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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政黨이 자라나야 大韓民國이 산다|신동아

다양한 政黨이 자라나야 大韓民國이 산다

[奉達號 便宜店 칼럼] 勝者獨食 選擧制度는 民心을 올바르게 反映하는가

  • 奉達號 便宜店主

    入力 2023-07-28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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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로남不 進步 vs 理念 없는 외곬 保守

    • 帝王的 大統領制와 勝者獨食 選擧制度

    • 40% 民心으로 85% 議席 가져가다니…

    • 政治的 處方의 出發點, 第3政黨

    • 民心 歪曲 줄이는 ‘聯動型 比例代表制’

    [Gettyimage]

    [Gettyimage]

    낼모레가 쉰인데 아직 軍隊 이야기를 하는 것은 亦是 ‘꼰대 같은’ 일이다. 그래도 軍隊 이야기로 始作해 본다. 나는 1990年代 戰鬪警察로 全南 어느 警察署에서 軍服務를 했다. 한番은 光州에서 큰 集會가 있어 部隊員 大部分 出動을 나가고 行政要員 몇 名만 남았다. 平素 前景들끼리 짝을 이뤄 正門 堡礁 서는 일을 職業 警察들이랑 함께 하게 됐다. 밤에는 民願人이 없으니 哨所 안에 들어가 두런두런 對話를 나눴다. 勤務時間이 두 時間이니 別別 이야기가 다 오갔다.

    그날 같은 勤務組이던 警察은 내가 平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體格이 다부지고 性格은 豪宕한 警長이었다. 그가 내 出身 大學을 듣더니 人相을 구겼다. “하, 그 大學 놈들 때문에 이렇게 됐지” 하면서 왼쪽 소매를 걷어 올려 보여줬다. 凶測한 手術 자국이 있었다. 1991年 여름, 우리 大學 商科大學 뒤便 슈퍼 앞 平牀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覆面을 쓴 大學生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쇠파이프로 毆打했다는 것이다. 그때 팔이 骨折됐고, 쫓겨 도망가다가 어딘가에 긁히고 찢긴 痕跡이라고 했다.

    알 수 없는 사람 因緣

    瞬間 아찔했다. 나는 그날 警察들을 急襲한 ‘犯人’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 狀況도 다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大規模 示威가 있어 運動圈 學生들은 거의 모두 上京했고, 캠퍼스는 閑散했다. 몇 名만 남아 學生會室을 지키고 있었는데 白骨團 服裝을 한 몇몇이 商科大學 뒤便에서 無防備 狀態로 있다는 諜報(?)가 들어왔다.

    當時 私服 차림의 警察 鎭壓部隊를 ‘白骨團’이라고 불렀다. 靑바지에 靑재킷을 입고 主로 흰色 헬맷을 쓰고 다녀 그렇게 불렸다. 服裝이 簡便하니 鎭壓部隊의 先鋒에서 逮捕組로 活躍했는데, 運動圈 學生들 사이에는 ‘나쁜놈들’의 代名詞로 通했다. 1991年에 명지대生 강경대 君이 이들에게 쫓기다 死亡하면서 嫌惡와 憤怒의 感情이 極에 達한 狀態였다.

