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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步的 癌 科學者가 14年 癌鬪病하며 알게 된 것들|新東亞

獨步的 癌 科學者가 14年 癌鬪病하며 알게 된 것들

“몸에서 많은 게 사라진 만큼 마음의 自由를 얻었다”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0-08-17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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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하는 ‘人文을 科學하다’ ⑦ 김규원 서울대 藥大 名譽敎授

    • 人生의 頂點에서 만난 癌細胞

    • 2006年 非剛庵 發病… 只今껏 鬪病

    • 酷毒한 抗癌 治療로 聽力 잃고, 皮膚 壞死

    • 쌓은 知識은 無力하고 虛弱했다

    • 내 몸에 남아 있는 신비로운 것들

    • 癌 硏究 패러다임을 바꾸자

    신동아는 人文學財團 플라톤아카데미와 함께 ‘人文을 科學하다’ 시리즈를 進行한다. 플라톤아카데미는 2010年 11月 設立된 國內 最初 人文學 支援 財團으로 人類의 오랜 知識과 智慧를 바탕으로 우리가 當面한 삶의 根源的 물음을 새롭게 傳한다는 趣旨로 硏究 支援, 大衆 講演, 온라인 포털 等 다양한 事業을 進行하고 있다. ‘人文을 科學하다’는 人文學과 科學이라는, 언뜻 멀어 보이지만, 우리 삶에 깊이 들어와 섞여 있는 두 世界의 깊이 있는 疏通을 推進하는 프로젝트다.<편집자 週>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김규원(68) 서울대 藥大 名譽敎授를 만난 건 그가 最近 펴낸 冊 ‘迷路 속에서 癌과 만나다’를 통해서였습니다. ‘癌 科學者의 抗癌日誌’라는 小題目이 붙어 있는 이 冊은 한때 “韓國에서 노벨生理醫學賞 受賞者가 나온다면 김규원”이라는 世間의 評이 있을 程度로 抗癌 硏究에 獨步的이던 한 科學者가 實際로 癌에 걸린 後 걸어온 14年間의 旅程이 담겨 있었습니다.

    癌 科學者의 抗癌日誌

    그는 2006年 稀貴癌 診斷을 받은 以後 抗癌 治療와 放射線 治療 後 두 次例에 걸친 再發, 皮膚移植까지 經驗했습니다. 2017年 停年退任을 했지만 요즘에도 學會 세미나에 熱心히 參席하고 一週日에 두세 番은 學校에 나가 弟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癌 治療法 開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金曜日이던 8月 7日 늦은 午後, 冠岳山 稜線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硏究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酷毒한 抗癌 治療는 그의 몸에 깊은 傷痕을 남겼습니다. 한쪽 귀 聽力을 잃었고 나머지 한쪽도 補聽器에 依存하고 있었으며 오른쪽 눈 위쪽 皮膚의 괴사된 部分에는 移植으로 메운 痕跡이 보였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微笑를 잃지 않았습니다. 담백하면서도 잔잔한 語調로 지난 일을 回想하면서 “變化하는 몸에 마음을 맞추니 잔잔한 기쁨과 平安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津한 體驗에서 길어 올린 그의 言語들은 어떤 宗敎人의 말보다 깊은 울림과 感動을 주었습니다. 



    그와 나눈 對話와 冊을 中心으로 癌 科學者가 보는 癌 硏究에 對한 이야기를 地上 講義 形態로 整理해 봤습니다. 豫期치 못한 疾病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많은 癌 患者에게 自身의 鬪病 經驗과 癌 知識이 한줄기 希望이 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을 담아봅니다.

    遺書를 쓰다

    2006年 11月 코가 막히고 콧물이 많이 나와 耳鼻咽喉科에 갔더니 콧속에 물혹이 있다고 했다. 簡單한 手術로 除去할 수 있다고 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或是나 하는 마음에 綜合病院에 가 組織檢査를 했더니 ‘鼻腔(鼻腔·콧구멍에서 목젖 윗部分에 이르는 빈 곳)癌’이란 稀貴癌이었다. 게다가 增殖 速度가 매우 빨라 數個月 안에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내는 오랫동안 關節 류머티즘을 앓아온 사람이라 바깥일은 門外漢인데 어떻게 살아갈까, 高等學校 1學年 딸이 大學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늦기 前에 遺書를 썼다. 

