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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世淵 “아스팔트 右派와 絶緣 안 하면 黨 回生 不可”|新東亞

金世淵 “아스팔트 右派와 絶緣 안 하면 黨 回生 不可”

[인터뷰] ‘統合黨 解體論’ 旗발 들었던 金世淵 議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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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5-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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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途 擴張性’ 金炯旿·金鍾仁도 안 먹힐 만큼 黨 망가져

    • 非對委 出帆한다면 김종인이 最善

    • 基本所得 保守 核心 어젠다 돼야

    • 現 狀態로는 大選, 地方選擧까지 6連霸 豫約

    • 親朴 貪慾에 極右政黨으로 滅種 앞둬

    • 政府 機能 縮小해 줄인 財源(財源)을 基本所得에

    • 70年代生 大選候補, 資格 있다고 생각 안 해

    • 釜山市長 補闕選擧? “次次 생각”, 大選? “特別히 할 말 없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選擧는 ‘過去냐, 未來냐’를 놓고 벌이는 全面戰이다. 지난 4月 15日, 未來를 黨名 삼은 政黨은 아이러니하게도 退行(退行) 勢力으로 審判받았다. 정작 破産에 이른 未來統合黨이 여태 길을 헤매고 있다. 빨간 딱紙를 받아들었으나 한 움큼 남은 財産을 놓고 볼썽사납게 으르렁대는 樣相이다. 

    統合黨은, 사람에 比喩컨대 언뜻 보면 巨人(巨人)이고 仔細히 보면 기인(奇人)이다. 일을 맡길 덩치는 갖췄는데, 맡기면 紀行을 일삼을 것 같아서다. 省察보다 摩擦이 앞서고, 價値보다 金배지가 優先順位에 놓인 勢力에 再建은 풀지 못할 宿題다. 統合黨이 破壞的 革新을 敢行할 새 設計圖를 찾아야 할 時點이다. 

    이런 狀況에서라면 金世淵(48) 統合黨 議員(3線·釜山 金井)의 생각을 들여다볼 必要가 있다. 그는 옛 새누리黨 時節 黨內 經濟民主化實踐모임 代表를 지내는 等 改革 行步를 보여왔다. 保守政治人으로는 異例的으로 基本所得과 氣候變化, 難民 이슈에도 穿鑿해 왔다. 總選 直後 김종인 前 統合黨 總括選擧對策委員長이 次期 大權走者로 ‘1970年代生 經濟專門家’를 言及하자 世間의 注目을 받기도 했다. 5月 6日 서울 汝矣島 國會 保健福祉委員長室에서 그와 마주 앉았다.

    “‘마지막 카드’ 金炯旿·金鍾仁도 안 먹혀”

    - 2016年 總選을 起點으로 保守 政黨은 4次例 全國單位 選擧에서 모두 敗했다. 어쩌다 保守政黨이 敗北에 익숙한 黨이 됐나. 

    “2016年 20代 公薦으로 黨內에 維持돼 오던 多樣性의 均衡이 무너졌다. 權力의 입맛에 맞는 行爲만 하는 데 익숙한 人的 構成이 됐다. 自淨作用이 可能한 內部 메커니즘이 살아 있던 18代 國會 한나라黨 水準의 人的 構成만 됐어도 彈劾 狀況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金 議員은 “김형오 前 公薦管理委員長이나 김종인 前 總括選擧對策委員長은 中途 擴張性까지 갖춘, 保守政黨이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면서 이렇게 敷衍했다. 



    “이 카드조차 먹히지 않을 程度로 糖이 망가졌다. 1970年代 産業化 時代를 이끌었던 世代의 感性과 判斷으로 只今의 世上을 바라보니 變化가 理解되지 않는 거다.” 

    - 保守가 自身들이 主流가 아니라는 事實을 認定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 表現이 요즘 많이 쓰이더라. 世上 바뀐 걸 모르니 버림받은 것이다.” 

    - 洪準杓 前 自由韓國當 代表는 統合黨을 두고 “黃敎安의 無能과 朴亨埈의 夢想이 만든 雜湯黨”이라고 毒舌을 날렸던데.
     
    “(暫時 뜸들이다) 글쎄다. 보는 觀點에 따라 다른 解釋이 可能하기 때문에 그와 關聯해서는 말씀드릴 게 없다.” 

    - 洪 前 代表 指摘과 別個로, 統合黨이 價値와 路線에서 判異한 勢力들이 語塞하게 모여 있는 政黨이라는 건 事實 아닌가. 