    “梔子!” 몇몇이 쇠파이프와 角木을 들고 조용히 商科大學 뒤便으로 갔다. 골목 兩쪽에서 包圍해 거의 一方的으로 毆打하고 支援 兵力이 到着하기 前에 빠져나왔다고 痛快하게 武勇談을 늘어놓았다. 無電機까지 뺏었던 것으로 記憶한다. 盟誓컨대 나는 그 무리에 끼지 않았는데, 그건 當時 내가 警察 內査(內査) 段階에 있었고, 高等學生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條件만 아니었으면 나도 分明히 그 行爲에 加擔했을 것이다. 사람의 因緣이 이렇게 이어지는구나. 마음속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나랑 正門 勤務를 함께 선 警察은 白骨團 出身이었다. 다른 部隊는 모두 示威 鎭壓車 上京했는데, 自己 部隊만 大學 隣近에서 狀況 待機를 하고 있었고, 몇몇이 部隊를 離脫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가 逢變을 當한 것이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었구나. 未安하고 애잔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勤務時間 두 時間 내내 그는 運動圈에 對한 안 좋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中 相當數가 좀 荒唐한 이야기였다. 假令 運動圈 學生들은 集團 混宿을 하는데 그 過程에 亂雜한 性行爲가 이뤄지고, 總學生會長에게 예쁜 女學生을 ‘갖다 바치고’, 思想的으로 動搖하는 學生은 性的인 弱點을 잡아 組織을 못 나가도록 잡아둔다는 式으로 입에 담기도 지저분한 이야기였다. 마치 그것이 事實이라는 듯 “너는 모를 거야”라고 연신 强調하며 말했다. ‘제가 運動圈 核心이라서 아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實際로 運動圈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學生運動圈도 數十, 數百萬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거쳐 갔으니 別의別 사람이 다 있고, 別의別 일이 다 있었을 것이다. 一角에서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運動圈 全體를 싸잡아 ‘그런 集團’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도 同意할 수 없다. 保守 一角의 腐敗한 行爲를 理由로 “保守 勢力은 賂物을 먹고 살아가는 集團”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말이 나왔으니, 이른바 進步 陣營 사람들이 保守 陣營에 對해 갖고 있는 先入見 또한 執拗하고 荒唐하다. 特히 保守 性向 言論社에 勤務하는 記者들을 싸잡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나, 良心도 人情도 없는 冷血漢쯤으로 여기는 見解가 있다. 그저 데스크에서 시키니까 하릴없이 記事를 쓰는 사람 程度로 안다. 亦是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保守 言論社에도 別의別 記者들이 다 있지만 내가 아는 記者들은 大體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當身이 純粹하고 平凡한 만큼 그들도 純粹하고 平凡하게 自身의 職業에 從事하고 있을 따름이다.

    ‘먹고살기 위해’ 自身의 생각과 엇나가는 記事를 쓰는 境遇도 勿論 있겠지만, 그런 風景은 어떤 職業 世界든 마찬가지 아닌가. ‘職(職)을 내던지더라도’ 할 말은 하겠다는 결氣 또한 保守 言論社 記者들에게도 있다. 良心은 當身들만 지닌 專賣特許가 아니라는 뜻이다.

    嫌惡·不信·敵對感

    陣營의 이쪽과 저쪽에 모두 몸담아 보면서 느낀 것은 兩大 陣營의 서로에 對한 極度의 嫌惡와 不信, 敵對感이다. 勿論 外國에도 政治的 異見을 둘러싼 相互 葛藤이나 不信이 있게 마련이고 敵對感도 存在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兩쪽으로 確然히 갈라져 마치 ‘저쪽이 없어져야 이 나라가 산다’는 式으로 敵對感이 蔓延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싶을 程度다.

    20年 前, 美國 워싱턴에서 열린 北韓人權週間 行事에 參席했을 때 일이다. 나랑 가깝게 지내던 어느 美國 辯護士는 熱烈한 共和黨 支持者였는데, 저녁 食事를 하다가 落胎가 話題에 오르자 갑자기 興奮했다. “人間 生命體를 갈가리 잘라 죽이는 行爲에 贊成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理解할 수 없다”면서 民主黨 支持者들에 對해 몸서리치는 表情을 지었다. 銃器 規制, 移民政策, 醫療福祉 問題 等에 對해서도 그는 典型的인 ‘공화당 主流’의 見解를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음 날에는 民主黨 支持者들과 함께 北韓 人權 實現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선 왜 이런 風景을 期待할 수 없을까?’ 하고 아쉬워했다. 너무 浪漫的 생각일까.

    우리나라에 유난히 政治的 敵對感이 蔓延한 理由는 여럿이겠지만 歷史的·制度的 背景이 뒤엉켜 있다고 볼 수 있겠다. 歷史 쪽을 살펴보자면, 一旦 保守 쪽의 잘못을 指摘하지 않을 수 없다. 光復 以後 50年 歷史는 自他公人 ‘保守의 一黨獨裁’ 歷史다. 1998年 김대중 大統領이 就任하고 나서야 進步 陣營이 執權할 수 있게 됐다. 事實은 김대중 政權도 ‘좀 더 溫乾한 保守 政權’이었을 따름이고, 노무현 政府에 이르러서야 민주당의 進步 志向的 性格이 若干 뚜렷해졌다. 그때부터 신한국당 系列 政黨을 ‘保守’, 민주당 系列 政黨을 ‘進步’라고 부르는 區分法度 생겨났다. ‘果然 민주당을 進步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問題는 論外로 하고 말이다.

