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創批, 324쪽, 2萬 원
戰爭 經驗은 질기게 남아 共同體의 넋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6·25戰爭은 20世紀 戰爭史에서도 가장 慘酷한 悲劇이다. 6·25戰爭 3年 동안 非武裝 民間人 死亡者는 最少 200萬 名을 넘었다. 戰爭 中 死亡한 모든 交戰國 戰死者 數보다 많다. “民間人이 겪은 이 戰爭 傷處는 社會的 傷痕이었다. 個別化된 個人이나 그 身體보다는 關係 속에 놓인 存在가 겪었다는 點에서 그렇다.”(16쪽)
戰爭은 韓國의 傳統的 共同體에서 오랜 美德이었던 人間的 親密함을 破壞했다. 敵國에 協助했다고 ‘알려진’ 民間人은 卽決處分 對象이 됐다. 마을은 暴力의 鎔鑛爐로 變貌했고 마을 共同體는 焦土化됐다. 수세대를 부대끼며 살아온 사람들이 살기 위해 서로를 겨눴다. 小說家 박완서의 말처럼 “戰線이 一進一退를 거듭하는 대로 世上도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으니 그때마다 賦役했다 告發하고 反動했다 告發해서 生사람 목숨 빼앗는 일을 마을 사람들은 미친 듯이 되풀이”(47쪽)했다.
暴力의 記憶은 休戰 後에도 關係 속에 똬리를 틀었다. 때로 緣坐制가 個人의 삶을 자물쇠처럼 걸어 잠갔다. “집안의 가까운 사람 中 한때 體制 顚覆的 共産主義者였거나 同調者였던 사람, 北韓으로 亡命한 사람”(95쪽)이 있으면 길을 開拓할 수 없었다. 著者의 말마따나 “그들에게 親族關係는 存在的 짐의 根源”(96쪽)이 됐다.
그럼에도 著者는 冊 後半部에서 ‘소리 없는 革命’이라는 表現을 쓴다. 그의 視線이 向한 곳은 濟州 애월 하귀리다. 이곳에는 4·3事件 當時 鎭壓 作戰에 動員됐다 戰死한 警察과 反共靑年團을 기리는 追慕碑가 있다. 地域 住民은 自身의 家族과 마을에 暴力을 恣行한 낯선 者들을 기리는 記念物과 함께 살았다. 누군가에게는 “憤慨心의 對象”(238쪽)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住民들은 2003年 初 警察과 反共靑年團 追慕碑 바로 옆에 鎭壓 作戰에 犧牲된 數百 名의 마을 사람을 追慕하는 慰靈碑를 完工했다. 著者는 이 事例를 友愛의 回復을 向한 共同體의 努力이 結實을 본 結果로 解釋한다. 慰靈碑에 새겨진 文句는 只今도 깊은 울림을 자아낸다. “오래고 아픈 생채기를 더는 파헤치지 않으려 한다. (中略) 지난 歲月을 돌아보면 모두가 犧牲者이기에 모두가 容恕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碑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者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著者는 英國 케임브리지大 碩座敎授다. 베트남戰爭 硏究로 世界的 名聲을 얻었다. 45歲에 人類學界의 노벨賞인 ‘기어츠上’(2007年)을 受賞했다. 韓國人으로서는 最初다. 그間 多數의 力作을 出刊해 왔는데, 이番 冊은 그中에서도 마스터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