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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韓軍은 왜 사흘 동안 서울에 머물러 있었나 [김학준의 6·25再照明③]|新東亞

北韓軍은 왜 사흘 동안 서울에 머물러 있었나 [김학준의 6·25再照明③]

영등포 等 外殼까지 서울을 ‘完全’ 占領하는데 時間이 걸렸다

  • 김학준 檀國大 碩座敎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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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入力 2020-06-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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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덧 光復 以後 最大의 民族 慘事였으며 오늘날까지도 韓民族 모두에게 큰 負擔을 안기는 6·25戰爭 70周年을 맞이했다. 이 階梯에 이 戰爭을 둘러싼 수많은 爭點 가운데 16가지만 가려 그 內容을 5回로 나눠 살펴보기로 한다.

    爭點 : 北韓은 애初에 際限戰을 追求했는가, 全面戰을 追求했는가

    6·25전쟁 중 수원에서 북진하는 
유엔군 탱크부대.  [동아DB]

    6·25戰爭 中 水原에서 北進하는 유엔軍 탱크部隊. [東亞DB]

    앞에서 擧論한 콜코 敎授는 ‘北韓은 애初에 際限戰을 追求했을 뿐 全面戰을 追求하지 않았다’는 推論을 提示했다. 그에 따르면, 北韓은 서울을 占領하고 南韓을 相對로 統一政府를 세우기 위한 協商을 提議하면 南韓이 唐慌한 狀態에서 그 協商에 應할 것으로 計算했다고 推測했다. 그는 自身의 推論 根據들 가운데 하나로 北韓軍이 서울을 占領下高度 사흘 동안 ‘南進’을 中斷한 채 서울에 머물러 있었던 事實을 提示했다. 

    그러나 이 推論 亦是 事實이 아니다. 다른 文書들도 그러했지만 特히 옐친文書는 北韓이 처음부터 全面戰을 計劃하고 있었음을 보여줬다.

    爭點 : 北韓軍은 왜 사흘 동안 서울에 머물러 있었나

    앞에서 方今 말했듯, 破竹之勢로 밀고 내려온 北韓軍은 6月 28日에 서울을 占領하고 더는 南行하지 않은 채 서울에 머물렀다. 이 사흘은, 막 大韓民國 陸軍參謀總長 兼 3軍 總司令官으로 任命된 정일권이 回顧했듯, 大韓民國을 살려준 貴重한 時間이었다. 鄭 總長에 따르면, 이때 北韓軍이 서울에 머물러 있지 않고 南行을 繼續했더라면 美軍이 介入할 時間 餘裕가 없었고 大韓民國은 結局 潰滅했을 것이다. 이 때문에 學界에서는 北韓軍의 사흘 서울 滯留에 對해 討論을 繼續했다. 

    그 結果, 春川地球에서 國軍의 宣傳과 善防으로 北韓軍 가운데 主要 部分이 그곳에 묶여 서울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重要한 事實이 밝혀졌다. 그리고 後날 公開된 蘇聯 文書에 따르면, 北韓軍이 서울을 ‘完全’ 占領했다는 旣存의 說明에 問題가 있었다. 서울의 重要한 部分들을 占領한 것은 事實이었지만 영등포를 비롯한 外郭 地域은 ‘完全’히 占領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蘇聯 文書에 따르면, 서울에 들어온 北韓軍과 平壤의 本部 사이에 交信이 不充分해 本部가 現況을 제대로 把握하지 못해 南行 指示를 서둘러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爭點 : 美國을 主軸으로 하는 유엔의 介入은 正當했는가, 正當하지 않았는가

    또 하나의 爭點은 美國을 主軸으로 하는 유엔의 介入이 正當했는지에 聯關된다. 北韓은 勿論이고 蘇聯을 비롯한 共産國家들 모두 그리고 中立國家들 가운데 一部는 正當하지 않았다고 主張했다. 內傳說을 提示하는 硏究者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것이 正當하지 않았다고 力說했다. 한 民族 사이의 內戰에 왜 外部 勢力이 介入했느냐고 그들은 詰難했다. 



    西方世界에서 좀 더 極端的 見解를 提示한 硏究者는 濠洲國立大學校의 著名한 歷史學者 게이븐 매코맥(Gavan McCormack) 敎授였다. 그는 “그때 美國을 主軸으로 하는 유엔이 介入하지 않았더라면 이 戰爭은 北韓의 勝利로 빨리 끝났을 것이며 비록 肅淸이 뒤따랐다고 해도 그 肅淸은 親日派를 비롯한 反民族 勢力에 局限됐을 것이고 그 數는 많지 않았을 것인데도 그들이 介入함으로써 戰爭이 3年 以上 繼續되면서 너무 많은 사람이 죽게 됐다”라고까지 썼다. 