    醫療陣은 오른쪽 코 癌 덩어리가 3期에 該當하는 달걀만 한 크기여서 오른쪽 눈부터 위턱뼈까지 모두 들어내야 한다고 했다. 얼굴 오른쪽 折半이 무너진다는 게 두려웠다. 그런데 精密 組織檢査에서 ‘未分化 癌腫(癌腫)’으로 判定돼 手術보다는 抗癌劑와 放射線 治療가 效果的이라는 結論이 나왔다. 

    나는 事實 ‘未分化 癌’과 因緣이 깊다. 美國에서 博士學位를 받고 1985年 하버드 醫大 癌 硏究所에서 博士 後 硏究員을 할 때 硏究 課題가 ‘쥐의 惡性 未分化 癌腫’이었다. 

    未分化 細胞는 分化가 잘 안 돼 周邊 細胞들과 疏通하지 않고 獨自的으로 스스로의 生存에만 集中하는 細胞다. 分化度가 낮을수록 惡性이 剛하고 分裂 速度도 빠르다. 普通 癌細胞들이 그렇지만 特히 내가 걸린 癌은 分化가 더욱 더 잘 안 된 것이었다. 

    1985年 癌 硏究를 始作한 後 21年 동안 癌에 關해 無數히 많은 論文을 썼고 實驗도 많이 했다. 그런 내가 癌에 걸리니 癌이 全혀 다르게 보였다. 以前까지 쌓아올린 癌에 對한 知識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癌이라는 어둠의 구렁텅이에 瞬息間에 빠져들었고 갈 길이 보이지 않아 허우적댔다. 

    2006年 12月 12日부터 6日 동안 每日 抗癌注射를 맞았다. 都市濁世, 시스플라틴, 5-플루오로유라실 세 種類였다. 

    하루가 지나자 온몸 機能이 모두 막힌 듯했다. 抗癌劑들은 내 血管을 타고 다니며 正常細胞들까지 攻擊했다. 血管 속 赤血球, 白血球뿐 아니라 입안부터 배 속 內臟까지 모든 細胞가 攻擊받은 것이다. 입안이 헐고 嘔逆질이 나왔다. 生命의 흐름이 가슴 中間에서 停止된 듯 답답했고 食慾도 사라졌다. 極甚한 痛症이 찾아왔다. 

    退院하고 日常으로 돌아왔다. 코 안에서 繼續 짙은 핏덩이가 나왔다. 破壞된 癌 組織인지는 알 수 없으나 콧구멍이 조금 뚫린 듯 시원했고 눈물과 콧물 量도 줄어 숨쉬기도 便해졌다. 하지만 콧물이 繼續 흐르고 코도 막혀 잠을 잘 수 없을 程度였다. 治療가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살 수 있을지 근심이 겹쳐 자다 깨다를 反復했다. 


    抗癌 治療를 始作하다

    암세포는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면서 세포분열을 지속해 암 덩어리를 만든다. [GettyImage]

    癌細胞는 免疫細胞의 攻擊을 避하면서 細胞分裂을 持續해 癌 덩어리를 만든다. [GettyImage]

    컨디션은 漸次 回復되기 始作했다. 그런데 샤워 中에 머리카락이 浴槽 排出口를 막을 程度로 뭉텅이로 빠졌다. 癌과의 싸움이 本格化됐구나 實感이 났다.
     
    2次 治療 때는 한番 經驗해 봐서 그런지 몸의 機能이 막힌 듯한 느낌이 적었지만 不眠症, 嘔逆질, 食慾 喪失은 똑같았다. 3次 抗癌 治療 前 CT를 찍었는데 癌 덩어리가 줄었다. 抗癌劑 攻擊을 받은 癌細胞들이 옆의 組織이나 臟器로 轉移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런 徵候도 없었다. 

