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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현 “曺國·任鍾晳, 眞짜 左派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신동아

임지현 “曺國·任鍾晳, 眞짜 左派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反民族 左派 임지현 敎授가 본 ‘386 멘털리티’ [2020 大韓民國 新主流 大解剖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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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8-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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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琴泰燮 懲戒? ‘救國의 鋼鐵大悟’ 멘털리티

    • 祖國統一·革命 等 抽象에 執着하면 危險한 結果 낳아

    • 民主化를 大學生 피땀으로 일궈? 民衆 排除 論理

    • 朴正熙에서 김일성으로 고개만 싹 돌린 主思派

    • 過度한 道德的 正當性과 確信이 386 발목 잡아

    • ‘5·18 歪曲處罰’ 法案? 유럽에선 極右가 내는 法案

    • 任鍾晳, 眞짜 革命家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 ‘首領論’에 젖은 386, 日常 民主化 可能할지…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8月 6日 午後 3時. 長대비가 오락가락하는 짓궂은 날씨였다. 서울 麻浦區 서강대 캠퍼스는 무거운 구름 밑에 있었다. 코로나19에 水魔(水魔)가 고약하게 뒤엉켜 캠퍼스의 活力을 앗아가 버린 듯했다. ‘金大建館’에는 靜寂이 흘렀다. 트랜스내셔널人文學硏究所는 518號에 있었다. 人文學은 帝國도, 民族도 아닌 人類를 向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게 硏究所의 비전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紫朱나 統一 따위의 單語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所長인 임지현(61·史學科) 敎授는 손때 묻은 몇 卷의 冊을 쥔 채 記者를 맞았다. 그와 386世代에 關해 얘기해 보고 싶었다. 이 世代가 權力層 곳곳에 똬리를 튼 後 그 主題는 마치 벌레처럼 꿈틀꿈틀 記者의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歷史家의 慧眼을 빌리기로 했다. 過去와 現在를 넘나들다 보면 아스라이 解答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386世代 안에서도 ‘헤게모니’를 쥔 쪽은 NL(民族解放)系列이다. 林 敎授는 民族主義의 盲點을 다루는 데 一家見이 있다. 博士學位 論文 題目은 ‘마르크스, 엥겔스와 民族問題’였다. 20世紀 끄트머리에는 ‘民族主義는 反逆이다’를 執筆해 知識 社會에 地震 같은 論爭을 일으켰다. 21世紀 初入에 ‘우리 안의 파시즘’을 共著했다는 事實도 言及해 둬야겠다. 더불어민주당을 두고 ‘全體主義’ 같은 거북살스러운 낱말이 들러붙기 始作한 마당이다. 일찍이 ‘理念의 進步性과 生活의 保守性’을 話頭로 삼아온 林 敎授가 할 말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曺國 白書’와 클리셰

    인터뷰는 計劃에 없던 素材로 始作했다. 그를 만나기 前날인 8月 5日. 曺國白書推進委員會가 ‘檢察改革과 촛불市民’(以下 ‘曺國 白書’)을 出刊했다. 이야깃거리로 삼을 게 있을까 싶어 살펴보니 33쪽에 이런 句節이 눈에 띄었다. 林 敎授에게 있는 그대로 읽어줬다. 

    “예로부터 支配 勢力 內의 改革運動家들은 한便으로 自己 存在 自體에 주어진 惠澤을 받으면서 다른 한便으로 自己 存在를 否定하려는 二律背反的 面貌를 보이곤 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存在와 意識의 不一致’를 非難하면 改革은 不可能하다. (中略) 어느 時代에나 ‘反改革 勢力’은 ‘存在와 意識의 不一致’를 問題 삼아 改革 勢力을 僞善的이라고 非難했다.” 



    - ‘曺國 白書’ 筆者들이 歷史를 끌어들였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等 革命家들도 부르주아 階層이었다는 點을 念頭에 둔 解釋처럼 읽히더군요. 

