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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論人 남시욱 “保守 右派가 過半 얻으면 文暴走 막을 수 있어”|신동아

言論人 남시욱 “保守 右派가 過半 얻으면 文暴走 막을 수 있어”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0-04-03 09: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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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韓民國 運命 가를 4月 總選…保守의 犧牲과 決斷 要求돼

    • 나라가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切迫感에 執筆 始作

    • 韓國 保守思想의 뿌리는 自生的 開化派

    • 理念은 모든 價値를 가르는 基準, 疏忽히 여기면 안 돼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남시욱 花亭平和財團 理事長이 ‘韓國 保守勢力 硏究’ 第3版을 냈다. 韓國 保守 勢力의 人脈과 思想的 뿌리를 探究한 이 冊은 750쪽에 達하는 大作이다. 舊韓末 開化派에서부터 朴槿惠 政府에 이르기까지 韓國 保守 勢力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게 整理돼 있다는 點에서 注目된다. 

    著者는 平生 言論人 외길을 걸어왔다. 現場에서 退任한 後에도 持續的으로 大韓民國의 過去와 現在를 만든 思想的 뿌리를 찾고자 했다. 이 같은 熱情과 探究의 結果物이어서 示唆하는 바가 크다. 


    保守 潰滅과 大韓民國의 危機

    南 理事長은 여든둘 나이가 無色할 程度로 에너지가 넘쳤다. 重要한 事件別로 날짜까지 摘示하는 記憶力도 대단했다. 

    인터뷰는 3月 11日 서울 서대문구 忠正路 동아일보 社屋 2層 花亭平和財團 事務室에서 進行됐다. 南 理事長은 韓國 現代史를 縱橫으로 넘나들었다. 오랜 期間 政治部 記者로서 經驗한 다양한 逸話에 理論的 바탕까지 더해져 生動感과 깊이가 남달랐다. 

    -初版이 나온 게 2005年인데 15年 만에 3版을 냈습니다. ‘保守 硏究’라는 主題에 舛錯한 動機가 궁금합니다. 

    “노무현 政權 때 初版을 냈습니다. 알다시피 盧 前 大統領은 ‘大韓民國의 主流 勢力은 資本主義 分裂 勢力’이라면서 國家의 正統性을 毁損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죠. 特히 李承晩 大統領을 미워했습니다. 



    그의 所屬 政黨인 새천년민주당은 黨 綱領에 ‘中道改革政黨’임을 明示했지만 盧 前 大統領은 ‘進步’를 標榜하면서 左派 路線을 걸었습니다. 그러면서 靑瓦臺 參謀陣을 主思派인 386世代, 特히 전대협 幹部 出身들로 채웠지요. 

    盧 前 大統領은 386運動圈들이 꿈꾼 社會를 만드는 過程에서 ‘나를 道具로 쓰라’고 公開的으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國家保安法을 改正하고 言論을 옥죄려 했습니다. 이러자 保守 勢力 안에서도 이른바 ‘뉴라이트’라는 젊은 右派들의 團體가 續續 登場하고 ‘아스팔트 勢力’이 主催하는 ‘反核·反金(丁日)國民大會’를 자주 열었지요. 

    當時 저는 大學에서 學生들을 가르치며 硏究 活動에 專念하고 있었는데 나라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韓國 保守의 思想的 뿌리를 探究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執筆에 들어갔고 이명박 政權 末期인 2011年에 2板, 이番에 3版을 내게 된 것입니다.”

    百尺竿頭의 重大한 時點

    -時期的으로 모두 韓國 保守 勢力이 重大한 岐路에 선 때에 맞춰 出刊됐습니다. 이番 3版에는 2판에 담지 못한 이명박·박근혜 政府 時期 保守 勢力 움직임이 追加됐더군요. 韓國의 保守는 只今 거의 潰滅 狀態나 마찬가지인 狀況입니다. 

    “保守 勢力의 不幸은 朴槿惠 政權의 早期 終結에서 끝난 게 아니라 두 大統領을 비롯해 政權 核心 人物들이 모조리 積弊 勢力으로 斷罪돼 줄줄이 監獄에 가는 事態까지 나아갔습니다. 