    ‘保守 50年 執權.’ 進步 쪽은 韓國 現代史를 그렇게 바라본다. “保守 勢力은 50年이나 해 먹고선…” 하는 論理가 생겨나는 것이다. 自身들도 50年 程度는 ‘해 먹어야’ 均衡의 原理에 맞는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自己 陣營 內部의 잘못에 對해서도 눈을 감는다. ‘아무런 批判도 받지 않은 채, 나아가 批判 勢力을 徹底히 彈壓하면서 50年 동안이나 執權한 勢力도 있는데 이쯤이야’ 하는 式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決然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式으로 여긴다. 惡辣한 者들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自身들도 조금 惡辣해지고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다는 論理로 모든 行爲를 正當化한다. 民主黨이 全黨大會 돈 封套 事件에 對해 ‘그쯤이야’ 하고 失言하는 理由, 이른바 曺國 事態에서 보여준 行態는 바로 그런 事故를 基盤으로 한다.

    進步의 이런 ‘내로남不’을 保守 陣營에서 原因을 提供한 것처럼 “保守 쪽의 잘못”이라고 앞에서 表現했지만, 保守 陣營 사람들은 또 다르게 反論한다. “우리나라의 反共 保守는 6·25의 後果로 생겨난 保守”라고 말이다. 卽 進步를 自處한 勢力이 6·25戰爭을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우리나라의 報酬가 그렇게 强勁한 保守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고, 軍士 쿠데타마저 ‘救國의 決斷’이라 稱頌할 程度로 韓國의 保守가 歪曲 成長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原罪는 進步에게 있다는 뜻이다.

    若干 一理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陣營의 存在를 源泉的으로 認定하지 않았던 50年 歷史는 韓國 社會의 理念 地形을 지나치게 외곬으로 이끌었다. 韓國에 제대로 된 ‘理念 保守’가 成長하지 못한 것도 그런 탓이다. 競爭 相對가 없으니 進化에서 淘汰됐다고나 할까. ‘獨占’은 結果的으로 自己 自身을 해치는 일이 된다.

    奇怪한 總統型 大統領制

    이러한 歷史的 背景도 있지만 制度的 理由 또한 無視할 수 없다. 가장 큰 問題는 亦是 政治制度가 아닐 수 없다. 하나는 帝王的 大統領制이고, 다른 하나는 勝者獨食 選擧制度다.

    大統領制를 採擇한 國家 가운데 韓國처럼 帝王的 大統領制 國家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나라의 유난한 特徵 가운데 하나는 다른 나라의 것을 輸入해 와서는 極端的으로 비틀어버리는 點에 있다. 大統領 制度도 그런 輸入品 가운데 하나다.

    알다시피 大統領 制度는 美國에서 생겨난 것으로, 王의 束縛이 싫어 新大陸으로 移住한 사람들이 새로운 國家를 만들려다 보니 ‘王을 代替할 다른 무언가’를 苦悶하다 만든 자리다. 따라서 草創期 美國 大統領은 決코 帝王的 大統領이 아니었고, 只今도 그렇다. 草創期 美國 大統領은 그저 會議를 主管하는 先任者 程度 役割이었고, 그래서 이름도 프레지던트(president)였던 것이다. 現代 美國 歷史는 聯邦의 統率者로서 大統領의 權限이 漸次 强化돼 온 歷史다. 하지만 그래도 亦是 美國 大統領은 오늘날 韓國 大統領이 누리는 權限의 範圍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美國이 워낙 强大國이다 보니 美國 大統領의 權限이 强力해 보일 따름이다.

    유진오 先生이 우리나라 制憲憲法 草案을 만들 때, 元來는 議員內閣制를 權力構造로 삼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事實이다. 李承晩이 그것을 大統領 中心制로 바꿨다. 李承晩이 美國에서 오래 生活한 탓이 있을 것이고, ‘選出된 賃金’李 되고 싶은 李承晩의 個人的 欲心 또한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始作한 우리나라의 大統領制는 銃칼을 앞세워 쿠데타로 執權한 軍人들이 거의 30年 가까이 政治를 이끌면서 더욱더 ‘帝王火’됐다. 軍人 特有의 上命下服 階級 秩序, 게다가 保守 一色의 理念 陣營까지 結合하면서 우리나라의 大統領制는 世界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總統(總統)型 大統領制가 됐다.

