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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晳熏 “如前한 密室行政…大統領 會議 한 番이면 끝”|新東亞

인터뷰

禹晳熏 “如前한 密室行政…大統領 會議 한 番이면 끝”

左派 經濟學者 禹晳熏의 ‘文 國政運營’ 診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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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4-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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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記者]

    抗爭의 經驗은 한 世代의 넋에 짙은 자국을 남긴다. 그도 그 世代의 一員이었다. ‘88萬원 世代’를 쓴 禹晳熏 博士는 1968年生이다. 연세대 在學 時節인 1987年 6月 9日, 大學 同期 이한열이 催淚彈에 맞아 쓰러질 때 不過 數 十미터m 뒤에 있었다. 卒業 後 프랑스로 留學을 떠나 파리10大學에서 生態經濟學으로 博士 學位를 받았다. 反美(反美)意識의 洗禮를 받고도 美國 留學을 擇한 餘他 386世代와 다른 行步였다. 

    于 博士는 信實한 左派지만 敎條主義와는 距離를 둬왔다. 그間 쌓아온 履歷도 企業과 政府, 政黨을 網羅한다. 于 博士는 歸國 後 現代그룹(現代環境硏究院), 에너지管理公團 等에서 일했다. 유엔 氣候變化協約 政策分課 議長, 技術移轉分科 理事로 國際 協商에 參與했다. 國務調整室 産業審議官실 專門委員도 歷任했다. 草綠政治連帶에서 政策室長을 맡은 적도 있다. 

    그러다 2012年 문재인 大選候補 支持宣言을 하며 現 與圈과 因緣을 맺었다. 그 뒤 더불어民主黨 싱크탱크인 民主政策硏究院(現 民主硏究院)의 副院長을 지냈다. 20代 總選 때는 민주당 總選政策公約團 副團長을 맡아 總選 勝利에 주춧돌을 놨다. 정작 文在寅 政府 出帆 뒤에는 민주당의 울타리를 떠났다. “즐겁게 살기에도 人生이 짧고, 어깨싸움度 재미가 없었다”는 理由에서다. 權府(權府)를 주름잡는 ‘運動圈 親舊들’과는 다른 選擇이었다. 

    于 博士가 다시 公論場 한복판에 登場한 時期는 ‘曺國 事態’ 때다. 그는 文 大統領이 曺國 法務部 長官을 任命한 뒷날인 지난해 9月 10日, 自身의 블로그에 “87年 以後로 이어져 온 改革派의 名分은 끝났다”고 썼다. 그가 조 前 長官과도 私的으로 잘 아는 사이였던 터라 글의 波長은 컸다. 그로부터 6個月餘가 지난 3月 6日, 서울 평창동에서 그를 만났다. 

    - 이호승 靑瓦臺 經濟首席은 지난해 10月 “韓國 經濟가 比較的 善防하고 있다. 危機를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에 對해서는 無責任하다”고 말했더라. 

    “말이야 그렇게 하지만 速度 果然 그럴까. 政府가 ‘잘했다’ ‘못했다’를 떠나서 危機는 올 수밖에 없다. 美國에서 基準金利를 낮췄다. 우리나라와 相關없이 全 世界的으로 經濟가 危險하다고 보는 것이다. 韓國 經濟에 危機가 오는 것은 當然하다. 그 自體는 問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個個人이 입을 衝擊을 緩和할 것이냐가 關鍵이다. 코로나19 狀況이 終了됐을 때 所謂 基底效果로 (經濟가) 탁 뛸 거냐. 아니면 遲遲不進해지는 形態로 갈 것이냐. 그런 分岐點에 있다.”



    “關心 分野 좁은 金尙祚, 잘 모르는 건 눈감아”

    2012년 12월 5일 국회 정론관에서 당시 조국 서울대 교수, 안경환 서울대 교수,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황석영 소설가,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오른쪽부터)이 ‘국민연대 출범 제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아DB]

    2012年 12月 5日 國會 正論館에서 當時 曺國 서울大 敎授, 안경환 서울大 敎授, 禹晳熏 성공회대 敎授, 황석영 小說家,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장(오른쪽부터)이 ‘國民連帶 出帆 提案’ 記者會見을 하고 있다. [東亞DB]

    韓國銀行 金融通貨委員會는 2月 27日 定例會議를 열고 基準金利를 現行 年 1.25%로 凍結했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擴散勢로 金利 引下 展望이 浮上했지만 現象 維持를 擇한 셈이다. 于 博士는 “이주열 總裁의 리더십이 놀라웠다”면서 “只今 證市는 내리는데 不動産은 오르고 있다. 이 狀況에서 金利를 내리면 經濟는 經濟대로 沈滯인데 不動産 혼자 미쳐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 經濟 리더십은 어떻게 보고 있나? 

