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가인·영탁·이찬원·김호중…두 男子가 손대면 ‘찐하게’ 히트!|新東亞

송가인·영탁·이찬원·김호중…두 男子가 손대면 ‘찐하게’ 히트!

[사바나] 트로트 作詞·作曲 그룹 ‘알고 보니 昏睡狀態’

  • 김건희 客員記者

    kkh4792@donga.com

    入力 2020-08-30 10:00:02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찐이야’ 錄音 두 番 만에 끝낸 영탁

    • ‘미스터트롯’ 最大 受惠者

    • ‘버프’ 받은 적 없는 개미 人生

    • 아이유 세션 팀과 콜라보韓 理由

    • 아이들에게 音樂 가르쳐주는 財團 設立 目標

    사바나 草原처럼 탁 트인 2030 놀이터.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작사·작곡 그룹 ‘알고 보니 혼수상태’ 멤버 김경범(왼쪽)과 김지환. 두 사람은 재단을 설립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는 게 최종 목표다. [홍태식 객원기자]

    作詞·作曲 그룹 ‘알고 보니 昏睡狀態’ 멤버 김경범(왼쪽)과 김지환. 두 사람은 財團을 設立해 形便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音樂을 가르쳐주는 게 最終 目標다. [홍태식 客員記者]

    “네 머릿속은 화수분 같아. 樂想이 술술 흘러나와.”(김경범) 

    “타고나서 그래. 그나저나 잘 좀 봐. 여기서는 剛하게 한 番 쳐주면 어떨까.”(김지환) 

    “歌詞가 抒情的이니까 섬세하게 表現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 沒入하기에 좋지.”(김경범) 



    서울 논현동 한 音樂 作業室 안에서는 每日 트로트 作曲家 두 사람이 티격태격한다.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날, 作曲家 김경범(35)·김지환(32)은 머리를 맞댄 채 불현듯 떠오른 樂想을 어떻게 풀어낼지 窮理하고 있었다.

    ‘미스터트롯’ 最大 受惠者

    두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偶然히 듣게 된 엔터테인먼트業界 關係者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그는 “林英雄을 뛰어넘는 ‘미스터트롯’ 最大 受惠者가 있다”며 “그 팀이 없었다면 大韓民國 젊은 트로트는 誕生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 팀’이 바로 이름도 獨特한 作詞·作曲 그룹 ‘알고 보니 昏睡狀態’다. 김경범·김지환으로 멤버가 이뤄졌다. 

    알고 보니 昏睡狀態는 요즘 大韓民國에서 가장 잘나가는 作詞·作曲 그룹이다. 2016年 팀을 結成한 以後 그들 손에서 誕生한 트로트만 500餘 曲에 達한다. 그中에서도 ‘가인이어라’ ‘서울의 달’(송가인), ‘藥손’(정다경), ‘찐이야’(영탁), ‘時節因緣’(이찬원), ‘고맙소’(김호중), ‘눈물비’(장동원) 等이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放映 直後 음원 차트에서 上位圈에 오르며 人氣몰이 中이다. 30代 靑年 두 名이 요즘 大衆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를 만든 우리나라 代表 作曲家라니, 그들의 正體가 궁금해졌다. 

    8月 5日 論峴驛 隣近에 있는 作業室을 찾았다. 商家 建物 地下 1層에 둥지를 튼 66㎡ 남짓한 素朴한 空間이었다. 壁面에는 송대관·태진아·張允瀞·홍진영·박현빈·송가인·영탁·김호중·정동원 等 有名 트로트 歌手들의 앨범 200餘 張이 奧密稠密 걸려 있다. 뿌연 琉璃窓 너머 錄音室과 구석 뒷房에는 키보드와 기타, 마이크, 樂譜가 櫛比했다. 바깥은 連日 繼續된 장맛비로 땅에서 덥고 濕한 氣溫이 올라와 온몸이 끈적거리는데, 作業室 안에서는 키보드에서 흘러나온 시원하고 輕快한 멜로디가 自由自在 춤을 췄다. 

    김지환이 흰 종이에 쓱쓱 노래 歌詞를 적고는 音標를 대충 그려 넣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김경범이 鍵盤을 몇 番 두드리자 5分 만에 멜로디 몇 小節이 完成됐다. 音樂은 본디 밤샘 苦惱의 結果物로 알았는데, ‘내가 只今 뭘 본 건가’ 눈이 번쩍 뜨였다.

