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來統合黨이 26日 第21代 總選 總括選擧對策委員長으로 金鍾仁(80) 前 더불어민주당 非常對策委員會 代表를 電擊 迎入했다. 金 前 代表는 29日부터 總括選對委員長으로 選擧를 陣頭指揮한다. 旣存 總括選對委員長職을 맡았던 黃敎安(64) 統合黨 代表는 서울 鍾路 地域區 選擧에 專念키로 했다.
金 前 代表가 統合黨 選對委員長 物望에 오르던 14日, ‘신동아’는 서울 光化門 大寒發展戰略硏究院에서 그를 1時間餘 동안 單獨으로 인터뷰했다. 當時 金 前 代表는 記者에게 “(雜音 論難이 있는) 統合黨 公薦에 對해 더는 얘기하지 않겠다” “태영호 前 英國 駐在 北韓公使 自體를 拒否하는 게 아니다”라면서 自身의 迎入을 둘러싼 葛藤을 縫合하려는 뜻을 내비쳤다. 金 前 代表가 選對委員長職 受諾 意思가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 인터뷰인 터라 波長이 컸다.
하지만 以後에도 統合黨 內에서 ‘金鍾仁 非討論’이 이어지면서 ‘金鍾仁 카드’가 霧散되는 듯 했다. 그러나 首都圈 中道層 票心 攻掠에 苦悶이 많던 黃 代表는 結局 金 前 代表에게 全權을 맡기는 方式을 擇했다.
金 前 代表는 自身이 選擧 司令塔을 맡았던 以前 總選에서 잇따라 勝利한 經驗이 있다. 特히 金 前 代表를 象徵하는 키워드는 누가 뭐래도 ‘經濟民主化’다. 그는 2012年 박근혜 大選캠프에 國民幸福推進委員長으로 合流해 經濟民主化 政策을 設計했다. 2016年 1月에는 문재인 當時 민주당 代表가 金 前 代表를 迎入하며 “經濟民主化를 實現하기 위해 김종인 博士의 智慧와 年輪이 꼭 必要하다”고 했다. 金 前 代表가 指導者의 資質을 評價하는 重要한 열쇳말이 ‘經濟民主化’인 셈이다.
그랬던 그가 이番에는 野黨의 有力 大權走者인 黃敎安 代表의 손을 잡았다. 이와 關聯해 金 前 代表는 記者와 만나 이런 問答을 나눴다.
-황교안 代表와 만난 적 있나.
"그間 한두 番 만났다."
-어떤 사람이던가?
"아주 正直한 사람이다."
-指導者로서의 資質이 있던가.
"내가 남의 黨 代表 資質을 어떻게 코멘트 하나."
-黃 代表에게 經濟民主化 意志가 있나.
“黃 代表가 말이야, 이건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2012年 새누리당 非對委 時節에 내건 經濟民主化 公約 中 代表的인 것이 商法 改正이었다. 以後 黃 代表가 朴槿惠 政府에서 長官으로 있을 적에 法務部에서 商法 改正案을 만들었다. 그러고 國務會議에 上程까지 했는데 朴 大統領이 改正案에 毒素 條項이 있다고 뭉개버렸다. 그래서 無效가 됐다. 그 때 안 거지.”
-黃 代表가 經濟民主化에 意志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는 말인가.
“내가 보기에 그걸 長官이 모르고 했을 理는 없다.”
實際 2013年 7月 法務部는 朴 當時 大統領의 公約을 反映한 商法 改正案을 立法 豫告한 바 있다. 改正案은 集中投票制 義務化와 多重代表訴訟制 導入, 監査委員會 理事·感謝 分離 選出, 電子投票 義務化 等을 담았다. 이들 制度는 少額株主의 權益을 强化하고 大株主의 經營權 濫用을 牽制한다는 側面에서 代表的인 經濟民主化 課題로 꼽힌다. 金 前 代表 말대로 當時 長官이 黃 代表였다. 金 前 代表에게 한 次例 더 물었다.
-黃 代表가 經濟政策에 있어 旣存 統合黨의 路線보다 前向的으로 갈 수 있다고 보나.
“長官 指示가 없었으면 商法 改正案을 만들었을 理가 없잖아. 그런 點에서 黃 代表가 社會 變化에 對한 認識이 있다. 朴 大統領이 안 해서 그렇지. 當時 法務部가 選擧 公約을 實體化하기 위해 努力한 것은 證據가 있으니 事實이다. 그래서 내가 민주당 非對委 代表로 있을 적에 法務部 안을 그대로 발依해서 해보려 했는데 잘 안 됐다. 그걸 겪다 보니 國會에 있을 意味가 없다고 생각해 議員職을 그만둔 것이다.”
這間의 事情을 考慮하면 金 前 代表는 黃 代表를 次期 指導者의 資質을 갖춘 人物로 評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졌듯 金 前 代表와 朴槿惠?文在寅 두 指導者와의 結末은 順坦치 않았다. ‘黃敎安-金鍾仁’ 組合의 運命이 남달리 注目받는 理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