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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作의 祕密?] 奧妙한 官能美 뽐내는 新羅의 微笑 ‘수막새’|新東亞

[名作의 祕密?] 奧妙한 官能美 뽐내는 新羅의 微笑 ‘수막새’

  • 이광표 西原大 敎養大學 敎授

    kpleedonga@hanmail.net

    入力 2020-09-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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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世界人이 사랑하는 ‘얼굴무늬 수막새’

    • 作家도 모델도 알려지지 않아

    • 日本 蒐集家 손에 들어간 뒤 32年 만에 歸鄕

    • 1300年 前 만든 수막새 LG 로고로 거듭나

    신라의 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인 얼굴무늬 수막새. [문화재청 제공]

    新羅의 古都 慶州를 代表하는 遺物 中 하나인 얼굴무늬 수막새. [文化財廳 提供]

    千年古都 慶州에 가면 ‘얼굴무늬 수막새’(寶物 1973號·7世紀)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便安한 아름다움의 ‘新羅의 微笑’. 그런데 그 微笑는 한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慶州의 到處에 있다. 民家의 담牆에도 있고 食堂 看板에도 있다. 自轉車舖에도 있고 生活體育野球場 選手待機席(덕아웃)에도 있다. 빵집 로고로도 使用되다 보니 觀光客들이 들고 다니는 빵 封套에는 온통 얼굴무늬 수막새 이미지다. 慶州에는 金冠도 있고 佛國寺와 石窟庵도 있고 瞻星臺도 있는데, 왜 何必 얼굴무늬 수막새일까. 그뿐이 아니다. 얼굴무늬 수막새는 LG그룹의 로고(심벌마크)가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文化財 가운데 글로벌 企業의 로고 모티프가 된 境遇가 또 어디 있을까. 素朴한 얼굴 모습의 작은 수막새 하나. 이 기와는 大體 어떤 緣由로 慶州와 新羅의 象徵이 됐을까. 

    얼굴무늬 수막새는 1930年代 初 慶州에서 發見됐고 新羅 7世紀 때 만든 것으로 推定된다. 一部가 깨져 現在의 지름은 11.5cm. 穩全한 形態였을 때의 지름은 14cm이다. 두께는 2cm. 둥근 空間에 눈, 코, 입만으로 女性의 얼굴을 絶妙하게 表現했다. 살구씨처럼 생긴 시원한 눈매, 若干 큼지막한 콧대, 수줍은 듯 해맑게 微笑 짓는 입…. 얼굴을 表現한 全體的인 構圖도 빼어난 데다 틀로 찍어 만든 것이 아니라 直接 손으로 빚은 것이라서 情感이 간다. 더 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生命力 넘친다. 當時의 기와에 比해 진흙의 含有量이 많고 단단하다고 한다.

    純粹와 素朴 사이로 느껴지는 官能美

    얼굴은 全體的으로 쑥스러워하는 듯한 雰圍氣지만 微笑를 잘 들여다보면 살짝 官能的이기도 하다. 코와 입 사이의 間隔이 좁은데 보면 볼수록 이 대목 또한 官能美를 刺戟하는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한 想像을 可能하게 하니 結果的으로 絶妙한 表現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백제의 微笑가 떠오른다. 忠南 서산시에 있는 國寶 84號 용현리 磨崖如來三尊像(6世紀末~7世紀 初). 흔히 瑞山 磨崖三尊佛이라고 하는 佛像이다. 이 삼존불의 微笑, 特히 本尊佛의 微笑가 壓卷이다.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눈, 살짝 벌린 입에서 번지는 微笑. 그저 해맑고 복스럽다. 純粹함과 素朴함 그 自體다. 