    1987年 憲法을 改正하면서 事實은 이런 帝王的 大統領制를 解體했어야 옳다. 그런데 그때는 그저 直選制를 爭取하는 것에만 汲汲했고, 나중에 當選된 往年의 民主 鬪士 大統領들도 權力의 달콤함은 놓칠 수 없어 帝王的 大統領制를 거의 그대로 維持했다. ‘保守 陣營은 50年을 해 먹었는데 우리만 얌전할 수는 없지’ 하는 생각 또한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가진 總體的 悲劇의 씨앗이다.

    第3政黨 위해 물꼬 터줘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7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위성정당 방지’ 정치 관계법 개정안 발의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1대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바뀌었으나 거대양당이 비례용 위성정당을 창당해 정치개혁 시도에 찬물을 끼얹었다. [뉴시스]

    沈想奵 精義堂 議員이 7月 10日 서울 汝矣島 國會 疏通館에서 열린 ‘衛星政黨 防止’ 政治 關係法 改正案 發議 關聯 記者會見에서 發言하고 있다. 21代 總選에서 準聯動型 比例代表制로 選擧制度가 바뀌었으나 巨大兩黨이 比例龍 衛星政黨을 創黨해 政治改革 試圖에 찬물을 끼얹었다. [뉴시스]

    帝王的 大統領制를 維持하려니 勝者獨食의 選擧制度가 만들어진다. “이리저리 苦悶하지 말고 이것 아니면 저것, 둘 中에 하나만 고르쇼”라는 選擧 制度가 誕生하는 것이다. 兩黨이 對立하는 것 같지만 서로가 政權을 주고받으며 兩者擇一의 僥倖數 가운데 半쪽은 얻을 수 있으니, 旣得權 政治勢力은 그러한 敵對的 共生關係 가운데 勝者獨食의 選擧制度를 維持한다. 第3의 政黨은 아무리 努力해도 出現하기 어려운 政治構造를 만드는 것이다.

    或者는 “大統領制下에서 兩黨 政治는 어쩔 수 없는 日”이라고 말한다. 勿論 그렇다. 有權者들의 辭表(死票) 心理가 있기 때문에 結局엔 둘 中 하나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마냥 ‘兩黨 政治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내버려 둬야만 하는 것일까.

    美國 같은 나라라면 모르겠다. 共和黨-民主黨으로 갈라져 있긴 하지만, 美國은 極端的으로 對立하는 兩黨 體制는 아니다. 우리는 어떤가. 兩黨 極盛 支持者들의 發言과 行動을 보면 “저쪽을 몽땅 죽여야 우리가 산다”는 水準에 가깝다. 果然 이것이 大韓民國이라는 共同體의 調和와 發展이라는 側面에서 바람직한 現象일까. 政治的 葛藤, 社會的 感情 消耗를 줄이기 爲한 特段의 努力을 기울이지 않으면 韓國 社會의 安定的 發展은 더는 期待하기 어려운 水準이 됐다. 어떻게든 人爲的으로 兩黨 體制에 龜裂을 내야 옳지 않을까. 第3의 政黨이 생겨날 수 있도록 制度的으로 물꼬를 터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 社會의 深刻한 葛藤 現象을 治癒할 수 있는 政治的 處方의 出發點이다.

    政治制度가 勝者獨食이고 尖銳하게 對立하다 보니 社會 全般的으로 勝者獨食의 마인드가 橫行하고 兩極化의 葛藤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深刻한 潛伏期에 있다. 韓國人들은 유난히 他人과 比較해 自身의 處地를 認識하는 傾向이 있다. 그것이 ‘잘살아 보세’라는 口號 아래 啓發과 努力의 動因이 된 때도 있었다. 요즘처럼 SNS를 통해 서로의 삶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時代에는 疏外感과 虛榮心을 同時에 觸發하는 要因이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政治가 勝者獨食이고, 經濟마저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것이 뭐가 어때서?’라는 그릇된 能力主義와 結合하다 보니 社會 葛藤은 갈수록 尖銳해지고 있다. 언제 爆發할지 모르는 雷管이 됐다.

