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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券 日本通 강창일 “스가는 아베의 金淇春…强勁派 中心 政權 運營 持續”|新東亞

旅券 日本通 강창일 “스가는 아베의 金淇春…强勁派 中心 政權 運營 持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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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20-09-15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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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가 上王 노릇할 것

    • 韓에 宥和的 姿勢 보이겠지만 解法 없을 듯

    • 文, 反日派 아니다…한일관계 풀려는 意志 强해

    • 徵用賠償, 政治로 풀어야 하는데 韓政府도 役割 못해

    • 자민당에선 ‘輸出規制’ 利益 없어 풀고 싶어 해

    • 幹事長, 觀光客 2000名 데리고 訪韓計劃 했었다

    • 코로나 터지면서 물거품, 運이 없는 건지…

    • 李洛淵, 靑瓦臺에 韓日關係 改善 强力 要求해야

    여권 일본통 강창일 전 의원은 도쿄대에 유학해 ‘근대 일본의 조선침략과 대아시아주의’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다. [박해윤 기자]

    旅券 日本通 강창일 前 議員은 도쿄대에 留學해 ‘近代 日本의 朝鮮侵略과 大아시아主義’를 主題로 博士 論文을 썼다. [박해윤 記者]

    아베 新潮(64) 日本 總理가 물러났다. ‘아베 內閣’의 門은 穩全히 닫히지 않았다. 아베 總理의 ‘腹心(腹心)’인 스가 요시히데(72) 關防長官이 9月 14日(現地時間) 自民黨 總裁에 選出돼 次期 總理職을 豫約했다. 그는 2012年 2次 아베 內閣 出帆과 同時에 關防長官에 任命돼 7年 8個月餘間 職을 維持했다. 歷代 最長壽 官房長官이다. 官房長官은 國家 機密, 人事, 會計 等 內閣 事務를 總括하고 政府 代辯人 役割을 맡는 核心 要職이다. 

    스가 總裁는 9月 2日(現地時間) 選擧 出馬를 宣言하면서 “아베 政權을 確實히 繼承하겠다”고 말했다. 아베의 上王(上王) 政治가 信號彈을 울렸다는 分析이 나온다. ‘아베스(아베+스가)’라는 낱말도 돈다. 아베 總理는 議員職은 維持하기로 했다. 複雜하게 꼬인 韓日關係의 실타래가 좀체 풀리지 않을 거라는 解釋이 나오는 理由다. 

    4線을 지낸 강창일(68) 前 더불어民主黨 議員은 與圈의 意中을 反映하는 무게感 있는 日本通으로 꼽힌다. 그는 서울대 國史學科를 卒業한 뒤 도쿄大로 留學해 東洋史學으로 碩·博士 學位를 取得했다. 歸國 後 培材大 日本學科 敎授로 在職하다 17代 總選 때 濟州市甲 地域區에서 當選됐다. 그 뒤 한일의원연맹에서 幹事長, 首席副會長, 會長을 지냈다. 지난 1月 “20代 國會를 돌아보면 國會議員으로 自愧感을 느낀다”며 總選 不出馬를 宣言했다.

    日本에서 繼續 電話 온다

    日本은 議員內閣制를 採擇하고 있는 만큼 韓日關係에서 兩國 間 疏通 窓口로 國會만 한 곳이 없다. 아베 內閣이 韓國을 相對로 半導體 部品素材 輸出規制 措置를 取한 뒤, 姜 前 議員은 한일의원연맹 會長 身分으로 靑瓦臺와 交感하며 日本 側과 물밑 對話를 벌였다. 그와 9月 4日 서울 良才洞 ‘歷史디자인硏究所’에서 마주 앉아 這間의 속事情을 들어봤다. 

    - 日本과 因緣이 깊은 便이다. 어쩌다 日本을 話頭로 삼게 됐나. 

    “1974年 民靑學聯(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 活動하면서 民主化運動 하다가 1980年에야 復學했다. 나는 工夫를 하고 싶었는데, 全斗煥 政權이 母校 大學院을 못 가게 했다. 또 데모할 거라 생각했던 거지. 以後 日本으로 留學 가서 日帝侵略史를 主題로 論文을 썼다.” 