    얼굴무늬 수막새에 담긴 新羅의 微笑도 純粹하고 人間的이다. 그러나 瑞山 磨崖三尊佛과 比較해 보면 差異가 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新羅의 微笑가 百濟의 微笑에 비해 어딘지 모르게 더 官能的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同時 ‘웃는 기와’엔 이런 詩句가 나온다. ‘기와 하나가 / 처마 밑으로 떨어져/ 얼굴 한 쪽이/ 금 가고 깨졌지만/ 웃음은 깨지지 않고/ 나뭇잎 뒤에 숨은/ 初生달처럼 웃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表現이다. 이 詩에 나오는 것처럼, 얼굴무늬 수막새는 一部가 깨진 狀態다. 그런데 참으로 絶妙하게 부서졌다. 오른쪽 위와 아래가 若干 부서졌는데 그 德分에 더욱 고풍스럽다. 조금 더 깨졌더라면 수막새의 全貌를 알기 어려웠을 것이고 조금 덜 깨졌더라면 고풍스러움이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는 “穩全할 때가 最高이며 더 價値가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 기와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絶妙하게 一部만 부서져, 穩全했을 때의 모습보다 더한 魅力을 뽐낸다.

    日本으로 願치 않은 移民 떠난 수막새

    日帝强占期이던 1930年代 初, 慶州市 사정동 靈廟寺(靈妙寺) 터에서 獨特한 瓦當(瓦當) 한 點이 發見됐다. 바로 얼굴무늬 수막새였다. 이것은 慶州警察署 近處에 있는 구리하라(栗原) 骨董商으로 넘어갔다. 그때 骨董가게 近處에 야마구치(山口) 議員이 있었다. 1934年 봄, 이 病院의 日本人 醫師 다나카 度시노부(田中敏信·1905~1993)의 귀에 수막새 消息이 들어갔다. 그는 1933年 韓國에 건너와 慶州의 야마구치 醫院에서 共의(公醫)로 일하며, 慶州 一帶에서 出土되는 新羅 기와를 熱心히 蒐集하고 있었다. 젊은 기와 蒐集家는 이 消息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고, 骨董가게를 찾아 100원을 주고 그 기와를 購入했다. 

    그해 6月 朝鮮總督府 機關紙 ‘朝鮮(朝鮮)’ 229號에는 ‘新羅의 假面와(新羅の假面瓦)’라는 題目으로 수막새를 紹介하는 짧은 글이 실렸다. 3個月 뒤인 1934年 9月엔 교토帝國大學 文學部 考古學敎室이 編纂한 硏究報告書 ‘新羅 高와의 硏究(新羅古瓦の硏究)’에도 이 수막새가 紹介되었다. 

    朝鮮總督府 機關紙 ‘朝鮮’에 ‘新羅의 假面와’라는 글을 쓴 사람은 當時 慶州古跡保存會에서 活動하던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郞)였다. 日本 홋카이도(北海道) 出身인 오사카 긴타로는 日帝强占期 慶州를 中心으로 活動한 考古學者다. 아오야마(靑山)師範學校를 卒業하고 韓國에 건너와 1907年 咸鏡北道 會寧普通學校에서 敎鞭을 잡은 뒤 1915年부터 競走公立普通學校 校長을 지냈다. 1930年 停年 退職 後 백제棺(國立扶餘博物館의 前身) 館長과 朝鮮總督府博物館 競走分館(國立慶州博物館 前身) 館長으로 일했고, 慶州 古跡 調査에 나서 慶州 金冠塚, 부부총의 發掘 作業에 參與하기도 했다. 

    그가 쓴 ‘新羅의 假面와’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鬼面(鬼面)을 나타낸 것을 鬼面瓦(鬼面瓦)라고 부른다면 이것은 全的으로 假面와(假面瓦)가 된다. 實物은 寫眞보다도 훨씬 좋은 表情이며, 그뿐만 아니라 그 얼굴이 딱 正面이 아니라 若干 기울어져 있다는 點에서 巧妙(巧妙)함을 보이고 있다. 元來 慶州 出土의 新羅와(新羅瓦)는 그 무늬가 多種多樣하고 水準級으로 빼어나 자랑할 만하지만, 아울러 이 假面와와 같은 것은 從來에 單 하나도 出土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러한 種類의 것이 있으리라고는 推定하지도 않았다.” 오사카는 얼굴무늬 수막새의 特異成果 아름다움을 明快하게 짚었다. 