    韓國의 ‘葛藤 指數’가 經濟協力開發機構(OECD) 會員國 3位로 世界 最上位圈 水準이라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社會的 時限爆彈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問題가 深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解決하려고 努力하는 사람 또한 많지 않다. 政治制度 變更에서는 더욱 그렇다. 왜 그럴까. 相當數 政治人이나 知識人들이 勝者獨食의 社會 시스템, 帝王的 大統領 制度 때문에 惠澤을 누리는 階級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고 解釋한다면 지나친 陰謀論일까.

    더불어민주당 출신 금태섭(왼쪽) 전 의원은 신당 창당을 선언하고, 7월 3일 신당 준비 모임 단체 명칭을 ‘새로운 정당 준비위원회(새로운당)’로 확정했다. 4월 18일 금 전 의원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다른 미래를 위한 성찰과 모색 포럼’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民主黨 出身 琴泰燮(왼쪽) 前 議員은 新黨 創黨을 宣言하고, 7月 3日 新黨 準備 모임 團體 名稱을 ‘새로운 政黨 準備委員會(새로운當)’로 確定했다. 4月 18日 金 前 議員이 김종인 前 國民의힘 非常對策委員長, 李尙玟 더불어民主黨 議員과 함께 서울 汝矣島 國會 議員會館에서 열린 ‘다른 未來를 위한 省察과 摸索 포럼’에 앞서 對話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輿論 地形과 다른 議席 配分

    第3政黨, 第3의 政治勢力이 誕生할 수 있도록 人爲的으로 努力하는 일은 大韓民國의 命運이 걸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程度로 重要하다. 世界的으로 選擧制度를 改革하면서 少數 政黨의 院內 進出을 돕고 政治的 代表性을 높여주는 方向으로 努力하는 것은 單純히 少數 政黨 政治人들에게 議員 배지 몇 個 더 달아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政治가 조화롭고 다양해야 社會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事實을 常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大韓民國이 조화로운 社會로 나아가려면 우리도 制度를 그렇게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고, 大韓民國이 只今처럼 서로 繼續 물어뜯고 싸우면서 이 模樣 이 꼴로 사는 것이 좋다면 現象을 維持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變化의 機會가 있었다. 2020年 4月 實施된 21代 國會議員 選擧에서 그랬다. 준(準)연동형 比例代表制라는 曖昧한 이름을 달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때의 選擧制度는 政黨의 比例性을 높여 少數 政黨이 院內에 더욱 많이 進出할 수 있도록 制度的으로 門戶를 열어준 事件이었다. 勿論, 알다시피, 巨大 兩黨이 ‘衛星政黨’이라는 世上 부끄러운 꼼수를 부리면서 물거품이 됐지만.

    當時 選擧制度가 元來 趣旨대로 運營됐더라면, 卽 巨大 兩黨이 衛星政黨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正義黨·國民의黨·無所屬 等은 30席 程度를 確保했을 것으로 計算된다. 實際로는 院內 14席에 그쳤는데, 30石과 14席의 差異는 크다. 院內交涉團體 構成 與否가 달려 있기도 하고, 45%臺 45%의 尖銳한 對立이 이어지는 大韓民國 政治 構圖에서 10% 程度의 議席은 政治的 ‘中心’을 左右할 수 있는 所重한 議席이기 때문이다.

    此際에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比例代表制度를 싫어하는 輿論 또한 유난히 많은데, 比例代表 國會議員을 속된 말로 ‘거저먹은’ 國會議員이라고 생각하는 傾向 때문인 듯하다. 그런 視角이 全혀 터무니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地域 選擧의 弊端을 補完하는 次元에서 國會議員의 比例性을 높이는 것은 世界的 趨勢다. 正常的 政治의 發展 方向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알 만큼 알고 있을 政治人이 “比例代表 數字를 縮小해 國會議員 定數를 줄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포퓰리스트와 다르지 않다.