    “마치 클리셰(cliche·陳腐하거나 틀에 박힌 생각)처럼 그런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나는 懷疑的이에요. 난 事實 江南左派라는 말에도 懷疑的이에요. 知識人의 포지션은 카를 만하임이 얘기했듯 그가 서 있는 階級的·物質的 基盤이 아니라, 그가 어느 便에 서기로 했느냐에 따라 決定돼요. 萬若 조국 氏가 ‘나는 旣得權層 便에 서겠고 旣得權層이 누려왔던 삶의 方式을 追求하겠다’라고 했으면 그렇게까지 非難받을 일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自身을 늘 抑壓받는 者, 없는 者들의 便이라고 해놓고 實際 삶의 方式은 그들(抑壓받는 者들)을 排除하는 사람들의 方式과 같았잖아요.” 

    - 江南左派라는 말에는 왜 懷疑的인가요. 

    “財閥 아들은 左派가 될 수 없나요? 勞動者는 全部 左派인가요? 江南左派라는 用語 自體가 俗流(俗流) 마르크시즘이에요. 그 사람의 物質的 基盤이나 階級的 利害로 (問題를) 還元해 버리니까요.” 

    - 조 前 長官이 江南左派件 아니건 本人이 位置 지었던 것과는 相衝하는 行爲를 보여 問題라는 뜻이네요. 

    “革命家件 政治人이건 聖人君子가 아닌 世俗的 人間이에요. 말과 行動이 100% 一致하지는 않겠죠. 問題는 그 逸脫에 對해 取하는 姿勢입니다. ‘子息 키우는 사람으로서 잘못했다’ 程度의 얘기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는 없이 (自身에 對한 批判을) 마치 半(反)改革 勢力의 陰謀인 것처럼 몰고 갔잖아요.” 

    - 조 前 長官은 ‘曺國 白書’를 發送받은 以後 페이스북에 “서초동의 촛불을 생각하며 只今부터 읽겠다”고 적었습니다. 

    “나는 瑞草洞 集會에 나가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서초동의 촛불과 朴槿惠 前 大統領 下野를 促求하는 촛불은 다르지 않나요? 그런 式으로 촛불을 專有(專有)하는 거죠.” 

    그는 西江大 77學番이다. 少時적에는 삐라도 적잖게 뿌렸다. “386世代에 비하면 아마추어였다”고 謙讓을 보였지만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困難하다. 運動圈 ‘언더서클’에서 活動하다 無期停學까지 當한 經驗도 있기 때문이다. 家計도(家系圖)는 凡常치 않다. 日帝强占期 社會主義 系列 獨立運動家인 임원근(1899~1963) 先生이 그의 祖父다. 林 先生은 박헌영·김단야와 함께 朝鮮共産黨의 트로이카로 불렸다. 이 때문에 그의 집에도 情報課 刑事들이 불쑥 찾아오곤 했다. 緣坐制의 恐怖가 靑春의 삶을 휘감았던 거다. 얘기는 다시 386 世代로 돌아간다.

    볼셰비키와 ‘包圍된 要塞’

    - 조 前 長官 等 386世代에게는 自身들이 ‘包圍된 要塞’에 있다는 認識이 있는 듯합니다. 

    “‘包圍된 要塞’ 신드롬은 러시아革命 直後 볼셰비키들이 一般的으로 가졌던 認識이에요. 自己네가 社會主義革命에 成功했는데 帝國主義 列强이 러시아를 包圍해 革命을 질식시키려 하니 살아남으려면 民主主義를 抛棄할 수 있다는 論理였어요. ‘陣營론’이 그렇게 나온 겁니다. 볼셰비키 革命 初期에 言論이 누리던 自由는 ‘包圍된 要塞’를 살린다는 理由로 制限됐어요. 勞動組合에 對해서도 糖이 優位를 占했습니다. 黨이 命令하면 勞動者들이 自身들의 私的 理解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탈린주의가 만들어진 心理的 基盤이 ‘包圍된 要塞’ 신드롬이에요.” 

    - 只今 韓國 社會에서 보고 있는 風景 같습니다. 

    “볼셰비키는 包圍됐다고도 얘기할 수 있었지만, 只今 이 사람(386世代)들은 國會 多數派이자 靑瓦臺 權力까지 잡고 있어요. 그런데도 ‘包圍된 要塞’라고 생각하면 無能을 남 탓으로 돌리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包圍됐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認識이죠.” 