    ‘버프’ 받은 적 없는 개미 人生

    “멜로디 어떤가요, 괜찮죠?” 

    김경범이 音樂 作業을 마무리하며 물었다. 스스로도 꽤 洽足한 表情이었다. 

    “이番에 大衆音樂 施賞式에서 저희가 作曲家賞을 받았어요. 消息을 듣고 어안이 벙벙했죠. 팀 結成 以後 둘이서 作曲家賞을 받는 건 이番이 처음이거든요. 周邊 사람들이 하는 말이, 音樂인 사이에서 우리 音樂은 男性的인 同時에 女性的이라는 評價가 나온대요.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强烈하고 화끈하다고, 이렇게 中性的인 音樂은 처음이라고들 한대요. ‘그동안 우리의 수고, 努力, 時間이 決코 헛되지 않았구나’ 慰勞와 自信感을 얻었어요.” 

    차분한 말套에서 쉽사리 출렁이지 않는 물결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들떠 있지 않았다. 

    알고 보니 昏睡狀態는 8月 13日 音源 플랫폼 소리바다가 主催한 ‘2020 소리바다 어워즈’에서 作曲家賞을 受賞했다. 大韓民國에서 가장 바쁜 作曲家로 꼽힐 만큼 쉴 새 없이 달려왔기에 意味가 깊은 受賞이었다. 줄곧 ‘韓國 트로트界 샛별’로 불렸지만 不過 몇 달 前만 해도 大衆이 記憶하는 代表作이 없었다. 旺盛한 作品 活動에 비해 히트曲이 나오지 않아서다. 그러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放映되면서 히트曲 여러 個가 最高 人氣曲 班列에 오른 것이다. 

    마침내 오랜 꿈을 이룬 所感이 어떨까. 김경범은 “나는 하루하루 熱心히 살다 보면 언젠가 꽃을 피우는 날이 온다고 생각했다. 이番에 그걸 確認했다”며 입을 열었다. 

    “저희가 어느 날 갑자기 트로트를 作曲한 건 아니에요. 作曲팀 만들기 以前부터 드라마 OST, CF 音樂, 발라드, 트로트 等 曲 作業을 繼續 해왔어요. 올해 作曲家로 데뷔한 지 저는 16年次, 지환이는 13年次가 됐죠. 데뷔한 以來 各自 만든 노래까지 모두 합치면 한 900曲? 그 程度 될 거예요. ‘버프’를 받은 적 없는 개미 人生이죠. 勿論 그 努力이 밑천이 돼 수많은 히트曲을 냈으니 엄청난 열매를 맺은 건 맞아요. 그래도 運이 正말 좋았던 거죠. 그래서 謙遜해지려고 애를 써요.” 

    - 그렇게 갑자기 히트曲이 많아지면 삶에 어떤 變化가 있나요. 

    “一旦은 어딜 가든 어른들이 엄청 좋아해 주세요. 父母님이 모임에 參席할 때마다 자주 映像通話가 걸려 와요. 知人 분께 人事드리라고요. 어른들 사이에서는 제가 最高 스타거든요.(웃음) 요새는 인터뷰와 放送 出演 機會가 많아졌어요. 얼마 前 藝能 프로그램에도 出演했고요. 제 故鄕이 大戰인데, 그 地域에서 나고 자란 作曲家로 나왔죠. 父母님께 孝道한 셈이니 幸福한 마음이 크죠.”(김지환)

    알고 보니 昏睡狀態의 共同 作業 祕訣

    “最近 또 하나의 放送 出演을 決定했어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인데, 저희가 審査委員으로 出演해요. ‘미스터트롯’ 放映 當時 잠깐 出演한 적은 있었지만 審査委員으로 나가는 건 처음이라 조금 떨려요. 요즘 트로트가 大勢구나 싶기도 하고 神奇하기도 하고 그래요.”(김경범) 

    - 그럼 藝能 쪽에 挑戰할 생각도 있나요. 