    “批判的 視角으로 보면 그렇게 表現할 수 있고, 肯定的으로 보자면 스펙트럼을 넓혀 擴張性을 갖추게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서울 송파병에서 落選한 金根植 경남대 敎授는 (黨 안팎에서) 主思派라는 攻擊을 받았다. 實用的 觀點과 中途 擴張性을 갖춘 金 敎授조차 이런 攻擊을 받을 程度면 옛 自由韓國黨의 極右化가 얼마나 甚했는지 알 수 있다.” 

    - 김근식 敎授를 비롯해 安哲秀系 大部分이 落選했다. 當選者 面面으로만 보면 以前과 別般 差異 없이 一元化된 스펙트럼 같은데. 

    “嶺南圈 議席이 全體 地域區 議席의 3分의 2를 차지한 境遇는 일찍이 없었다. 京畿, 講院, 忠淸圈 當選者들도 相對的으로 保守色이 짙은 地域區에서 當選됐다. 憂慮할 대목이긴 한데, 嶺南圈 公薦 過程에서 공관위가 多樣性을 살리려 많이 努力했다. 嶺南圈 初選들의 목소리가 黨에 도움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이番 總選으로 유승민系가 躍進했다는 解釋도 있다. 

    “(유승민系가 主軸인) 새로운保守黨뿐 아니라 20代 總選 때 國民의黨으로 當選됐던 분들도 統合黨에 合流했다. 너무 特定 人物·系派 爲主로 總選 結果를 解釋하는 게 適切한지는 잘 모르겠다.” 

    - 민주당이 實用 政黨 같고 統合黨이 理念 政黨 같다는 分析도 있다. 민주당에서는 進步라는 單語가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統合黨에서는 自由右派, 愛國保守 같은 單語가 頻繁히 튀어나왔다. 

    “民主黨은 主流가 됐기 때문에 便 가르기를 통해 굳이 支持 基盤을 줄일 必要가 없다고 判斷한 것이다. 保守라는 單語를 부끄럽게 생각한 사람들이 右派라는 單語를 쓰자고 했다. 右派라고만 하면 이념적으로 傾倒돼 있는 것처럼 보이니 保守右派, 自由右派를 쓰기 始作했다. 그런데 保守右派, 自由右派라는 表現을 쓰는 사람의 相當數가 極右的 言行을 하고 있다. 只今 統合黨이 自由右派 政黨을 自處하면 極右 셀프 認證을 하는 것이다.” 

    뒤이어 金 議員은 “支持層, 黨員, 議員 中 이런 言行을 하는 사람의 比重이 너무 커져 있다”면서 對話의 時計바늘을 다시 2016年으로 되돌렸다. 

    “結局 20代 總選 公薦 當時 國家와 黨의 主流였던 親朴이 모든 權力을 獨占하겠다고 貪慾을 부린 結果다. 멀쩡하고 나름대로 괜찮았던 中道保守 政黨이 極右政黨으로 滅種을 기다리게 됐다. 親朴은 歷史的인 責任을 져야 한다.”

    “아스팔트 右派가 나라를 위태롭게 해”

    保守의 刷新이라는 길목에서 ‘아스팔트 右派’는 必然的으로 만나야 하는 里程標다. 한 덩어리의 勢力은 里程標를 따라 견결히 길을 걷자 목소리를 드높이고, 또 한 덩어리의 勢力은 더는 잘못된 里程標에 얽매이지 말자고 懇曲히 呼訴한다. 

    - 아스팔트 右派는 統合黨 處地에서 놓을 수는 없는 支持 基盤 아닌가. 

    “나라가 위태롭다고 보고 勇氣 있는 行動으로 나서신 데 對해서는 높게 評價한다. 그런데 어느 線을 넘으면 極端主義로 흐르게 되고, 여기서부터 獨善과 排除의 論理가 作動하기 始作한다. (아스팔트 右派가) 對話나 妥協이 不可能한 存在가 됐다. 새의 兩 날개 中 오른쪽이 부러진 狀態인데, 부러진 날개가 治癒되는 것을 막아서고 있다. 이분들 때문에 이분들 스스로가 걱정하는 대로 나라가 아주 위태로운 狀況에 處할 수 있다.” 

    - 統合黨과 아스팔트 右派 間 絶緣(絶緣)李 必要한가. 

    “必要하다. 絶緣하지 않으면 黨의 回生 可能性이 極히 낮다.” 