    그 後 1940年, 所藏者인 다나카 度시노부는 공의 勤務를 마치고 日本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얼굴무늬 수막새度 함께 가져갔다. 勿論 다나카가 1940年 以前에 日本으로 옮겨놓았을 可能性도 있다. 어쨌든 하나밖에 없는 이 獨特한 수막새는 慶州 故鄕땅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그러곤 사람들의 記憶 속에서 잊혔다.

    9年 說得 德 32年 만에 歸鄕

    다나카 도시노부(田中敏信·1905~1993)가 경주박물관에 얼굴무늬 수막새를 기증하고 있다(위). 기증 당시 다나카가 경주박물관에 전달한 기증서. [경주박물관 제공]

    다나카 度시노부(田中敏信·1905~1993)가 慶州博物館에 얼굴무늬 수막새를 寄贈하고 있다(위). 寄贈 當時 다나카가 慶州博物館에 傳達한 寄贈書. [慶州博物館 提供]

    24年이 흐른 1964年, 이 瓦當을 記憶해 낸 사람들이 있었다. 朝鮮總督府 氣管支에 이 瓦當을 紹介한 오사카 긴타로와 當時 國立博物館 競走分館(現在 國立慶州博物館)의 박일훈(朴日薰·1913~1975) 館長이었다. 1964年 박일훈은 日本에 있는 오사카로부터 한 通의 便紙를 받았다. 新羅史 硏究 協助에 關한 便紙였는데 以後 그와 便紙를 주고받게 됐다. 그 過程에서 수막새의 存在를 記憶해 냈고 그 수막새의 存在를 確認하고 싶어졌다. 

    두 사람의 意氣投合은 박일훈과 오사카 긴타로의 각별한 因緣이 있었기에 可能했다. 오사카 긴타로가 慶州公立普通學校 校長일 때 박일훈은 그 學校의 學生이었으며, 오사카 긴타로가 朝鮮總督府博物館 競走分館長일 때인 1937年 慶州分管에 就職했다. 오사카와 박일훈은 師弟之間이었던 셈이다. 

    1964年부터 박일훈은 오사카와 便紙를 주고받으며 수막새의 存在를 찾기 始作했고, 1967年 日本을 訪問했을 때엔 오사카에게 수막새의 素材를 確認해달라고 付託했다. 以後 오사카는 搜所聞 끝에 다나카 都市老父의 素材를 찾는 데 成功했다. 다나카가 후쿠오카(福岡)의 기타큐슈(北九州)에서 病院을 運營하고 있다는 事實을 確認한 것이다. 다나카가 얼굴무늬 수막새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事實도 알아냈다. 

    消息을 傳해 들은 박일훈은 다나카에게 “韓國에 하나뿐인 얼굴무늬 수막새라는 點을 勘案해 慶州博物館에 寄贈해 달라”는 뜻을 傳했다. 오사카 긴타로度 積極 協助하기로 約束했다. 오사카는 기타큐슈를 두 次例나 찾아가 直接 다나카를 만나 眞摯하게 說得하기도 했다. 

    박일훈은 1972年 2月 오사카의 招請으로 日本을 訪問한 자리에서도 이 수막새를 話題로 올리곤 “寄贈이 잘 成事될 수 있게 해달라”고 오사카에게 거듭 付託했다. 오사카 또한 끝까지 努力하기로 約束했다. 

