘合黨 推進 宣言’을 했지만, 如前히 一角에서는 韓國黨의 獨自 行步 可能性을 提起하고 있어서다. 이 最高委員은 인터뷰 이틀 前(5月 6日) 라디오에 나와 “韓國黨과 國民의黨 間 聯合交涉團體 構成 可能性이 있다”고 主張한 바 있다. 

    -洪準杓 前 自由韓國當 代表가 韓國黨과 國民의黨 간 交涉團體 構成 시나리오에 剛하게 反對 立場을 표했던데요. 

    “洪 前 代表는 統合黨에 바로 復歸하고 싶겠죠. 하지만 統合黨에 洪 前 代表가 바로 復黨하는 건 無理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大權走者인 洪 前 代表가 韓國黨으로 가면 役割이 있을 거라는 거죠. 洪 前 代表는 그런 얘기하니 싫었겠죠. 또 안철수라는 또 다른 大選走者 얘기가 나오니 더 警戒心이 들었을 테고. 代身 韓國黨에 無所屬이 들어가면 安 代表가 들어갈 動力이 떨어지죠. 뒤집어서 安 代表가 交涉團體 構成에 參與하면 洪 前 代表가 들어갈 動力이 떨어지죠. 두 勢力 간 눈치 게임이에요.”

    “洪準杓 宏壯히 躁急한 듯”

    5月 4日 安哲秀 國民의黨 代表는 “合同 總選評價會를 통해 野圈에 주어진 時代的 要求와 革新課題를 共有하고 革新 競爭에 나서자”고 主張했다. 

    -安 代表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行間을 보니까 總選評價會는 아무 意味 없는 얘기예요. 國民의黨의 總選戰略이 무엇이 있었나요?” 

    -마라톤…. 

    “醫療奉仕 한 뒤 마라톤을 했어요. 저도 統合黨 指導部로 있었지만 그걸 評價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反對로 安 代表 側이 우리에게 뭘 評價해 주겠어요. 安 代表 立場에서는 院 構成 前 自身을 汎野圈으로 分類할 이벤트가 必要한 거예요. 安 代表가 次期 大選에서 汎野圈으로 參與하고 싶은 意志를 드러냈다는 點에서 아주 肯定的인 시그널이라고 봐요.” 

    그는 “安 代表 側에서 ‘彈劾政黨의 後裔와 무엇을 같이 하겠느냐’는 式의 워딩이 안 나오는 것으로 봐서는 (安 代表가) 統合黨·韓國黨과 함께한다는 點에 서 마음의 壁이 허물어진 것 같다. 大選과 서울市長 選擧에서 弱한 黨勢에도 相當한 得票力을 보인 분이기 때문에 汎保守 陣營에서 끌어안을 수 있는 人士”라고 評했다. 

    -統合黨 안팎에서 保守라는 單語를 써야 하느냐, 實用이라는 單語를 써야 하느냐 雰圍氣도 있는데요. 後者라면 安 代表의 役割 空間이 생길 듯도 한데요. 

    “安 代表는 自身이 野圈이지 保守는 아니라는 거거든요. 아직 그 部分에서는 마음의 壁이 存在하는 것 같아요. 結局 그 壁도 허물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記者가 이 最高委員과 만나기 直前 統合黨의 새 院內代表로 朱豪英(5線·大邱 수성구甲) 議員이 選出됐다. 自然스레 話題가 ‘김종인 非對委’로 넘어갔다. 

    -김종인 非對委 構成 可能性은 如前히 남아 있나요. 아니면 물 건너갔나요. 

    “加速度 있게 推進될 거예요. 株 代表는 金 前 委員長에게 好意的이에요. 또 黨의 兩 軸이 院內代表와 黨 代表인데, 院內代表 立場에서는 黨 代表가 있는 것 보다는 非對委員長이 있는 게 黨 運營하기에 좋습니다. 正統性이 本人에게 있다고 判斷할 테니까요. 特히 朱 代表가 院內를 主導하고, 가장 힘든 黨無人 再建 業務를 非對委員長에게 委任할 수 있거든요. (김종인 非對委를) 拒否할 名分이 없다고 봐요.” 

    -김종인 非對委員長이 있는 狀況에서 洪準杓 前 代表가 復黨할 可能性은 낮을 텐데요. 

    “洪 前 代表에게는 김종인 非對委보다 더 큰 變數가 있어요. 黨內 젊은 事務處 黨職者들을 비롯해 實務者 레벨에서 홍준표 體制에 對한 트라우마가 있어요. 2018年 地方選擧 當時 洪 前 代表 指揮下에 沒落한 데 對한 트라우마예요. 洪 前 代表 個人의 막말을 問題 삼는 게 아닙니다. 大選·地方選擧에서 洪 前 代表 路線의 擴張性이 相當히 떨어진다는 點을 體感했거든요. 事務處 黨職者들이 보는 눈은 宏壯히 正確할 겁니다. 大選走者로서 洪 前 代表의 未來는 김종인 非對委의 存在 與否보다, 그와 같은 트라우마를 뛰어넘을 비전을 提示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어요.” 