    金 議員이 자못 深刻한 表情으로 말을 이었다. 

    “選擧가 끝난 뒤 保守의 주된 關心事가 事前投票 造作說이다. 現實을 보지 못하고 幻覺을 보고 있는 셈이다. 어서 幻覺 狀態에서 깨어나야 한다.” 

    아스팔트 右派의 反對便에 830(1980年代生·30代·2000年代 學番) 世代가 있다. 金 議員은 830世代가 統合黨의 前面에 나서야 한다고 數次例 强調해 왔다. 4·15 總選에서 統合黨 靑年 候補들이 首都圈 地域區에서 宣傳한 點도 830旗手論을 支撐하는 根據 中 하나다. 하지만 一角에서는 ‘꼭두각시 政治’의 再湯이라는 指摘도 提起된다. 世間의 憂慮를 더해 金 議員에게 물었다. 

    - 80年代生이 그間 政治 領域에서 核心 實務를 接할 機會가 거의 없었다. 勢力도 없고 訓鍊받을 機會도 없었던 830이 또 얼굴마담으로만 消費되지 않을까. 

    “그間 얼굴마담은 많이 있었다. 그래서 院內와 院外政黨을 分離하자고 主張했다. 議員들이 黨職을 겸하면 常任委 活動에 地域區 管理까지 해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消化하기 어렵다. 院內代表가 이끄는 院內政黨과는 別個로 院外政黨은 選擧 企劃, 戰略, 組織, 弘報, 敎育, 人材 發掘 等 選擧에 이기기 위한 組織으로 거듭나야 한다. 敗北가 익숙한 狀態를 바꾸기 위해서는 830世代가 얼굴마담이 아니라 (院外政黨에) 브레인으로 參與해야 한다. 그들에게 訓鍊, 執行 機會를 附與해 政黨의 人材로 成長하도록 해야 한다.” 

    - 落選한 830 政治人들이 各 地域區를 다지면서 4年을 버티려면 結局 ‘돈’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젊은 世代는 社會經濟的 基盤이 아직 確固하지 않다. 우리도 先進國처럼 젊은 世代가 政治에 발을 들였을 때는 落選 後에도 安定的으로 地域管理를 할 수 있는 裝置가 있어야 한다. 只今처럼 그냥 放置해서는 困難하다.”

    “金鍾仁, 他意追從 不許하는 분”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제21대 총선 이튿날인 4월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통합당의 변화가 모자랐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김종인 前 未來統合黨 總括選擧對策委員長이 第21代 總選 이튿날인 4月 16日 午前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統合黨의 變化가 모자랐다는 것은 認定한다”고 말했다.

    船長을 잃은 統合黨에서 벌써 한 달 넘게 膾炙되는 이름이 김종인이다. 總選 때 總括選對委員長으로 일한 그에게 非常對策委員會까지 맡길지 與否를 두고 統合黨이 分裂하는 樣相이다. 統合黨은 곧 21代 國會議員 當選人 硏鑽會를 열고 ‘김종인 非對委’ 體制 出帆 與否를 結論 낼 計劃이다. 

    이와 關聯해 金 議員은 지난해 12月 5日 新東亞 인터뷰에서 ‘政治를 하며 交流하거나 影響 받은 人士’를 묻자 윤평중 한신대 敎授, 조순형 前 民主黨 代表, 유승민 統合黨 議員에 더불어 金 前 委員長을 言及한 바 있다. 本格的으로 ‘김종인 非對委’를 話題로 꺼냈다. 

    - 統合黨에서는 2010年 以後 非對委만 7番 出帆했다. 2011年 12月 새누리黨 朴槿惠 非對委 말고는 成功한 非對委가 없지 않나. 

    “박근혜 非對委나 過去 민주당의 김종인 非對委가 成功한 것은 總選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8年 6月 地方選擧 直後 出帆한 金秉準 非對委가 黨의 安定化에 相當한 寄與를 했음에도 不拘하고 남은 業績이 많지 않아 보이는 까닭은 選擧 慘敗 直後 들어선 탓이다. 이番에 非對委가 들어서더라도 慘敗 直後라 運身의 幅이 넓지 않다. 非對委 出帆 時期에 따라 役割 空間이 劇的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劃一的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 ‘金鍾仁 效果’는 먹힐까. 