    “그럼요. 저희는 音樂이랑 藝能을 하고 싶어요. 팀 이름이 왜 ‘昏睡狀態’겠어요.(웃음) 넘치는 끼와 興을 音樂 作業뿐 아니라 放送에서도 보여주고 싶어요.”(김경범) 

    - ‘찐이야’ ‘고맙소’ 等으로 ‘빵’ 터지고 나서 收益도 많이 늘었겠죠. 

    “計座로 들어오는 著作權料 額數가 每달 달라요. 요새는 코로나19 餘波로 行事나 公開放送이 많이 줄었어요. 노래房, 遊興業所도 營業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쪽에서 나오는 著作權料가 엄청 줄었죠. 代身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時間이 길어지면서 音源 스트리밍에서 나오는 著作權料가 많이 늘었어요. 그래도 제 나이 또래가 벌 수 있는 것보다는 많이 벌었죠. 大企業 任員의 年俸 程度 되지 않을까 싶어요.”(김지환) 

    - 아까 보니 作詞·作曲 實力이 엄청난 것 같은데요. 共同 作業 祕訣이 뭔가요. 

    “저는 音樂的 感覺이 뛰어나고, 兄은 沒入感이 엄청나요. 저의 境遇 어떤 멜로디를 들으면 곧바로 演奏가 可能하거든요. 惡商道 자주 떠오르고요. 그런 部分은 좀 타고난 것 같아요. 그런데 兄을 보면 나와는 次元이 다른 音樂人이구나 싶어요. 왜냐하면 曲을 쓸 때 歌手한테 完全히 沒入하거든요. 作曲家가 그러기 쉽지 않아요. 兄은 송가인 노래 만들 때 自己를 버리고 송가인이 돼버린다고요. ‘서울의 달’ ‘가인이어라’ 作曲 땐 6個月 내내 송가인 音樂만 듣더라고요. 송가인 特有의 리액션부터 視線 處理까지 따라 하는데 正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點 德分에 저희가 좀 더 다양한 曲을 쓸 수 있게 된 거죠.”(김지환)

    아이유·아이돌 세션 팀과 ‘콜라보’한 理由

    서울 논현동 인근에 있는 ‘알고 보니 혼수상태’의 작업실 벽면에는 송대관·태진아·장윤정·홍진영·박현빈·송가인·영탁·김호중·정동원 등 유명 트로트 가수들의 앨범 200장이 걸려 있다. [홍태식 객원기자]

    서울 논현동 隣近에 있는 ‘알고 보니 昏睡狀態’의 作業室 壁面에는 송대관·태진아·張允瀞·홍진영·박현빈·송가인·영탁·김호중·정동원 等 有名 트로트 歌手들의 앨범 200張이 걸려 있다. [홍태식 客員記者]

    - 알고 보니 昏睡狀態와 作業하고 싶어 하는 歌手도 많더군요. 

    “歌手와 疏通하며 그 스타일에 맞는 曲을 쓰려고 努力하거든요. 누구나 自身만의 스타일이 있지만, 結局 노래를 듣느냐 마느냐 選擇하는 건 大衆이잖아요. 製作者든 作曲家든 歌手든 自己 스타일이 正答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저희는 曲 依賴를 받으면 곧바로 歌手 팬 카페에 加入해요. 팬들이 歌手한테 願하는 걸 알아보려는 거죠. (金)호중이의 境遇 팬들이 正統 클래식을 듣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호중이 노래 만들 때 그 點을 念頭에 두고 ‘나보다 더 사랑해요’를 만들었죠. 그렇기에 이 노래가 음원 차트 100位 안에 進入할 수 있었던 거예요.”(김경범) 

    - 젊은 트로트 스타들은 20, 30代 팬도 많더군요. 젊은 世代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音樂的으로 어떤 點을 强調하나요. 

