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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 죽어도 異常하지 않아” 無料給食 中斷 쪽방村|新東亞

르포

“굶어 죽어도 異常하지 않아” 無料給食 中斷 쪽방村

“사흘 前 마지막 點心”

  • 김건희 客員記者

    kkh4792@donga.com

    入力 2020-04-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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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年 運營된 鍾路 無料給食所, 코로나19로 門 닫아

    • 給食所 出勤하던 老人들 “배고픔보다 더 힘든 건 외로움”

    • 술로 배 채우는 돈의동 쪽방村 사람들

    • 이웃과 安否 人事 나누며 生存 申告



    [홍중식 기자]

    [홍중식 記者]

    白髮이 星星한 老人을 만난 곳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房村이었다. 이곳에서 老人은 ‘崔氏’로 불린다. 崔氏가 사는 建物엔 5坪 남짓 空間에 쪽房이 4個 있다. 玄關 兼 複道를 빼면, 쪽방 하나當 크기는 3.3㎡(1坪)가 채 되지 않는다. 

    房 안은 어두컴컴하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恰似 地下 洞窟 같은 房이다. 부엌이 따로 없는 탓에 房 안에는 얼마 되지 않는 廚房 살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때가 잔뜩 낀 携帶用 가스버너와 오래된 電氣밥솥, 냄비, 숟가락과 젓가락 몇 個…. 

    崔氏가 小型 冷藏庫 門짝을 열었다. 冷藏庫 안이 휑하다. 그나마 먹을 수 있는 飮食은 지난 설 連休에 받은 가래떡과 콜라 2캔, 언제 삶았는지 모를 고구마, 고추醬과 된醬뿐이다. 오늘 아침 食事를 굶은 崔氏가 冷藏庫에서 가래떡을 꺼낸다. 그가 겸연쩍은 듯 “먹을 게 없어서…”라며 말끝을 흐린다.

    22年 만에 中斷된 無料給食

    崔氏가 재떨이로 썼는지 막걸리를 부어 마셨는지 모를 스테인리스 밥그릇 하나를 들고 房門 밖으로 나온다. 共同으로 使用하는 浴室에서 대충 설거지를 한 뒤 가래떡을 물에 불린다. 이 光景을 본 옆房 老人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만날 막걸리만 잡수시더니, 오늘은 뭐라도 드시려나 보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이 國內에 擴散한 지 한 달. 그사이 都市 貧民이 모여 사는 쪽방村 사람들의 日常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感染症 擴散으로 하루에 한 番, 따뜻한 밥 한 끼를 提供하던 無料給食所가 2月 23日 運營을 暫定 中斷하면서 이들의 食生活까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곳 쪽방村 사람들은 相當數가 서울 鍾路區 탑골公園 뒤便에 있는 無料給食所를 利用했다. 非營利團體 社會福祉院角이 運營하는 이 無料給食所는 外換危機로 露宿人이 急增하던 1998年부터 只今까지 20年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點心 食事를 提供해 왔다. 無料給食所에서 食事하는 이는 大部分 70~80代 어르신이었다. 하루 平均 利用者는 300~320名 남짓. 


    紅燈街에서 貧民 居住地로

    쪽방촌 주택에는 부엌이 따로 없는 탓에 휴대용 가스버너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왼쪽).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촌은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홍중식 기자]

    쪽방村 住宅에는 부엌이 따로 없는 탓에 携帶用 가스버너로 밥을 지어 먹어야 한다(왼쪽).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房村은 傳染病에 脆弱할 수밖에 없는 構造다. [홍중식 記者]

    하지만 코로나19街 本格的으로 擴散된 2月 中旬부터 感染 憂慮로 自願奉仕者 數가 平素의 折半假量으로 줄었다. 엎친 데 덮친 格으로 1月 28日부터 31日 사이 서울 종로구에서는 鍾路老人綜合福祉管을 訪問해 食事한 사람 中 4名(29·56·83·136番)李 코로나19에 感染되는 일까지 생겼다. 結局 社會福祉院角 無料給食所는 코로나19街 잦아들 때까지 暫定的으로 門을 닫기로 했다. 史上 初有의 일이다. 無料給食所를 이끌고 있는 社會福祉院角 總務 해人心 스님은 “이곳이 코로나19 集團 感染의 震源地가 될 수 있다는 憂慮가 커져 내린 決定”이라면서도 “無料給食所 運營 中斷으로 어르신들이 굶고 계신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無料給食所에서 3年 넘게 自願奉仕하고 있는 서진우 氏는 그中에서도 돈의동 쪽房村에 혼자 살면서 꾸준히 이곳에 食事하러 나오던 老人들을 걱정했다. “不實한 食生活로 자칫 어르신들 免疫力이 弱해질까 봐 걱정이에요.” 

