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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關係 幕後 60年-최서면에게 듣다|신동아

韓日關係 幕後 60年-최서면에게 듣다

“飜譯의 原動力은 부끄러움이었다”

  • 심규선 서울大 日本硏究所 客員硏究員(前 동아일보 編輯局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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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入力 2020-06-02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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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서면 구술·고하리 스스무 등 채록·심규선 옮김, 나남, 각 452·562쪽

    최서면 口述·고하리 스스무 等 採錄·심규선 옮김, 羅南, 各 452·562쪽

    國家의 歷史든 個人의 歷史든 時間, 空間, 人間이라는 ‘3間(三間)’이 만든다. 筆者가 飜譯한 ‘韓日關係 幕後 60年-최서면에게 듣다’라는 冊은 거칠게 말해 時間과 空間에서 추방당한 한 人間의 ‘라이프 스토리’다. 누군가가 듣고 싶어 할 程度의 ‘라이프 스토리’라면 成功한 삶일 것이다. 그러나 최서면의 成功은 自身을 追放한 時間과 空間에 對한 復讐도 아니고, 돈과 權力이라는 世俗的인 意味의 成功도 아니다. 그의 ‘成功’李 獨特한 理由다. 

    최서면은 연희전문에 들어가 大寒學生聯盟委員長으로 있을 때 聯盟 團員이 雪山 張德秀를 暗殺한 事件에 連累돼 獄苦를 치른다. 6·25戰爭 때 避亂地 釜山에서 孤兒院을 運營하며 이름을 알리게 됐고, 그 德分에 盧基南 大主敎와 張勉에게 拔擢돼 가톨릭 總務院 事務局長으로 일한다. 그렇지만 場面의 政敵인 李承晩 政權이 예전 事件을 빌미로 逮捕令狀을 發付하자 1957年 29歲의 젊은 나이로 日本으로 亡命한다. 

    최서면에게 日本은 외롭고 쓸쓸한 無人島였다. 그런데 그곳에 自身을 追放한 故國 關聯 資料가 山더미처럼 쌓여있는 것을 發見한다. 끼니에 매달릴 것인가, 史料를 읽을 것인가. 그는 日本 外務省 外交史料館에 파묻혀 韓國關係史料를 읽고 또 읽었다. 

    ‘최서면에게 듣다’는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敎授 等 韓國專門家 4名이 ‘오럴 히스토리’라는 形式으로 최서면을 日本語로 인터뷰한 報告書(非賣品)를 飜譯한 冊이다. 日本 政府가 經費를 대고 韓國專門家 4名이 7年 동안 17番에 걸쳐 70時間이나 그를 인터뷰한 理由는 무엇일까. 최서면이 ‘韓日關係詞 硏究의 最高 權威者’이기 때문이다. 

    최서면은 安重根 義士의 獄中 自轉人 ‘안응칠歷史’와 遺墨들, 야스쿠니神社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北關大捷碑’, 朝鮮이 만든 傑作 地圖 ‘婚日康里歷代國道指導’를 發掘해 韓國으로 가져왔고, 李奉昌 義士 裁判 記錄을 처음으로 公開했으며, 日本에 東京韓國硏究院과 國際關係共同硏究所를 設立하고 學術誌 ‘韓’을 創刊해 日本에 韓國學이 뿌리내리는 데 寄與했다. 



    獨島 關聯 指導 蒐集에서도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朴正熙 大統領, 후쿠다 다케오 總理 等 巨物과도 親分이 깊어 兩國의 政治的 고비 때마다 幕後에서 決定的인 役割을 했다. 그래서 이 冊에는 只今껏 알려지지 않은 興味津津한 뒷얘기가 많이 실려 있다.

    흥미로우면서도 刺戟的인 人物

    최서면은 日本이 가지고 있는 厖大한 韓國 資料를 보고 韓國을 너무 모르는 自身이 부끄러워 工夫를 始作했다고 했다. 筆者도 고하리 敎授 等이 만든 560쪽의 厖大한 報告書를 읽고 비슷한 氣分을 느꼈다. 최서면은 韓國 政府가 돈을 대고, 韓國人 學者가, 韓國語로 인터뷰했어야 옳다. 그런 부끄러움을 감추는 方法이 내게는 飜譯이었다. 

    다만, 原本에 充實하면서도 조금이나마 飜譯者의 個性을 살리기 위해 努力했다. 證言 中에서 틀린 部分은 檢證해 脚註로 바로잡았고, 登場人物 600餘 名에게는 略歷을, 300餘 個 項目에는 說明을 붙였다. ‘아주 자유로운’ 靈魂의 人間이(최서면), ‘아주 長時間’에 걸쳐서 한 오럴 히스토리에(70시간), ‘아주 仔細한’ 說明을 붙이겠다는(장문의 週) ‘3字’의 콘셉트를 세운 것이다(물론 評價는 讀者의 몫이지만). 

    최서면은 日本에 있던 30年 동안은 勿論이고 1988年 韓國으로 돌아온 以後에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公職을 맡아본 적도, 月給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可能한가. 飜譯을 마치며 한 가지 事實에 생각이 미쳤다. 최서면은 不利한 時間과 空間을 애써 克服한 것이 아니라 아예 無視함으로써 超越했다는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는 穩全히 自身이라는 ‘人間’에 集中할 수 있었고, 華麗한 業績은 自然스레 따라온 것이 아닌지. 흥미로우면서도 刺戟的인 人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機會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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