    - 도쿄大 論文 主題가 日帝侵略史였다는 게 興味롭다. 

    “單語마다 神經을 곤두세웠다. 主題 때문에라도 緻密하게 쓸 수밖에 없었지. 論文 審査委員이 8名이었는데, 實證的으로 써놓으니 아무도 손을 못 臺.”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卷 줘야겠다”면서 두꺼운 冊을 건넸다. 도쿄大 博士 論文을 韓國語로 옮겨 쓴 ‘近代 日本의 朝鮮侵略과 大아시아主義’다. 하토야마 유키오 前 日本 總理가 아베 內閣을 分析하며 꺼낸 ‘大日本注意’라는 單語와 妙하게 겹친다. 

    - 한일의원연맹에서 會長까지 지냈으니 韓日關係에는 잔뼈가 굵은 셈인데. 

    “17代 國會에 들어오니 이낙연 議員(現 民主黨 代表)李 한일의원연맹 活動을 같이 하자 하더라고. 李 代表가 동아일보 特派員 할 때도 日本에서 자주 만나 술 마셨다. 18代 國會에서 이 代表가 幹事長, 나는 社會文化委員長을 했다. 19代 때 이 代表가 全南知事로 가면서 내가 幹事長을 맡고, 執權 뒤 會長을 했지.”
     
    最近 이 代表의 祕書室長에 內定된 오영훈 議員도 姜 前 議員의 補佐官 出身이다. 이야기는 다시 한일의원연맹으로 돌아간다. 

    “李 代表가 大選에 나가게 되니 한일의원연맹 會長을 하기 어렵지. 李 代表는 顧問으로 모시고, 金振杓 議員이 會長을 맡았다. 幹事長은 野黨 몫인데, 저쪽(國民의힘)에서 幹事長을 못 뽑고 있다. 아직 한일의원연맹 構成이 안 됐다. 日本에서 繼續 電話가 온다. 韓國 파트너가 없어 죽겠다고.” 

    - ‘스가 總理 時代’는 ‘아베 總理 時代’와 바뀌는 게 있을까. 

    “안 바뀐다. 아베가 總理 官邸 祕書들을 中心으로 意思決定을 하는데, 이를 總括한 사람이 스가다. 누구는 ‘스가가 企劃하고 건네면 아베가 폼 잡고 指示한다’고 한다. 그의 位相은 代辯人 兼 祕書室長 格이다. 아베가 스가한테 全權을 주니 祕書室長 役割까지 맡은 거지.” 

    - 박근혜 前 大統領 때 金淇春 祕書室長 같은 役割인가. 

    “그렇다. 單, 스가는 實用主義者이니 폼 잡지는 않고 模樣새로는 韓國에 조금 宥和的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半導體 部品素材 輸出規制 措置를 두고 어떻게든 對話의 章까지는 나아가리라 본다. 勿論 ‘對話하자’이지, ‘푼다’는 아니다.” 

    - 實質的 解法을 갖고 올 可能性은 작다는 건가. 

    “次期 總理 任期가 1年밖에 안 되니 穩全히 自己 政治를 펼 수는 없다.” 

    - 管理型 內閣이 되리라는 分析이 많다. 

    “아베의 側近들, 特히 總理 官邸의 强勁派를 中心으로 繼續 政權을 運營해 나갈 것이다. 자민당이나 內閣에서는 不滿이 많다. 長官들이 얘기할 수가 없다고 한다. 고노 다로 外務相이 半導體 部品素材 輸出規制 措置에 對해 얘기를 못 들었다는 것 아닌가.(*당시 日本 言論에는 ‘總理 官邸와 經濟産業省이 主導權을 쥐면서 外務省은 發表 直前에야 細部 內容을 알게 됐다’는 報道가 나왔다) 아베가 異常한 密室政治를 했다.” 

    - 아베가 스가 政權에서 上王(上王) 노릇을 할 거라는 解釋까지 나온다. 