    文在寅 政府는 19個 行政部處에 39個 태스크포스팀을 만들고 檢査 等 調査官 589名을 投入해 前 政權 非理를 캤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 前任 大統領은 勿論 建國 後 最初로 司法府 首長인 大法院長까지 拘束했습니다. 

    起訴狀만 朴槿惠 354쪽, 李明博 259쪽, 梁承泰 前 大法院長 296쪽에 達합니다. 特히 兩 前 大法院長의 境遇 起訴狀 外에 裁判部에 提出된 搜査 記錄이 A4用紙 17萬5000쪽에 達합니다. 그에게 適用된 職權濫用 等 無慮 47個 罪目 中에서 司法府 首長이 韓日關係와 國家 利益 觀點에서 政策的 判斷을 하고 이를 擔當 大法官과 協議한 것이 있는데 果然 이것을 不法的인 裁判 關與로 規定해 刑事處罰을 하는 것이 穩當한지는 앞으로도 큰 爭點이 될 것입니다. 

    어떻든 積弊 搜査로 調査받은 前·現職 法官만 100餘 名에 達하고 변창훈 檢事, 李載壽 前 機務司令官 等 많은 被疑者가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2018年 6月 13日 地方選擧는 與黨의 싹쓸이로 끝났고요. 保守 勢力은 그야말로 瀕死 狀態에 빠져 있습니다. 

    問題는 保守 勢力의 危機 次元을 넘어 이番 政府의 左派 社會主義 政策으로 나라가 죽느냐 사느냐 岐路에 서 있다는 겁니다. 文在寅 政權의 國政 亂脈과 國家 危機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그야말로 百尺竿頭의 重大한 時點에 保守 勢力의 責任은 文字 그대로 重且大합니다. 現在 與件이 어렵더라도 自由民主主義와 市場經濟 體制를 守護하고 나아가 ‘統一先進韓國’을 이룩해 世界에 우뚝 서는 반듯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保守 勢力의 確固한 信念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守舊 反動 旣得權 이미지 털어버려야

    -保守라는 말 自體가 守舊, 反動, 旣得權 維持라는 否定的 뉘앙스를 풍깁니다. 이에 비해 ‘進步’는 進取와 開放, 先進을 의미하는 肯定的 意味로 받아들여지고요. 保守 勢力이 左派들의 프레임에 當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바꿀 方法은 없는지요.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報酬面 어때? 하는 正攻法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保守’는 비록 날렵한 用語는 아니더라도 무게가 있는 單語입니다. 英國의 現 執權黨 名稱이 保守黨(Conservative Party)입니다. 勿論 ‘保守’란 말이 듣는 이에 따라서는 否定的으로 느껴지는 건 事實입니다. 自由主義 市場經濟 理論의 先驅者인 하이예크(Friedrich A. Hayek)조차 ‘保守主義者라 불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保守主義 自體는 變化에 對한 신중한 態度를 말하는 것이지 특정한 政治 理念을 指稱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先進國의 境遇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英國의 保守主義는 革命 代身 議會政治制度를 지키자는 거였고, 獨逸과 프랑스의 現代 保守主義는 社會主義 革命으로부터 旣存의 共和政을 지키자는 것이었으며, 美國의 保守主義는 200餘 年 前 獨立宣言書에 規定된 自由主義를 지키자는 겁니다. 日本의 保守主義는 共産革命으로부터 天皇制를 지키자는 것이고요. 

    ‘保守’라는 呼稱에 求愛하기보다는 保守主義 哲學을 定立해야 합니다. ‘保守=守舊’여서는 곤란하다는 거죠.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革命의 過激性을 批判해 오늘날까지 保守主義의 援助로 일컬어지지만 決코 守舊的인 王黨派를 擁護하지 않았습니다. 美國 獨立革命을 讚揚했고 프랑스大革命의 民主主義 原則을 支持했습니다. 韓國의 保守도 果敢한 自己 革新을 通해 守舊, 反動, 旣得權 이미지를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現在의 國家 危機를 克服할 수 있습니다.”