    癌 患者 死亡의 主原因인 轉移는 惡性 癌의 가장 큰 特徵 中 하나다.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對해서는 많은 癌 科學者의 硏究로 相當 部分 밝혀졌고, 이에 根據한 抗癌劑 開發도 試圖됐지만 아직까지 效果的으로 轉移를 遮斷하거나 轉移된 癌을 治療할 수 있는 方法은 없다. 轉移야말로 아직도 癌이 迷路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轉移는 癌細胞 處地에서 보면 매우 酷毒한 過程이다. 癌細胞는 于先 繼續 增殖하면서 周邊 組織으로 흘러갈 能力을 키운다. 그러곤 周邊 組織을 通過한 後 血管 속으로 浸透해 피를 따라 돌면서 다른 臟器로 移動한다. 그 後 血管을 빠져나와 새로운 組織에서 免疫細胞들의 攻擊을 避하며 細胞分裂을 持續해 癌 덩어리를 만든다. 癌細胞 處地에서 이런 모든 過程은 쉽지 않다. 特히 血管 속 免疫細胞 攻擊을 이겨내고 빠른 血流를 通過해 빠져나오기가 至極히 어렵다. 

    癌細胞는 어떻게 이런 酷毒한 過程을 거치면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 왜 살아남으려 할까. 癌細胞는 外部에서 侵入해 온 細胞가 아니라 내 몸의 細胞다. 그럼에도 왜 스스로의 生存 居處인 내 몸을 破壞하면서까지 살아남으려고 할까. 癌 硏究者이자 鬪病하는 患者로서 이런 質問들이 腦裏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같은 疑問들은 아직도 癌이 가지고 있는 큰 미스터리다. 

    2007年 1月 25日부터 6日間 3次 抗癌 治療를 받았다. 抗癌劑 投與가 끝날 무렵 온몸이 아파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었다. 極甚한 痛症이 덮칠 때면 美國 컬럼비아대 腫瘍內科 醫師이던 싯다르타 무케르지가 癌 患者로부터 들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好轉되지 않으면 내 삶을 끝내줄래요?” 

    1960年代는 只今보다 훨씬 높은 容量의 抗癌劑를 投與해 患者 몸을 죽기 直前까지 내몰아 治療하던 時期였으니 그 苦痛은 훨씬 더했겠지만 훨씬 低容量으로 副作用까지 念頭에 두는 治療를 하는 只今도 患者들이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人生의 頂點에서 만난 癌細胞

    3次에 걸친 治療로 癌 크기는 어느 程度 줄었고 전이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肥强 部位에 남아 있는 癌細胞들을 集中的으로 죽이기 위해 放射線 治療를 始作했다. 總 30回를 했고 每週 한 番씩 시스플라틴을 抗癌劑로 投與받았다. 시스플라틴은 細胞 內 DNA 複製를 妨害해 癌細胞 分裂을 抑制한다. 하지만 以後 聽覺 喪失이라는 副作用을 겪었다. 

    日常으로 復歸했지만 安心할 수 없었다. 癌細胞는 이미 獨自的으로 生存할 能力을 가진 狀態이므로 至極히 少數만 살아남아도 再發할 可能性이 있다. 3個月마다 MRI를 찍으며 마음을 졸였다. 

    나는 서울대 藥大를 卒業하고 1978年 카이스트 生物工學科에서 碩士學位를 받았다. 한국화학연구소에서 첫 職場 生活을 했다. 2年 뒤 美國으로 건너가 1985年 미네소타對에서 ‘酵母의 窒素代謝에 關한 遺傳子 硏究’로 博士學位를 받았고 하버드大 癌硏究所에서 硏究를 始作했다. 

    碩士 때 大腸菌, 博士 때 酵母, 博士 後 過程에서 人間 疾病 硏究를 始作했다. 歸國해 1987年 釜山大 分子生物學科 敎授가 됐다. 新設 學科인 데다 硏究室도 없었고 硏究費도 턱없이 不足했다. 苦悶을 거듭하다가 癌血管 硏究에 注目했다. 