    ‘聯動型 比例代表制’라는 用語가 多少 複雜하고 生硬하게 느껴지겠지만 趣旨는 簡單하다. 輿論調査를 해보면 國民의힘이 35%, 民主黨이 35%, 其他 政黨 및 無黨層이 30% 하는 式으로 恒常 結果가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나라 國會는 그러한 輿論 地形과는 다르게 議席이 配分돼 왔음은 周知의 事實이다. 保守政黨과 民主黨이 거의 95% 議席을 차지하는 것이다. 要컨대 國民 70% 支持率을 갖고 議席은 95%를 가져가는 至極히 ‘不公正한’ 結果를 낳는다. 聯動型 比例代表制는 이를 最大限 ‘實際와 가깝게’, 公正하게 맞춰보자는 뜻이다.

    視線을 옮겨보자. 21代 總選에서 民主黨이 首都圈에서 얻은 政黨 得票率은 40% 程度였다(위성정당인 더불어市民黨과 열린民主黨을 합친 得票率). 그런데 當時 민주당이 首都圈에서 가져간 地域區 議席은 103席으로 首都圈 全體 121席 가운데 85%에 達한다. 그러니까 40% 程度 民心으로 그 곱절인 85% 議席을 가져간 것이다. 이 또한 果然 공정한 結果라고 말할 수 있을까. 民心을 제대로 反映한 制度라고 말할 수 있을까. 首都圈에서 다른 政黨 候補가 當選되기를 바란 60%의 마음은 무엇으로 報償받을 수 있을까. 聯動型 比例代表制는 그러한 不公正을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國民의 마음을 補償해 주자는 뜻이다.

    聯動型 比例代表制는 單純히 제3정당이 誕生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뜻만은 아니다. 民心과 議席의 配分이 歪曲되는 現象을 어떻게든 補正하자는 趣旨이고, 世界的으로도 ‘政治의 常識’처럼 그런 制度를 導入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만 가장 單純한 形態로 ‘이긴 者가 다 갖는’ 選擧制度를 運營하고 있으며, 그래서 社會 全般的으로 이것 아니면 저것, 勝者獨食의 雰圍氣가 蔓延하는 것이다.

    또다시 過去로 돌아갈 것인가

    元來 우리나라는 總選 1年 前까지 選擧區를 劃定하도록 돼 있다. 來年 4月 10日 總選이 열리니 올해 4月 10日까지는 決定돼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3個月이 지나도록 選擧區 協商 消息조차 들리지 않는다. 國會議員들이 法을 지키지 않으면서 國民에게만 法을 지키라고 하는 꼴이다. 아마도 그냥 어영부영 지내다가, 選擧가 臨迫해서야 兩黨이 이리저리 政治的 計算을 주고받으며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畸形的이고 不公平한 選擧區 劃定)을 할 것이다.

    選擧制度 改革에 對한 論議도 國會 全員委員會를 열어 決定하겠다고 했으면서 그 뒤로 아무런 消息이 없다. 이것도 아마 어영부영 버티다가, 選擧가 臨迫해서야 “예전 式으로”를 외쳐댈 것이라고 豫想한다. 20代 總選까지 使用했던, 過去의 竝立形 比例代表 選出 方式으로 되돌아가자고 말할 確率이 높다. “聯動型 比例代表制를 해봤더니 衛星政黨이 생겨나고 안 좋았잖아”라는 제법 그럴듯한 理由를 대지 않을까. 結局 輿論 支持率 70%를 얻는 巨大 兩黨이 國會 300席 全部를 사이좋게 나눠 갖는 敵對的 共生과 ‘利益 카르텔’의 結果가 나타날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저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나라인가.

    衛星政黨이 憂慮된다면 只今 300名 國會議員 全員이 ‘衛星政黨 反對 決議案’을 採擇하면 된다. 衛星政黨을 設立하는 데 조금이라도 加擔하거나 同調하면 議員職을 내려놓겠다는 誓約書를 받아놓으면 된다. 그것이 憲法上 保障된 不逮捕特權을 抛棄하겠다고 怪異한 約束을 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지 않을까.

    모쪼록 選擧制度 改革이 이루어져 大韓民國 政治에 多樣性의 무지개가 활짝 펼쳐지길 期待한다.

    ※ 滿 4年 9個月 동안 連載하던 ‘奉達號 便宜店 칼럼’을 一身上 理由로 暫時 中斷합니다. 便宜店 店主에게 所重한 紙面을 許諾해 주신 月刊 ‘신동아’, 限없이 不足한 原稿를 사랑해 주신 讀者 여러분에게 고개 숙여 感謝드립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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