    “上王 노릇하지. 그러려면 (아베 處地에서는) 總理 適任者로 스가밖에 없다.”

    풀어보려고 했는데 터지고 또 터지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12월 14일 청와대에서 한일의원연맹 합동총회를 위해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한일의원연맹 일본 측 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일본 대표단과 강창일 한국 측 회장(왼쪽에서 첫 번째)을 비롯한 한국 대표단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文在寅 大統領이 2018年 12月 14日 靑瓦臺에서 한일의원연맹 合同總會를 위해 訪韓한 累카가 後쿠시로 한일의원연맹 日本 側 會長(오른쪽에서 세 番째)을 비롯한 日本 代表團과 강창일 韓國 側 會長(왼쪽에서 첫 番째)을 비롯한 韓國 代表團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靑瓦臺 寫眞記者團]

    - 輸出規制 措置 以後 한일의원연맹 次元에서 幕後 對話는 없었나. 

    “많이 했다. 實際는…. 허허, 나 또 辱먹을라. (暫時 뜸들이다) 서로 問題가 있다.” 

    그는 苦悶에 잠긴 듯 담배를 태워 물었다. 裏面紙를 찾더니 펜을 들고 兩쪽에 동그라미를 各各 그렸다. 

    “이쪽에는 文在寅 大統領, 또 다른 한쪽에는 아베 總理가 있단 말이야. 文 大統領은 反日派가 아니다.” 

    - 文 大統領을 두고 半一派(反日派)라는 攻擊이 많았는데. 

    “反日派가 아니라 原則主義者다. 法을 工夫해서 그런지 被害者 人權 中心의 思考를 갖고 있다. 文 大統領은 韓日關係를 좋게 만들고 싶어 하는 意志가 아주 剛하다. 아베는 거꾸로다. 反韓(反韓) 雰圍氣를 타서 權力을 强化했다. 日本은 韓國 大法院의 强制動員 賠償 判決이 文 大統領이 시켜서 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3卷 分立이 돼 있는 韓國과 달리 日本의 法體系는 다르다. 外國과의 條約은 政府 意見을 듣게끔 돼 있다.” 

    姜 前 議員은 “獨島 갖고 시끄럽게 싸우다가도 불똥이 經濟나 安保로 튀지는 않았다. 이番에는 歷史 問題가 經濟報復과 安保 이슈로까지 擴大됐다. 最惡의 境遇”라고 했다. 

    - 一種의 惡循環이다. 

    “日本이 經濟報復을 1年 해보니 도리어 日本 企業이 더 損害를 봤다. 觀光客도 안 오고 地方 經濟가 沈滯해 實物經濟가 어려워졌다. 이런 狀況에서 强制動員 賠償 判決 問題를 法的으로 풀 수는 없으니 政治的으로 풀어야 한다. 韓國 政府가 그 役割을 하지 못했다.” 

    - 왜 그런가. 

    “그럴 餘裕가 없었다. 풀려고 하면 다른 國內外 이슈가 터져버리니. 運이 없다고 해야 할지…. 풀어보려고 할 때 靑瓦臺 市民社會首席室에서 (强制動員) 被害者들을 만나고 다니기도 했다. 내가 主張한 3가지 原則이 있다. 첫째, 經濟報復 풀라. 둘째, 지소미아(GSOMIA·軍事情報保護協定) 問題도 풀자. 셋째 根源的인 强制動員 賠償 判決 問題는 協商 테이블에 앉고 對話하자.” 

    - 文 大統領한테 直接 말했나. 

    “내가 여기저기 인터뷰에도 나가니까 (알았겠지). 靑瓦臺와 내가 (韓日關係를 풀기 위한 方法을) 準備했다. 只今도 有效하다. 國會議員 안 하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한番은 美國大使館에서 나를 찾아왔길래 ‘지소미아는 美國 때문에 締結했으니 當身들이 韓日關係를 仲裁下라’고 말하면서 3가지 原則을 傳해줬다.”
     
    - 美國에서는 뭐라던가. 

