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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끊는 그 소리, 에밀레鐘의 香氣(響氣)|新東亞

애끊는 그 소리, 에밀레鐘의 香氣(響氣)

[名作의 祕密?]

  • 이광표 西原大 敎養大學 敎授

    kpleedonga@hanmail.net

    入力 2020-09-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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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聖德大王神鐘, 外形만큼 아름다운 소리

    • 애끓는 周波數로 듣는 사람 사로잡아

    • 種 保存 問題로 打鐘 두고 甲論乙駁 오가

    • 2004年 以後로는 들을 수 없게 된 鐘소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 중인 
성덕대왕신종. [동아DB]

    國立慶州博物館에 保管 中인 聖德大王神鐘. [東亞DB]

    누군가는 心琴을 울리는 소리라고 하고, 누군가는 애끓는 소리라고 한다. 슬픈 傳說이 담겨 더 신비로운 소리. 깊고 그윽한 鐘소리로 有名한 國寶 29號 聖德大王神鐘(聖德大王神鐘·一名 에밀레鐘). 只今은 그 鐘소리를 直接 들을 수는 없다. 2004年 10月 以後 打鐘은 中斷됐다. 요즘 國立慶州博物館에서 듣는 聖德大王神鐘의 鐘소리는 모두 錄音된 鐘소리다. 聖德大王神鐘은 많은 이에게 神祕의 鐘소리로 記憶되는데, 打鐘은 왜 中斷된 것일까.

    香氣(響氣)로운 韓國의 鐘

    예부터 절에서는 새벽과 저녁에 時間을 알려주거나 佛敎 行事 等을 알리기 위해 鐘을 쳤다. 佛家에서는 鐘소리를 부처의 眞理에 比喩한다. 世人의 混濁한 靈魂을 맑게 깨쳐주는 소리, 苦痛받는 衆生을 救援에 이르게 하는 부처의 說法 소리를 意味한다. 그래서 “地獄의 衆生도 寺刹의 鐘소리를 들으면 모두 깨어나 極樂으로 간다”는 말까지 있다. 

    每年 12月 31日 子正, 그러니까 새해가 始作되는 1月 1日 0時. 서울 한복판 普信閣(普信閣)을 비롯해 全國 곳곳에선 除夜(除夜)의 打鐘 行事가 열린다. 매서운 추위에도 수많은 사람이 모여 33番의 鐘소리를 들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希望을 노래한다. 鐘소리는 이렇게 魅力的이고 深奧하다.

    우리의 種은 西洋의 種과 模樣도 다르고 特徵도 다르다. 우리 種은 몸통 線이 부드럽게 내려오다 아랫部分이 若干 안쪽으로 오므라져 있다. 그 線은 中國이나 日本의 鐘보다도 훨씬 더 부드럽다. 韓國 種은 커다란 나무 막대(唐木·撞木)로 種의 바깥쪽을 쳐서 소리를 낸다. 땅에서 그리 높지 않은 곳에 걸어놓기 때문에 鐘소리가 아래쪽으로 쫙 깔리면서 굵직하고 隱隱하게 퍼져나간다. 

    西洋의 種은 컵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것처럼 위쪽이 좁고 아래쪽이 벌어져 있다. 우리가 나무막대로 鐘을 치는 것과 달리 西洋의 種은 從屬에 달아놓은 錘를 利用해 種의 안쪽을 두드려 鐘을 친다. 방울을 흔드는 것과 비슷한 方式이다. 높은 곳에 매달아놓기 때문에 鐘소리는 剛하면서도 가는 便이다. 



    國立慶州博物館에 가면 國寶 29號 聖德大王神鐘(統一新羅 771年)이 있다. 우리에게 에밀레鐘이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種이다. 統一新羅 景德王이 아버지 聖德王의 偉業을 기리고 冥福을 빌기 위해 만들기 始作했으나 完成하지 못하고 惠恭王 때인 771年에 이르러 製作을 마무리했다. 높이 3.66m, 아래쪽의 入口 지름 2.23m, 무게 18.9t. 처음엔 慶州 봉덕사에 奉安했지만 以後 慶州 靈廟寺, 慶州 봉황대 앞, 慶州 動不動 옛 慶州博物館(當時 慶州古跡保存會 陳列館)을 거쳐 只今은 慶州 仁旺洞의 國立慶州博物館 野外에 展示돼 있다.

