琴泰燮(53) 議員이 3月 12日 열린 더불어民主黨 서울 江西甲 地域 黨內 競選에서 탈락했다. 代身 親文(親文)系로 分類되는 강선우(42) 前 민주당 副代辯人이 같은 地域區에서 本選行 公薦狀을 따냈다. 이튿날 金 議員은 自身의 페이스북에 “公職은 奉仕하는 자리라지만, 저 個人에게도 無限한 矜持와 自負心의 源泉이 됐다”며 “再選의 꿈은 사라졌지만 남은 任期에 最善을 다하겠다”고 썼다.
金 議員은 지난해 9月 6日 曺國 法務部 長官 候補者 人事聽聞會에서 “候補者는 學閥·出身과 달리 進步 人士라는 것 때문이 아니라 말과 行動이 다른 言行不一致 때문에 批判받는 것”이라고 했다. 그 뒤 그의 페이스북에는 ‘內部 銃질’ ‘反逆者’ ‘密偵’ ‘뒤에서 칼 꽂는 찌질函’ 따위의 댓글이 달렸다. 그는 같은 해 12月 30日 國會 本會議에서 高位公職者犯罪搜査處(公搜處) 설치법에 與黨 議員으로는 唯一하게 棄權票를 던져 親文 極烈 支持層의 反撥을 샀다.
이런 這間의 事情 때문에 江西甲 競選 結果를 두고 ‘親文 純血主義’의 弊害를 드러냈다는 分析이 잇따른다. 金 議員이 첫 公薦狀을 받아 든 20代 總選 當時 민주당 總選을 指揮한 金鍾仁(80) 前 民主黨 非對委 代表는 “(금 議員이) 좀 안됐다. 事實 金 議員이 탈락하리라 豫想했다”면서 “아무리 現役議員이더라도 權利黨員의 意見이 集團的으로 作動하면 (選擧에서)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其實 人間 琴泰燮은 늘 主流와 不和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刑事部 檢事 時節이던 2006年 ‘한겨레’에 ‘現職檢事가 말하는 搜査 제대로 받는 法’을 連載했다. 1回 連載分에서 金 檢事는 “弱者인 被疑者가 반드시 지켜야 할 行動指針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는 辯護人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것”이라고 썼다. 더불어 “글을 쓴다고 하니 한 親한 檢事로부터 半弄談調로 ‘組織에서 추방당하고 싶으냐’라는 말까지 들었다”고도 했다.
親한 檢事의 憂慮는 眞談이 됐다. 글이 나간 直後 檢察 首腦部가 발칵 뒤집혔다. 같은 해 10月 그는 “檢事로서 不適切한 글을 寄稿했다”며 檢察總長으로부터 警告 處分을 받았다. 그 뒤 搜査와 關聯 없는 서울中央地檢 總務部로 人事 措置됐다. 結局 그는 이듬해 辭表를 내고 檢察을 떠났다.
2020年. 그는 또 主流의 成火에 밀려 ‘半强制’로 정든 둥지를 떠난다. 選擧가 幕을 내리면 그를 代身해 議員會館의 房 한 자리를 꿰찰 사람이 定해질 터. 風雲兒(風雲兒) 琴泰燮의 다음 行步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