    그들은 只今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3月 5日 午後 徐氏와 돈의동 쪽房村을 찾았다. 無料給食所를 나와 1分 程度 걸어서 到着한 樂園商街 隣近에는 고깃집, 술집, 便宜店 等 商店이 櫛比하다. 큰길 건너便엔 요즘 젊은 層의 ‘핫플레이스’ 益善洞 韓屋距離가 보인다. 모텔村을 지나 골목길 안으로 좀 더 들어가자 ‘돈의동 새뜰마을 알림板’이라는 아기자기한 標말이 보였다. 돈의동 쪽방村 入口다. 大門과 電報대마다 펜으로 써 내려간 ‘빈방 있습니다’ 종이 案內文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산뜻하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우중충한 기운이 감돈다. 

    돈의동 쪽房村은 昌信洞, 南大門5街, 동자동, 永登浦 쪽房村과 함께 서울 5代 쪽房村으로 불린다. 日帝强占期 이 자리엔 色紬(色酒) 골목이 있었다. 光復 後에도 서울 最大 集娼村이 자리 잡았다. 서울市가 1960年代 後半 이른바 ‘나비 掃蕩’ 作戰으로 性賣買 女性을 몰아내자, 그 자리를 都市 貧民이 들어와 채웠다. 性賣買에 使用하던 建物이 只今 그들의 住居地가 된 것이다. 

    招人鐘이 달린 빨강 大門을 보고 벨을 눌렀다. 60代 中盤으로 보이는 女性 한 名이 얼굴만 빼꼼 내놓은 채 뜨악한 視線으로 記者 아래 위를 훑어보며 묻는다.
     
    “왜, 아가씨가 房 보시게?” 

    自初至終을 說明하자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온다. 그러곤 앞장서 길을 案內하며 혀를 찬다.

    사람 굶어 죽어도 異常할 게 없는 곳

    “말도 마요. 鍾路 無料給食所가 門을 닫은 뒤로 이곳 사람들이 밥을 제대로 먹고 있는지 굶고 있는지 都統 알 수가 없어. 다들 바깥엘 나오질 않아요. 여기는 只今 當場 저 쪽방에서 사람이 굶어 죽었더라는 얘길 들어도 하나 異常할 게 없는 곳이야.” 

    쪽방村 사람들은 그를 ‘班長 아줌마’라고 불렀다. 이房 저房 사람들 챙기며 쪽방村 秩序를 維持한다고 해서 붙은 別名이다. 쪽房村에는 班長 아줌마가 세(貰) 주는 房이 數十 채나 된다고 한다. 

    쪽房은 한 坪 안팎 空間에서 宿食을 解決해야 하는, 劣惡하기 이를 데 없는 都市 貧民 住居地다. 그런 돈의동 쪽房村이 ‘산뜻하게’ 바뀐 것은 2015年 以後. 大統領直屬 地域發展委員會와 國土交通部가 主管하는 都市脆弱地域 生活與件改造事業(새뜰마을事業)에 選定되면서 2018年까지 事業費 52億4200萬 원이 投入됐다. 마을 景觀이 달라졌고 共同作業場과 마을마당度 생겼다. 그러나 班長 아줌마는 이렇게 自嘲했다. 

    “겉모습만 뜯어고친 거죠. 房 안은 以前과 똑같아요. 나도 여기서 세 받으며 살고 있지만…. 이걸 집이라고 할 수 있나요. 그냥 壁 있고 지붕 있는 房이지.” 

    大寒救世軍維持財團이 서울市의 委託을 받아 運營하는 돈의동쪽房村相談所 調査에 따르면 이곳엔 쪽房이 모두 590個 있다. 작게는 2.3㎡(0.7坪), 크게는 4㎡(1.2坪)까지 크기가 제各各이고, 建物 構造도 木造부터 甓돌, 콘크리트까지 多樣하다. 하루 宿泊料는 7000원에서 1萬 원 사이. 한 달 基準으로 27萬 원 안팎이 普通이다.