    外貌부터 出衆한 聖德大王神鐘

    종 꼭대기 연결 부분인 성덕대왕신종의 용뉴, 몸체에 장식된 비천상, 종 말미의 장식 부분(위부터).
 [동아DB]

    種 꼭대기 連結 部分인 聖德大王神鐘의 龍鈕, 몸體에 裝飾된 飛天像, 種 末尾의 裝飾 部分(位부터). [東亞DB]

    聖德大王神鐘은 우리나라 種 가운데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답다. 肉重하고 雄壯하면서도 全體的인 造形美가 斷然 獨步的이다. 聖德大王神鐘은 우리의 傳統 梵鍾의 典型이다. 그런데 傳統 種의 典型이면서도 다른 종들이 따라올 수 없는 獨創性을 지니고 있다. 몸體 表面의 위쪽에는 四角形으로 區劃된 戀廓(蓮廓)李 4個 있고 各各의 戀廓 內部에 年罍(蓮?·蓮꽃봉오리)가 9個씩 表現돼 있다. 韓國 種은 모두 年罍가 突出돼 있는데 이 聖德大王神鐘의 境遇만 年罍가 突出되지 않고 납작하다. 

    鐘 몸體 表面의 맨 위와 아래에는 띠를 둘러가며 모란넝쿨무늬를 華麗하게 裝飾했다. 高品格의 디자인이 아닐 수 없다. 韓國 種은 모두 맨 아래 入口가 日子로 돼 있는데 聖德大王神鐘은 鐘 入口에 8個의 屈曲을 만들어놓았다. 이 같은 屈曲은 種 入口에 變化를 주어 세련된 아름다움을 演出한다. 다른 종들과 區別되는 聖德大王神鐘만의 特徵이자 魅力이라고 할 수 있다. 

    몸體 表面에는 서로 마주 보는 供養飛天像(供養天人像) 두 雙이 表現돼 있다. 賤人들의 모습을 簡略하면서도 優雅하고 生動感 넘치게 表現했다. 그 모습이 魅力的이어서 鐘 앞에 다가가면 자꾸만 손을 뻗어 直接 만지고 싶어진다. 

    種 꼭대기의 龍鈕(龍?)는 또 어떠한가. 龍鈕는 種을 매달기 爲해 만든 龍 模樣의 고리를 말한다. 直接 肉眼으로 明確하게 確認하기는 어렵지만, 이 龍鈕의 龍은 그 모습이 매우 力動的이다. 그 龍 모습을 보고 나면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다. 

    聖德大王神鐘은 주조(鑄造) 方式으로 製作됐다. 이 巨大한 梵鍾을 主潮로 만든 것을 두고, 只今의 科學者들도 고개를 내젓는다. 高難度의 作業이기 때문이다. 주조 方式으로 만들었다는 事實만으로도 8世紀 新羅 科學技術의 水準을 가늠할 수 있다. 


    呼訴力 넘치는 周波數의 鐘소리

    聖德大王神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魅力은 鐘소리다. 깊고 그윽하며 餘韻이 긴 鐘소리를 두고 “最高의 鐘소리” “神祕의 鐘소리”라는 讚辭가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聖德大王神鐘 鐘소리의 神祕는 果然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동안 여러 音響工學自家 그 祕密에 挑戰해 왔다. 只今까지의 硏究 成果를 綜合해 볼 때, 祕密의 核心은 다름 아닌 脈놀이 現象의 極大化에 있는 것 같다. 脈놀이는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反復하는 것을 말한다. 이 脈놀이가 길게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鐘소리는 餘韻이 오래가고 그로 인해 더욱 그윽해진다.
     
