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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平의 ‘풀피리’①] 援助 ‘블랙리스트 判事’의 쓸쓸한 歸村|新東亞

[申平의 ‘풀피리’①] 援助 ‘블랙리스트 判事’의 쓸쓸한 歸村

  • 申平 辯護士·㈔公正世上硏究所 理事長

    lawshin@naver.com

    入力 2020-08-25 14: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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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代 大選 當時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候補 中央選對委에는 ‘公益提報 支援委員會’라는 組織이 있었다. 경북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를 지낸 申平 辯護士(64·司法硏修院 13期)는 이 組織의 共同委員長이었다. 하지만 그는 文在寅 政府가 들어선 뒤 與圈을 向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으며 公平無私(公平無私)韓 知識人의 本보기 役割을 하고 있다. 申 辯護士가 8月 25日부터 每週 火曜日마다 ‘신동아’에 에세이를 싣는다.
    신평 변호사 집 전경. [신평 제공]

    申平 辯護士 집 全景. [申平 提供]

    ‘신동아’가 每週 世上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잘 될지는 모르겠으나, 閑寂한 시골에서 풀 냄새, 바람 냄새 맡고 푸른 하늘과 구름을 올려다보는, 땅에 푹 가라앉아 하는 便安한 이야기를 엮어나가고 싶다. 

    장마가 끝난 後 暴炎이 이어지고 있다. 허나 이미 季節은 옮겨가기 始作했다. 얼마 前 고추잠자리 群團이 悠悠히 空中을 游泳하며 一帶를 占領하더니 모기를 쓸어가 버렸다. 모기 個體數가 確然히 줄었고 아침, 저녁에 부는 바람이 조금 선선하고 부드러워졌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始作했다. 自然의 奧妙한 秩序에 歎服하지 않을 수 없다. 

    農事일을 멈추고 오늘은 마당 整理에 나섰다. 풀을 뽑고 가지치기를 하고 어두운 구석에 몰아 쌓아둔 落葉이나 잔가지를 옮겼다. 모기가 없으니 일이 얼마나 수월한지…. 그래도 땀은 비 오듯 쏟아진다. 뜨거워진 몸에 찬물을 끼얹고 冷水 한 盞 들이키면 世上은 穩全히 내 것이다. 이렇게 마당 있는 집에서 그리고 農事를 지으며 平和로운 老年을 보낼 수 있는 것에 感謝의 殮이 울컥 솟아오른다.

    어른이란 무엇인가

    언제 사람은 어른이 될까? 于先 어른이란 무엇인가? 自身의 行動에 責任을 지는 段階에 이르렀다는 것이 普通 말하는 어른의 意味다. ‘成年이 되면 어른’이라는 말도 있다. 結婚을 해야, 아니 子息을 낳아보아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아니다. 父母의 喪을 치러보아야 眞正한 어른이 된다는 말도 있다. 紛紛한 말 속에, 自己 힘으로 집을 지어보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까지 있다. 

    1993年 나는 司法府 淨化를 促求하는 글을 發表해 現行 憲法 施行 後 처음으로 法官再任命에서 탈락했다. 90年에 出刊한 冊 ‘日本 땅 日本 바람’에 나오는, 韓國 司法府에 對한 否定的 描寫도 問題가 됐다. 司法府 一部에서 措置가 너무 甚했다는 ‘反省的 配慮’가 있었다. 이에 내가 法官으로 再任命된다는 말도 있었다. 여름과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어오자 뜻을 접었다. 아장아장 걷는 두 아이의 손을 잡고 1994年 한 겨울 朔風을 맞으며 慶州로 내려갔다. 期約 없는 걸음이었다. 運命에 모든 것을 맡기고 다시는 慶州 바깥으로 한 발자국도 내딛지 않은 채, 無名의 存在로 生을 마감하겠다고 決心했다. 



    大法院長과 싸우다 쫓겨난 사람이라는 評判이 시골에도 퍼졌다. 辯護士 事務室에 오기로 했던 職員이 怯이 나 못 오겠다고 하는 판이었다. 事件 依賴가 올 理 없었다. 아이들 생각을 하니 氣가 막혔다.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거리며 이 모든 일이 내 業이라는 事實을 切感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奇跡의 빛이 비추기 始作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判事 經歷이 저만치 된 사람이 事件 하나 受任하지 못한대서야, 그리고 저 사람이 그리 잘못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 하며, 法院과 檢察에서 나를 對하는 態度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熱心히 일했다. 새벽부터 事務室에 나가서 書類를 作成했다. 차츰 “新 辯護士는 法을 가장 잘 利用하는 사람이야!”라는 評判이 돌더니 事件이 밀려왔다. 

    經濟 狀況이 나아지며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집짓기였다. 내 生을 다 쳐도 子息들은 그보다 훨씬 더 貴한 存在였다. 거의 벌판이나 다름없는 곳에 800坪 程度의 터를 마련했다. 200坪은 집터로 나머지는 밭으로 만들었다. 또 다른 곳에 논을 購入했다. 

    本格的으로 집을 지을 準備를 갖추었다. 스케치북 두 卷에다 그림과 글字로 빼곡히 집이 갖추어야 할 特性이나 細密한 곳의 構成을 짰다. 只今도 記憶에 남는 內容들이 있다. (1) 實用性이 剛해야 하고 (2) 집안의 어느 곳에서나 自然光이 充分히 비쳐야 하며 (3) 시멘트가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고 (4) 또 집 어디에서건 便安한 느낌으로 앉을 수 있어야 한다는 等의 原則이었다. 