    韓國 民主化에 保守勢力도 寄與

    -그렇다면 우리 保守 勢力이 지켜야 할 政治 理念은 무엇일까요. 

    “韓國의 保守는 建國 過程에서부터 自由民主主義와 市場經濟 體制를 理念으로 받들고 이를 共産主義로부터 지키려 했습니다. 아직까지도 完全히 實現되지 않은 未完成의 價値 體系입니다만 그런 理念을 지키면서 가꿔가려는 것이 只今까지 韓國 保守 勢力이 걸어온 길입니다. 保守 勢力이 自矜心과 自信感을 가져야 할 대목입니다.” 

    그는 ”그 延長線上에서 韓國의 保守 勢力이 民主化에도 寄與했음을 分明히 評價해야 한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흔히 保守 勢力 業績을 建國과 産業化에만 局限하는 傾向이 있는데 民主化 亦是 保守 勢力의 業績임을 外面해서는 안 됩니다. 韓國의 民主化는 1980年代 後半 뚜렷이 成長한 總體的인 國民 力量의 結果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영삼 김대중이 이끈 正統 保守野黨과 이를 支援한 金壽煥 樞機卿 等 宗敎界와 各界 指導者들, 여기에 現在 ‘守舊 言論’이라고 罵倒당하는 동아일보·조선일보 等 保守 言論의 寄與度 컸음을 正當하게 評價해야 합니다.” 

    南 理事長은 1987年 6月 抗爭의 방아쇠 役割을 한 ‘박종철 拷問致死 事件’의 探査報道 司令塔이었다. 동아일보 編輯局長으로서 拷問致死 事件 眞實을 파헤친 一連의 報道를 陣頭指揮했다. 그런 그의 말이었기에 더욱 무게感이 실렸다. 

    “박종철 事件 報道와 關聯해 外壓이 엄청나게 甚했습니다. 社主인 佚民 金相万 會長은 오죽했겠습니까. 그럼에도 한 番도 이래라저래라 一切 干涉하지 않았습니다. 韓國의 民主化에는 이렇듯 保守 勢力의 엄청난 寄與가 있었음을 後代가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保守 思想의 뿌리는 自生的 開化派

    -冊을 읽다 보니 韓國 保守의 뿌리를 1880年代 活動한 開化 勢力에서 찾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韓國의 自由民主主義 思想과 制度는 自生的이라기보다 1945年 光復 後 美軍政에 依해 移植된 것이라는 主張이 생각나서요. 

    “重要한 指摘입니다. 韓國 保守 勢力에 保存할 價値가 뭐가 있느냐는 一部 論者들의 質問은 우리 近現代史를 모르는 愚問(愚問)입니다. 

    舊韓末 朝鮮에서는 外勢에 對應하는 思想으로 세 가지 흐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守舊派라고 할 수 있는 衛正斥邪派, 두 番째는 宗敎的 유토피아 革命思想人 東學, 세 番째가 外國에 門戶를 開放해 文明開花를 하자는 開化派였습니다. 

    開化派는 바깥世上을 經驗하면서 朝鮮의 現實을 自覺한 政治的 現實主義者들이었지요. 이들은 오늘날 國會에 該當하는 民會(民會)를 設置해 立憲君主國家로 나라를 近代化하는 것을 最高의 以上으로 생각했습니다. 

    開化派를 世代別로 區分해 보면 1世代는 박규수·吳慶錫·유홍기 等 1830年代 以前 出生者, 2世代가 김옥균·洪英植·兪吉濬·朴泳孝·徐載弼 等 1850~1860年代生, 3世代가 李承晩·安昌浩·梁起鐸 等 1870年代生입니다. 이들 中 李承晩이야말로 大韓民國 建國을 直接 指揮했다는 點에서 오늘날 韓國 保守 勢力의 時調(始祖)라 하겠습니다.” 

    -保守의 思想이 바깥에서 移植된 것이 아니라 韓國 內에서 自發的으로 일어났다는 歷史 認識은 어떤 意味를 갖습니까. 