    그럼, 脈놀이 現象은 어떻게 具現되는 것인가. 8世紀 新羅 匠人들은 鐘소리의 脈놀이를 어떻게 極大化할 수 있었는가. 다시 말하면 聖德大王神鐘에서 脈놀이가 어떻게 發生하고 持續되는지 糾明하는 것이 鐘소리의 神祕를 밝혀내는 關鍵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糾明한다는 것이 普通 일이 아니다. 

    音響工學者들은 聖德大王神鐘 몸體의 非對稱에 注目한다. 聖德大王神鐘의 몸體 안쪽을 보면, 안팎의 表面 두께가 일정하지 않고 多少 不規則하다. 안쪽에 部分的으로 덧댄 꺼칠꺼칠한 쇳덩어리, 바깥쪽 윗部分의 年罍 36個가 몸體 두께의 非對稱 效果를 가져온다고 한다. 무늬, 두께, 무게의 非對稱에 힘입어 한 部位의 鐘소리가 다른 部位의 鐘소리와 攪亂을 일으키고 그로 인해 脈놀이가 發生한다는 것이다. 

    鐘소리를 分析한 專門家들에 따르면, 聖德大王神鐘 鐘소리는 800Hz까지의 周波數 領域에 고르게 分布한다고 한다. 이 領域의 鐘소리는 打鐘 以後 10秒 程度가 지나면 低周波 成分이 主로 남아 더 오랫동안 持續된다는 것이다. 周波數 領域에서 主要 成分은 64Hz, 168Hz, 360Hz, 477Hz라는 分析도 있다. 64Hz는 低音으로 땅을 타고 傳播되며, 168Hz와 360Hz는 듣는 이의 心琴을 울리는 소리나 애끓는 소리의 特性을 지닌다고 說明하기도 한다. 이 周波數 成分이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大略 3秒마다 脈놀이가 持續된다는 것이다. 

    音響工學者들의 熾烈한 探究는 興味롭고 고마운 일이다. 그럼에도 聖德大王神鐘의 鐘소리를 穩全하게 周波數로 計量化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計量化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心琴을 울리는 소리나 애끓는 소리의 特徵 成分이라고 斷定 지을 수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心琴을 울리는 소리나 애끓는 소리의 周波數 領域의 特性을 지니고 있다는 點도 否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쏭달쏭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로운 얘기다. 그 自體가 聖德大王神鐘 鐘소리의 神祕이자 魅力이 아닐 수 없다.

    칠수록 나빠지는 種의 健康 狀態

    聖德大王神鐘의 神祕로운 鐘소리를 只今은 直接 들을 수 없다. 2004年부터 打鐘을 中斷했기 때문이다. 打鐘할 境遇, 種에 衝擊을 주어 자칫 深刻한 毁損을 招來할 수 있다는 憂慮에 따른 것이다. 771年 製作된 聖德大王神鐘은 1300年 가까운 歲月이 흐르다 보니 漸漸 弱해지고 있다. 그러니 他宗에 愼重을 期하는 것은 너무도 當然한 일이다. 江原道 平昌 五臺山의 國寶 36號 上院寺鐘 亦是 오랜 打鐘으로 龜裂이 생겨 打鐘을 中斷한 狀態다. 

    聖德大王神鐘의 歷史를 좀 더 仔細히 들여다보면, 他宗에 對한 苦悶은 1970年代 始作됐다. 聖德大王神鐘은 元來 봉덕사에 奉安됐다. 그러다 1460年 靈廟寺로 옮겼고, 1506年 봉황대 앞으로 옮겼다. 이어 1915年 動不動의 慶州古跡保存會 陳列館(後날 朝鮮總督府博物館 競走分館, 國立慶州博物館)으로 옮겨 展示됐다. 그리고 1975年 5月 當時 新築한 只今의 國立慶州博物館 境內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打鐘으로 인한 種의 毁損 問題가 本格的으로 擧論된 것은 바로 1975年부터였다. 實際로 1975年 5月 只今의 位置로 聖德大王神鐘을 옮기고 난 뒤 打鐘이 부쩍 줄어들었다. 그해부터 除夜의 打鐘만 남겨두고 一般 打鐘을 中斷한 것이다. 