    맹물에 캔참치, 라면 스프 넣어 끓인 찌개

    무료급식소 폐쇄로 식사에 어려움을 겪는 쪽방촌 노인. 한 평도 채 안 되는 쪽방에서 부실한 식사를 하고 있다.  [홍중식 기자]

    無料給食所 閉鎖로 食事에 어려움을 겪는 쪽방村 老人. 한 坪도 채 안 되는 쪽방에서 不實한 食事를 하고 있다. [홍중식 記者]

    班長 아줌마가 綠色 大門이 달린 2層 建物을 가리킨다. 6坪 남짓한 空間에 房이 5個 있었다. 房마다 작은 窓門이 하나씩 있고 가스보일러度 돌아가는 이 房 月貰는 30萬 원. 돈의동쪽房村에서는 無窮花 5個짜리 ‘特級호텔’ 取扱을 받는 곳이라고 한다. 

    첫 番째 房에 불이 훤하게 켜져 있다. 얼기설기 不透明 琉璃를 덧댄 나무 미닫이門을 조심스럽게 두드리자 ‘드르륵’ 門을 미는 소리가 나며 金氏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엉거주춤 서서 “누구요?” 묻는다. 班長 아주머니가 재빨리 記者 귀에 대고 “할아버지가 關節炎을 앓고 있어 다리가 不便하시다”고 속삭였다. 

    金氏 할아버지는 쪽방 안에 고만고만한 세간을 갖춰놓고 있었다. 出市한 지 20年은 족히 넘었을 법한 小型 컬러TV, 미니 冷藏庫, 4段 플라스틱 서랍欌, 얇은 毯요와 베개 하나, 電氣 酒煎子와 洋銀 냄비가 보였다. 좁은 房에 世間까지 있으니 할아버지가 다리를 다 뻗으려면 몸을 對角線으로 뉘어야 할 것 같았다. 그에게 “食事는 어떻게 解決하시느냐”고 묻자 “無料給食所가 門 닫은 뒤 여기서 直接 해 먹는다”고 했다. 

    쪽방村에서 부엌 갖춘 房을 求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다. 그런데 金氏 할아버지 집에 그 보기 힘들다는 부엌이 딸려 있었다. 班長 아줌마가 세 주는 房 가운데 唯一하다고 한다. 그 德에 金氏 할아버지는 이웃에 비해 그나마 밥 해 먹기가 나은 便이었다. 그가 말했다. 

    “昨年에 돈의동쪽방相談所에서 받은 쌀이 좀 남아 있거든요. 그걸로 밥 지어 먹어요. 근데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어요. 飯饌도 있어야지. 醫師가 生鮮이랑 고기가 關節에 좋다고 자주 챙겨 먹으라는데, 그럴 돈이 없어요. 주머니 事情에 맞게 슈퍼에서 참치 캔 사서 고추醬, 라면 스프 풀어서 찌개처럼 끓여 먹어요.” 


    “배고픔보다 마음 고픈 게 더 힘들어”

    돈의동 쪽房村은 鍾路1·2·3·4街洞住民센터 管轄 區域이다. 종로구는 17個 洞住民센터를 통해 無料給食所 閉鎖로 食事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쌀과 국수, 라면, 生水 等 非常食糧을 緊急 支援한 狀態다. 이를 案內받은 一部 住民은 洞住民센터에서 物品을 받았다. 종로구 關係者는 “物品 數量이 많지 않아 모든 脆弱階層에 傳達되지는 못한 것 같다. 追加 後援 物品이 들어오면 이番에 받지 못한 분들께도 傳達되도록 措置를 取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얘기를 傳해도 金氏 할아버지는 심드렁했다. 

    “그런 거야 뭐 아는 사람만 가서 받는 거지. 情報에서 밀리면 못 얻어먹어요. 크게 相關도 없고. 여기 쪽방村 둘러보세요. 사람들이 먹는 것에 크게 價値를 두고 사는가. 밥 없으면 굶거나 술로 배 채우죠. 普通은 누가 챙겨줘야 먹는다고.” 

    金氏 할아버지 쪽방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흰色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建物 2層에서 50代 後半쯤으로 보이는 男性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班長 아줌마가 그에게 “朴氏, 無料給食所가 門을 닫아서 어째” 하고 人事를 건네자 憂鬱한 答이 돌아온다. 

    “나는 말이요, 배고픈 것보다 마음이 고픈 게 더 힘들어요.” 

