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統合’ 大統領은 어디 가고 ‘양념’ 大統領만 남았나|신동아

‘統合’ 大統領은 어디 가고 ‘양념’ 大統領만 남았나

[奉達號 便宜店 칼럼]

  • 奉達號 便宜店主

    runtokorea@gmail.com

    入力 2021-01-29 10:00:02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文字爆彈을 보내 私生活과 業務를 마비시키고, 우르르 몰려들어 誹謗 댓글을 올리고, 상스럽게 18원 後援金을 줄줄이 보낸다. 熱誠的 支持者들이 보이는 이 같은 態度 程度는 文在寅 大統領이 制御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簡單한’ 일을 하지 않는다. 只今 “나는 紅衛兵이었소!”라고 떳떳이 말하는 中國人은 찾아보기 어렵다. ‘앞잡이’라는 것이 元來 그렇다. 한때는 나라의 主人이자 歷史의 主役인 것 같고 世上을 다 가진 것처럼 猖獗하지만 結局 偶像을 죽이고 自己도 죽는다.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스스로를 ‘대깨문’이라고 일컫는다. [뉴시스]

    文在寅 大統領 熱誠 支持者들은 스스로를 ‘대깨文’이라고 일컫는다. [뉴시스]

    한낱 장사치에 不過한 사람이 政治·社會 問題에 글을 쓰는 일은 삼가야 했다. 元體 素養이 不足할뿐더러 장사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술집이나 카페를 한다면야 “그 筆者가 運營하는 가게”라며 찾아오는 손님이나 있으련만, 便宜店은 그럴만한 對象도 아니다. 

    ‘신동아’에 連載를 始作하고 나서, 勿論 過分한 激勵의 말씀이 많았지만, 平生 겪어보지 못한 非難과 攻擊 亦是 經驗했다. 어쨌든 公論의 章에 나온 以上 그 程度는 覺悟할 몫이라고 생각하고 웬만한 일은 淡淡하게 받아들이는 便이다. “밤길 操心하라”는 e메일 程度는 그러려니 했으되, 내가 運營하는 便宜店 本社 홈페이지까지 찾아가 ‘저 사람 저렇게 내버려 둘 거냐’ ‘本社가 立場을 밝혀라’ 抗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消息을 듣고는 暫時 精神이 아뜩해졌다. 

    문득 事件이 하나 떠오른다. 便宜店 運營 初期에 겪은 일이다. 倉庫에 있는데 “社長 나와!” 하는 高喊소리에 놀라 나가보니 손님이 職員에게 호통을 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본즉, 어떤 問題가 있었는데 우리 職員이 쓴웃음을 지었다는 것이다. 元來 잘 웃는 職員이긴 했다. 사람 마음을 들여다볼 수는 없으니 正말 비웃는 마음으로 그랬는지, 自己 딴에는 親切히 웃는다는 것이 誤解를 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店主로서 最大限 鄭重히 謝過했고 職員도 잘못했다고 말했다. 問題는 이어진 손님의 反應.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그 職員을 어떻게 處理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當場 자르라는 엄포로 들렸다. 나는 올해 便宜店 運營 9年 次를 맞는다. 時間을 통해 깨달은 敎訓이 하나 있다면 世上엔 참 다양한 사람이 存在한다는 事實이다. 

    이런 사람이 意外로 많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不滿을 提起하는 것은 얼마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나친 措置를 要求한다. 그것을 自身의 正當한 ‘權利’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及其也 當場 解雇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그에게는 感情을 報償받는 ‘解雇’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밥줄이 끊어지는 일이고, 어느 家族의 運命을 뒤흔들 수도 있는 일이다. 店鋪로서도 所重한 職員을 잃는 일이다. 그런 審理가 大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種種 해본다. 政治· 社會 問題에 對해 見解와 立場이 다르다고 相對의 會社에까지 投書해 ‘자르라’ 엄포를 놓았다든지, 그 사람 講演 取消하라, 連載 中斷하라고 抗議했다는 事例를 들을 때마다 “이 사람 빨리 措置하라”던 손님의 결氣 어린 表情이 떠오른다. 아참, 그리하여 펜을 꺾는다면 自身들의 行爲가 正當하다고 誤解할까 봐, 나는 오히려 執筆을 멈추지 못하고 連載를 繼續하고 있다. 다른 被害者들度 같은 心情일 것이다.