    動不動 옛 國立慶州博物館 時節에는 除夜의 打鐘뿐만 아니라 隨時로 打鐘을 했다. 外國에서 國賓이 訪問하면 特別 打鐘을 했고 團體觀覽客에게 直接 打鐘하는 機會를 提供하기도 했다. 動不動 옛 慶州博物館 時節, 그러니까 1915年부터 1975年 5月까지 60年 동안 11萬餘 次例 打鐘했다고 한다. 한 달에 152次例 打鐘한 셈이다. 

    이를 보면, 動不動 博物館 時節까지는 他宗에 對해 특별한 苦悶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다 1975年 5月 只今의 國立慶州博物館으로 種을 옮긴 後부터 他宗에 對한 苦悶이 생겼다. 鐘소리를 直接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쉽겠지만, 어찌 보면 文化財 保存에 對한 認識이 높아져 생긴 苦悶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1975年 5月 以後 聖德大王神鐘 打鐘은 每年 12月 31日 除夜의 打鐘만 實施했다. 打鐘 回數가 확 줄어든 것이다. 그러던 中 聖德大王神鐘 鐘소리를 듣고 싶다는 民間의 要請이 늘어나자 1984年 한때 每日 새벽 日出 時間에 3番 打鐘하는 일도 있었다.

    聖德大王神鐘의 소리가 끝나는 날

    1996년 9월 13일 종합안전진단을 위해 에밀레종을 타종하는 전문가들. [동아DB]

    1996年 9月 13日 綜合安全診斷을 위해 에밀레鐘을 打鐘하는 專門家들. [東亞DB]

    國立慶州博物館은 種의 保存을 위해 1992年 12月 31日 除夜의 打鐘을 끝으로 1993年부터 打鐘을 中斷했다. 하지만 그 後에도 다시 鐘을 쳐야 한다는 意見이 있어 贊反 論難이 그치지 않았다. 

    “鐘은 鐘소리만 重要한 것이 아니다. 外觀上의 美學的인 價値도 重要하다. 打鐘은 分明 種에 龜裂을 가져온다. 只今 괜찮다고 해서 鐘을 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금이 가고 나서야 打鐘을 中斷하겠다는 말인가.” 打鐘 反對論者들의 이야기다. 

    한便 打鐘 贊成論者들은 “鐘은 치기 위해 만든 것이다. 種은 소리가 날 때 存在 意味가 있다. 聖德大王神鐘 存在의 本質은 鐘소리이기 때문에 鐘을 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鐘을 定期的으로 打鐘하면 오히려 生命이 오래갈 수 있다”는 意見을 편다. 

    1993年부터 打鐘이 完全히 中斷되자 이 問題가 예전보다 더 뜨거운 關心거리로 浮上했다. “鐘은 쳐야 種이다”라는 意見과 “鐘을 繼續 치면 종이 毁損된다”는 意見이 팽팽히 맞섰다. 慶州博物館은 種의 安全 狀態를 科學的으로 檢證하기 위해 1996年부터 1999年까지 綜合學術調査를 實施했다. 그 過程에서 1996年 9月, 非公式的으로 47次例 打鐘했다. 이때의 打鐘은 硏究 分析을 위한 音響 綠陰이 主目的이었다. 

    調査 結果, 主潮 當時 形成된 氣泡 問題와 若干의 腐蝕 現象을 除外하곤 별다른 缺陷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打鐘이 不可能할 程度의 缺陷은 發見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1999年 11月 國立慶州博物館과 文化財廳은 文化財委員會의 承認을 얻어 2000年부터 每年 10月에 打鐘을 再開하기로 決定했다. 打鐘 時期는 種에 加해지는 負擔을 最少化하기 위해 外部 氣溫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10月 初로 잡았다. 單, 聖德大王神鐘에 조금이라도 異常이 생기면 卽刻 打鐘을 中斷한다는 端緖 條項이 붙었다. 