    癌細胞가 繼續 增殖하려면 血管을 통해 酸素와 營養分을 供給받아야 해 血管들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이 過程을 遮斷하면 癌도 治療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血管生成 抑制劑를 만드는 것이 내 硏究 目標였다. 癌血管 硏究는 1970年代부터 世界的으로 始作됐는데 그 結實로 2000年 血管生成沮害 抗癌劑들이 開發됐다. 

    내가 硏究를 始作했을 때만 해도 國內뿐 아니라 世界的으로 血管 硏究는 드물었다. 나는 달걀을 모델로 했다. 달걀껍데기를 若干 벗겨보면 表面에 血管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 特定 藥물을 注入하면 血管에 어떤 影響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침내 2002年 癌組織에서 血管을 만드는 데 重要한 役割을 하는 HIF-1알파라는 蛋白質이 아세틸化에 依해 分解된다는 硏究 結果를 世界 最初로 내고는 最高 學術誌 中 하나인 ‘셀(Cell)’에 發表했다. 1995年 HIF-1알파를 發見한 科學者 세 名은 2019年 노벨生理醫學賞을 받았다. 

    人生을 돌아보면 그때가 頂點이었다. 2003年 大統領이 授與하는 第1回 大韓民國 最高 科學技術人賞을 받았고, 2005年에는 호암상度 받았다. 世界 最高 水準 硏究 結果를 연달아 發表하며 言論에도 많이 알려졌다. 그런데 이듬해 癌 診斷을 받은 것이다. 

    癌細胞는 아마 내 몸속에서 많은 變化를 거듭하며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마침내 猛烈한 힘을 드러낸 것이리라. 그러면서 내가 쌓은 知識이 얼마나 無力하고 허약한지 單숨에 보여주었다.

    酷毒한 苦痛 속에서 얻은 것들

    癌이 再發했다. 2007年 治療가 끝난 後 3年 뒤인 2010年이다. 똑같은 部位였다. 癌細胞들은 그 酷毒한 放射線科 抗癌劑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 旺盛하게 細胞分裂을 했다. 除去 手術을 받은 後 放射線과 抗癌 治療는 하지 않아 바로 日常生活로 復歸할 수 있었다. 病院과 學校를 오가는 渦中에도 硏究를 腦血管까지 擴張해 2011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15回 國際腦血管學會에서 높은 關心과 좋은 評價를 받았다. 

    再發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年 뒤인 2012年 2車路 再發했다. 本來 位置에서 귀 쪽으로 좀 더 移動했다. 10時間에 걸친 內視鏡 手術로 多幸히 눈을 保存할 수 있었다. 그러곤 다시 몇 年이 흘렀다. 이番에는 눈과 코 사이 癌이 있던 자리에 皮膚가 壞死하기 始作했다. 正常細胞를 죽일 수밖에 없던 放射線 治療 後遺症이었다. 2年 5個月間 목과 이마 皮膚를 떼어내 메우는 移植手術을 열한 次例 받았다. 

    癌에 걸리면 몸도 고통스럽지만 當然히 마음의 苦痛도 따라온다. 죽음에 對한 恐怖와 不安, 두려움이 時時때때로 덮쳐 생각, 感情, 感覺을 온통 否定的인 것들로 채운다. 몸과 마음이 一切라는 것과 죽음의 恐怖가 새삼 무겁다는 것을 切感했다. 

    抗癌 治療를 받기 前까지만 해도 내게 癌은 觀念이었다. 하지만 治療를 받고 나자 암은 내 몸의 感覺과 느낌, 몸뚱아리 속에서 極度의 苦痛, 죽음의 恐怖로 具體化됐다. 