    “大韓民國이 태어나서는 안 될 나라였다는 自虐史觀(自虐史觀)을 바로잡는 거지요. ‘進步’를 내세우는 左派 勢力은 大韓民國의 建國 過程과 6·25戰爭의 原因 等 現代史의 重要한 事件들을 歪曲함으로써 國家의 正統性을 否定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李承晩을 美國의 下手人으로 전락시켰습니다. 左派들의 歷史觀이 젊은 世代의 精神을 汚染시키는 동안 報酬 勢力은 建國 勢力이자 漢江의 奇跡을 낳은 産業化 勢力임에도 ‘歷史戰爭’에서 밀리고 民族主義와 統一 問題의 主導權도 빼앗겼습니다.”

    獨裁는 不可避한 選擇 아니었다

    [박해윤 기자]

    [박해윤 記者]

    -그런 點에서 保守 勢力이 反省할 點이 많다고 봅니다. 冊에서도 그 點을 均衡感 있게 짚었더군요. 

    “保守의 공(功)은 과(過)보다 크지만 過도 있는 그대로 認定해야 한다고 봅니다. 一部 保守 勢力이 日帝 때 親日을 했으며, 李承晩·朴正熙 政權 때는 獨裁에 앞장서고 協力한 것이 事實이었으니까요. 一部 政治學者들은 權威主義 統治가 開發途上國에서는 不可避한 選擇이었다고 擁護하지만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李承晩이 3選을 하지 않았다면, 朴正熙가 維新을 하지 않았다면 大韓民國의 오늘은 다른 모습일 겁니다. 韓國 保守 勢力의 또 다른 過誤는 不正과 腐敗, 道德的 退行입니다. 李承晩 12年, 朴正熙 18年, 全斗煥 7年 統治를 거치면서 權力型 腐敗와 政經癒着이 日常化됐지요. 勿論 不淨腐敗가 다른 政府에서도 溫存(溫存)했으니 權威主義 政權에만 該當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保守 政府라고 할 李明博·朴槿惠 政權의 功과 過도 있을 텐데요. 

    “李明博 政府는 經濟와 外交 分野의 功勞를 評價해야 합니다. 2008年 金融危機에서 成功的으로 脫出했고 2010年에는 4650億 달러라는 史上 最大 輸出을 達成해 韓國을 世界 7位 貿易大國으로 飛躍시켰습니다. 그해 經濟成長率은 6.1%를 記錄했고요. 對美關係 復元에도 成功해 大韓民國이 G20에 進入하는 成果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狂牛病 波動으로 리더십에 큰 傷處를 남겼지요. 끝내 그에게 멍에가 된 BBK 所有權 問題 等으로 結局 裁判을 받는 不運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朴槿惠 政府는 憲政 史上 最初로 彈劾을 當한 大統領이라는 不名譽를 씻을 수 없습니다만, 金英蘭法 制定, 公務員年金 改革, 통합진보당 解散, 敎員勞組 法外勞組火, 自由民主主義統一을 위한 統一準備委員會 出帆 等이 代表的인 功勞입니다. 對北政策에서도 北韓의 武力挑發 時 指揮官에 裁量權을 附與하기로 하는 等 安保 態勢를 確立했습니다. 사드 配置, 韓中FTA 締結도 잘한 일이고요. 

    朴槿惠 政府 外交政策의 功過를 따질 때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朴 前 大統領이 2015年 톈안먼 廣場에서 열린 抗日戰爭 勝利 70周年 記念式에 參席한 것에 批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만 저는 大韓民國 主導의 統一 實現을 위한 國際 環境 造成의 一環으로 보기에 肯定的으로 評價합니다. 