    “政治 元老 中 金 前 委員長이 中途 擴張性을 가장 크게 지니고 있다. 또 國內뿐 아니라 國外 情勢 흐름에도 精通하다. 非對委가 出帆한다면 가장 잘 이끌 분이다. 總選 때 어젠다 세팅度 제대로 못하던 選對委에 合流해 512兆 원 豫算 中 約 20%를 項目 變更해 小商工人·自營業者를 위해 支援하자거나, 大學生 1人當 緊急災難奬學金 100萬 원을 支給하자는 等 우리 社會가 겪고 있는 가장 어려운 地點을 捕捉해 解法을 내놨다. 政策 論議의 主導權을 單숨에 統合黨으로 끌고 왔다. 어젠다 세팅 能力에서 他意追從을 不許하는 분이다.” 

    - 金 前 委員長의 經濟民主化論에 對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金 前 委員長이 박근혜 캠프 國民幸福推進委員長을 맡았던) 2012年에는 財閥로의 지나친 經濟力 集中이 經濟의 核心 問題였다. 朴槿惠 政府 때 支配構造 變化보다 行爲 規制 쪽에 焦點이 맞춰졌지만 많은 經濟民主化 措置가 始作됐다. 그 뒤 經濟構造가 地殼變動 했다. 大企業들이 過去처럼 支配力을 行使하기 쉽지 않다. 덩치가 크면 도리어 不利한 狀況이 됐다. 아직 남은 經濟民主化 이슈에는 繼續 對處해야겠지만, 只今은 일자리 急速 蒸發 時代에 어떻게 持續 可能한 社會經濟 體制를 設計할 것이냐를 論議해야 할 때다.” 

    - 金 前 委員長과 最近에는 交流가 없나. 

    “總選 다음 날 ‘苦生 많으셨다’는 安否 電話를 잠깐 드린 적이 있다.” 

    - 뭐라던가. 

    “‘早晩間 한番 보자’는 말씀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따로 連絡은 없었다.” 

    - 金 前 委員長은 保守라는 單語조차 必要 없다고 말할 만큼 脫理念主義者다. 하지만 金 議員은 保守主義者를 明確히 自處한다. 두 사람의 결이 다른 것 아닌가. 

    “나는 保守라는 單語가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守舊 政黨이 保守를 僭稱하니 保守가 부끄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保守는 社會 變化를 恒常 受容하면서 漸進的이지만 끊임없이 變化해야 한다. 只今은 保守라는 單語를 쓰는 瞬間 先入見과 烙印에 갇힌다. 金 前 委員長이 保守라는 單語를 쓸 必要가 없다고 말씀하신 건 그와 같이 아주 現實的인 判斷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興味롭게도 金 議員은 이 대목에서 論議의 地平을 理念의 地形圖로 넓혔다. 

    “뒤로 가면 反動(反動)이고, 서 있으면 守舊(守舊)다. 앞으로 가면 保守인지 進步인지 뚜렷한 境界線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保守의 役割은 急進 政策이 導入돼 社會的 費用이 커지는 것을 豫防하는 데 있다. 그런 意味에서라면 基本所得制와 基本資産第 導入도 열린 觀點에서 봐야 한다. 論議 初期에는 基本所得, 氣候變化 等이 進步의 어젠다였을지 모르지만 社會的으로 論議가 成熟했을 때는 保守의 核心 어젠다가 돼야 한다. 이런 主張을 아직까지도 敵對視하면서 말만 꺼내면 左派로 몰아버리는 黨內 雰圍氣가 있다.”

    “基本所得·基本資産 열린 觀點에서”

    - 金 議員이 主唱하는 基本所得制의 前提는 政府組織 縮小 等 行政費用을 줄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 保守政黨에서도 論議를 해봄직한 內容 같은데. 

    “市場 失敗와 政府 失敗가 同時에 發生할 때는 이를 補完하기 위해 ‘社會的 經濟’를 充分히 論議할 수 있다. 保守는 基本所得이 分配 一邊倒 平等主義 政策이고 財政 健全性을 무너뜨린다고 反對해 왔다. 또 基本所得이 高所得層, 高額 資産家에게까지 不必要하게 豫算을 支出한다고 攻擊한다. 이는 政府의 租稅 政策을 통해 所得 再分配 機能을 作動시켜 事後的으로 稅收를 거둬들이면 된다. 充分히 可能한데, 報酬가 이 모든 論議를 拒否한다는 게 問題다. 保守가 基本所得 論議를 할 때는 政府가 提供하는 行政 서비스를 無人化·自動化하는 等 規模와 機能을 줄여야 한다는 前提를 깔아야 한다.” 

