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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준의 6·25再照明④] 마오쩌둥은 왜 參戰했나|신동아

[김학준의 6·25再照明④] 마오쩌둥은 왜 參戰했나

마오쩌둥에게도 分斷 長期化 責任 있어

  • 김학준 檀國大 碩座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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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入力 2020-06-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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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덧 光復 以後 最大의 民族 慘事였으며 오늘날까지도 韓民族 모두에게 큰 負擔을 안기는 6·25戰爭 70周年을 맞이했다. 이 階梯에 이 戰爭을 둘러싼 수많은 爭點 가운데 16가지만 가려 그 內容을 5回로 나눠 살펴보기로 한다.

    爭點 : 中共軍이 介入하지 않을 것이라는 맥아더의 主張에는 암수가 끼어 있었나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7월 제주도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중국군 포로들이 마오쩌둥의 목을 톱으로 자르는 상황극을 연출하고 있다. [동아DB]

    6·25 戰爭이 한창이던 1952年 7月 濟州道捕虜收容所에 收容된 中國軍 捕虜들이 마오쩌둥의 목을 톱으로 자르는 狀況劇을 演出하고 있다. [東亞DB]

    美軍을 主軸으로 하는 유엔軍의, 그리고 유엔軍 一員으로서 國軍의 進擊이 繼續되면서 西方世界에서는 中共軍의 介入 蓋然性이 豫告되기 始作했다. 쉽게 말해, 中共軍이 結局 軍事介入해 戰爭이 길어질 것이라는 警告가 나오기에 이른 것이다. 

    이에 對해, 當時 國軍을 包含한 유엔軍을 指揮하던 맥아더 總司令官은 反論을 폈다. 自身의 仁川上陸作戰 成功에 壓倒된 中共이, 더구나 이제 ‘建國’된 지 1年이 채 되지 않는 中共이, 敢히 派兵하지 못할 것이라는 判斷이었다. 그러나 그의 判斷을 뒤엎고 中共은 1950年 10月 派兵했고, 이로써 이 戰爭은 맥아더의 表現대로 ‘完全히 새로운 戰爭’으로 바뀌었다. 

    이 事實에 對해 西方世界의 어떤 硏究者들은 맥아더의 豪言壯談에 ‘암수’가 끼어 있었다고 推測한다. 中共軍이 介入할 것을 내다보면서도 오히려 그것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戰爭이 擴大되면 될수록 中共을 相對로 戰爭을 持續할 名分이 분명해지고 ‘戰爭英雄’으로서 自身의 存在感은 커진다는 속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多數의 硏究者는 誤判이었다고 본다. 合同參謀本部를 비롯한 本國 政府도 成功할 確率이 거의 없다고 判斷했던 仁川上陸作戰을 劇的으로 성공시킨 뒤 書房權의 讚辭를 한 몸에 받게 되면서 ‘傲慢’해졌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 傲慢에 醉해 中共軍은 敢히 介入하지 못할 것으로 誤判했다는 것이다.

    爭點 : 中共軍의 軍事介入은 政黨했나

    韓國軍이 鴨綠江과 豆滿江에 到達해 統一이 눈앞에 다가온 時點이던 1950年 10月 下旬 中共軍이 奇襲的으로 鴨綠江을 건넜다. 充分한 準備를 갖추지 못한 유엔軍은 後退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써 統一의 꿈은 挫折됐다. 



    어떤 硏究者들은 中共軍의 介入을 ‘正當’한 것으로 봤다. 그 根據로 于先 1950年 9月 30日 밤 中共 總理 兼 外交部長 저우언라이가 週中 印度大使 파니카르를 통해 트루먼 大統領에게 傳達한 메시지를 指摘한다. 여기서 藷芋는 “萬一 南朝鮮 軍隊가 38度線을 넘어온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겠다. 그러나 外國 軍隊가 38度線을 넘어 北上한다면 우리는 派兵하지 않을 수 없다”고 警告함으로써, 國際法의 用語로는 ‘開戰의 名分’을 提示했는데도, 트루먼 大統領이 이 警告를 無視했다는 것이다. 

    中共은 그 以後에도 유엔軍이 38度線을 넘어 국경인 鴨綠江과 豆滿江에 到達하게 되면 그들은 곧 滿洲를 侵略할 것이고 이어 中國大陸을 侵略할 것이라는 憂慮를 表示하면서 ‘保家衛國(保家衛國)’의 論理를 展開했다. ‘집을 保護하고 國家를 지키기 爲해’ 派兵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美國 政府는 유엔軍이 그 國境을 侵犯할 뜻이 없음을 거듭 分明히 했음을 想起할 必要가 있다. 

    國境에 對한 憂慮는 分明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오는 國境에 對해 憂慮하면서 同時에 스탈린을 생각하고 있었다. 當時 스탈린은 中共이 유럽의 유고슬라비아처럼 蘇聯의 影響에서 벗어나 獨自 路線을 걷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마오가 티토처럼 行動하는 것이 아닌가 疑心하고 있었다. 마오는 이 疑心을 풀어주는 것이 自身을 위해서나 中共을 위해서 必要하다고 計算하고 스탈린의 要請에 따라 派兵한 것이다. 

    우리 大韓民國으로서는 統一의 好機를 빼앗기는 苦痛을 맛보아야 했다. 그것으로 말미암은 分斷의 長期化에 對한 責任의 一部는 바로 中共의 軍事 介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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