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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濟州의 딸’ 고두심 “開拓 精神 强한 濟州人, 强靭할 수밖에요”|신동아

‘濟州의 딸’ 고두심 “開拓 精神 强한 濟州人, 强靭할 수밖에요”

[인터뷰] 國民 俳優 고두심의 濟州 禮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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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5-30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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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섬을 떠나는 瞬間, ‘그 섬 出身’이라는 말은 非主流의 印章(印章)이 됐다. 濟州에서 나고 자란 俳優 고두심은 브라운管의 뒤便에서 섬사람의 運命을 온몸으로 堪耐했다. 

    “아무래도 섬에서 陸地로 와 뿌리내리려니 힘든 點이 많았죠. 제가 放送 生活을 始作할 때 아무리 東西南北을 다 쳐다봐도 濟州 사람은 흔치 않았어요. 그래서 强靭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어떻게든지 살아남아야 했고, 뿌리내려야 했고, 제 自身을 곧추세워야 했죠. 濟州 出身으로 中央에서, 더 나아가 世界에서 活動하는 사람들은 아마 그런 精神을 갖고 있을 거예요.”

    “濟州 하면 고두심 얼굴 떠오른다 해요”

    고두심은 1951年 濟州市 남문동(只今의 中央로)에서 태어나 濟州女中·女高를 卒業했다. 中央로는 濟州의 原都心이다. 한때 이곳에는 盜聽과 敎育廳, 各級 學校와 商業 施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뒤 大部分 施設이 新都心으로 옮겨갔다. ‘國民俳優’가 幼年 時節을 보낸 洞네는 衰落의 運命에 直面했다. 그女가 淡淡히 말했다. 

    “歲月이 흐르다 보면 時代가 바뀌고, 旣存 都心만 開發할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은 새로 開發된 데로 눈을 돌리게 되죠. 아쉬움이 없지는 않죠. 原都心이 잘 保存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고두심은 1972年 MBC 公採 5期 탤런트로 演藝界에 데뷔했다. 올해로 演技 人生 48年째를 맞았다. 그는 放送 3社(KBS, MBC, SBS) 演技大賞을 모두 受賞한 俳優이기도 하다. 



    - 故鄕 濟州는 ‘俳優 고두심의 延期 世界’에 어떤 影響을 줬나요. 

    “아무래도 自然에서 살았던 經驗 德에 내 演技도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演技가 人爲的이지 않고 計算돼 보이지도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거든요.” 

    - 俳優님 연기평 中에는 ‘便安하다’는 評價가 많죠.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 便이에요.” 

    - 故鄕이 影響을 끼쳤다고 보시는 거네요. 

    “아휴 그럼요. 많이 끼쳤죠. 一旦 健康하잖아요(웃음).” 

    - ‘濟州의 딸’이라는 表現이 부담스럽지는 않던가요. 

    “많이 부담스럽죠. 濟州島 하면 고두심 얼굴이 떠오른다고 해요. 어깨가 무겁죠. 저를 보면서 ‘濟州 사람은 저럴 것’이라고 생각하시니까요.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 母校인 濟州女中·女高에 奬學金도 寄託하셨는데요. 

    “學校 다닐 때 奬學金을 못 받아봤어요. 커서 돈 많이 벌면 얼마가 됐건 奬學金을 주는 사람이라도 돼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었어요. 機會가 됐으니 多幸이죠.” 


    김만덕 할머니의 초상화와 김만덕 객주터. 김만덕기념사업회는 2월 27일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대구시민에게 사랑의 쌀을 전달한다고 밝혔다(왼쪽부터). [김만덕기념사업회 홈페이지 캡쳐]

    김만덕 할머니의 肖像畫와 김만덕 客主터. 김만덕記念事業會는 2月 27日 大邱社會福祉共同募金會를 통해 大邱市民에게 사랑의 쌀을 傳達한다고 밝혔다(왼쪽부터). [김만덕記念事業會 홈페이지 캡쳐]

    고두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人物이 朝鮮 正祖 時代의 人物인 김만덕이다. 客主業 等으로 富를 蓄積해 擧上(巨商) 班列에 오른 김만덕은 正祖 18年(1794) 濟州島에 極甚한 凶年이 들자 全 財産을 털어 穀食을 購入해 굶주림에 허덕이던 百姓을 救했다. 고두심은 社團法人 김만덕記念事業會의 常任代表로 活動하고 있다. 

    - 김만덕記念事業會 活動도 오랫동안 해오셨습니다. 