    -洪 前 代表가 ‘8月 末 全黨大會’ 規定을 削除하려던 常任 全國委員會 一部 멤버들에게 電話를 걸었다는 報道도 있었는데요. 

    “洪 前 代表로서는 김종인 非對委를 엎으려고 있는 힘, 없는 힘 다 쓰려 했잖아요. 洪 前 代表가 왜 그렇게 가볍게 움직였을까. 아직도 疑訝합니다.” 

    -躁急해서일까요. 

    “宏壯히 躁急한 것 같아요. 이番에 나온 國民의黨과의 交涉團體泄道, 黨 公式會議 席上에서 나온 얘기도 아니고 그냥 제가 個人的 시나리오로 提示한 건데 雙手를 들고 反對하고 나섰어요. 躁急한가 보다 생각했죠.”

    “40代 經濟專門家, 金世淵·洪政旭 念頭 아냐”

    2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황교안(가운데)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 주재로 통합 후 첫 최고위원회가 열렸다.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2月 17日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黃敎安(가운데) 當時 未來統合黨 代表 主宰로 統合 後 첫 最高委員會가 열렸다. [김동주 동아일보 記者]

    -이番 總選으로 유승민系가 躍進했다는 分析도 나오는데요. 

    “그런 式의 躍進은 意味 없어요. 우리 黨이 새로운 大選走者를 찾지 못하면 黃敎安, 劉承旼, 洪準杓 外 몇몇 黨內 人士를 저쪽 黨 有力 走者와 假想 對決 시켜 有意味하게 優位를 보인 사람이 大選走者가 될 겁니다. 背信者니, 나쁜 놈이니 싸울 게 아니라 單 3%라도 支持率 더 나온 사람을 保守 全體가 擁立할 可能性이 높습니다.” 

    -2002年 大選을 앞두고 노무현·이회창 假想 對決에서 盧 前 大統領이 앞서니 갑자기 떠오른 것처럼 말인가요. 

    “그렇죠. 그 對象이 李洛淵일지, 李在明일지, 第3의 人物일지 모르지만 保守 支持層은 그런 成績表를 보고 싶어 할 겁니다.” 

    한便 김종인 前 總括選對委員長은 次期 大權走者의 條件으로 ‘40代 經濟專門家론’을 提示했다. 이에 對해 이 最高委員은 “김세연 議員이나 洪政旭 前 議員이 擧論되는데, 나는 아니라고 본다”고 答했다. 그는 2012年 새누리당 非對委에서 金 前 委員長과 함께 일했다. 

    -金 前 委員長은 오래前부터 ‘40代 經濟專門家’를 主張했죠. 

    “過去 金 前 委員長 周邊 분과 史跡으로 交流하며 들은 바로는 民主黨 非對委 代表 갔을 때도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녔다고 해요. 民主黨에서 키워보려 한 사람도 몇 名 있다고 들었어요. 그런 努力을 꾸준히 하는 분이에요.” 

    總選 後 統合黨에 膾炙되는 口號가 ‘830 旗手論’이다. 1980年代生·30代·2000年代 學番 中心으로 世代交替를 斷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最高委員은 “830은 金世淵 議員이 公薦管理委員으로서 가진 公薦 콘셉트였다”면서 이렇게 說明했다. 

    “저를 包含해 金炳玟, 김재섭 等 30代 候補 여럿이 서울에서 40% 以上을 得票했어요. 젊은 사람이라고 해서 國民이 덜 支持하는 건 아니라는 點을 證明한 겁니다. 敗北했지만 有意味한 成果입니다. 保守政黨의 ‘젊은 正當’畫家 加速化하리라 봐요.” 

    -落選한 靑年들의 地域區 活動이 碌碌지만은 않은 일일 텐데요. 

    “저도 洞네 돌아다니면 이런저런 이야기 듣습니다. 靑年 政治人은 수많은 俗說과 싸워야 하거든요.” 

    -俗說이라면. 

    “TV에 얼굴 비치면 으레 ‘쟤는 放送만 나오고 地域區 管理 안 해’라는 말이 나와요. ‘상계동에 안 산다더라.’ ‘집 앞에 每日 配達된 新聞이 수북이 쌓여 있다더라.’ 事實이 아니지만 그걸 들은 사람은 ‘그런가 보다’ 해요. 그런데 時間이 지나면, 例를 들어 三겹살집에 3名이 앉아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1名이 ‘나 아침 8時에 蘆原5番 마을버스에서 恒常 李俊錫 보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죠. 그럼 도리어 큰 效果로 돌아와요. 그러려면 時間이 必要해요. 時間을 考慮하지 않고 躁急하게 洞네 사람들에게 다가선다고 될 問題가 아니죠.” 