    그의 머릿속에서 볼셰비키와 386世代는 작지 않은 크기의 交集合을 形成한다. 그의 說明을 더 듣다 보면 旣視感(?視感)마저 든다. 

    “볼셰비키는 合法 政黨이 아니니 地下에서 活動했어요. 5共 時節 學生運動이나 左派運動度 地下로 숨을 수밖에 없었죠. 地下運動한 사람들은 最大注意(maximalism)의 情緖를 갖고 있어요. 레닌이 1부터 100까지 이야기했으면 1부터 100까지 모두 레닌을 따라야 ‘레닌주의者’라는 겁니다. 韓國式으로 이야기하면 假令 ‘나는 노무현에 한 票 던졌던 사람이지만 行政首都 移轉이 中央 集中을 解消하는 方式인지에 對해서는 疑問이 있어 反對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反動이 되는 겁니다. 386世代가 19~20歲 때부터 運動을 했어요. 어려서부터 그런 情緖가 몸에 배어 있으면 協商이나 妥協을 卑怯한 일로 생각합니다. 1부터 100까지 내가 옳다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니 스스로가 너무 正義로운 거예요.” 

    - 本人들이 設定한 ‘正義’가 따로 있다는 認識인가요. 

    “1990年代 蘇聯이 무너진 뒤 폴란드에 가서 勞動者들을 만나 물었더니 ‘社會主義는 特權層인 노멘클라투라가 勞動者·農民을 抑壓하는 體制’라고 定義하더군요. 내가 무서워하는 건 이 親舊들(386世代)李 只今과 같은 行態를 繼續 보이면 現實 社會主義가 그랬듯 사람들이 ‘左派가 政權을 잡으면 아파트값이 올라 庶民들이 아파트를 살 수 없게 된다’라고 認識하지 않겠어요? ‘左派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더 살기 힘들게 만든다’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後날 더 創意的이면서 더 人間的인 얼굴을 한 左派의 企劃은 사람들에게 버림받겠죠.”

    琴泰燮? 너 왜 우리 決定 안 따라?

    임지현 교수 뒤에 있는 사진들은 독일 사진작가 한스 벤첼이 1930년대 독일 동부에서 찍은 ‘집시’의 모습이다. 이후 ‘집시’는 나치에 의해 학살당했다. [조영철 기자]

    임지현 敎授 뒤에 있는 寫眞들은 獨逸 寫眞作家 한스 벤첼이 1930年代 獨逸 東部에서 찍은 ‘집시’의 모습이다. 以後 ‘집시’는 나치에 依해 虐殺당했다. [조영철 記者]

    斷乎하다. 그리고 堅決하다. 俗稱 ‘共産 貴族’이라 嘲弄받은 노멘클라투라를 言及하는 대목은 386世代에 對한 섬뜩한 警告狀처럼 들린다. 그가 이番에는 世界史의 舞臺에서 또 다른 不世出의 革命家를 召喚한다. 

    “로자 룩셈부르크街 레닌주의를 辛辣하게 批判한 글이 있어요. 中央集中制는 民主主義가 아니라는 게 批判의 核心이었죠. 볼셰비키는 로자의 主張이 러시아革命을 질식시키려는 ‘부르주아 敵’들을 도와줄 뿐이라고 했어요. 實際로는 68革命 以後 西유럽에서 民主的 左派라는 새로운 代案그룹이 나타날 때 로자의 主張이 理論的 資産이 됐죠.” 

    - 昨今의 現實과 比較해 보면 민주당의 琴泰燮 前 議員 懲戒 論難이 떠오릅니다. 黨內에서 쓴소리하는 사람의 存在가 長期的으로는 民主黨에 資産 아닌가요. 

    “그렇죠. 그런데 金 前 議員 懲戒 措置에서 보다시피 말도 안 되는 짓을 자꾸 하고 있잖아요. 실은 金 前 議員 같은 사람이 長期的으로 民主的 左派의 例를 보여주는 것일 수 있죠. 그런 代案的 可能性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只今 狀況은 宏壯히 우려스럽죠.” 

    - 歷史에서 보면 權力 內部에서 代案的 목소리를 쳐냈을 때 沒落 速度가 빨라졌습니다. 