    9年에 걸친 이들의 懇曲함과 切實함은 드디어 다나카의 마음을 움직였다. 寄贈을 위한 具體的인 書信이 오갔고, 1972年 10月 14日 다나카 度시노부는 直接 國立慶州博物館을 찾아와 얼굴무늬 수막새를 寄贈했다. 當時 다나카는 寄贈서도 함께 傳達했다. 그 內容은 이렇다. “오사카 긴타로 前 慶州博物館長님과 박일훈 現 慶州博物館長님의 溫情 가득한 懇請에 따라, 마음속에 感銘을 주는 人面와(人面瓦)를 製作한 瓦工을 생각하면 느끼는 바가 있어, 新羅 땅에 安息處를 提供하고자 慶州博物館長에게 贈呈합니다.”

    1300年 前 수막새, 글로벌 디자이너 사로잡다

    얼굴무늬 수막새 모습을 본떠 만든 LG 로고.

    얼굴무늬 수막새 모습을 본떠 만든 LG 로고.

    얼굴무늬 수막새는 기와다. 막새는 기와지붕의 처마를 마감하는 기와다. 암키와를 마감하는 것은 암막새, 수키와를 마감하는 것은 수막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얼굴무늬 수막새 또한 7世紀에 慶州의 어느 기와지붕에 設置했던 것이리라. 얼굴무늬 수막새의 뒷面엔 半圓筒形의 수키와를 붙였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實際로 지붕에 쓰였음을 알 수 있다. 

    古代 世界에서 사람의 얼굴을 表現하는 것을 두고, 무언가를 祈願하는 呪術的(呪術的)인 目的이나 나쁜 것을 물리쳐달라는 辟邪的(?邪的) 行爲로 解釋한다. 그렇다면 얼굴무늬 수막새는 험상궂거나 무서운 表情 代身 女性의 웃음으로 나쁜 것을 달래서 돌려보낸다는 意味를 지닌다. 무서운 도깨비나 鬼神의 얼굴이 아니라, 佛敎的인 意味의 蓮꽃이 아니라, 便安한 女性의 微笑로 邪惡한 기운을 물리치려 했다는 말이다. 흥미로운 發想이다. 그렇지만 궁금症이 남는다. 女性의 微笑로 邪惡함을 물리치려 했다고 해도, 기와에 登場하는 女性 얼굴의 慇懃한 官能美는 어떻게 解釋해야 할까. 궁금하고 또 奧妙한 일이다. 

    이런 想像을 해본다. 이 얼굴무늬 수막새로 지붕 처마를 돌아가면서 수키와를 모조리 마감했을까. 아니면 지붕 처마의 一部만 마감했을까. 모를 일이지만, 지붕 처마를 쭉 돌아가면서 女人의 微笑로 마감 裝飾을 했다고 想像해 본다. 그것이 辟邪의 意味라고 해도, 浪漫的이면서도 大膽한 破格이 아닐 수 없다. 

    想像力을 좀 더 發揮해 보자. 1300餘 年 前 新羅 사람들이 그 처마 밑을 걸어간다. 그가 눈을 들어 처마를 바라보면 온통 女人의 얼굴이다. 便安한 얼굴이지만 그래도 거기 살짝 官能이 담겨 있다. 그 처마 아래를 걷는 이가 男丁네였다면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얼굴무늬 수막새 이미지는 慶州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競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每日每日 이 이미지를 만난다. 럭키와 金星이 만나 1995年 LG그룹으로 다시 태어날 때의 일이다. 한 해 前부터 LG 그룹은 美國의 有名 CI專門業體인 랜도社에 依賴해 새로운 로고를 製作했다. 해가 바뀌고 1995年 1月 1日 綜合日刊紙 1面 廣告를 통해 로고 디자인을 公開했다. 로고 디자인은 낯설기도 했고 新鮮하기도 했다. 圓形 안에 알파벳 L과 G를 配置하고 點을 하나 찍어 사람의 눈을 表現했다. 이를 두고 一部에서는 “사람 얼굴에 L과 G를 억지로 끼워 넣었다” “何必 왜 애꾸를 만든 것인가”라는 反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LG그룹은 “그건 애꾸가 아니라 윙크하는 것”이라고 說明했다. 卽 웃는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얼마 後 그 디자인은 얼굴무늬 수막새를 모티프로 삼았다는 事實이 公開됐다. 

