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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貰의 起源] 韓國 固有 住宅賃貸 文化…世上에 나쁜 傳貰는 없다|신동아

[傳貰의 起源] 韓國 固有 住宅賃貸 文化…世上에 나쁜 傳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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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記者

    sejoonkr@donga.com

    入力 2020-08-04 18: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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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76年 江華島條約 以後 釜山, 仁川, 元山 地域서 始作

    • 1980年代부터 只今의 形態 갖춰

    • 1989年 賃貸期間 2年 延長…傳貰값 暴騰, 貰入者 17名 自殺

    • 汚名과 달리 傳貰는 韓國에서 집 마련 징검다리 機能

    • 外國은 政府 賃貸住宅과 緩和된 住宅擔保貸出이 傳貰 役割

    • 傳貰 없애도 집값 下落 保障 없어

    전세 매물이 줄어 텅 빈 부동산중개업소의 매물 알림 게시판. [동아DB]

    傳貰 賣物이 줄어 텅 빈 不動産仲介業所의 賣物 알림 揭示板. [東亞DB]

    100年 넘게 이어져 온 韓國의 傳貰 制度가 存廢 岐路에 섰다. 7月31日 改正 住宅賃貸借保護法이 施行되면서 이제 집主人은 섣불리 傳貰를 놓기 어려운 狀況에 直面했다. 貰入者의 處地에서도 低金利가 長期化되는 構造 속에선 傳貰 物量이 줄고 月貰 物量이 늘면 住居費 負擔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政府·與黨은 傳貰가 月貰로 바뀌는 것은 “當然한 現象”이라 보고 있다. 傳貰가 사라져야 다른 나라처럼 月貰 爲主의 “正常的 住宅 市場이 된다”는 게 그들의 主張이다. 

    果然 그럴까. 많은 不動産 專門家들은 正反對 分析을 내놨다. 于先 그들은 傳貰制度에 對해 “現實的으로 목돈 없는 庶民들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는 唯一한 通路이자 韓國 固有의 住居文化”라는 데 同意한다. 또한 “딱히 ‘傳貰’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 庶民들의 내 집 마련 징검다리 役割을 하는 모기지論이 海外에도 많다”고 主張한다.

    傳貰는 日帝 强占期 殘滓가 아니다

    1876년 조선과 일본이 강화도조약을 맺는 모습. [동아DB]

    1876年 朝鮮과 日本이 江華島條約을 맺는 모습. [東亞DB]

    이처럼 汚名을 뒤집어 쓴 ‘傳貰’는 果然 어떻게 韓國 住宅 市場에만 唯獨 자리를 잡게 됐을까. 傳貰는 近代化 以前부터 韓半島에 자리 잡은 一種의 住居文化다. 韓國學中央硏究院이 만든 韓國民族文化大百科에는 傳貰가 1876年 江華島條約을 起點으로 始作됐다고 摘示하고 있다. 高麗時代의 殿堂(典當)制度가 朝鮮時代 家事殿堂(家舍典當)을 거쳐 傳貰로 發展했다는 主張도 있지만 이 制度는 只今의 住宅擔保貸出에 더 가깝다. 

    學界에선 朝鮮 末期 江華島條約 以後를 傳貰 制度의 始作으로 보는 게 一般的이다. 江華島條約으로 開港한 釜山, 仁川, 元山 地域에 日本人 居留地가 造成되고 農村 人口가 急速하게 移動하면서 都市 人口가 急激히 늘어난 게 그 背景. 

    最初의 傳貰는 一種의 私金融 形態였다. 釜山과 仁川, 元山 地域의 住宅 供給이 需要를 따라가지 못해 집값이 치솟았다. 돈을 빌리지 않고서는 집을 살 수 없는 狀況이 벌어진 것. 하지만 목돈이 없던 庶民들은 돈을 빌릴 곳이 마땅치 않았다. 一部 집主人들은 豫備 貰入者에게 돈을 빌리기 始作했다. 貰入者는 住宅 價格의 一部를 빌려주는 代身 그 집에 집貰를 내지 않고 살게 됐다. 傳貰制度를 日帝의 殘滓로 誤解하는 理由 中 하나는 江華島條約이라는 背景 탓이었다. 前世와 日帝 强占期는 공교롭게도 그 始發點이 江華島條約으로 겹친다. 



    當時에도 傳貰契約은 公證을 받았다. 박신영 韓國土地住宅公社(當時 大韓住宅公社) 住宅硏究所 責任硏究員이 2000年 發表한 ‘住宅傳貰制度의 起源과 傳貰市場 展望’ 報告書에 따르면 朝鮮末期(江華島條約 以後)에는 傳貰契約 文書를 官文書人 ‘家計(家?)’에 記錄했다. 朝鮮 末期의 傳貰는 貰入者가 債權者이므로 傳貰도 自由롭게 讓渡가 可能했다. 집主人은 契約期間이 끝나기 前에는 집을 팔지도 못했다.