    “洪楠基 經濟副總理가 혼자 한다.” 

    - 그런가? 金尙祚 政策室長도 있는데. 

    “金 室長은 아무것도 안 한다.” 

    - 政權 初盤에 張夏成·金東兗 葛藤說이 있었다. 只今은 그런 葛藤說이 없는 것 같다. 

    “洪 副總理 혼자 하니까 그런 거지. 經濟 範圍가 宏壯히 넓다. 最近에는 經濟와 非(非)經濟 部門 사이에 區分도 없다. 그런데 金尙祚 室長은 經濟學者로서 關心 分野가 좁은 便이다. 그러니 잘 모르는 건 눈감고 있고, 잘 아는 것은 손을 못 대고 있다. 자리에 그냥 앉아 있는 사람이 됐다.” 

    - 張夏成, 洪鍾學, 金尙祚 等 改革的 經濟學者들이 大擧 政權에 參與하면서 財閥改革에 對한 期待感이 있었다. 進步 陣營에서는 果然 바뀐 게 무엇이냐는 말이 도는데. 

    “아픈 얘기다.” 

    - 官僚에 휩싸여서 그런 건가? 아니면 애初부터 改革 意志가 弱했던 건가? 

    “나는 팀을 꾸리고, 意思疏通을 圓滑히 하고, 傳達 指針을 調律하는 能力을 總括해 行政能力이라고 表現한다. 言論 用語를 빌리자면 業務掌握力이지. 이 兩班들이 지나고 보니까 行政能力이 弱했던 것 같다. 過去 같으면 톱다운(top-down) 方式으로 일을 했으니 大統領 意志를 빌려 政策 具現이 可能했다. 只今은 大統領 뜻이라고 해서 밑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社會가 發展했다는 뜻이다. 그런 때일수록 非(非)權威主義的 리더십이 重要하다.” 

    - 財閥改革 成果는 어떻게 보나? 

    “애매하다. 經濟民主化라는 表現이 舊時代 패러다임처럼 돼버렸다. 經濟民主化 核心에 該當하는 事項은 法이 아니면 完遂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新規 主題라도 發掘해 推進하면 됐는데, 그렇게도 못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예전과) ‘똑같네’ 하고 보는 것이다.”

    “軍服 입고 벙커 들어가야만 密室行政인가?”

    - 總選 展望은 어떻게 하고 있나? 

    “展望하기 宏壯히 어려운데…. 亡했다고 본다.” 

    - 與圈이 말인가? 

    “그렇다.” 

    - 아직 與黨 支持率은 堅固하게 나오는데. 

    “投票率이 問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3月 末이나 4月 初에 2車路 暴發的으로 增加하게 되면 選擧 自體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混沌의 時期가 될 것이다. 只今까지 狀況을 보면 민주당이 어렵다. 保守 쪽이 相當히 善防하는 結果가 나올 可能性이 높다.” 

    - 于 博士는 左派를 自處한다. 그렇다면 文在寅 政府는 果然 左派인가? 

    “민주당이 左派 政黨은 아니다. 執權 後에 左派일 必要도 없다고 생각한다. 統治 行爲는 온 國民을 相對로 하는 政治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도 共存해야 하고, 政權에 對한 立場과 相關없이 國民 全般의 支持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行政의 領域에서는 選擇肢가 別로 없다. 그렇다고 文在寅 政府가 右傾化된 것이냐고 하면, 그렇게는 생각 안 한다. (다만) 只今은 現實派들이 더 앞으로 나서 있는 狀況이다.” 

    이 대목에서 于 博士는 “彈劾에는 相當數의 中道 勢力이 參與했고 報酬에서도 合理的이라는 분들이 同參했다. 이때 모인 意見을 (政權이) 어떻게 담을 것인지는 只今도 어려운 課題”라고 敷衍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 政權은 積弊淸算 成果가 있지 않으냐고 抗辯한다. 

    “그냥 하는 얘기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 代替 積弊淸算의 意味란 무엇이었을까. 社會 各 部門 構造改革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前任 政權 사람들을 쳐내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칼부림은 아주 最少化했어야 했다. 누군가를 밀어내고 掌握하는 過程이 없을 수는 없는데, 그게 果然 改革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通常的으로 反復된 執權行爲 以上도 以下도 아니다. 지난 大選 때 나온 議題 外에 새로 提示된 議題가 한 가지라도 있는가. 只今은 元來 하려던 걸 ‘잘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 못했다는 뜻이다. 社會는 그렇게 좋아지는 게 아니다. 생각 안 했던 議題를 새롭게 提示하면서 社會가 앞으로 나아간다.” 