    이악스럽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묘사한 포스터. [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중국자료센터 제공]

    中國 文化大革命을 描寫한 포스터. [인천대학교 中國學술원 中國資料센터 提供]

    우리 國語辭典에도 登載돼 있지만 北韓에서 흔히 使用하는 말로 ‘이악스럽다’는 表現이 있다. 억척스러운 사람, 지나치게 아득바득 덤벼드는 사람을 두고 ‘이악스럽다’ 말한다. 最近 數年間 韓國 社會에서 政治的으로 가장 이악스러운 集團을 꼽으라면 亦是 朴槿惠 前 大統領과 문재인 現 大統領을 熱狂的으로 支持하는 集團 아닐까 싶다. 이른바 박사모와 대깨文이다. 



    뭐든 진득하게 耽溺하는 忍耐가 모자란 나로서는 對象이 무엇이든 그렇게 빠져드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自身의 貴重한 時間과 努力을 投資해 生計와 全혀 관계없는 일에 沒入하는 行爲 自體가 존경스럽고 疑訝하기까지 하다. 大體 왜 그러는 것일까? 演藝人을 따르는 일이라면 모르겠다. 그저 내가 좋아 耽溺하는 거니까. 그런데 政治에 過度하게 沒入하면 代替로 攻擊性을 表出한다. 노래, 映畫와 달리 蹴球나 政治는 ‘相對가 있는 게임’이니 그런다고 理解하려 해도, 程度가 지나친 사람들을 보면 都大體 저렇게까지 할 必要가 있을까 疑問을 갖는 것이다. 그런다고 무슨 ‘자리’ 하나 내주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런다고 우리 삶이 아주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내가 너무 守舊 反動的이거나, 利害打算的이거나, 한 걸음씩 나아가는 進步에 對한 樂觀이 不足하거나, 見聞이 짧은 사람이라 그러는 걸까? 勿論 그럴 것이다. 어느새 내가 相當한 懷疑主義者가 된 것은 事實이다. 

    나는 1989年 學生運動을 始作해 北韓 體制와 思想을 信奉한 적이 있고, 1996~1997年 무렵 그것과 訣別했다. 어울리지 않게 묵직한 表現이라 잘 使用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轉向’이라는 것을 했다. 轉向을 하고 내가 한동안 關心을 기울인 分野가 있다면 中國의 文化大革命과 日本의 전공투(全共鬪) 運動이다. 둘 다 1960年代 中盤에서 1970年代 初盤에 걸쳐 일어난 事件으로, 子息이 父母를 告發하고, 弟子가 스승을 두들겨 패고, 集團 殺戮을 하고, 群衆 앞에 조리돌림하고, 찢고 불사르고 뒤집어엎고, 甚至於 飛行機 拉致까지 하는 等 正말 ‘이악스럽기’ 그지없는 運動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악스럽게 만들었을까. 내내 그것이 가슴 아픈 疑問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이악스러움의 探究 對象이 只今 내가 사는 現實로 옮겨오게 됐으니 이는 기뻐할 일일까 슬퍼할 일일까.


    我是他非(我是他非)

    1966년 마오쩌둥이 대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

    1966年 마오쩌둥이 大衆을 向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 [뉴시스]

    轉向하고 8年 程度 中國에 산 적이 있다. 事業車 간 것이지만 滯留 期間 關心을 가진 것도 文化大革命(文革)이었다. 中國人 스스로 나라를 뒤흔든 ‘10年 動亂(動亂)’이라고 말하고, 이쪽이든 저쪽이든 휩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程度로 歷史的인 事件이었는데, 그 連帶를 산 中國人에게 “當身은 그때 무엇을 했습니까?” 넌지시 캐물으면, 大體로 正色하고 입을 다문다. 말하고 싶지 않은 창피스러운 일이고, 되돌아 떠올리기조차 싫은 끔찍한 記憶이며, 特히 外國人에게는 내보이고 싶지 않은 흉터이기 때문이다. 