    어떻든 이런 功이 있었지만 朴 前 大統領의 最大 失敗는 彈劾까지 當했을 만큼 政治力이 不足했다는 겁니다. 特히 與黨에서 63名이나 그를 背信하고 彈劾訴追案에 同調하는 事態가 일어났습니다. 靑瓦臺 祕書室만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들로 充員했다면 ‘최순실 事態’를 收拾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다만 내가 確實히 밝힌 것처럼 朴槿惠의 여러 過誤에도 不拘하고 彈劾 自體는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우리民族끼리’ 攻勢에 넘어가선 안 돼

    -어떻든 彈劾은 過去의 일이 됐습니다. 다른 先進國은 4次 産業革命을 통해 未來를 先占하느라 血眼인데, 왜 우리만 過去에 사로잡혀 해묵은 理念 싸움에 國力을 虛費하는지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此際에 理念 싸움의 本質을 들어다볼 必要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韓半島는 世界 唯一의 冷戰 地帶인 데다 最惡의 地政學的 環境 때문에 理念의 對決場이 된 지 오래입니다. 

    흔히 ‘理念’이라고 하면 골치 아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人間觀 歷史觀 宗敎觀 敎育館 國家觀 世界觀 나아가 北韓觀 中國館 美國官까지 決定하는 基礎입니다. 이런 點에서 안철수 氏처럼 理念이 무슨 問題가 되느냐면서 無用論을 펴는 것도 아주 危險합니다. 理念 嫌惡症을 誘發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只今 世界 共産主義 歷史上 前例가 없는 北韓의 3代 世襲 王朝와 對決하고 있습니다. 金正恩 政權의 目標는 南朝鮮 解放입니다. 北韓의 共産主義 政權은 最惡의 獨裁 體制예요. 그들은 只今도 每日 理念 攻勢를 펼치고 있습니다. 北韓의 理念 攻勢 中 注目할 것이 民族主義 攻勢입니다. ‘우리民族끼리’ 攻勢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國內 一部 進步 勢力은 北韓 政權과 連繫하고 있습니다. 北韓 政權의 美人計 工作에 넘어가 어쩔 수 없이 北韓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까지 있지 않습니까.” 

    -문재인 政府의 失政(失政)은 理念 때문입니까, 아니면 無能이나 失手입니까. 

    “세 가지 要素가 婚材한다고 봅니다. 이番 코로나19 事態와 關聯해 대한의사협회에서 일곱 番이나 中國人들 入國을 막아달라고 建議했는데도 無視함으로써 時機를 놓친 일은 情勢 判斷의 失手이자 無能 政治의 例인 同時에 反美·親中 理念에서 비롯된 政策 失敗라고 봅니다. 여기에 最低賃金 急激 人相 같은 것도 잘못된 理念에서 出發한 政策 失敗이자 行政 無能이라고 봐야겠지요.”

    4月 總選은 國家의 運命이 걸린 갈림길

    이 대목에서 記者는 激動의 現代史를 온몸으로 겪어온 元老 言論人에게 “大韓民國 앞날을 樂觀하는지” 묻고 싶어졌다. 그는 “뭐니뭐니 해도 北韓을 어떻게 다룰지에 달려 있다”고 答했다. 

    “코로나19 事態에 따른 經濟的 打擊을 克服하는 데 相當한 期間이 걸리겠지만 國民들이 精神을 바짝 차린다면 絶望할 必要는 없다고 봅니다. 問題는 北韓입니다. 文在寅 政府의 對北政策과 對外政策은 우려스러운 點이 많습니다. 數年 前 中國의 有名 學者가 ‘分斷 民族의 統一은 核을 가진 쪽과 갖지 않은 쪽 中에서 가진 쪽이 吸收 統一할 可能性이 많다’고 公言한 적이 있습니다. 

    勿論 30年 前 蘇聯이 亡할 때 核이 없어 亡한 게 아니라 國民經濟가 破綻 나 亡했지요. 김정은 體制도 人民들 支持를 얻지 못하면 오래가지 못할 겁니다. 다만 南北 間 武力 對決이 일어날 境遇 駐韓美軍이 없다면 大韓民國은 絶對 不利합니다. 그런데 文 大統領은 北韓 核武裝에 對해서는 눈을 감았는지 無條件 支援만 主張하고 있으니 事實上 北核을 容認하는 것이 아닌가 疑惑을 사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點에서 大韓民國의 將來를 無條件 樂觀할 일만은 아니지요.” 