    “自己 구덩이를 파는 거죠.” 

    그는 “전대협 幹部 修鍊會 하는 거 보니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 完全히 軍隊 遊擊隊 訓鍊 같았다”고 一喝했다. 

    - 슬로건이 ‘救國의 鋼鐵大悟’였지요. 

    “政治는 鋼鐵大悟가 되면 안 돼요. 내 생각이 맞나 틀렸나 끊임없이 檢證하고 妥協도 하는 게 政治잖아요. 386世代의 멘털리티는 아직도 救國의 鋼鐵大悟죠. ‘琴泰燮? 너 왜 우리가 위에서 決定한 걸 안 따라?’ 이런 式이죠. 그들이 屬했던 運動圈 組織이 非公開 組織이어서 그래요. 公開 組織 같았으면 感謝도 있었을 테고, 시스템에 依해 問題가 걸러졌을 거예요. 하지만 地下組織이니 예컨대 누구한테 돈 줬는지도 이야기하면 안 됐잖아요.” 

    - 數個月 前 ‘正義連 事態’를 떠올리게 하는 問題意識이네요. 

    “이 사람들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에요. 20代부터 10~15年을 非公開 組織에서 活動하며 몸에 밴 文化입니다. 公開 組織에 나온다 한들 떨쳐버리기 어렵죠. 내 親舊는 韓國 政治의 가장 큰 問題가 甲勤稅(甲種勤勞所得稅)를 냈던 사람이 없다는 거라고 말합니다. 月給쟁이가 돼보거나, 日常生活을 한 經驗이 있는 사람이 別로 없다는 거죠.” 

    - 이른바 會社 生活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하다못해 市場에서 가게를 運營해 본 것도 아니죠. 배우자는 했지만 本人들은 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돈 問題가 重要하다는 걸 모릅니다. 會費 納付가 얼마나 重要한지, 그걸 얼마나 嚴格히 管理해야 하는지 訓鍊받을 機會가 없던 겁니다.” 

    - 거슬러 올라가면 反獨裁 民主化運動 時節 逃避하는 사람에게 돈 대주는 境遇가 있었지요. 民主化 以後에도 그와 같은 行動이 美談으로 膾炙됐고요. 

    “嚴密히 따지면 脫稅잖아요. 政治犯이 있으면 元老들이 돈 몇 千萬 원씩 주곤 했지요.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누구도 묻지 않았어요. 제가 아는 境遇만 해도 그런 일이 꽤 있었죠. 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問題는 이 사람들(386世代)李 日常生活에서 돈 벌고 살아본 적이 없어서 政策에도 感이 없다는 겁니다.”

    李麟榮과 立身揚名

    386世代는 民主化 世代를 自處한다. 이 낱말에는 또렷한 ‘區別 짓기’ 欲望이 엿보인다. 自身들은 價値와 當爲를 좇아 獻身해 살았다는 選民意識이 이들의 感受性을 支配한다. 只今은 國務委員이 된 李仁榮(56) 統一部 長官은 “우리의 政治는 個人의 立身揚名을 꾀하거나, 權力과 名譽를 個人化하기 위해서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記者가 ‘386 旣得權論이 膾炙된다’는 質問을 던졌을 때다.(‘신동아’ 2019年 12月號 參照) 

    - 李 長官은 立身揚名을 꾀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어떤 選民意識이 느껴집니다만. 

    “386世代의 眞情性 自體를 否定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다만 68革命 때 나온 有名한 格言이 ‘地獄으로 가는 길은 善意로 包裝돼 있다’였습니다. 무엇이 正義냐를 따지고 分析하는 힘이 弱할 때 祖國統一이나 革命 같은 抽象에 執着하게 되고, 그것이 매우 危險한 結果를 낳을 수 있어요. 차라리 個人의 立身揚名을 위해서라면 問題가 크지 않았을 거예요.” 

    - 어떤 面에서요. 

    “個人이 立身揚名한다고 먹어봤자 얼마나 먹겠어요.” 

    - 社會的 費用이 훨씬 덜 든다? 