    中國에서 우리 집 淸掃를 해주던 아줌마가 계셨다. 1940年代 胎生으로 典型的인 文革 世代다. 張氏 姓을 가져 章帝(張?)라고 불렀는데 이분이 나보다 키가 컸다. 그 年輩에 女子 키로는 꽤 큰 키라서 내가 “籠球選手를 하셔도 되겠습니다”라고 弄談 삼아 이야기했더니 正말 옛날에 籠球選手였다는 것이다. 性(省) 代表選手까지 했다는데, 나중에 제법 親해졌을 때에야 自己가 왜 籠球를 그만뒀는지 事緣을 말했다. 簡單했다. 어머니가 日本人이었던 것이다. 滿洲國 時節 大陸에 왔다가 中國人과 結婚해 定着한 女性이었다. 그런 理由로, 出身 成分이 不良하고 外國과 內通(?)했다는 理由로, 조리돌림당하고 籠球團에서 쫓겨나 山골僻地에 數年間 숨어 살았다. 많은 時間이 흘렀는데도 文革만 생각하면 잃어버린 靑春이 抑鬱하고 火가 치민다고 그는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래도 되는 것일까. 歷史엔 그런 일이 많고 많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은 ‘빨갱이’라는 烙印이다. 1960~70年代 中國에서 누군가 走資派(走資派·資本主義를 따르는 사람)로 몰려 迫害를 當하던 時節,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빨갱이로 찍히면 敗家亡身하는 歷史를 겪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兩側에서는 “저쪽이 우리보다 더 했다”거나 “그래도 우리는 저쪽보다 낫다”면서 서로 아우聲을 칠 것이다. 그렇게 輕重을 겨루며 自身의 ‘獨裁’를 合理化한다. 韓國의 ‘교수신문’李 昨今의 우리 社會를 象徵하는 말로 고른 바대로 我是他非(我是他非) ―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政治的 相對便을 迫害하거나 린치를 加하는 行爲를 正當化한다. 이쪽저쪽 가리지 않고 그런 DNA만큼은 똑같이 遺傳한다. 權力만 바뀔 뿐, 行態는 輪廻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中國의 紅衛兵은 韓國의 서북청년단으로, 어제의 박사모는 오늘의 대깨文으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날 ‘氣-乘-전-반공’은 오늘날 ‘氣-乘-전-적폐청산’으로 旗발만 달리해 나부끼는 中이고, 이쪽의 대깨文 ‘總帥’는 저쪽으로 갔다면 拷問技術者 이근안이 됐을지 모르며, 文革의 朝飯派(造反派)들이 “來日은 저 집을 털자”고 座標 찍어 몰려다녔던 것은 오늘날 韓國의 인터넷 空間에서 21世紀型 ‘座標’로 再現된다. 어느 쪽이냐 어느 時代냐 어떤 思想이냐 가릴 것 없이 本質은 그렇게 미싱처럼 “잘도 도네, 돌―아가네.”(勞찾사 ‘沙溪’ 家事)

    怪物에 맞서는 怪物

    平凡한 사람들의 政治的 이악스러움에는 여러 理由가 있겠지만, 어쨌든 本性은 純粹한 사람들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學生運動을 始作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가장 深刻하게 苦悶한 問題 가운데 하나는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處斷할까’ 하는 것이었다. 그 理論에 따르면 우리 아버지는 分明 資産階級이고, 革命이 成功하면 반드시 處斷해야 할 對象인데, 나는 내 아버지를 어떻게 對할 것인지, 참으로 걱정됐다. 돌아보면 우습지만 그때는 正말 眞摯하게 그것을 苦悶했다. 亦是 우스운 일이다. 그 理論을 만든 사람조차 自己 아버지를 어떻게 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고 마구 만들었을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히려 深刻하고 眞摯하게 決斷을 覺悟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은 純粹했다기보다는 지나치게 純眞했던 것이고, 率直히 無知했던 것이다. 世上事 많은 일이 그렇다. 스승보다 決然한 것이 오히려 弟子들이다. 弟子의 그런 純粹와 無知를 스승이 惡用하는 境遇도 흔하다. 