    - 基本所得 導入을 통해 福祉 制度를 單純化함으로써 效率을 꾀하겠다는 뜻인가. 

    “旣存 福祉 制度로는 基礎生活需給 對象者를 別途 管理해야 하고, 死角地帶가 없는지 繼續 確認해야 하고, 次上位 階層까지 考慮해야 한다. 次上位 階層도 自動으로 把握할 수 있는 게 아니고, 最低生計費 基準을 잡고 이에 맞춰 定義해야 한다. 行政費用이 莫大하게 쓰이고 있다. 이런 努力을 다 除去하고 그 財源을 穩全히 基本所得에 投入하되, 事情이 더 어려운 분들께는 所得을 두텁게 保全하는 것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이어 그는 “人口 5000萬 名에 1人當 月 50萬 원 基本所得을 支給하려면 年間 250兆 원이 必要하다”면서 “約 500兆원 豫算 中 基本所得과 重疊되는 豫算 支出을 걸러내고, 政府가 關與하지 않아도 될 部分은 줄이는 作業을 强度 높게 進行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 정작 統合黨은 지난해 經濟政策으로 民部론(民富論)을 發表하면서 2030年까지 1人當 國民所得 5萬 달러에 到達토록 하겠다고 主張했다. 21世紀 代案 野黨의 슬로건인지 疑懼心이 드는데. 

    “信念이 確固한 學者들이 不利益을 무릅쓰고 保守野黨과 함께 民部론 作業에 參與했다. 主로 隱退하거나 隱退를 앞둔 敎授님들이었다. 當時 自由韓國黨의 주된 支持 基盤인 年齡帶 분들이 參與해 준 點은 宏壯히 感謝한 일이지만, 最近 社會變動까지 담아내려면 30~40代 少壯學者度 많이 參與했었어야 했다. 年齡 間 均衡이 多少 不足했다. 그러니 李明博 政府 때 政策들이 다시 돌아온 듯한 旣視感을 느꼈다는 분이 많았다.” 

    이내 그는 “(保守에서는) 企業이 잘돼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했다. IMF(國際通貨基金) 危機 以後 大企業들이 採用을 많이 堪當했지만 요즘은 巨大 組織일수록 沒落에 더 크게 露出돼 있다”면서 바뀐 經濟 狀況을 이렇게 表現했다. 

    “大規模 雇傭創出이 아니라 大規模 人的 構造調整이 일어나고 있다. 質 좋은 일자리가 빠른 速度로 사라지고 있는데, 마치 20~30年 前으로 돌아간 것 같은 現實 認識으로 診斷과 處方을 내놓으니 共感帶 形成이 어려웠다. 그러니 糖이 外面받고, 나중에는 아예 關心 對象에서조차 벗어났다.”

    70年代生 經濟專門家 大權走者설

    - 統合黨이 安哲秀 國民의黨 代表를 迎入해야 한다는 主張도 있다. 

    “(安 代表가) 大義에 共感한다면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 黃敎安 前 代表, 오세훈 前 서울市長, 羅卿瑗 前 院內代表 等 潛龍들이 落選했다. 與圈에서는 李洛淵 前 總理 支持가 確固하다. 大選까지 5連霸하는 게 아니냐는 展望이 많다. 

    “이대로라면 大選(2022年 3月)에 이어 地方選擧(2022年 6月)까지 6番 連續 敗北는 이미 豫約해 둔 狀態다.” 

    - 그 渦中에 70年代生 大權走者로 注目받고 있는데, 出馬 計劃이 있나. 

    “過分한 評價라고 생각한다. 내게 그럴 資格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와 關聯해서는 特別히 할 말이 없다.” 

    - 來年 치러질 釜山市長 補闕選擧 出馬 可能性은 있나. 

    “한참 뒤의 일이고, 또 公職에서 물러나는 立場이라 아직 苦悶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다. 次次 생각해 보겠다.” 

    - 釜山市黨 委員長도 맡은 바 있는데, 釜山市長 補闕選擧에 出馬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式으로건 그림을 짜는 데 一助할 생각은 없나. 

    “黨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도움이 必要하면 그런 役割을 하겠지만, (直接) 나서는 役割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向後 政治 行步를 묻는 質問에 그는 끝내 말을 아꼈다. 20代 大選을 앞두고 急變하는 政治 狀況이 그의 쓰임새를 決定할 테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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