    “요즘 트로트界에도 ‘스밍 文化’가 생겼어요. 팬 카페를 둘러보면 中壯年 팬분들이 子女의 計定으로 音源 사이트에 加入하는 境遇가 많아요. 子女한테 用돈 주면서 音源 다운로드 해달라거나 音源 스트리밍 해달라고 要請하는 거죠. 그걸 보면서 젊은 親舊들도 트로트를 拒否感 없이 즐길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럴 수 없게 만드는 條件이 뭘까 苦悶해 봤죠. 그러다 아이유·아이돌의 音樂을 연주하는 세션 팀과의 ‘컬래버레이션’을 떠올린 거예요. 젊은 層이 자주 듣는 音樂을 연주하는 팀과 作業해야 젊은 트로트를 具現할 수 있겠다고 본 거죠. 實際로 이 戰略은 잘 맞아떨어졌어요.”(김지환) 

    時計바늘을 거꾸로 돌려 2006年으로 거슬러 가보자. 作曲에 남다른 才能을 지닌 두 사람의 音樂 人生이 始作된다. 김경범은 다섯 살에 피아노를 치면서 音樂 才能을 깨달았다. 偶然히 歌手 조성모의 ‘To Heaven’을 듣고 그에게 曲을 주겠다는 一念으로 서울에 올라와 作曲家 김선민 밑에서 曲 쓰는 法을 배운다. 歌手 페이지의 7輯 앨범 ‘다시 사랑해줘요’ ‘말해줘요’ 等을 作曲하며 데뷔한다. 2006年, 그가 스물두 살 때의 일이다. 

    大田에서 나고 자란 김지환은 學窓 時節 재즈를 배우며 音樂에 눈을 뜬다. 2006年, 열아홉 살 때 처음 作曲한 ‘샤방샤방’李 벅스뮤지션 發掘大會에서 受賞하면서 最年少 트로트 作曲家로 名聲을 누린다. 2008年 박현빈이 이 노래를 불러 當時 男女老少 할 것 없이 全 國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大韓民國 音樂界를 뒤흔든다.

    映畫 한 場面 같은 첫 만남

    - 두 분은 클래식과 재즈를 배웠는데, 어떤 契機로 트로트를 作曲하게 됐나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父母님이 일하시느라 바빠서 절 돌봐줄 餘力이 없었거든요. 할머니 집에서 지내다 보니 羅勳兒·이미자 先生님 노래를 어려서부터 듣고 자랐죠. 神奇하게 輕犯 兄도 어릴 때 할머니 집에서 자라면서 트로트를 자주 들었다고 해요. 그게 滋養分이 된 것 같아요.”(김지환) 

    - 어린 나이에 作曲家로 華麗하게 데뷔했더군요. 

    “첫 作曲부터 招待박을 터뜨렸으니까요. (朴)현빈 兄이 부른 ‘샤방샤방’ 德分에 當時 집 한 채 값 程度 벌었어요. 정작 저는 軍에 入隊해 잘 몰랐지만요. 엄마가 돈 管理를 하셨거든요. 그 後로는 히트曲이 없었어요. 除隊 後 復學해 줄곧 學業에 熱中하느라 曲을 많이 쓰지 못했습니다.”(김지환) 

    “제가 스무 살에 作曲을 始作했어요. ‘얼른 作曲家로 자리 잡아 生計를 꾸려야지’ 생각했어요. 專攻이 클래식이라 主로 OST와 가요(발라드) 作業을 했죠. 그때부터 作曲한 OST가 400~500曲 程度 돼요. 숨 돌릴 틈 없이 曲을 썼는데, 정작 히트曲이 없었죠. 當時 著作權料를 5萬~10萬 원 받았는데, 돈벌이가 변변치 않아 레슨 活動과 알바로 生活費를 充當했어요.”(김경범) 

    - 어려움이 많았겠군요. 

    “親舊들이 하나둘 就業하고 家庭을 꾸릴 때 저는 長男이어서 生計를 책임져야 했어요.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도 未來가 保障되지 않아 苦悶이 많았죠. 이러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겠구나, 큰일 났구나, 그러던 渦中에 지환이를 만났고, 팀까지 結成했죠.”(김경범) 

    - 두 분은 언제 어떻게 因緣을 맺었나요. 

    “2014年 어느 날 新沙洞 카페에서 偶然히 만났어요. 曲 作業을 하다가 머리를 식힐 兼 카페에 들어갔어요. 옆 테이블에 앉은 한 男子의 通話 內容을 듣게 됐는데, 트로트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쪽에서 活動하는 사람인가 보다 했죠. 알고 보니 그 사람이 輕犯 兄이었어요. 마침 저도 트로트에 關한 이야기로 通話 中이었는데, 兄도 제 얘기를 듣고 業界에서 活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대요. 映畫 한 場面처럼 그렇게 서로 알게 됐죠.”(김지환)

    아이들에게 音樂 가르쳐주는 財團 設立이 目標

    - 팀을 結成한 理由는 뭔가요. 