    政治 社會的인 이악스러움의 根源에는 結局 ‘사람’에 對한 觀點의 差異가 숨어 있지 않나 생각하기도 한다. 히틀러가 周邊 사람에게는 宏壯히 親切했고 폴포트가 多情한 先生님이었던 것처럼, 알고 보면 그들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이지 못하는 사람인 境遇가 많다. 그런데 政治的으로는 어찌 그리 殘酷하게 行動했을까 살펴보면, 그들은 政治的 相對便을 具體的인 사람이 아니라 無形의 ‘談論’ 程度로 여기는 것 같다. 돈키호테가 달려든 라만차의 風車처럼, 사람이 아니라 그냥 怪物로 믿는 것이다. 그러면서 自身도 ‘怪物에 맞서는 怪物’로 變身하는 것을 當然히 여기고, 一抹의 罪責感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 簡單한’ 일

    이런 觀點은 支持者들에게도 그대로 遺傳된다. 自己便에 對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 애틋함을 표하는 사람이 相對便에 對해서는 사람으로조차 對하지 않는 態度를 보인다. 政治的 異端者는 說得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對象이 아니라 그저 處斷과 絶滅, 淸算, 剔抉의 對象일 뿐이라고 確信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要컨대 그들이 말하는 ‘사람’이란 우리가 一般的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槪念과 다른 것이고, 그러한 不一致에 對해 何等 異常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먼저다! 

    文在寅 政府 任期가 이제 1年 남짓 남았다. 지난 4年을 되돌아 文在寅 大統領의 가장 큰 잘못이 있다면 經濟를 망쳤다거나 집값 暴騰이나 自營業者 抹殺, 靑年失業, 憲法 無視, 法治와 民主主義 破壞, 三權分立 威脅, 그런 것보다 根源的 失策은 ‘統合’ 問題 아닐까 싶다. 經濟나 制度 秩序야 나중에 바로잡을 수 있다지만 한番 깨어진 마음은 如干 다시 잇기 어렵다. 勿論 統合이라고 해 모든 國民이 一心團結 하나 되는 그런 統合을 바라는 것은 決코 아니다. 다만 最小限, 으르렁거리며 서로 죽기 살기로 座標 찍고 싸워대는, 이런 지긋지긋한 感情 消耗만큼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닌가. 

    그것이 特別히 失望스럽고 안타까운 理由는, 文 大統領 스스로 就任辭에서 “國民 모두의 統合 大統領이 되겠다”고 感動的으로 約束했기 때문이고, 지난 數年間 우리 社會의 健全한 發展을 沮害하는 가장 큰 宿題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며, 다른 國政 課題와 다르게 大統領이 決心하면 相當히 쉽게 풀릴 수 있는 問題인데 그걸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聯立 內閣을 構成한다든지, 蕩平 人事를 한다든지, 政治的 反對派와 野黨까지 包容하는 姿勢를 取한다든지, 巨創하게 그런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最小限 文在寅 大統領이 自身의 熱誠的 支持者들이 보이는 거친 態度 程度는 制御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簡單한’ 일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 것일까?

    紅衛兵

    문화대혁명시절 홍위병들은 
중국에 큰 상처를 남겼다. [GettyImages]

    文化大革命時節 紅衛兵들은 中國에 큰 傷處를 남겼다. [GettyImages]

    다시 文革으로 돌아와, 中國 文革의 原因에 對해서는 여러 推測이 있지만, 權力鬪爭의 關係 속에 살피자면 亦是 大躍進運動의 失敗를 들지 않을 수 없다. 文革이 일어나기 前, 中國에는 大躍進 運動이 있었다. “15年 안에 英國과 美國을 따라잡자”는 奇怪한 口號를 앞세운 이 運動은 鐵鋼 生産量을 極大化한답시고 粗雜한 故로(高爐)를 만들어 집집마다 수저와 젓가락까지 긁어모아 녹여 없애고, 大同社會를 만든답시고 人民公社라는 것을 構成해 집집마다 부엌을 없애 온 洞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食事하도록 했으며, 참새가 農作物에 被害를 준다는 理由로 마오쩌둥이 “저 새는 害롭다”고 하니까 全 大陸에 참새 씨를 말려버려 오히려 害蟲이 猖獗해 大飢饉에 시달리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까지 남긴 歷史上 最惡의 政治 實驗이었다. 