    “‘알았다’면서 報告하겠다고 하더라. 트럼프 大統領한테 꼭 얘기하라고 일렀지.” 

    - 트럼프 大統領은 韓日關係에 關心이 아예 없는 것 같던데. 

    “關心 없더라. 나중에 美國大使館에서 (韓日關係 仲裁를 위해) 行動하는 體는 했지.” 

    - 조 바이든이 새 大統領이 되면 美國은 韓美日 3角體制 復元에 나설 可能性이 있다. 

    “바이든은 韓日關係에서 조금 가운데 서겠지. 트럼프는 韓日關係에서 完全히 日本 便만 들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韓日關係 惡化가 美國의 東아시아 戰略에 決코 도움 되지 않는다.” 


    日서 2000名 오기로 했는데 코로나 터져

    日本 政界의 巨物들에게로 눈을 돌려볼 時點이다. 姜 前 議員은 “자민당에서는 니카이 도시히로(幹事長, 니카이派 領袖), 가와무라 다케오(前 官房長官, 한일의원연맹 日本 側 幹事長), 累카가 後쿠시로(한일의원연맹 日本 側 會長, 累카加派 領袖)가 親韓派”라면서 “韓日關係는 이들에 依해 決定돼야 하는데, 總理 官邸의 몇 사람이 마음대로 다뤘다”고 一喝했다. 

    이 대목에서 니카이라는 이름에 注目할 必要가 있다. 스가는 選擧戰에 登板하자마자 瞬息間에 大勢를 휘어잡았다. 그가 자민당 內 主要 派閥 어디에도 屬하지 않은 點을 考慮하면 누구도 豫想치 못한 일이다. 니카이는 ‘스가 大勢論’의 設計者로 꼽힌다. 그는 “政策을 連續性 있게 推進해 나갈 必要가 있다”는 論理를 앞세워 스가 支持를 主唱하며 主要 派閥을 糾合했다. 그는 2016年 8月 自民黨 幹事長 자리에 올라 여태 職을 지켰다. 歷代 最長壽 幹事長이다. 幹事長은 資金과 公薦權을 쥔 莫强한 자리다. 그런 그가 스가 政權 誕生에 持分을 確保하면서 職을 더 오래 쥐고 있을 展望이다. 

    - 니카이 幹事長과 가깝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주 親하다.” 

    그는 한일의원연맹 會長 身分으로 同僚 議員들과 올 初 도쿄에 다녀왔다. 1月 10日 열린 재일본대한민국민단(韓國民團) 新年賀禮會에 參席하기 위해서다. 

    “韓日關係를 풀어보려고 1月 5日에 미리 出國했다. 누카가를 만나 얼큰하게 술 한盞했다. 내가 ‘아베의 혼네(本音·속마음)가 뭐냐. 韓日關係 풀고 싶은 거냐. 나는 못 믿겠다’라고 말했더니 누카가가 ‘黨에서 輸出規制 措置에 利益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答했다. 黨은 풀려고 한다는 거지. ‘眞짜냐’ 되물었더니 아베도 만났다는 거야. 뒷날에는 호텔에서 가와무라를 7時에 만나기로 했다. 6時頃 가와무라가 電話해서 호텔 밑으로 내려오래. 니카이가 날 보고 싶어 한다는 거야. 니카이가 最近 2年 동안 한 番도 韓國 사람 안 만났다.” 

    時計바늘을 지난해 8月 1日로 돌려보자. 이날 午前 11時 姜 前 議員이 이끈 國會 訪日 議員團과 니카이 側이 도쿄 自民黨 黨舍에서 만나기로 했다. 日本 側은 前날 밤 訪日團에 “急한 會議가 잡혔다”는 理由로 面談 取消를 通報했다. 애初 訪日段과 니카이 側은 前날 午後에 만나기로 했었다. 그때도 日本 側이 會議를 理由로 面談을 하루 延期하자고 要請한 바 있다. 當時 姜 前 議員은 “우리가 거지냐. 求乞外交 하러 온 것이 아니다”라면서 激昂된 反應을 보였다. 現在 時點으로 돌아와 姜 前 議員의 말을 들어볼 때다. 