    日帝 强占期 거치며 무너진 貰入者 權利

    日帝 强占期를 거치며 傳貰 貰入者의 權利가 弱해지기 始作했다. 1920年代 朝鮮總督府가 만든 ‘조선민司令’을 起點으로 傳貰金을 賃貸料로 보기 始作했다. 조선민司令은 日帝 强占期 朝鮮人에게 適用되는 民事事項을 規定한 法律이다. 이때부터 賃貸人에게 힘이 실리기 始作했다. 朝鮮民事令에 따르면 傳貰權을 讓渡하려면 貰入者가 집 主人의 許可를 받아야 했다. 

    貰入者의 權利는 1943年 6月 23日 朝鮮高等法院 判例로 한 番 더 무너졌다. 집主人이 傳貰 契約이 끝나지 않더라도 집을 팔 수 있게 됐다. 새 主人과 다시 傳貰 契約을 맺지 않는다면 貰入者는 그대로 쫓겨나게 됐다. 이처럼 日帝 强占期에 貰入者의 權利가 크게 弱化된 것도 傳貰가 日帝의 殘滓라는 誤解를 낳은 또 하나의 原因이 됐다. 以後 美軍政期人 1949年 民法이 制定되며 집主人이 집을 팔아 傳貰 契約 中 貰入者가 쫓겨나는 일은 없게 됐다. 以後 1958年 民法 改正으로 6個月의 最小賃貸期間이 생겼다. 

    本格的으로 只今의 傳貰 制度와 비슷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81年 住宅賃貸借保護法이 생긴 뒤부터다. 貰入者 保護를 위해 最小賃貸期間을 1年으로 뒀다. 以後 1989年 2年으로 延長했다. 올 7月 31日 契約更新請求權制와 傳月貰上限制 導入을 뼈대로 하는 住宅賃貸借保護法 改正案이 通過됨으로써 賃貸 期間은 最小 4年으로 延長됐다. 改正案에 따르면 貰入者가 2年의 契約期間이 끝나면 追加로 2年의 契約 延長을 保障한다. 賃貸料 上昇幅은 直前 契約 賃貸料의 5% 안에서 地方自治團體가 條例를 통해 上限을 定하게 된다.

    1989年 賃貸期間 2年 延長…傳貰값 暴騰, 貰入者 17名 自殺

    傳貰制度에 손을 대면 短期的으로 가장 큰 被害를 입는 것은 賃借人이었다. 政府 規制가 施行된 以後에는 賃貸 契約 變更이나 傳貰값 引上이 어려워진다. 一部 賃貸人들은 規制 直前에 傳貰값을 올린다. 1989年 住宅賃貸借保護法 改正으로 最小 賃貸期間이 2年으로 늘자, 傳貰값이 큰 幅으로 올랐다. 法이 施行된 1990年에는 傳貰값을 낼 수 없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貰入者만 17名이었다. 

    같은 해 4月 政府는 賃貸住宅 供給을 늘리기 위해 ‘多家口 住宅’ 規模와 世代數 上限을 緩和했다. 서울이나 都心地 골목 사이사이 들어선 크고 작은 多家口 住宅은 이때부터 생기기 始作했다. 이番에도 政府는 事後藥方文을 擇했다. 住宅賃貸借保護法 改正案 施行 이틀 後인 8月 4日 洪楠基 副總理 兼 企劃財政部 長官은 首都圈에 13萬2000家口를 供給하겠다고 發表했다. 

    金容民 江南大 不動産學科 敎授는 “政府의 不動産 對策이 있을 때마다 傳貰값은 恒常 큰 幅으로 올랐다. 貰入者의 被害를 줄이기 위해서는 低廉한 賃貸住宅을 法 改正 以前에 準備해야 했다. 이 같은 安全裝置가 없다면 當場 높아진 傳貰값을 堪當하지 못한 貰入者는 갈 곳이 없다”고 主張했다. 

    그렇지만 與黨 一部 議員들은 傳貰가 줄어드는 것이 當然하다고 主張했다. 이들은 傳貰가 사라지고 月貰 爲主로 住宅 市場이 再編되어야 한다고 主張한다. 더불어民主黨 尹準炳 議員이 8月 1日 自身의 페이스북 計定에 “傳貰가 月貰로 轉換되는 것은 나쁜 現象이 아니고 매우 正常”이라는 內容의 글을 남겼다. 같은 黨 李元旭 議員은 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出演해 “月貰 轉換은 어쩔 수 없다. 持續해왔던 現象”이라고 發言했다. 이들은 美國, 日本 等 海外 市場에는 戰勢가 없다는 點을 짚는다. 韓國의 前近代的 狀況 때문에 생긴 ‘傳貰’라는 制度를 이제 천천히 줄여나가야 한다는 主張이다.

    傳貰는 韓國만의 것…外國은 賃貸住宅, 住宅擔保貸出

    傳貰는 韓國的 狀況에서 그 나름의 存在 理由가 있다. 傳貰는 100年이 넘는 時間 동안 庶民들이 집을 사기 前 거치는 中間段階의 役割을 해왔다. 임재만 世宗大 不動産學科 敎授는 “傳貰가 나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傳貰는 庶民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 役割을 해 왔다. 只今도 普通 목돈을 모아 傳貰집을 求하고, 資本金을 次次 늘려가며 집을 산다”라고 말했다. 