    ‘걷기 冥想’이 큰 도움이 됐다. ‘듦-나아감-놓음’ 세 段階로 발바닥에 注意를 기울여 可能한 限 천천히 걸었다. 마음속을 꽉 채웠던 시커먼 생각 덩어리들이 微微하게나마 줄어들고 작은 덩어리의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게 됐다. 癌과 죽음에 强하게 固着돼 얼어붙었던 마음이 瞬間瞬間 몸의 움직임에 같이 共鳴하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은 生成과 消滅을 反復한다

    그러면서 오로지 하나의 眞理에 기댔다. ‘모든 것은 生成과 消滅을 反復한다’는 것이었다. 抗癌 治療를 받으면 癌細胞뿐 아니라 많은 正常細胞度 大擧 죽을 것이기에 그 자리를 새로운 細胞가 채울 것 아닌가. 實際로 抗癌劑 治療 前보다 머리숱이 더 많아졌으니 내 豫想이 맞았다고 해야 하나.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는 것은 鬪病度 마찬가지다. 癌이 再發하면서 硏究 生活은 크게 흐트러졌지만 보는 觀點이 外部 硏究 對象으로부터 內部로 向해 내 몸의 變化와 그에 따른 感覺과 感情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周圍 사람들을 보는 마음의 幅도 넓어졌다. 癌에 걸리기 前에는 患者의 아픔과 苦痛보다는 데이터에 더 關心이 갔다. 그런데 내가 患者가 되니 數많은 治療 現場에 나보다 더 甚하고 危重한 患者들이 恒常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나에게 갇혀 있던 視野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苦痛과 아픔을 조금이라도 같이하고 헤아려볼 수 있게 됐다. 

    抗癌 治療로 생긴 極甚한 後遺症을 이겨낼 때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먼저 생각했다. 嗅覺과 味覺이 없어지고 이명에 聽覺障礙, 어지럼症, 口腔 乾燥症, 턱關節障礙, 飮食物 삼킴 障礙까지 따라왔다. 몸무게는 46㎏까지 줄었다. 

    嗅覺과 味覺이 없어지니 사는 즐거움 中 하나인 먹는 즐거움을 잃었지만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먹게 되니 자유로움도 생겼다. 턱關節障礙로 질긴 것을 씹지 못하니 健康食을 하게 됐다. 

    聽覺 喪失을 견디는 것이 第一 어려웠다. 이名이 밤낮으로 크게 들리니 잠자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과 對話도 못 하고 TV도 못 보게 돼 孤立感이 들었다. 좋아하는 音樂도 듣지 못했다. 

    이제는 補聽器를 빼고 寂寞한 고요를 즐길 程度로 餘裕가 생겼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無數한 細胞로 이뤄진 내 몸은 時時刻刻 달라지는 外部 環境과 더불어 끊임없이 變化를 일으킬 것이다. 내 몸에 그나마 남아 있는 것들에 對해 感謝하고 새롭게 얻어진 變化에 마음도 같이 움직이니 한결 자유로움과 平穩함을 느꼈다. 

    사람들은 내가 硏究를 繼續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삶은 直進만 있는 게 아니다. 病院으로 向하는 地下鐵 안이나 病院에서 待機할 때도 硏究 關聯 論文을 繼續 읽고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세 卷의 冊을 냈다. 2015年 펴낸 ‘科學의 發展과 抗癌劑의 歷史’는 이듬해 英文版까지 냈고, 2017年 모든 藥의 特性과 開發 過程을 集大成해 弟子와 同僚 敎授들과 함께 ‘藥의 歷史’도 펴냈다. 未來에 누군가 새로운 硏究의 길을 開拓하는 데 조금이라도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懇切하다.

    抗癌劑 開發에 담긴 科學者들의 熱情

    김규원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에서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오면 김규원”이라는 평가를 듣던 과학자다. [조영철 기자]

    김규원 서울대 名譽敎授는 “韓國에서 노벨生理醫學賞 受賞者가 나오면 김규원”이라는 評價를 듣던 科學者다. [조영철 記者]

    1850年代 中盤까지만 해도 癌은 實體가 뚜렷하지 않았다. 暗黑 속에 있던 癌을 科學의 빛 속으로 끌어낸 사람은 獨逸 病理學者 루돌프 피르호다. 그는 1854年 癌을 細胞들이 增殖해 생긴 ‘新生物(新生物·neo plazia)’이라고 명명하면서 癌을 科學의 領域으로 끌어냈다. 