    “그렇죠. 그런데 正義로운 길이라면서 抽象的이고 거의 宗敎的 믿음 같은 것을 追求하니까 不動産 問題가 빚어지고 南北 問題도 破綻 났지요. 非正規職을 保護한다고 만든 政策이 非正規職을 (勞動市場 밖으로) 몰아냈어요. 講師法이 講師를 保護하고 있지 않잖아요. 意圖는 선했겠지만 眞짜 地獄으로 가는 길을 包裝하고 있는 거예요.” 

    最近 난데없이 史上檢證 論難이 빚어졌다. 7月 23日 國會 外交統一委員會에서 열린 李仁榮 長官 候補者 人事聽聞會 자리에서다. 이날 太永浩 未來統合黨 議員은 李 候補者에게 “아직도 主體思想 信奉者냐 아니냐. 이를 밝히는 것이 무엇이 어렵나”라고 물었다. 李 候補者는 “우리나라에서 思想轉向을 强要하는 건 北韓과 南쪽의 獨裁政權 時節뿐이었다”라고 反駁했다. 

    記者가 注目한 건 論難에 덧붙이는 與圈 人士들의 發言이었다. 그 안에 비할 데 없는 道德的 優越感이 짙은 자국처럼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聽聞會 자리에 있던 尹建永 民主黨 議員은 “오늘날 大韓民國 民主主義는 李 候補者와 같이 獨裁 時節 수많은 靑年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金富謙 前 議員은 페이스북에 “李麟榮이 없었다면 太永浩가 國會에 설 수 있었을까?”라고 썼다. 尹 議員과 金 前 議員의 發言을 傳하며 林 敎授와 對話를 이어갔다. 

    - 勿論 思想檢證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만…. 

    “하지 말아야죠.” 

    - 그럼에도 與圈 人士들의 發言에서는 歷史的 自負心마저 느껴집니다. 

    “勞動3卷도 保障받지 못했던 勞動者들이 땀 흘린 代價로 民主化의 物的 基盤이 만들어졌어요. 그들의 發言은 典型的으로 民衆을 排除해 버리는 論理입니다. 또 太永浩라는 사람은 政治的 性向과 無關하게 脫北자잖아요. 一種의 難民입니다. ‘너는 와서 우리의 惠澤을 받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는 얘기 아닌가요? 마치 韓國의 右派가 예멘 難民들이 濟州島에 왔을 때 ‘왜 쟤네를 먹여 살려야 하느냐’고 主張한 멘털리티와 어떻게 다를까요?” 

    - 靑瓦臺 行政官 出身인 문정복 民主黨 議員은 태 議員을 두고 “變節者의 發惡으로 보였다”고까지 해 論難이 일었습니다. 

    “危險한 認識이에요. 그런 멘털리티가 있으니 琴泰燮 氏도 變節者라고 보는 겁니다. 모든 獨裁는 敵과 我軍을 나누는 데서 始作합니다.”

    多數가 決定해 少數 죽여도 民主主義인가

    그는 삐딱한 사람이다. 記者의 印象 批評이 아니라 林 敎授 本人의 自己規定이다. 甚至於는 自身을 “삐딱한 것에 對해서도 삐딱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삐딱함은 正義와 民主를 하나의 ‘레테르’로 獨占한 그룹을 꼬집기에 제格이다. 

    - 最近 민주당은 ‘多數決의 論理’를 民主主義라는 이름으로 앞세우는 모습입니다. 

    “나치가 유대人을 虐殺할 때 平凡한 獨逸 사람 多數가 贊成했어요. 勿論 죽이는 데까지 贊成하진 않았지만 反유대主義 措置를 조금씩 認定하고 모른 척했습니다. 多數가 少數를 죽이기로 決定하면 民主主義니까 옳은 건가요?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투치족을 虐殺할 때, 그 決定이 多數에 依해 이뤄졌어요. 그걸 民主主義라고 拍手 쳐야 하나요? 美國에서도 白人 移住民 共同體가 民主的일수록 아메리카 先住民들을 가장 殘忍하게 죽였습니다. 多數가 決定했다는 것이 道德的 正當性을 附與하기 때문에 아무 躊躇 없이 先住民을 虐殺한 겁니다.” 