    傳貰를 없애고 月貰를 늘리면 외려 貰入者의 住居費 負擔은 커진다. 一例로 강북구 번동주공4團地 아파트 專用面積 44㎡의 傳貰 時勢는 約 1億4000萬 원. 月貰는 保證金 1000萬 원에 每달 60萬 원을 내야 한다. 1000萬 원을 들고 傳貰집을 求한다면 1億 3000萬 원을 銀行에 빌려야 한다. 現在 市中 銀行의 平均 傳貰貸出 金利는 2.5%. 每달 27萬 원만 내면 된다. 

    外國에는 韓國의 傳貰와 똑같은 制度는 없다. 南美 볼리비아에 비슷한 制度인 안티크레티코(Anticretico)가 있지만 細部內容이 다르다. 貰入者도 집主人처럼 財産稅를 納付해야 한다. 傳貰 契約도 一種의 財産으로 取扱하기 때문이다. 契約 內容도 다르다. 안티크레티코는 집主人이 傳貰金을 갚지 못하면 住宅 所有權은 貰入者에게 自動 移轉된다. 게다가 全體 住居 形態 中 안티크레티코는 3.5%로 少數에 不過하다. 

    傳貰 代身 外國에는 政府 支援 賃貸住宅과 住宅擔保貸出 制度가 있다. 政府支援 賃貸住宅은 一種의 政府 低所得層 支援策이다. 民間 時勢보다 低廉한 賃貸料로 4~8年間 빌릴 수 있는 게 特徵이다.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等 유럽에서는 政府支援 賃貸住宅을 利用하는 家口의 比率이 各各 32%, 24%를 차지한다. 

    住宅擔保貸出은 外國에도 있는 制度이지만 집값 對比 住宅擔保貸出 比率(LTV) 上限線에서 큰 差異를 보인다. 現行法上 韓國은 50%이지만 外國의 境遇는 집값의 20~30% 金額만으로도 집을 살 수 있는 構造다. 甚至於 네덜란드는 집값의 100%를 빌릴 수 있다. 美國은 80%, 싱가포르는 집값의 75%를 빌릴 수 있다. 韓國보다 LTV 上限線이 낮은 國家는 中國의 一部 地域뿐으로, 베이징, 광저우, 宣傳, 선양이 LTV 上限線을 30~35%로 制限한다. 

    日本의 境遇 政府가 支援하는 住宅擔保貸出 商品도 있다. 日本住宅金融機關(Japan Housing Finance agency-JHF)은 ‘FLAT35’라는 長期住宅擔保貸出 商品을 運營한다. 35年間 固定金利로 집값의 最大 80%까지 빌려준다. 100%까지도 빌릴 수는 있지만 金利가 더 오른다. 所得要件에 對한 制限도 없어 日本 國民이라면 누구나 利用할 수 있다.

    “傳貰 줄어도 집값 안 떨어진다”

    전세가 월세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 [동아DB]

    傳貰가 月貰로 바뀌어야 한다는 主張을 편 尹準炳 더불어民主黨 議員. [東亞DB]

    政治權 一角에선 傳貰制度 自體가 집값을 올릴 수 있다는 指摘이 나온다. 基準金利 0.50%의 低金利 時代에 傳貰값으로 거둘 수 있는 利子 收益은 月貰에 비해 적은 데 비해 집값 上昇에 對한 期待가 있으니 목돈이 없는 집主人들은 傳貰를 끼고 집을 살 수밖에 없다는 論理다. 

    심교언 敎授는 이에 對해 “집값 安定을 위해 傳貰를 克服해야 한다는 意見도 있다. 이는 危險한 視角이다. 傳貰가 줄어들어도 집값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可能性이 높다. 月貰 爲主로 市場이 再編되면 企業에서 不動産 投資를 늘릴 公算이 높다. 그間은 住宅 賃貸 市場이 傳貰 爲主라, 企業型 月貰가 生産性이 없었지만 傳貰가 사라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結局 需要는 크게 줄지 않으니 住宅價格이 떨어질 것이라 樂觀할 수는 없다”고 主張했다. 

    金容民 敎授는 “2012~13年 住宅 價格이 떨어졌을 때처럼 市場에 住宅을 싼 값에 내놓는 사람이 늘며 自家 住宅의 比率이 늘 수도 있다는 指摘도 있다. 하지만 只今은 住宅擔保貸出도 막힌 狀況이다. 各種 規制로 賃貸人을 괴롭히기보다는 傳貰나 低廉한 月貰 賃貸에 對한 惠澤을 늘리는 것이 집값 安定이나 庶民들의 住居費 負擔을 줄이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 말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記者

    1989年 서울 出生. 2016年부터 東亞日報 出版局에 入社. 4年 間 週刊東亞팀에서 世代 葛藤, 젠더 葛藤, 勞動, 環境,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等 多樣한 分野를 取材했습니다. 2020年 7月부터는 新東亞팀 記者로 일하고 있습니다. 90年代 生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年代 生으로 靑年 問題에 깊은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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