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月 3日 女性東亞가 처음으로 公開한 獨立運動家 김란社(1872~1919)의 親筆로 보이는 記念葉書 앞面. [김용택 김란社愛國志士記念사업회 會長 提供]
1918年 정동제일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을 設置한 獨立運動家 김란社(1872~1919)의 親筆로 보이는 記念葉書가 3日 公開됐다. 여성동아가 김용택(74) 김란社愛國志士記念사업회 會長으로부터 單獨 入手한 記念葉書에는 앞面에 團體寫眞과 함께 ‘정동교회(現 정동제일교회)에 設置된 파이프오르간 앞에서 梨花學堂 學生들이 記念 撮影했다’는 文句가 있다. 또 ‘美國에 사는 韓國人들의 寄附로 韓國에 設置된 最初의 파이프오르간’이라는 글句가 보인다. 뒷面에는 英語 筆記體로 쓰인 글이 있다. 金 會長은 김란社 男동생의 孫子(從孫子)다.
金 會長은 女性東亞에 “募金 活動에 同參해준 美國의 同胞들에게 서울에 파이프오르간이 設置됐다는 消息과 함께 고마움을 傳하는 글”이라면서 “筆體를 보았을 때 김란社의 親筆로 推定된다”고 말했다. 이어 “앞面 寫眞은 정동제일교회가 이미 保有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에 김란社 親筆과 說明 文句가 더해진 葉書는 새롭게 發見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란社는 1916年 美國으로 건너가 2年여 간 在美 同胞들에게 故國에 파이프오르간을 보내기 위한 募金 活動을 始作했다. 이에 1918年 마침내 정동제일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이 設置된다. 當時 基準으로 오르간의 價格은 約 2500원. 運搬 및 設置費用까지 包含하면 5000원 以上의 資金이 들었다고 한다.
파이프오르간 設置가 獨立運動史에서 가진 意味는 작지 않다. 서은진 이화博物館 學藝社는 女性東亞에 “篤實한 基督敎人이기도 했던 김란師에게 파이프오르간은 祖國 獨立 念願을 담은 象徵物과도 같았다”며 “파이프오르간이 實際 獨立運動에 쓰이기도 했다. 오르간의 送風口는 사람이 한두 名 程度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는데, 3.1運動 當時 이곳(오르간 送風口)에서 全國 各地의 萬歲運動 消息을 담은 ‘獨立新聞’李 印刷됐다”고 했다.
1919年 김란社는 高宗의 密旨를 받아 祕密裏에 의친왕의 파리講和會議 派遣을 推進했다. 하지만 같은 해 1月 高宗의 갑작스러운 逝去로 일이 水泡로 돌아갔다. 이에 혼자 會議에 參席하기 위해 두 달 뒤 파리로 出國했는데, 經由地인 베이징에서 急死(急死)했다. 當時 日本 外務省 機密文書 ‘第120號’에는 그의 죽음을 두고 ‘劇藥을 먹고 自殺한 것’이라 적혔다. 一角에는 김란社가 毒殺됐다는 說도 있다. 政府는 1995年 김란師에게 建國訓長 애족장을 追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