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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關係, 朴槿惠 때보다 文政府가 더 나빠”|신동아

“南北關係, 朴槿惠 때보다 文政府가 더 나빠”

[허문명이 만난 사람] 南北會談 300回 김기웅 前南北會談本部長①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0-08-04 15:3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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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까지 批判한 金正恩, 人生 첫 挫折 겪는 中

    • 朴智元·李麟榮 北韓만 바라보고 任命

    • 南北對話·離散家族相逢 回數 앞선 政權보다 적어

    • 對北政策 修正은 ‘信仰’ 저버리는 것

    • 金正日은 두려움에 시달린 不幸한 指導者

    • 屈辱的 南北關係 바로잡는 게 ‘版갈이’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손을 잡고 판문점 분단선을 넘어 남쪽으로 건너오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2018年 4月 27日 文在寅 大統領과 金正恩 北韓 國務委員長이 함께 손을 잡고 板門店 分斷線을 넘어 南쪽으로 건너오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記者]

    김기웅(59) 前 統一部 南北會談本部長(歲寒帶 招聘敎授)은 1990年부터 거의 모든 南北會談에 關與했다. 首席代表를 비롯해 隨行員과 狀況室 勤務까지 包含하면 300餘 次例 會談에 參與했다. 分斷 以後 南北會談 680回 中 折半에 가깝다. 

    2013年 開城工團 正常化 協商 때 注目 받았으나 只今껏 言論 인터뷰에 應한 적이 없다. 北韓의 挑發 威脅으로 南北이 緊張 狀態에 處했던 6月부터 最近까지 그를 세 次例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現場을 오랫동안 經驗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北韓의 內部를 읽는 法이나 向後 對北政策의 方向 等에 關해 虛心坦懷한 對話를 나눴다. 南北關係의 過去 現在 未來에 對한 示唆點이 적지 않아 그와의 對話를 8月 4日, 6日, 8日 세 次例로 나눠 싣는다. 이 記事는 그 첫 番째다. 

    金 前 本部長은 서울대 外交學科와 大學院을 卒業하고 1990年 4月 統一部 南北會談事務局 會談運營과를 始作으로 統一部 情報分析局長, 開城工業地區 協力支援團長, 統一政策室長, 南北會談本部長을 거쳐 靑瓦臺 統一祕書官을 지내다가 2018年 8月 公職에서 물러났다. 外交部 對北政策課長으로도 일했다.

    朴智元·李麟榮 北韓만 바라보고 任命

    김기웅 전 통일부 남북회담본부장. [지호영 기자]

    김기웅 前 統一部 南北會談本部長. [지호영 記者]

    -聽聞會가 마무리되면서 外交安保라인이 새로 꾸려졌다. 이番 人事 總評은? 

    “한마디로 北韓만 바라보고 한 人事라고 본다. 우리 國民이 어떻게 바라볼까, 그 자리에 적합한 人物이 누구일까 考慮한 게 아니라 現 政府가 推進하는 目標를 達成하는데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于先 생각한 것 같다.” 



    -朴智元 國精院長 任命은 어떻게 봤나. 

    “이미 司法的 判斷이 내려졌지만 對北 送金을 할 만큼 幕後에서 뛴 사람이다. 南北關係가 거의 끊어지다시피 한 狀況에서 過去 經驗에 基盤 해 뭔가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 한마디로 北韓과 關係를 만들어낼 사람이라고 判斷해 앉힌 것 같다.” 

    -그런 判斷이 맞다고 보나. 

    “變化된 國際情勢와 北韓 狀況, 南北關係를 考慮하지 않았다. 只今은 김정일 時代가 아니라 김정은 時代다. ‘朴智元 人脈’이 아직 北韓에 있는지도 疑問이고, 있다고 해도 作動할지 疑問이다. 게다가 北韓과의 線(線)이라는 것은 그들이 願할 때 稼動되는 것이지 우리 쪽 個個人의 能力 問題가 아니다. 

    徐薰 靑瓦臺 安保室長度 마찬가지다. 外交·安保 政策 全體를 컨트롤하는 자리인데 南北關係가 그야말로 ‘戰略的 黃金期’에 있을 때, 卽 北韓이 屈辱感을 갖고 우리를 對하던 時期에, 그것도 非公式的 채널로 北韓과 協商하던 사람이다. 그러나, 只今의 北韓을 보는데 있어서는 오히려 歪曲된 認識을 招來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番 人事 背景을 크게 뭐라고 보나. 