    于 博士는 이내 말머리를 ‘疏通의 失敗’로 돌렸다. 

    “疏通은 弘報와 다르다. 決定해 놓고 간 보다 雰圍氣 안 좋으면 빼는 게 疏通이 아니다. 果然 文在寅 政府가 密室行政을 벗어났나. 經濟運用 等은 如前히 密室行政 方式이다.” 

    - 一部 이너서클 안에서 決定된다는 건가? 

    “追更豫算을 編成할 때도 項目 하나하나에 對해 社會的 論議가 必要하다. ‘民主主義 政權은 政策을 저렇게 執行하는구나’ 하는 認識을 만들었다면 設令 成果가 나빴더라도 새로운 시스템이 安着할 수 있었다. 그런데 方式이 바뀐 게 없다. 如前히 大統領 모시고 會議 한 番 하고 나면 끝이다. 이게 密室이지 뭐가 密室인가. 軍服 입고 벙커에 들어가야만 密室行政이 아니다.” 

    - 與圈으로서는 政權 初期에 그런 式으로 치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辯護할 수 있는데. 

    “치고 나간 게 없지 않나.” 

    - 大統領을 包含해 政權 核心部가 檢察改革과 南北 問題에만 關心 두고 있다는 批判도 있다. 

    “내가 봐도 그렇다. 檢察改革이 重要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人氣가 높을 뿐 百 가지 問題 中 한 가지다. ‘曺國 事態’가 總選 6個月 前에 있었다. 與野가 다양한 어젠다를 提示해야 할 때인데, 檢察改革 얘기만 나왔다. 制度에는 形式도 있지만 內容도 있다. 政權이 (檢察改革에 關해) 一部 形式에 모든 걸 걸었던 것 같다.”

    “임미리 告發, 政黨史(史)에 남을 일”

    [지호영 기자]

    [지호영 記者]

    - 민주당의 임미리 敎授 告發은 어떻게 봤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마 言論社(史)뿐 아니라 政黨社(史)에도 남을 거다. 猖披한 일이다. 그나마 더 늦기 前에 告發을 取下해서 多幸이라고 생각했다.” 

    - 進步 陣營에서도 글을 쓰거나 發言할 때 自己 檢閱 한다는 사람도 있다. 

    “民主黨 國會議員들 만나보면 나한테 第一 부럽다고 하는 게 ‘아직도 文字 爆彈 안 받았냐’는 것이다.(웃음)” 

    - 그런 行動을 하는 사람들을 ‘文빠’라고 한다. 一角에서는 ‘팬덤’의 一種이라 봐야 한다고도 主張한다. 

    “勿論 ‘文빠’가 別로 좋은 用語는 아니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팀을 아무리 甚하게 應援해도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런데 攻擊的 形態로 變하면 問題가 된다. 政治에서도 팬덤이 잘 定着하면 文化가 될 텐데, 只今은 文化라고 보기에는 조금 過하다.” 

    - 노사모와는 性格이 다른 것 같다. 

    “노사모는 數字가 적었고, 盧武鉉 大統領이 大統領 候補도 되기 前에 생겼다. 只今 文 大統領 支持者는 數字도 많고 資金 動員力도 팬덤치곤 큰 便이다. 노사모 때보다 힘이 세다.” 

    - 琴泰燮, 朴用鎭 議員 等은 所信을 폈다가 批判을 세게 받았다. 

    “입 다물고 있는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判斷이 黨論과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면 모르겠는데, 내가 알기로는 判斷은 안 그런데 辱 먹을까 봐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國會議員씩이나 돼서 사람들 눈치 보며 말도 못하고. 그런 사람이 무슨 憲法機關인가.”

    “386, 안타깝게도 實力이 없다”

    - 이명박·박근혜 政府 때 市民團體에서 權力 批判에 나선 知識人들이 그 뒤 朴元淳 서울市나 文在寅 靑瓦臺에 大擧 入城했다. 批判的 知識人의 權力化 아닌가? 

    “잘했으면 그런 얘기가 안 나왔을 것이다. ‘그놈이 그놈이네’ 하다 보니 過去까지 辱을 하는 거겠지. 專門家의 政治 參與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美國 오바마 政權 때 보니까 學者들이 다양한 方式으로 政策을 만드는 過程에 參與하더라.” 

    - 조국 敎授는 靑瓦臺 民政首席祕書官과 法務部 長官을 맡으면서 ‘앙가주망(engagement·知識人의 社會參與)’이라는 單語를 썼는데. 