    -總選이 코앞입니다. 어떻게 보시는지요. 

    “이番 21代 總選은 保守 右派 勢力뿐 아니라 大韓民國의 運命이 걸린 重要한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冊에도 썼습니다만 自由 右派 勢力이 過半 議席을 얻는다면 4年 만에 議會 權力을 되찾아 文在寅 政權의 暴走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當場 公搜處 設置法을 廢止할 것이며 檢察 虐殺 人事를 한 秋美愛 法務長官에 對한 彈劾訴追가 可能할 것입니다. 

    現在 中止된 親文 게이트 事件 搜査 再開도 可能할 것이고 裁判이 中斷된 祖國 事件과 金慶洙 慶南知事 裁判도 續開돼 司法 機能이 回復될 것입니다. 或是라도 野黨이 3分의 2 議席을 얻는다면 世上이 뒤집혀 文 大統領에 對한 彈劾訴追가 可能할 것입니다. 彈劾訴追가 議決되면 自動的으로 職務가 停止되니 世上이 完全히 뒤집히겠지요. 2022年 20代 大統領選擧에서 政權交替 靑信號가 켜지는 것이고요. 

    反對로 保守 勢力이 敗北해 過半 議席을 얻지 못한다면 右派 勢力은 繼續 少數黨의 悲哀를 甘受해야 할 것이고, 公搜處가 設置돼 野黨에 서리가 내릴 것입니다. 

    或是라도 改憲 沮止線인 3分의 1에도 未達한다면 文 大統領은 올해 新年會見에서 비친 것처럼 21代 國會에서 大韓民國 政治 構造에 엄청난 變化를 招來할 改憲을 斷行할 可能性이 있습니다. 그때는 果然 大韓民國이 어디로 갈지…. 바야흐로 右派 勢力의 各 指導者들은 大韓民國 回生이라는 大義를 위해 自己犧牲度 甘受할 수 있는 決斷이 要求되는 決定的 時點에 이른 것입니다.”

    군더더기를 뺀 ‘깡마른 文體’

    그는 質問마다 막힘이 없었다. 받아 적으면 그대로 文章이 된다고 느낄 程度로 말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40年 記者 生活을 거치면서 ‘깡마른 文體’를 志向했다는 文章 스타일 그대로였다. 

    -言論人의 길을 걷기가 어려운 時節입니다. 後輩 저널리스트들에게 助言을 付託드립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일이 좋게 보였고, 多幸히도 동아일보 같은 韓國 最高의 新聞社에서 일할 機會가 주어졌기 때문에 10餘 年間 大學에서 가르친 期間을 除外하고는 平生 동안 言論人으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率直히 말해 동아일보가 아니었다면 職業을 바꾸었을지도 모르지요. 大學에서 講義하던 時期에도 동아일보를 비롯한 몇몇 新聞에 틈틈이 칼럼을 執筆했는데, 職業을 標示할 때 大學敎授라는 職銜과 함께 반드시 ‘言論人’이라고 倂記했습니다. 

    言論人의 危機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인터넷과 유튜브 言論이 影響力을 發揮하는 時代가 돼 熱情과 才能만 있으면 特定 言論社 所屬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言論 活動을 할 수 있는 狀況입니다. 言論을 平生의 業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無限한 可能性이 열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시욱
    ●1938年 出生, 서울대 文理大 政治學科 卒業, 서울대 大學院 政治外交學部 席·博士
    ●東亞日報 政治部長·編輯局長·論說室長·常務理事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會長, 文化日報 社長, 고려대·세종대 碩座敎授 歷任. 現 동아일보사 附設 花亭平和財團·21世紀平和硏究所 理事長
    ●受賞: 東亞大上, 韋菴張志淵賞, 中央言論文化賞, 서울市文化相, 임승준自由言論賞, 인촌賞, 서울大言論人對象 等
    ●著書: ‘抗辯의 季節’ ‘體驗的 記者론’ ‘인터넷時代의 取材와 報道’ ‘韓國保守勢力硏究’ ‘韓國進步勢力硏究’ ‘6·25戰爭과 美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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