    “政權 任期가 事實上 1年 半 程度밖에 남지 않은 狀況에서 切迫함을 느끼는 것 같다. 文在寅 政府가 推進하겠다고 公言한 많은 政策, 이를테면 終戰宣言, 軍事的 緊張緩和. 新(新)韓半島經濟共同體, 南北基本協定, 離散家族問題 等 거의 大部分이 原點에 머물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 計量的 指標를 보면 朴槿惠 政府 때보다 못하다. 南北對話만 해도 앞선 政府는 37回, 只今은 36回다. 離散家族 相逢도 앞선 政府는 두 番 했지만 이番 政府는 한番 밖에 성사시키지 못했다. 中國 等에서 이뤄지는 民間 次元 離散家族 交流도 거의 제로 狀態다. 이런 狀況이라면 方向의 옳고 그름을 떠나 왜 約束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지 省察해야 한다.”

    對北政策 修正은 ‘信仰’ 저버리는 것

    -政策에 問題가 있다면 修正하면 된다. 

    “文在寅 政府는 韓半島 周邊 狀況을 보는 歷史觀이나 價値觀이 앞선 政府들과 다른 것 같다. 分斷의 原因, 解放 以後 形成된 南北關係를 보는 自身들만의 管(觀)李 있다. 浪漫主義的, 理想主義的 目標를 갖고 있다고 할까. 노무현 政府 때 이루지 못한 未完의 宿題를 任期 內 解決하는 것에 執着하는 것 같다. 따라서 軌道를 修正하는 것은 마치 信仰을 저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現 政府 出帆 初期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 ‘우리 政府는 朴槿惠 政府와 다르다’ ‘國民의 촛불로 이룩한 政府’라는 것이었다. ‘自身들의 생각=촛불 精神’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對北 政策이 理念에 따라 이뤄진다는 건가. 

    “아직도 햇볕政策 프레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깊게는 1988年 7·7宣言 以後 우리가 壓倒的으로 앞선 經濟力으로 北韓을 변화시켜 우리 民族의 힘으로 自主富强한 나라를 만들자는 생각에서 멈춰 있다. 하지만 狀況은 變했다. 過去 우리 狀況이 너무 좋았던 時節에 北韓이 보여준 屈辱的 態度가 如前히 持續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錯覺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김정은 體制는 김정일 體制와는 完全히 다른데 아직도 그걸 잘 認識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2019年 10月 金剛山 現地指導에서 김정은 國務委員長이 한 말이 있다. ‘先任者들이 國力이 여린 時節에 남의 도움을 받고자 잘못된 政策을 폈다’고 했다. 先任者란 누굴까? 바로 아버지 김정일이다. 當時 發言은 朝鮮中央TV를 통해 一齊히 報道됐다. ‘金剛山 事業=김정일 事業’이라는 걸 住民이 다 아는데 그 現場에서 대놓고 아버지를 批判한 것이다. 김정은 執權 以後 가는 곳마다 ‘일을 이 따위로 했느냐’ ‘進取的 氣像도 없고 無事안일주의에 빠져있다’고 火를 내며 꾸짖었다는 消息을 들을 때마다 住民을 야단친 게 아니라 아버지를 批判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金正日은 두려움에 시달린 不幸한 指導者

    -金正恩이 金正日은 批判했다? 

    “두 사람의 삶은 完全히 다르다. 金正恩은 살면서 挫折이란 걸 느껴본 적이 別로 없다. 이에 비해 金正日은 매우 힘든 삶을 산, 어떤 面에선 不幸한 指導者다.” 

    -不幸한 指導者라…. 

    “김정일은 統治 期間 내내 體制가 崩壞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過去로 時間을 돌려보자. 金正日은 1974年 後繼者로 指目된 뒤 忍苦의 歲月을 거쳐 1980年 第 6次 黨大會를 契機로 實質的 統治를 始作했다. 그 時期 中國, 85年에는 蘇聯이 改革開放을 推進한다. 安保威脅이 생겼고 經濟的 支援까지 끊겼다. 그러곤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共産圈이 大擧 參與한 88올림픽은 體制競爭에서 完全한 敗北를 의미한 것이다. 올림픽 이듬해 베를린 障壁이 무너졌고 1990年 獨逸이 統一됐다. 이윽고 러시아와 中國이 韓國과 修交했다. 社會主義 陣營이 무너지고 國際 秩序가 美國 中心으로 再編되는 狀況에서 아버지 김일성이 죽은 이듬해인 1995年 大壽해가 나 2000萬 人口의 相當數가 굶어 죽었다. 

    이런 狀況에서 指導者가 果然 未來에 對한 비전을 꿈꿀 수 있었을까. 洞口처럼 무너지거나 獨逸처럼 吸收統一 될지 모른다는,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두려움과 不安의 連續이었을 것이다. 김정일이 내세운 ‘先軍政治’는 不安感에서 비롯한 危機管理 體制다. 