    細部的으로는 多用途室에 빨래板 役割을 하는 냇돌을 놓는다는 것 等을 明示했다. 이것은 작은 量의 손빨래를 할 때나 김장을 할 때 아주 要緊한 役割을 했다. 이렇게 昭詳히 記錄한 메모를 建築士에게 傳해 設計를 했다.

    풀피리 소리 들려오는 듯

    신평 변호사가 집 근처에 조성한 밭. [신평 제공]

    申平 辯護士가 집 近處에 造成한 밭. [申平 提供]

    上樑式에서 大들보에다 ‘희정과 好勝을 위하여 이곳에 터를 잡다’라는 文句를 붓으로 써넣었다. 이것은 바로 내가 집을 짓는 核心이었다. 이 집에서 아이들이 自然의 손길을 느끼며 無事히 잘 자라나는 것이 아비인 나의 切切한 心情이었다. 

    每日 새벽마다 나와 집사람은 建築現場으로 갔다. 人夫들이 나오기 前에 그들이 前날 工事를 하며 버린 담배꽁초나 자투리 建築資材 같은 쓰레기를 주웠다. 아이들에 對한 나의 懇切한 膳物인 이 집의 밑바닥에 그 쓰레기들이 無心코 깔린다는 事實은 참을 수 없었다. 

    벌써 집을 지은 지 30年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집에 온 손님들은 歲月의 흐름에도 不拘하고 집이 잘 整頓돼있고, 또 只今 時點에서도 全혀 遜色이 없는 집의 構造를 보며 놀라워하기도 한다. 

    코로나 事態 以後 世界人들은 無酌定 都市化로 쏠린 過去에 對한 反省을 한다고 한다. 뉴욕 맨해튼의 집값이 大幅 下落했다. 뉴요커들은 집을 판 돈으로 郊外의 마당 있는 집을 購買하는 傾向을 보이고 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어쩌면 앞으로의 世界는 ‘팬데믹의 日常化’로 이어질지 모른다. 反復되는 ‘落다운’(lock-down)과 ‘언택트’(untact) 生活을 克服하며 情緖를 維持하기 위해서는 庭園을 가꿀 수 있고 伴侶動物과 함께할 수 있는 집의 重要性이 漸漸 浮刻될 것이다.
     
    집은 價格 上昇의 對象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다. 우리가 人間다운 삶을 營爲할 수 있는 空間이 바로 집 아닌가! 都市 中心部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마당 있는 집이라고 하여 經濟的 價値가 停滯돼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 집을 보아서도 그렇다. 참다운 生活과 投資價値 兩者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方道가 없지 않을 것이다. 이것도 꽉 막힌 不動産政策에 하나의 代案이 되려나? 

    이렇게 辯護士 生活을 하며 틈틈이 農事일을 하였다. 밭農事도 하였으나, 논農事가 훨씬 재미있다. 논일은 事實 모내기 前 논을 만드는 일이 힘들다. 一旦 모내기를 해두면 물대기, 피 뽑기 같이 잔손만 가면 된다. 여름날 물이 졸졸 흐르는 논에서 피를 뽑고 있으면, 나비도 잠자리도 구경한다. 내 몸에 아무 거리낌 없이 앉는다. 지나가는 들쥐가 빠끔히 들여다본다. 거짓말 같은 幻想의 場面이 언제나 展開된다. 저절로 無我之境에서 自然의, 宇宙의 偉大한 秩序에 包攝되는 恍惚感에 빠져 들어간다. 

    辯護士를 4~5年 하다가 大學에서 20年 間 敎授生活을 했다. 學問 活動을 熱心히 하며 大邱로 移徙 갔고, 서울에 오가는 일도 잦아졌다. 自然히 農事일과는 멀어졌다. 그러다가 停年을 조금 남겨둔 2018年 名譽退職을 했다. 다시 慶州로 돌아와 집을 돌보며 農事일을 하고 있다. 

    드문드문 辯護士로서 事件을 맡기도 하나 시원찮다. 産業化, 民主化에 이어 公正性이 話頭가 되리라 보고 ㈔公正世上硏究所를 設立해 한 番씩 서울 나들이도 한다. 서울에 가있어도 내 마음은 언제나 내가 熱心히 가꾸는 밭에 가있다. 내가 없는 사이에 作物은 어떻게 되었는지, 꽃은 피었는지, 聯銀 줄기를 얼마나 더 뻗었는지 궁금해 죽는다. 멀리서 풀피리 소리가 하늘하늘 들려오는 것 같기만 하다. 앞으로 讀者 여러분들에게 시골의 맑은 바람을 타고 풀피리 소리를 傳해드리고 싶다.

    申平
    ● 1956年 出生
    ● 서울대 法學科 卒業
    ● 第23回 司法試驗 合格?司法硏修院 第13期
    ● 仁川地方法院, 서울家庭法院, 大邱地方法院 判事
    ● 경북대 法學專門大學院 敎授, 韓國憲法學會 會長 歷任
    ● 著書: ‘法院을 法廷에 세우다’ ‘로스쿨 敎授를 위한 로스쿨’ ‘들판에 누워’(시집)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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