    이와 關聯해 林 敎授가 要塞 注目하는 現象이 ‘靑瓦臺 國民請願’이다. 그의 憂慮다. 

    “모든 걸 靑瓦臺 國民請願으로 解決하려 합니다. 5000萬 名 中에 20萬 名이 死因하면 그것이 國民의 뜻이 돼버리는 狀況이에요. 어떤 問題를 定해진 法的·行政的 節次에 依해 解決하는 게 아니라 國民 請願으로 解決한다는 건 宏壯히 危險한 發想이죠.” 

    其實 386世代와 對話하다 보면 時計바늘이 數十 年 前으로 되돌아갈 때가 많다. 自身이 大學 時節 어느 그룹에 屬했다느니, 어떤 論爭을 펼쳤었다느니 等 나름의 逸話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汝矣島 386’뿐 아니라 ‘生活 386’이라 불리는 1960年代生 相當數에게서 엿보이는 習性이다. 

    - 386世代는 大學 卒業 後 30年이 지나서도 NL이니, PD니 말하며 系譜를 따지더군요. 

    “그건 이데올로기와 아무 상관없어요. 갓 高等學校 卒業해 NL과 PD에 對해 얼마나 알았겠어요. 路線의 差異는 굳은 信念에서 비롯하기보다 故鄕 先輩, 學校 先輩 等 偶然에 依해 생겨납니다. 韓國만의 現象은 아니에요. 폴란드 革命史를 硏究하며 勞動者들의 手記를 읽어보니 ‘우리 故鄕 先輩가’라는 말이 나와요.(웃음) 問題는 이 사람들(386世代)李 나이가 들어가는데 如前히 거기에 매달려 있다는 거지. 理念·革命·道德的 正當性의 問題라기보다는 패밀리즘(familism)이죠.” 

    - 앞 世代가 地域으로 뭉쳤다면 그들은…. 

    “패밀리로 뭉친 거지. 理念으로 뭉친 集團처럼 보이나 實은 어릴 때 만들어진 運動 패밀리의 끈끈한 義理로 뭉친 그룹이죠.” 

    - 다른 데서 “朴正熙 政權에서 中·高等學生 時節을 보낸 이들이 民族主義者로 길러졌다가 大學 때 김일성으로 고개를 돌렸다”고 表現했던데요. 

    “나는 NL 主體思想派를 한 番도 左派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내셔널리스트들이죠. 1968~1969年 즈음부터 國定敎科書가 만들어지고 國史 科目이 强化되는 等 民族文化를 强調하기 始作했어요. 國民敎育憲章과 國旗에 對한 盟誓가 생겼죠. 朴正熙 프로젝트입니다. 卽 386世代는 中·高等學校 때 民族主義的인 敎育을 받았죠. 그런데 大學 들어와서 보니 朴正熙는 滿洲國 將校이고 김일성은 日本軍과 싸웠잖아요. 民族主義的 正統性을 김일성에 두는 겁니다. 思惟 方式이 나이브하잖아요. 民族主義의 에피스테메(episteme·認識體系)는 둔 채 고개만 싹 돌려 김일성主義者가 됐죠. 朴正熙式 國民 訓育의 痕跡이 1980年代에 主思派로 나타났지요.”

    왜 任鍾晳은 부끄러움이 없나

    2018년 12월 31일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관련 현안으로 국회 운영위에 출석한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김동주 동아일보 기자]

    2018年 12月 31日 김태우 前 靑瓦臺 特別監察班원 關聯 懸案으로 國會 運營위에 出席한 任鍾晳 當時 大統領祕書室長(왼쪽)과 曺國 當時 大統領民政首席祕書官. [김동주 동아일보 記者]

    6月 3日 민주당이 ‘5·18 歪曲處罰法’을 黨論으로 檢討하고 있다는 消息이 알려졌다. 5·18을 否認·誹謗·歪曲·捏造하거나 虛僞 事實을 流布하면 7年 以下의 懲役, 7000萬 원 以下의 罰金에 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與圈 안팎에선 ‘歷史 바로 세우기’라는 슬로건이 돌았다. 

    - 與黨이 5·18에 對한 歪曲을 處罰할 수 있는 法案을 내놨습니다. 