    그는 모든 疾病의 發生 場所가 人體의 基本 單位인 ‘細胞’라고 家庭했고 癌細胞는 非正常的 增殖이 繼續 일어나는 ‘以上 細胞’라고 생각했다. 그의 卓越한 識見으로 사람들은 細胞라는 小宇宙에 注目했고, 그 德分에 수많은 疾病의 原因이 解明됐으며 治療藥도 나오게 된다. 

    1949年 美國 食品醫藥局(FDA)에서 承認받은 最初 抗癌劑인 메클로에打民 以後 2017年까지 約 180種의 抗癌劑가 開發됐다. 抗癌劑 開發 歷史는 無數히 많은 科學者의 努力과 熱情, 令監의 歷史다. 初期 抗癌劑가 나오던 때는 細胞 分裂에 對한 科學的 知識이 蓄積되기 前이어서 사람에 對한 臨床 事例를 바탕으로 한 硏究者들의 洞察과 想像力에 基盤해 開發이 이뤄졌다. 

    抗癌劑를 本格的으로 開發한 사람은 美國 하버드대 醫科大學의 시드니 파버다. 1948年 小兒白血病 治療藥물로 DNA 合成을 遮斷할 수 있는 아미노프테린을 開發했다. 이보다 2年 前인 1946年에는 예일大 굿맨과 길먼이 ‘窒素겨자의 血液癌에 對한 抗癌效果 硏究’로 化學藥물 治療 槪念을 導入했다. 이 槪念에 따라 細胞毒性 抗癌劑 開發이 本格化된다. 이것들이 ‘古典的 抗癌劑’로 1940年代에서 1980年代 사이에 主로 開發된 것들이다. 

    初期 古典的 抗癌劑들은 細胞 增殖에 必須的인 DNA 損傷이나 複製를 抑制하는 것으로 癌의 複雜性, 多樣性 같은 기초적인 生物學的 理解가 바탕이 되지 않은 狀態에서 나온 것이라 限界가 많았다. 血液癌과 같은 限定된 種類의 癌을 除外하고는 惡性癌의 大部分을 차지하는 肝癌, 肺癌, 大腸癌 等의 固形癌에 對해서는 期待만큼의 治療 效能이 나타나지 않았고 正常細胞에 深刻한 副作用을 招來했다. 

    그래서 1980年代 開發되기 始作한 것이 ‘標的抗癌劑’다. 癌細胞와 正常細胞의 差異를 타깃으로 한 槪念이다. 古典的 抗癌劑가 無差別 大量殺傷 爆彈이라면 標的抗癌劑는 精密 미사일彈이라고 할 수 있다. 

    標的抗癌劑는 호르몬 抗癌劑, 分子 標的抗癌劑, 免疫抗癌劑 셋으로 나뉜다. 이 中 2000年代 以後 가장 큰 抗癌劑君을 形成한 것들이 分子 標的 抗癌劑다. 代表的인 게 우리 귀에 익숙한 慢性骨髓性 白血病 治療劑 글리벡이다. 分子 標的抗癌劑는 癌細胞를 分子 水準에서 解釋하는 遺傳子 硏究가 基盤이 됐다. 美國 국립암연구소도 1984年부터 大規模 癌分子生物學 硏究 프로그램을 始作했다. 

    分子 標的抗癌劑는 個別 癌이 갖고 있는 特異的인 分子 標的에 焦點을 맞춰 旣存 治療法보다 癌細胞를 좀 더 精密하게 攻擊해 副作用이 相對的으로 적을 것으로 豫想됐다. 하지만 耐性을 가진 癌細胞들이 出現하고 여러 副作用이 나와 如前히 癌이 迷路 속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便 免疫抗癌劑는 2010年부터 急速히 活性化하고 있는 抗癌劑軍으로 體內 免疫界를 活性化해 癌을 統制하는 方式이다. 免疫細胞 自體를 抗癌劑로 使用하는 治療法도 開發됐다. 