    그 結果 中國에서는 最少 2000萬, 最多 4000萬 名이 굶어 죽었다. 마오쩌둥은 히틀러와 스탈린을 제치고 ‘歷史上 가장 많은 사람을 短時間에 죽인 사람’으로 記錄에 올랐다. 문혁은 그런 大躍進運動의 責任을 지고 2線으로 물러나 있던 마오쩌둥이 다시 權力을 回復하기 위해 支持者들을 動員한, 一種의 親衛 쿠데타다. 불쌍한 것은 그런 凶暴한 權力의 앞잡이가 돼, ‘文化大革命’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包裝된 稀代의 亂場에 動員된 어린 紅衛兵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넓은 意味에서 紅衛兵도 歷史의 被害者”라고 말하기도 한다. 勿論 그렇다고 紅衛兵의 悖惡질이 決코 正當化될 수는 없겠지만. 

    文在寅 大統領은 自身을 支持하는 集團이 政治的 異見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이는 攻擊的 行態에 對해 “競爭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文字爆彈을 보내 私生活과 業務를 마비시키고, 우르르 몰려들어 誹謗 댓글을 올리고, 상스럽게 18원 後援金을 줄줄이 보내는 일을 ‘양념’이라고 定義한 것이다. 그때는 候補 時節이니 支持者들의 協助가 懇切해 그랬다고 하자. 大統領이 되고 나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냥 딱 한 마디만 하면 되는 일 ― “나를 봐서 그러지 말라”고 支持者들에게 峻嚴하게 한마디만 해주면 되는 일, 그 簡單한 일을 大統領은 하지 않고 있다. 大體 왜일까?


    앞잡이

    文 大統領의 아들 준용 氏가 코로나 時局에 展示會를 열고 零細 藝術家들에게 주어지는 支援金까지 받은 事實이 最近 입방아에 올랐다. 다른 問題는 且置하고, 그런 過程에 보여준 準用 氏의 態度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巷間의 非難에 準用 氏가 소셜미디어에 發表한 立場文은 “錯覺을 하는 것 같은데…”라는 文章으로 始作한다. 그 뒤로 올린 다른 글에도 “―했음”이라는 終結 語尾로 이어지는, 짜증 난다는 套의 雰圍氣가 확 느껴진다. 準用 氏가 藝術을 하는 사람이니 좀 感情的일 수 있고, 지난 數年間 世人의 지나친 關心을 받고 攻擊의 對象이 되는 것이 疲困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一介 庶民조차 公論의 場으로 나온 以上 어느 程度 非難과 攻擊의 對象이 되는 것을 甘受한다. 하물며 現職 大統領의 아들이야! 

    여기서 느껴지는 것은 一種의 少數者, 被害者, 守護者 意識이다. 아직도 自身이 不當하게 逼迫받고 공정한 待遇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思考가 느껴진다. 謙遜이나 省察 같은 것은 그리 느껴지지 않고, 그러면 ‘밀린다’는 게임의 法則으로만 世上을 對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남들이 뭐라고 하건 말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좋게 말하면 自尊心이고 나쁘게 말하면 傲慢한 稚氣가 느껴진다. 世上 모든 것을 赤蛾(敵我)로 區分하고 政治로 還元한다. 이것은 準用 氏뿐 아니라 文在寅 大統領과 그를 熱誠的으로 支持하는 集團에게서 日常的으로 發見되는 態度이기도 하다. 

    마오쩌둥은 紅衛兵의 힘에 스스로 놀랐다. 元來 適當히 權力을 回復하는 道具 程度로 使用하려 했는데 紅衛兵이 大陸을 뒤흔들고, 한 몇 個月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及其也 紫禁城까지 불 지르려 할 程度로 悖惡질을 일삼고, 銃 들고 竹槍 들고 自己들끼리 죽고 죽이는 等 到底히 制御가 되지 않자 結局 軍隊를 動員해서야 겨우 紅衛兵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紅衛兵은 모두 脂肪으로 下方(下放)보냈다. 그리고 只今, “나는 紅衛兵이었소!”라고 떳떳이 말하는 中國人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앞잡이’라는 것이 元來 그런 것이다. 한때는 自身이 나라의 主人이자 歷史의 主役인 것 같고 世上을 다 가진 것처럼 猖獗하지만 結局 스스로 偶像을 죽이고 自己도 죽는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