    北韓은 1980年代 後半 核武器 開發을 本格的으로 始作했다. 核을 가질 때까지는 美國과 韓國 脾胃를 맞추는 게 必要했다. 1992年 南北基本合意書와 非核化共同宣言이 나오게 된 背景이 그것이다. 當時 北韓은 우리의 要求를 거의 다 들어줬다. 金正日 立場에서 當時 第一 卑屈한 일이 뭐였는지 아나?” 

    그가 이렇게 묻더니 말을 이었다. 

    “南北韓 유엔 同時 加入을 受容한 것이다. 政權樹立 以後 내걸어온 ‘朝鮮은 하나다’라는 原則을 버렸다. 韓國은 美國 傀儡政權이며 植民地이니 自身들만이 唯一하게 正統性 있는 朝鮮半島 主人이라는 思考의 基本 軸에 무너졌다. 韓國의 유엔 加入에 蘇聯이나 中國이 拒否權을 行使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니 苦肉之策으로 自身들도 加入할 수밖에 없었다. 當時 나온 슬로건이 ‘가는 길 險難해도 웃으며 가자’다. 當時 김정일의 內面은 宏壯히 흔들리고 複雜했을 것이다. 內部에서도 反對가 甚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떻든 金正日은 正말 어렵게 살았던 悲運의 指導者다.”

    北韓이 亡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

    -北韓 體制가 그런 時節을 겪고도 健在하니 어떻게 보면 成功한 것이다. 

    “結果的으로 보면 그 成功에 韓國도 一助했다. 時間이 우리 便이라고 생각했다. 北韓은 於此彼 亡할 것이고 우리 뜻대로 北韓이 變化될 거라는 믿음 속에서 交流協力을 통한 變化, 接觸을 통한 變化가 먹힐 것이라는 期待를 가졌다. 캐피털(資本)이 들어가면 캐피털리즘(資本主義)도 들어간다는 自信感 속에서 말이다. 勿論 當時 國際 情勢나 東歐 共産圈의 沒落을 보면 그런 假說이 無理는 아니었으나 조금은 便安하고 느긋한 우리의 마음과 態度가 北韓의 生存戰略이 成功할 수 있도록 도왔다” 

    -白頭血統 宗孫인 김정남의 삶은 金正恩과는 다른 것 같다. 

    “김정남은 留學 時節 蘇聯이 亡하는 것을 目擊했다. 衝擊이 正말로 컸을 것이다. 以後 歸國해 後繼者 授業을 받았다. 그가 짊어질 現實은 住民들이 굶어 죽고, 韓國과 競爭에서 徹底하게 敗한, 希望이라곤 보이지 않는 悽慘한 狀況이었다. 그 모두를 自身이 떠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버거웠을까. 日本에 密入國하다가 들켜버리는 바람에 結局 後繼者에서 밀렸지만 生前에 김정남이 보여준 行動의 內面에는 그런 複雜함이 바닥에 깊게 깔려 있을 것이다. 

    -金正恩은 어떤가. 

    “金正恩은 달랐다. 2001年 스위스 留學을 마치고 歸國할 當時 經濟는 많이 回復된 狀態였고 核開發도 進展됐다. 後繼者 授業을 받으면서 멋지다고 여긴 사람이 할아버지 김일성이었을 것이다. 國際的으로는 社會主義圈 리더의 모습, 國內的으로는 人民들의 眞心어린 稱頌을 받는 모습이 담긴 記錄映畫를 보면서 韓國에 쩔쩔 매며 公開 活動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新年辭조차 直接 發表하지 않고 隱遁하던 아버지 김정일과 많이 比較가 됐을 것이다. 

    金正恩은 中國이 美國을 威脅할 程度로 國力이 커질 때 政權을 맡았다. 中國의 高度成長, 軍事大國化를 지켜보면서 時間이 흐를수록 美國의 勢(勢)는 弱해지고 中國은 剛해질 것이며 이런 情勢는 自身에게 絶對 不利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核을 가졌다. 韓國보다 잘 살지는 못해도 核 한 放으로 끝낼 수 있으니 朝鮮半島 主人은 自身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 最近 20年間 ‘屈辱的 北南關係’는 正常이 아니며 바꿔야 한다고 여겼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金正恩이 執權 直後부터 말해온 ‘版갈이’의 意味다.” 

    金正恩이 생각하는 ‘版갈이’는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南北關係 發展이라든가 韓半島 平和가 아니다. 그들 表現대로 ‘政治軍事的 對決 狀態 解消’가 版갈이의 本質이다. 金正恩은 1990年代 以後 韓國이 돈을 앞세워 만들어 놓은 南北關係 틀을 認定하지 않는다. 只今 그가 願하는 건 돈이 아니라 中國을 등에 업고 核武器를 앞세워 自身이 主導하는 판으로 韓半島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2回에 繼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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