    美國 랜도社의 一流 디자이너들을 사로잡은 얼굴무늬 수막새. 처음엔 낯설었던 LG의 심벌마크는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보고 있노라면 나도 씩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는 TV나 김치冷藏庫와 함께, 누군가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과 함께 거의 每日 얼굴무늬 수막새 이미지를 만난다. 韓國뿐만 아니라 外國에서도 마찬가지다.

    11㎝ 기와, 新羅 文明 象徵되다

    사람들은 얼굴에 魅力을 느낀다. 잘생겼는지 그렇지 않은지가 아니라, 얼굴 속에서 한 사람의 生을 읽고 싶기 때문이다. 얼굴무늬 수막새 또한 例外일 수 없다. 이 수막새를 보고 있노라면 種種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얼굴은 누구의 얼굴일까. 實際 모델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勿論 알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는 善德女王 때 活動했던 新羅 最高의 小組(塑造) 丈人인 陽地의 作品일 可能性도 擧論한다. 하지만 關聯 資料가 남아 있지 않은 狀況에서 斷定 지을 수는 없다. 實際 모델이 있든 없든, 누가 만들었든 저 얼굴은 이제 하나밖에 없다. 지름 11cm. 자그마한 저 얼굴이 우리에게 큰 感動과 想像力을 提供한다. 

    이 기와를 우리가 만나게 된 지 50年도 되지 않았다. 다나카 都市老父가 우리에게 寄贈한 1972年 10月부터이니 이제 48年째에 不過하다. 文化財와의 만남에 있어 무척 짧은 時間이 아닐 수 없다. 그때까지 이 存在를 알고 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只今은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 文化財의 歷史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벼락 스타가 된 것이다. 

    박일훈과 오사카의 9年 執念이 所藏者 다나카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저 新羅 女性을 故鄕에 돌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所藏者로부터 寄贈의 마음을 이끌어내고 所藏者가 寄贈을 決心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나카는 自身이 韓國에서 蒐集한 기와와 拓本 等 160餘 點을 기타큐슈市立博物館에 이미 寄贈한 狀態였다. 그런데 寄贈하면서 이 얼굴무늬 수막새 한 點만 寄贈 目錄에서 除外했다고 한다. 다나카가 얼굴무늬 수막새를 얼마나 아꼈는지 말해 주는 대목이다. 그는 얼굴무늬 수막새를 自身의 집 居室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나카는 每日每日 이 新羅의 微笑와 눈을 마주쳤을 것이다. 그토록 아꼈던 新羅 기와 한 點. 너무 所重했기에 窮極的으로는 그 기와가 願하는 곳, 卽 新羅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興味로운 逆說(逆說)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좋아하는 新羅의 微笑. 日本人 醫師 다나카의 蒐集과 寄贈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魅力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나카 度시노부는 1993年 世上을 떠났다. 그가 1930年代 勤務했던 慶州의 야마구치 議員 建物은 只今도 그대로 남아 있다. 慶州警察署 맞은便 쪽에 位置한 花郞修鍊院이 그 建物이다. 그가 1934年 이 수막새를 蒐集했던 骨董가게度 바로 그 近處였다. 그런데 花郞硏修院 建物 周邊에서 얼굴무늬 수막새에 얽힌 스토리를 만날 수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얼굴무늬 수막새의 現場에 그 痕跡 하나 程度는 남겨 놓아야 하지 않을까.


    이광표
    ● 1965年 忠南 豫算 出生
    ● 서울대 考古美術史學科 卒業
    ● 高麗大 大學院 文化遺産學協同過程 卒業(博士)
    ● 前 동아일보 論說委員
    ● 著書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博物館’ ‘韓國의 國寶’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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