    癌 硏究 패러다임을 바꾸자

    現代 生命科學의 出發은 細胞 硏究다. 모든 生命體는 細胞로 構成돼 있고 細胞가 分裂하면서 새로운 細胞가 形成돼 生命體가 持續的으로 維持된다. 以後 硏究 對象은 細胞核, 細胞核 內 染色體, 染色體 構成 成分인 核酸과 蛋白質로 漸漸 더 微細하고 精巧하게 細分化돼 갔다. 細胞 속 物質인 蛋白質과 核酸 硏究에 焦點이 맞춰지면서 DNA를 中心으로 分子 水準에서 細胞를 硏究하는 分子生物學度 나오게 된 것이다. 

    代表的인 分子生物學者이자 노벨生理醫學賞 受賞者인 프랑스의 자크 모노는 1954年 單細胞 生命體인 大腸菌을 分子 水準에서 알게 되면 크기가 壓倒的으로 큰 多細胞 生命體 코끼리도 把握할 수 있다고 宣言했다. 

    그런데 細胞說에 根據해 進行된 180年間의 눈부신 硏究에 依해 生命科學이 오히려 細胞 속에 갇힌 側面이 있다. 治療되지 않는 疾患이 많이 남아 있는 理由는 사람 같은 多細胞 生命體가 發現하는 獨特한 시스템的 特性을 度外視하면서 硏究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循環系, 神經系, 免疫界 硏究가 그것이다. 

    惡性 癌은 末期 段階에서 血管系와 림프계를 통한 轉移를 일으켜 사람을 死亡하게 한다. 癌細胞의 轉移는 體內에 構築된 여러 시스템과 密接하게 聯關돼 있으며 그 시스템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現象임에도 只今까지 硏究들은 分子 水準 또는 單一細胞 次元에서만 蛋白質과 遺傳子 機能을 糾明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免疫系統 疾患(關節 류머티즘, 루푸스, 알레르기) 皮膚疾患(아토피, 乾癬) 炎症疾患(크론病) 等의 治療가 매우 制限的이다. 

    이제는 癌 患者 個個人의 特定 癌細胞의 遺傳的 變異에 焦點을 맞추기보다 癌細胞를 비롯한 正常細胞들이 이루는 組織 次元을 넘어선 시스템을 糾明할 必要가 있다. 이를테면 組織 내 細胞 間 情報가 어떻게 공유되며 作動하는지, 情報 範圍는 어디까지인지, 微生物과의 情報 交換 흐름은 무엇인지 等이 硏究 課題가 될 수 있다. 

    이 地球上 生物의 거의 大部分은 微生物이다. 人間을 비롯한 多細胞 生命體는 極히 少數에 不過하다. 

    最近 硏究 結果에 따르면 腸內 細菌이 人間의 다양한 疾病과 關聯돼 있다는 事實이 밝혀지고 있다. 몸 구석구석의 特定 細菌을 어떻게 除去할지에서 地球上의 모든 곳에 퍼져 있는 微生物과 어떻게 共生할지로 觀點을 擴大할 必要가 있다. 우리는 細菌을 病原菌으로만 把握해 撲滅해야 한다는 좁고 直線的이고 單線的인 視角에서 벗어나 내 몸과 微生物이 서로 連結된 고리 模樣 關係라는 認識을 가질 때가 됐다. 

    나는 아직 完治되지 않았다. 內 癌의 正體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른다. 轉移는 얼마나 잘 되는지도 把握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癌을 經驗함으로써 癌의 實體를 내 몸의 細胞와 感覺, 鑑定을 통해 알게 됐다. 治療 過程에서 人間이 只今까지 開發한 手術法과 放射線治療法, 抗癌劑度 體驗했다. 治療 後 내 몸에서 많은 게 사라졌지만 그만큼 마음의 자유로움도 얻었다. 아직 내 몸에 남아 있는 신비로운 것들에 感謝하면서 어둠 속 癌의 裏面에 한줄기 빛을 더 비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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