    그런데 打鐘 再開일을 한 달 앞둔 2000年 9月 打鐘이 取消됐다. 하지만 1年 뒤인 2001年 9月 打鐘을 再開하기로 決定했고, 한 달 뒤인 2001年 10月 打鐘했다. 打鐘을 中斷한 지 9年 만의 일이었다. 迂餘曲折 끝에 2001年 10月 9日, 2002年 10月 3日, 2003年 10月 3日 打鐘하게 됐다. 그렇게 3年 동안 進行되다 2004年 打鐘을 앞두고 다시 中斷됐다. 當時 國立慶州博物館은 “2001年부터 2003年까지 打鐘하면서 表面의 龜裂 및 振動 音響 等에 關한 資料를 確保해 놓았고, 打鐘 過程에서 큰 問題點이 發見된 것은 아니지만 繼續 打鐘할 境遇 金屬의 疲勞度가 增加할 수 있어 올해부터 打鐘 行事를 中斷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打鐘 與否에 關한 苦悶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1993年부터 2004年까지 10餘 年間 打鐘을 둘러싼 論議는 이렇게 熾烈했다. 打鐘을 놓고 每番 苦悶에 苦悶을 거듭해야 했다. 이 問題는 聖德大王神鐘의 存在 價値를 어디에 두어야 하느냐에 따라 그 判斷이 달라진다. 聖德大王神鐘 打鐘이 워낙 敏感하고 重要한 事案이기에 種의 保存을 위해 苦悶하고 決定을 飜覆하는 것은 問題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實際 鐘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운 에밀레鐘의 라이브 舞臺

    1975年 5月 27日. 聖德大王神鐘이 옛 慶州博物館에서 只今의 國立慶州博物館으로 移徙를 갔다. 옛 博物館 담牆을 헐고 聖德大王神鐘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慶州市民은 모두 한마음이 돼 動不動에서 仁旺洞까지 길가에 줄지어 모였다. 그들은 긴 行列을 이루며 聖德大王神鐘의 理事를 지켜보았다. 一部는 種의 뒤를 줄곧 따라갔다. 移徙 가는 길, 그들은 깊고 그윽한 鐘소리를 떠올렸을 것이다. 聖德大王神鐘은 이미 慶州 사람들과 한 몸, 한마음이었다. 어디 慶州 사람들만 그럴까. 聖德大王神鐘의 깊고 그윽한 鐘소리는 모든 이의 가슴속에 신비롭게 자리 잡았다. 그것은 世代를 뛰어넘어 遺傳한다. 그런데도 實物의 鐘소리를 들을 수 없다니. 特히 젊은 世代는 聖德大王神鐘의 實際 鐘소리를 全혀 듣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이가 비싼 돈을 들여 루브르博物館에 간다. 大部分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간다. 高解像度의 모나리자 이미지와 映像이 넘쳐나는데도 사람들은 루브르에 간다. 왜 그러는 걸까. 單 하나, 實物을 보기 爲해서다. 聖德大王神鐘이 名作으로 우리에게 記憶되는 것은 빼어난 造形美와 科學的 主潮技術 때문만이 아니다. 그윽하고 神祕로운 鐘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聖德大王神鐘의 造形美는 빼어나지만 어느 程度 探究하면 大綱을 알 수 있다. 그런데 鐘소리는 끝이 없다. 探究하면 할수록 더 迷宮 같은 神祕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보다 더한 魅力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더더욱 實際 鐘소리가 듣고 싶다.


    이광표
    ● 1965年 忠南 豫算 出生
    ● 서울대 考古美術史學科 卒業
    ● 高麗大 大學院 文化遺産學協同過程 卒業(博士)
    ● 前 동아일보 論說委員
    ● 著書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博物館’ ‘韓國의 國寶’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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