    “이 世界에 있다 보면 돈 버는 데 集中하게 되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大박 나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오니까요. 그러다 보면 初心을 잃고, 돈에 끌려다녀요. 그런데 多幸히 人生에서 最終 目標가 같은 사람끼리 만나게 된 거예요. 作曲家로 成功해 社會에 善한 影響力을 미치는 게 저희 꿈이거든요.”(김경범) 

    - 善한 影響力이 具體的으로 어떤 건가요. 

    “財團을 設立해 形便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音樂을 가르쳐주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熱心히 돈을 모으고 있죠. 每달 著作權料 一部를 醵出해 共同 名義 計座에 貯蓄해요. 얼마 前에 法人도 登錄했어요. 財團을 運營하려면 專門性을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저는 社會福祉士 資格證 2級을 取得했고, 兄은 이제 資格證을 따려고 해요.”(김지환) 

    - 그런 決定을 내리게 된 데는 어떤 契機가 있었겠죠. 

    “어릴 때 아버지 事業이 不渡가 나면서 家庭形便이 갑자기 어려워졌어요. 더는 피아노 學院을 다닐 수 없었죠. 當時 제가 클래식을 배우고 있었는데, 院長님이 ‘輕犯이한테는 學院費 받지 않겠다’며 7~8年을 無料로 가르쳐주셨죠. 그때 다짐했어요. 반드시 作曲家로 成功해 돈이 없어 피아노를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겠다고.”(김경범) 

    “父母님이 大田에서 保育院을 運營하세요. ‘샤방샤방’ 만들어 번 돈 大部分이 그곳에 쓰였죠. 그때는 어린 마음에 막 不平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瞬間 그 아이들이 大學生, 社會人으로 자란 모습을 보는데, 正말 뿌듯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父母님이 하시는 일을 理解하기 始作했죠. 두 분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요.”(김지환) 


    ‘찐이야’ 錄音 두 番 만에 마친 영탁

    - 팀을 만든 後 한동안 히트曲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躁急하지는 않았나요. 

    “그때는 우리가 만든 노래가 빛을 못 보니까 답답한 마음이 더 컸죠. 하루에 4時間만 자면서 熱心히 曲을 썼거든요. 하지만 그때는 트로트가 只今처럼 大勢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빛을 보지 못하고 묻힌 曲이 많았죠. 속상하지만 내色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周邊 사람한테 ‘너희는 좋은 曲을 그렇게 많이 쓰고도 왜 히트曲이 없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의 傷處를 적잖이 받았어요.”(김경범) 

    두 사람은 曲 作業에 더 熱心히 매달렸다. 김경범은 섬세한 感情線을 表現해 내는 能力이 卓越하고, 김지환은 輕快하게 치고 나가는 力量이 뛰어나다. 自然스럽게 導入部는 김경범, 後斂句는 김지환이 도맡았다. 그 過程에서 서로의 性向은 勿論 作業 스타일까지 절로 理解하게 됐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알고 보니 昏睡狀態의 音樂은 스펙트럼 넓은 音樂으로 인정받기 始作했다. 男性的인 同時에 女性的이고,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强烈하고 화끈하다는 評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두 분의 音樂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曲 作業 때 많이 부딪치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그렇죠. 서로 音樂 色깔이 完全히 다르니까요. 只今도 많이 싸워요. 勿論 曲 作業하다 보면 마음 傷할 때도 있죠. 나는 이게 좋은데 왜 兄은 異常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런 點이 오히려 長點이에요. 中毒性 剛한 歌詞에 輕快한 리듬이 印象的인 노래부터 깊은 感性과 暴發的인 울림이 가득한 노래까지 다양한 音樂을 선보일 수 있거든요.”(김지환) 

    -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放映 當時 알고 보니 昏睡狀態의 노래가 特히 좋은 反應을 얻었어요. 作曲家로서 마음이 남다를 것 같아요. 