    “曺國 先輩의 境遇 2017年 大選 때까지만 놓고 보면 批判的 社會參與라고 表現해도 異常하지 않다.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大選에 이기면서 너무 깊이 들어간 거지.” 

    ‘曺國 事態’가 勃發하기 直前, 공교롭게도 ‘386 世代遺憾’이라는 冊이 世上에 登場했다. 于 博士는 冊의 末尾에 실린 解除(解題)에 이렇게 썼다. 

    “우리 社會에서 386은 맨 위에 올라섰다. 아직 정점도 아니다. 앞으로 10年이 될지, 20年이 될지, 韓國 社會에서 最高意思決定權者의 位置에 서게 될 것이다. 그들에 對한 本格的인 牽制의 始作이, 바로 이 冊이 갖는 意味다.” 

    - 386世代가 旣得權이 됐다는 論議가 擴散됐지만 總選을 앞두고 386 政治人들이 交替되는 雰圍氣는 아닌 듯하다. 

    “그러면서 亡하는 거다. 英國을 비롯해 여러 國家에서 指導者들의 나이를 낮춘다. 政黨의 戰略으로 大衆政治에서는 效果的이다. 效果的 方法이 있는데 안 쓰니 亡하는 거지 뭐.” 

    - 386을 두고 韓國 經濟成長 過程의 수혜를 본 뒤 政治權에 進入했다는 評도 있다. 

    “市民運動을 한 386 中에는 都市 貧民이 많다. 내 周邊에 如前히 市民運動하고 있는 親舊나 先輩들 보면 茶 없는 사람이 太半이다. 榮光도 빛도 없이 都市貧民으로 애 키우고 산다. 줄도 잘 못 대는 사람들이다. 只今도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은 배가 많이 고프다. 가슴이 덜 뜨거웠던 사람들은 먹고살 만하고.” 

    于 博士는 “386世代가 안타깝게도 實力이 없다”면서 “사람을 어떻게 相對할지는 잘 아는데, 無數히 많은 問題를 풀기 어렵고 特히 理工系 쪽 知識이 너무 없다”고 덧붙였다. 

    - 執權黨 386 政治人은 386 批判論에 對해 “우리 世代는 스스로 뭘 할 수 있을 때 評價받고 싶다. 이제 우리 世代가 前面에 서서 책임지고 일할 時點”이라고 主張했다. 

    “낮은 水準의 ‘3金 政治’다. 3金 政治는 2金(김영삼, 金大中)李 大統領이 되면서 끝났다. 386度 돌아가면서 한 番씩 다 해야 하나? 스스로 물러나지 못한다. 1970年代 以後 出生한 사람들이 새로 登場해서 386을 밀고 가는 수밖에 없다.” 

    - 運動을 통해 民主主義를 이룬 386이 ‘民主化 以後의 民主主義’를 理解했던 方式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아는 386 아저씨들은 政治, 그것도 中央政府에서의 民主主義 外에 全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職場民主主義·生活民主主義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組織 안에 들어오면 깡패더라. 民主主義를 敎科書로만 배우다 보니까 民主主義를 組織 안에서 어떻게 適用하고 擴張해야 할지 모른다.”

    “改革 모멘텀 다시 잡기 어렵다”

    - 盧武鉉 大統領과 文在寅 大統領을 어떻게 比較하나? 

    “盧 大統領은 個人 信念이 剛했던 사람이다. 어떤 式이건 間에 本人이 判斷하고 決定했다. 文 大統領은 여러 사람의 智慧를 빌리는 스타일이다. 大統領이 된 뒤에는 그런 모습이 잘 안 보인다.” 

    - 文 大統領이 野黨 代表 時節 2年間 가까이서 지켜봤을 텐데 그때는 어땠나. 

    “많은 사람의 意見을 들었다.” 

    - 왜 大統領이 된 後에는 그런 모습이 안 보이나? 

    “모르겠다. 두루 듣기보다는 行政 日程을 消化하는 데 急한 것 같다. 只今 우리가 데이터가 없어서 判斷을 못 하는 게 아니다. 多面的인 形態의 決定을 내려야 할 일이 많다. 過度한 行政 日程은 줄이는 게 좋다. 大統領은 判斷하는 사람이다. 判斷의 品質을 높이는 게 더 重要하다.” 

    인터뷰 末尾에 于 博士는 “改革의 모멘텀을 다시 잡기 어려울 것 같다. 되게 슬픈 일이다”라고 했다. ‘문재인 時代’도 熱望-失望-絶望의 手順으로 접어들고 있다. 어디서 본 듯한 旣視感(?視感)李 든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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