    “祭主뿐 아니라 他 道(道)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훌륭한 분이에요. 김만덕 할머니가 400年 前 人物입니다만, 사람이 世上에 태어나서 그렇게 살다 가야 하는 模範을 보여주신 어른이에요. 그분의 精神이 너무나 좋아서 事業會 일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 오래前 드라마에서도 김만덕 할머니 役割을 하셨잖아요. 

    “네. 1976年 MBC 드라마 ‘淨化’였어요. 얼굴에 아무리 주름을 만들어도 안 되는 나이(25歲)였는데 김만덕 할머니 役割을 했으니 어려움이 있었죠. 그나마 제 목소리가 低音이잖아요. 低音으로 演技하니 視聽者께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只今으로부터 十數 年 前. 고두심은 寄附 文化와 共同體 精神을 涵養하기 위해 김만덕 할머니를 5萬 원券 貨幣의 人物로 選定해야 한다고 主張했다. 勿論 그의 바람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때 김만덕 할머니 影幀 寫眞도 없는데 어떻게 貨幣에 올릴 수가 있느냐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뒤 影幀 寫眞도 만들고 弘報를 하고 있습니다. 돈을 벌면 김만덕 할머니처럼 써야 하는 거잖아요.” 

    - 俳優님 演技를 통해 陸地에도 김만덕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點이 뿌듯할 것 같습니다. 

    “勿論이죠. 祭主가 道稅(道勢)가 剛하지 않고, 사람도 많지 않아요. 살아가기에도 너무 힘이 드니까 다른 사람의 훌륭한 點을 弘報하는 일에 積極 나설 수 없었어요. 저는 只今도 김만덕 할머니를 貨幣 人物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 擧上 김만덕의 삶은 어쩌면 濟州 女性이기 때문에 可能했다고도 볼 수 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先祖들은 너무 瘠薄한 곳에서 生活해 오셨어요. 只今도 濟州에는 海女들이 있잖아요. 그만큼 濟州는 宏壯히 强靭한 精神과 肉體勞動이 어우러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에요. 김만덕 할머니가 濟州에 계셨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지, 溫室에서 곱게 자랐으면 아마 그런 삶은 꿈에도 못 꿨을 수 있어요.”

    “떠나봐야 濟州 좋다는 걸 알게 돼요”

    - 濟州의 人口가 急速히 늘었습니다. 長點도 있고 短點도 있을 텐데요. 

    “글쎄요, 濟州道가 濟州 사람만 사는 데가 아니니 누구든 와서 살 수 있죠. 濟州에서 살겠다고 마음먹은 분들은 土박이들의 精神도 한番 工夫해 보시면 좋겠어요. 提州를 正말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머무르셨으면 좋겠고요. 잠깐 왔다가 ‘故鄕도 아닌데 뭐’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된다는 거죠. ‘1~2年 있다 가는 건데’ 라기보다는 ‘1~2年 있다 가더라도 이곳은 우리나라의 寶物이기 때문에 나도 지키고 가야 한다’라는 생각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 그게 提州를 아끼는 길이니까요. 

    “그렇죠. 그게 아쉬운 點이에요.” 

    - 靑年들에게 濟州의 어른으로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女性, 男性 할 것 없이 濟州道 분들은 그 瘠薄한 곳에서 스스로를 곧추세워서 살아왔어요. 여러분의 父母님을 생각해도 그렇고, 先臺도 마찬가지였죠. 事實 떠나봐야 祭主가 正말 좋다는 것을 알게 돼요. 떠나지 않았을 땐 몰라요. 空氣 좋고 물 좋고. 그런데 밖에 나와 生活하다 보면 힘든 點이 있죠. 그래서 濟州 사람 누구든지 愛鄕心(愛鄕心)은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을 거예요. 

    하나 아쉬운 點은, 생각하던 方向과 달리 濟州가 變化하는 거죠. 그런 게 안타깝고, 아쉽고, 不安한 點은 없잖아 있으실 거예요. 그래도 조금 더 愛着心을 갖고 목소리도 좀 높여주시면 祭主가 우리가 어릴 적 보던 곳으로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濟州 분들은 淸淨 地域에서 지내셨기 때문에 精神도 맑고 開拓 精神도 剛하니 다 잘 살고 계실 거예요. 늘 故鄕을 바라보는 마음을 품고 있으면 그 自體로 다른 地域 사람들에게 濟州에 對한 弘報가 될 거예요. 늘 健康하시고요.”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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