    “歌手가 1等 하면 우리가 1等한 것처럼 氣分이 좋았죠. ‘미스트롯’ 決勝戰 ‘人生曲 미션’에서 정다경이 ‘藥손’ 부를 때 둘이서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多驚異가 絶頂의 舞臺를 선보이더라고요. 660點으로 마스터(審査委員團) 總點 歷代 最高 記錄을 세웠죠. ‘미스터트롯’ 決勝戰 ‘作曲家 미션’ 때 영탁의 ‘찐이야’가 1位를 차지했을 때도 그랬어요. 그 瞬間은 只今도 잊지 못해요.”(김지환)

    歌手 力量, 좋은 노래, 雰圍氣, 天運

    - 영탁의 ‘찐이야’의 人氣가 뜨겁습니다. 大衆은 왜 唯獨 이 노래에 熱狂할까요. 

    “영탁 兄의 曲 解釋 能力이 뛰어나서일 거예요. 트로트 싱어송라이터이기에 作曲家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歌手가 노래할 때 感情線을 잘 살리는 게 重要한데, 영탁 兄은 ‘찐~하게’가 아니라 ‘쮠~하게’ 불러요. 어느 部分을 强調해야 하는지 아는 거죠. 그러니 綠陰도 單 두 番 만에 마쳤죠. 처음 부르는 건데도 너무 잘 부르는 거예요. 그래도 或是 모르니까 한 番 더 불러보자 해서 다시 불렀는데, 고칠 部分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제가 經驗한 最短期 錄音 作業이었죠.”(김경범) 

    - ‘노래가 좋다’는 意見도 많던데요. ‘찐이야’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요. 

    “어느 날 親한 동생이 ‘兄, 이거 完全 찐이야’ 그러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最高라는 뜻이래요. 제가 高3 때 샤방샤방 單語를 듣고 노래 ‘샤방샤방’을 만들었거든요. 그런 經驗이 있으니 찐이야 單語로 노래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作曲을 始作했죠. 타이밍이 正말 좋았죠.”(김지환) 

    “天運度 따랐다고 생각해요. 영탁 兄이 미스터트롯 舞臺에서 이 노래를 불렀으니까요. 國民的 人氣를 모으는 放送에서 선보인 게 노래를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죠. 때마침 ‘찐이야’ 노래가 4·15 總選에서 選擧송으로 많이 불리면서 더 큰 사랑을 받았죠. 遊說 期間 내내 이 노래가 全國的으로 울려 퍼졌거든요.”(김경범) 

    - 히트曲이 誕生하는 條件은 뭔가요. 

    “三拍子가 맞아야 해요. 歌手의 力量, 좋은 노래, 그리고 雰圍氣를 타야 하죠. 여기에 運까지 따른다면 錦上添花겠죠. 그걸 알아야 해요. 히트曲이라는 게, 神이 許諾해야 可能하다는 것. 決코 내가 잘나서 노래가 뜬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래서 저희는 ‘찐이야’ 노래를 하나님이 주신 膳物이라고 생각해요.”(김지환)

    언젠가는 꽃을 피운다

    - 트로트 藝能이 最近 부쩍 늘었는데 트로트 底邊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세요. 

    “네, 그런 面이 있죠. ‘미스트롯’ ‘미스터트롯’李 트로트 認識을 바꾸어놓은 건 事實이니까요. 팬層이 한層 넓어지고 市場이 커졌죠. 무엇보다 實力 있는 젊은 트로트 歌手들이 舞臺에 오를 機會도 생겼어요. 영탁, 송가인처럼 原石 같은 歌手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빛을 보게 됐거든요. 다만 近來 트로트 市場에서 나타나는 變化는 조금 안타까워요.”(김지환) 

    - 누구나 抛棄하지 않으면 언젠가 빛을 볼까요. 

    “作曲家 志望生을 만나면 이렇게 말해요. ‘힘들어도 한길을 파라, 24時間 熱心히 살면 언젠가 꽃을 피운다.’ 실은 靑年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죠. 어떤 일이든 자리 잡기 前까지는 不安定할 수밖에 없으니 힘들고 지치겠지만 꾸준한 努力은 絶對 背信하지 않아요. ‘熱心히 했는데도 안 되나 보다’ 하면서 抛棄하지 않기를 바라요. 저도 올 初만 해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 中間에 그만뒀더라면 努力이 언젠가는 빛을 發한다는 걸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김경범)



    사바나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