    “이番엔 니카이를 만났더니 올해 5月이나 8月 五峯(日本의 傳統 名節) 때 2000名쯤 데리고 韓國에 오겠다고 하더라. 니카이가 全國觀光協會 會長이기도 하거든. 잘됐다 싶어 歸國 後 要路(要路)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했지. 梗塞 局面이 풀리나 싶어 日本 가려 準備하고 있었는데 한 달 後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그 뒤 다 손 놔버렸다. 서로 神經 쓸 餘裕가 없어져버린 거지.”

    日 言論, 李洛淵에 매우 友好的

    - 니카이가 스가를 總理로 만드는 데 役割을 했으니, 韓日關係에는 肯定的 要素 아닌가. 

    “本質은 變하지 않겠지만, 바뀌는 모습도 있을 것이다. 累카가나 니카이가 아베에게는 함부로 말을 못 했다. 스가에게는 그래도 마음 便히 얘기할 수 있다. 11月 韓中日 頂上會談 때 多少 宥和的인 모습을 演出할 수 있다. 文 大統領과 日本의 새 總理가 웃으며 握手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고. 스가는 相對的으로 性格이 柔軟하고 實用的이다.” 

    - 知日派(知日派)인 이낙연 議員이 與黨 代表가 됐다. 韓日關係에 肯定的 要素일까. 

    “며칠 前 누카가에게서 電話가 왔다. ‘스가 大勢論’이 形成된 後다. 내가 ‘풀어보자’ 하니 本人도 같은 생각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이낙연 議員이 黨 代表가 돼 雰圍氣는 좋아진 것 같으니 풀어보자’고 말했다. 李 代表는 日本을 샅샅이 알고 人脈도 많다. 韓日關係를 풀어야 한다는 問題意識을 갖고 있다. 韓日關係가 只今보다 많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다. 李 代表가 靑瓦臺에 强力하게 (韓日關係 改善을) 要求했으면 좋겠다.” 

    - 日本 政治權에서는 이낙연 議員의 黨 代表 選出을 어떻게 보나. 

    “宏壯히 좋아한다. 總理 때도 日本 言論이 이 代表에게 매우 友好的이었다.” 

    農林畜産食品部 長官을 지낸 3選의 李介昊 民主黨 議員은 8月 28日 페이스북에 “親日派와 土着倭寇들은 아베 總理가 물러나면 그 喪失感을 어떻게 回復해야 할까. 아베 總理의 健康이 많이 나쁘다고 한다. (中略) 그동안 어지간하게 大韓民國 國民들과 政府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快差하기를 眞心으로 바란다”라고 적었다. 

    - 日本은 8年여 만의 權力交替人 만큼 敏感한 時期다. 與圈 人士들도 發言을 操心해야 할 때다. 李介昊 議員의 發言은 論難이 될 법한데. 

    “나는 ‘土着倭寇’다 뭐다 그런 얘기 안 한다. 李 議員이 韓日關係 正常化를 바라는 責任 있는 與黨 政治人이라면 言行을 操心해야 한다. 韓日關係에서 큰 役割을 하는 사람도 아니니 그의 發言이 韓日關係에 影響 미칠 일은 없다.” 


    反韓과 反日 모두 下策

    盲目(盲目)과 便가르기가 毒버섯처럼 社會에 闖入했다. 無禮와 악다구니가 所信과 改革으로 遁甲한 채 바이러스처럼 擴散했다. 相對便을 敵으로 規定한 채 利得을 取하려는 謀利輩가 幾何級數的으로 늘고 있다. 

    姜 前 議員은 “日本 內에서 反韓 雰圍氣를 타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水準 낮은 짓이다. 韓國에도 反日 雰圍氣를 利用해 政治하려는 사람이 많다. 亦是 下策”이라고 했다. 特定 系派에 屬한 적 없는 與圈 重鎭의 苦言이 玄海灘에서 메아리처럼 퍼져가야 할 때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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