    “그럼 앞으로 모든 歷史的 判斷은 判事들이 하는 거지. 메모리 로(memory laws)는 유럽에서는 極右派들이 만드는 法이에요. 左派라고 하는 민주당이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 極右 勢力이 만드는 法을 들여와서 모델이라고….” 

    - 386世代의 눈에 비친 民衆은 어떤 存在일까요. 

    “自己들이 생각하는 民衆이 民衆이지(웃음). ‘民衆은 이래야 한다’고 設定해 놓고 萬若 그들이 統合黨에 票를 던지면 民衆이 아닌 게 되는 거죠.” 

    - 386世代가 韓國 現代史에 남긴 成果와 限界는 무엇일까요. 

    “民衆을 위해 旣得權을 버릴 수 있을 만큼 社會的 良心을 갖춘 集團이 登場한 건 韓國 社會가 앞서가는 하나의 徵標였겠지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너무나 큰 道德的 正當性과 自己 確信을 갖게 됐어요. 이것이 現實政治에서 自己 발목을 잡았어요. 임종석 氏가 靑瓦臺 祕書室長 할 때 國會에 나와 ‘우리가 運動할 때 議員님은 뭐 하셨느냐’라고 하는 그 堂堂함이 危險한 거죠.” 

    그가 꺼낸 逸話는 이런 것이다. 2017年 11月 6日 열린 國會 運營委員會에서 林 當時 祕書室長은 靑瓦臺 參謀 相當數가 全大協 出身이라고 主張하는 전희경 當時 自由韓國當 議員의 質疑에 “議員님이 擧論한 大部分의 사람들이 人生을 걸고 民主主義를 위해 努力했다. 議員님이 말씀하신 程度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答했다. 

    - 林 前 室長은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말했죠. 

    “임종석 氏가 統合黨 議員과 比較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서 堂堂하다고 할 수 있지만 먼저 죽은 親舊나 工場에서 産災로 죽어가는 同時代 사람들, 이름 없는 勞動者들에 비해 正말로 하나도 부끄럽지 않나요? 폴란드 社會學者 지그문트 바우만이 부끄러움이 가지는 解放的 役割에 對해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거예요. 眞짜 革命家이자 左派라면 오히려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 그렇다면 只今 定義하고 있는 左派는 무엇인가요. 

    “少數者의 便에 선다는 게 重要해요. 左派가 多數가 됐을 때는 右派가 左派죠.” 

    -右派가 少數者니까요? 

    “그렇죠. ‘한番 左派는 永遠한 左派’라는 것만큼 바보 같은 생각이 없어요. 世上이 끊임없이 바뀌는 過程에서 늘 少數者에 對해 苦悶하고 配慮하는 사람이 左派입니다. 또 只今까지는 制度的·政治的 民主主義만 强調해 왔는데 日常의 民主化가 重要합니다. 386世代의 風土에는 運動의 效率性을 위해 나온 ‘首領論’이 있잖아요.”

    크렘린궁의 레스토랑

    - 서로를 議長님이라고 불렀죠. 

    “同級生끼리度 學生會장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學生會長은 서비스하는 사람이지만 ‘님’李 되는 瞬間 頭目이 됩니다. 민주당의 386世代는 그런 文化에 젖어서 큰 親舊들인데 스스로를 民主化할 수 있을까요? 안 될 겁니다. 法과 制度를 바꾸는 건 쉽습니다. 도리어 日常에 뿌리박힌 文化를 바꾸려면 더 많은 努力과 省察이 必要해요. 그것은 더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堂堂하다’라고 하는 사람이 할 수는 없습니다. 조국 氏에게 가장 아쉬운 것도 바로 그 點입니다.” 

    러시아革命이 成功한 直後 레온 트로츠키가 크렘린궁의 한 레스토랑에서 레닌과 食事를 했다. 트로츠키는 ‘이런 곳에서 웨이터에게 서빙받으며 밥 먹으려고 革命한 게 아닌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林 敎授는 이를 두고 “불縣 듯 自身이 너무 權力化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라 說明했다. 386世代가 트로츠키의 省察을 되새겨 볼 時點이다. 省察 없는 革命은 盲目(盲目)에 不過하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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