    朴氏가 事業 失敗 後 집에서 ‘튕겨져’ 나온 건 10餘 年 前이라고 한다. 2009年 初 社債 利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았다. 빚쟁이들 督促에 시달리던 아내가 마지막으로 提案한 게 離婚이었다. 鍾路에 쪽房村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一旦 居處라도 마련하자는 생각에 들어왔는데, 그새 歲月이 훌쩍 흐르고 말았다.

    술로 배 채우는 사람들

    朴氏는 벌이가 있는 親子息이 있어 基礎生活受給資格을 받지 못한다. 스스로 밥벌이를 解決해야 하는 處地다. 只今은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日傭職으로 本人 한 몸 겨우 추스른다고 했다. 

    “젊은 나이라도 마음苦生을 甚하게 하면 몸만 傷하는 게 아니라 靈魂까지 疲弊해져요. 내가 萬날 죽는 얼굴로 쪽房村을 왔다 갔다 했거든요. 옆에서 보기 딱했는지 누가 無料給食所 가서 點心 먹고 오라고 하대요. 거기서 따뜻한 밥 한 그릇에 慰安을 얻었지….” 

    午後 3時. 쪽방村 골목길로 나갔다. “집 밖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班長 아줌마 말마따나 골목길은 閑散하다. 슈퍼에서 初老의 中年 女性이 燒酒 2甁을 사들고 나오는 게 눈에 띄었다. 이 모습을 본 한 老人이 “영애야, 영애야” 목청 높여 이름을 부른다. 女人이 걸음을 멈추고 “네?” 하며 돌아보는데 焦點을 잃은 눈이 흐릿하다. 老人이 女人에게 한마디했다. 

    “술 좀 그만 마셔라. 그러다 몸 傷한다.” 

    女人이 흐릿한 微笑를 지은 채 발걸음을 재촉한다.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야윈 몸이다. 쪽房村에는 每日 술로 延命하다시피 하는 이가 許多하다. 家族 없이 홀로 사는 데다 살기가 팍팍하니 술 마실 일이 많다. 술판이 자주 벌어지니 싸움도 잦다. 自身을 ‘李氏’라고 밝힌 할아버지가 혀를 찬다. 

    “영애도 無料給食所 門 닫은 뒤로 밥 안 먹고 술로만 배를 채운다 말이요. 저렇게 몸에 진기(眞氣)가 없으면 免疫力이 다 무너질 텐데 어쩌려고 그러는지, 쯧쯧쯧.” 

    老人에게 “어르신은 食事 잘 챙겨 드시느냐”고 묻자 “나는 뭐…”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얼굴도 삐쩍 말랐다. 李氏 할아버지가 머무는 쪽房으로 向했다. 房 안에 있는 廚房 살림은 단출하다. 老人의 마지막 食事는 사흘 前 서울驛 隣近 無料給食所에서 먹은 點心이라고 한다. 그날부터 只今까지 사흘 동안 燒酒와 막걸리로 虛飢를 달랬다. “왜 술로 배를 채우시느냐” 묻자 李氏 할아버지가 熱辯을 吐한다. 

    “이 房 안에 앉아서는 말이야, 밥이 잘 넘어가질 않아. 無料給食所가 門 닫은 뒤 脆弱階層한테 먹을거리를 준다고 言論에서 떠드는데. 쌀 주고 국수 준다고 속이 든든하게 채워지나. 사람 溫氣가 있어야지, 그게 밥이지.”

    쪽방村 사람들의 生存 申告

    쪽방村 老人들은 눈이 내리고 비가 쏟아져도 無料給食所를 가고 탑골公園을 돌아다닌다. 하릴없이 時間 보내려는 理由도 있지만, 周邊 사람들에게 生死 與否를 알리려는 目的이 크다고 한다. 李氏 할아버지가 한숨 쉬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傳染病이다 뭐다 해서 어딜 돌아다니지도 못해. 이놈의 지긋지긋한 쪽방에서 每日 TV만 끼고 뒹군단 말이야. 쪽房村은 누가 언제 무슨 理由로 죽어도 죽었는지조차 모르는 곳이야. 그래서 쪽방村 사람들은 골목길에서 서로 만나면 安否 人事 나누고, 쪽방相談所에도 出席 체크하듯 每日 들락거려요. 내가 오늘도 살아 있다는 걸 알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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