    筆者는 美國을 主軸으로 하는 유엔의 介入은 正當했다고 判斷한다. 大韓民國의 誕生 過程에 이미 유엔이 關與했으며, 萬一 美國을 비롯한 西方國家들이 유엔의 決議에 따라 參戰하지 않았더라면 大韓民國의 崩壞는 避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萬一 大韓民國이 北韓에 依해 崩壞됐더라면 南韓에 對해서도 北韓式의 無慈悲한 共産統治가 施行됐을 것인데, 그것이 가져왔을 慘劇은 참으로 끔찍했을 것이다. 

    現代 文明國家에서는 어떠한 ‘罪人’이라도 正當한 裁判을 받을 權利가 있다. 이 權利가 夫人되는 國家는 非文明的이면서 暴壓的인 全體主義 國家일 뿐이다. 아무리 ‘親日派’였고, 또 北韓이 말하는 ‘反民族分子’ 또는 ‘反動分子’라고 해도 正當한 裁判을 받아 自身의 罪에 相應하는 處罰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北韓이 南侵 直後의 일정한 期間에 걸쳐 自身의 占領 地域에서 恣行한 ‘人民裁判’은 決코 許容될 수 없다.

    爭點 : 유엔軍의 38度線 月經과 北進은 正當했는가

    美國을 主軸으로 하는 유엔軍의 反擊이 開始되고 大韓民國으로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洛東江戰鬪에서 北韓軍을 敗退시킴으로써 勝機를 잡은 유엔軍 그리고 國軍은 北進을 繼續했으며 仁川上陸作戰의 成功을 통해 마침내 서울을 收復하고 38度線으로 北進을 繼續했다. 이 時點에서, 勞動黨이 이끄는 英國 政府를 비롯해 西方國家들 안에서는 38度線에서 停止할 것을 提議했다. 이제 이른바 戰前原狀(戰前原狀)李 回復된 만큼 여기서 戰爭을 멈춰야 하며, 萬一 38度線 以北으로 進軍을 繼續하면 戰爭이 擴大되면서 蘇聯軍이나 中共軍이 介入할 수도 있고, 萬一 그렇게 된다면 3次 大戰으로 擴大될 수 있다는 論理였다. 

    이 論理는 그 以後에도 몇몇 學者에 依해 되풀이됐다. 그때 戰爭을 멈췄더라면, 이 戰爭은 約 3個月 만에 끝날 수 있었고 被害도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들은 主張했다. 이 戰爭은 結局 1953年 7月 27日 休戰으로 歸結됐는데 休戰線이 38度線과 비슷하다는 事實을 생각한다면, 2年을 더 싸우며 엄청난 被害를 낸 뒤 事實上 元來의 狀態로 돌아왔으니 이런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느냐고 그들은 反問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首肯할 만한 點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깊이 더 생각해 봐야 할 點이 있다. 于先 當時 大韓民國 國民 사이에 擴散돼 있던 “이 機會에 統一을 成就瑕疵”는 熱望이었다. 特히 8·15 光復 以後 北韓에서 共産統治를 經驗하고 嫌惡를 느껴 越南한 國民은 거의 모두가 北進統一을 苦待했다. 이러한 雰圍氣를 大韓民國의 어떤 統治者가 抑制할 수 있었겠는가. 더구나 美國 政府는 北進統一을 積極的으로 支持했다. 그래서 美國 政府의 主導 아래 유엔 總會는 유엔軍의 38度線 月經을 支持하는 決議案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다른 한便으로, 戰爭을 開始한 北韓은 敗退를 거듭하면서도 征戰할 뜻이 全혀 없었다. 後날 公開된 中國 文書에 따르면, 김일성은 中國 政府에 對해 “우리는 山으로 들어가서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爭點 : 北進을 원산만~大同江 線에서 멈추는 것이 賢明하지 않았을까

    學界 一角에서는, 유엔軍의 38度線 以北 進擊을 支持하면서도 ‘그때 北進을 원산만과 大同江을 잇는 線에서 멈추는 것이 賢明하지 않았을까’ 하는 質問을 提起했다. 이 線에서 멈췄더라면, 後날 中共軍이 介入할 餘地를 없앨 수 있었고, 또 그 線에서 멈춘 境遇 北韓의 ‘領土’는 極度로 制限될 것인데 그렇게 되면 北韓이 하나의 ‘國家’ 또는 ‘政權’으로 存續하기 어려워 結局 自然스럽게 崩壞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때의 國民的 雰圍氣를 考慮할 때 到底히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萬一 李承晩 大統領이 그러한 決定을 내렸더라면 于先 軍部의 抵抗 더 나아가 國民的 抵抗에 直面했을 蓋然性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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