    이 最高委員은 “地域區 活動에 對한 發想을 바꿔야 한다”면서 이런 말을 꺼냈다. 

    “처음 選擧 치를 때 ‘地域 유지한테 가서 人事하면 그분이 100票를 모아줄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大韓民國에 이제 그런 사람 없어요. 個個人이 스마트폰을 갖고 政治를 接하면서 判斷의 主體가 됐습니다. 維持라는 槪念이 存在하지 않아요. 通常的 選擧運動 槪念도 바뀌어야 해요. 아직 그 觀點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地域區 活動이 고달픈 겁니다. 예전에는 握手한 사람이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票로 이어질 可能性이 높다고 했어요. 제가 經驗한 바로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對話 한 番 나눠본 사람이 握手한 사람보다 더 强烈하게 저를 찍을 可能性이 높아요.” 


    “나는 靑年政治學校 反對論者”

    -地域 住民이 페이스북에서 먼저 다가오나요.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洞네 사람을 100名 程度 識別해 親舊追加를 합니다. 그 뒤부터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알아서 洞네 사람을 推薦해 줘요. 젊은 候補들도 ‘100~200票 모아주겠다’는 詐欺에 놀아나지 말고, 本人 强點인 젊은 사람과 疏通을 强化해야 해요.” 

    靑年政治를 두고 나오는 흔한 主張은 靑年을 育成해야 한다는 것이다. 過去 바른政黨의 靑年政治學校 等은 그런 苦悶의 結果物이다. 이 最高委員은 “特講 몇 番으로 政治할 能力이 생기느냐. 나는 靑年政治學校 反對論者”라며 말을 이었다. 

    “저는 社會에서 인정받은 사람을 公正하게 選拔하자고 했어요. 바른未來黨 時節 討論 배틀로 地方選擧 比例代表 1番을 公薦했어요. 그분이 김지나 京畿道議員입니다. 能力値가 좋은 議員으로 소문났어요. 그 분은 어느 政治 集團에서도 敎育받은 적이 없어요. 勞務師로서 熱心히 活動한 能力이 政治할 수 있는 能力이었던 겁니다. 熱心히 사는 사람들을 發掘하면 되는 겁니다.” 

    -지난해 한 行事에서 유승민 議員이 “‘平等’ ‘公正’ ‘正義’ 等 進步가 獨占物 삼는 價値를 保守 勢力이 開拓해 나감으로써 保守의 地平을 넓혀야 한다”고 主張하더군요. 

    “제가 쓴 冊 題目이 ‘公正한 競爭’인데요. 저는 大韓民國 經濟 發展과 社會進步를 이끌어온 核心 槪念이 競爭이라고 생각해요. 只今 政治 談論에서 競爭 槪念이 廢棄됐어요. 假令 敎育의 境遇 ‘줄 세우기는 非情하다’ ‘試驗 한 番으로 人生이 決定되는 게 옳으냐’는 認識下에서 ‘하나만 잘하면 大學 간다’로 始作해 隨時典型이 擴大됐잖아요. 曺國 事態를 겪으면서 國民이 認識한 게 뭡니까. 차라리 줄이라도 세우면 공정하겠다는 거예요.” 

    그는 2007年 美國 하버드대를 卒業한 後 敎育奉仕團體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活動했다. 그의 말에서 敎育 問題에 對해 苦悶을 熟成시킨 痕跡이 엿보였다. 그가 構想한 ‘大學敎育 革新案’은 이렇다. 

    “저는 國公立大는 100% 定試 ‘줄 세우기’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 없는 집 學生들이 祖國 前 長官네 집처럼 論文 쓰고 特別活動 안 해도 工夫만 잘하면 修能 잘 봐서 갈 수 있는 典型은 하나 있어야 하잖아요. 代身 私立大는 建學 理念에 맞춰 人材를 키워야죠.” 

    이 대목에서 그는 하버드大 時節 逸話를 紹介했다. 

    “팔레스타인 親舊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저보다 英語, 數學 다 못했어요. 3學年쯤 되니 이 親舊가 저보다 모든 걸 잘했어요. 그 親舊랑 얘기할 때마다 느낀 게 뭐냐면 승부욕이에요. 또 愛國心이 있었어요. 우리로 치면 日帝 治下 朝鮮人처럼 工夫했던 거예요. 제가 죽었다 깨어나도 따라갈 수 없는 領域인데, 하버드대 入學査定官이 그걸 본 겁니다. 美國 私立大는 完璧한 自律化가 돼 있어 登錄金 差等制를 하잖아요. 高所得層에게서 받은 登錄金으로 低所得層을 위해 實驗을 할 수 있는 겁니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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