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가 내 마음에 들어와 여기서 뭉글뭉글할 때, 그 느낌이 참 좋아요.”
최규성(59) 韓國大衆歌謠硏究所 代表의 말이다.
그는 自己가 좋아하는 것들을 참 熱心히 사서 모았다.
‘키다리 미스터 金’을 부른 歌手 이금희의 舞臺衣裳, 1966年 나온 大衆歌謠雜誌 ‘歌謠生活’ 創刊號, 韓國 록의 代父 신중현이 만든 其他 樂譜集 같은 것들.
아직 누구도 大衆文化를 ‘記錄해야 할 價値’라고 여기지 않던 時節부터다.
그의 努力 德에 어쩌면 소리所聞 없이 사라져버렸을지 모를 韓國 歌謠界의 所重한 瞬間이 오늘까지 남았다.
“나는 그저 ‘雜놈’인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나를 ‘先生님’이라고 부른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崔 代表의 컬렉션을 公開한다.
歌手 김목경 1輯 LP를 찍어낸 金屬 圓板(stamper). 이 原版을 高熱로 LP에 찍으면 音盤이 만들어진다. 普通 金屬 圓板(stamper)은 쉽게 磨耗되어 한 張當 750張 程度를 LP를 프레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蒐集家들은 처음 製作해 골이 깊어 音質이 좋은 初盤 LP를 選好한다.
歌手 남진이 高等學校 卒業을 앞두고 서울에 와 만든 데뷔 앨범.
하춘화의 어린 時節 모습이 재킷을 裝飾한 우리나라 最初의 ‘어린이 歌手’ 獨집. 1962年에 1000張이 製作된 이 10인치 LP는 現在 高價의 稀貴 앨범이 되었다.
1975年 當時 人氣 歌手들이 全國의 아름다운 風景을 背景으로 撮影한 映畫 ‘歌謠大行進’ 포스터. 이같은 歌手關聯 映畫와 劇場쇼 포스터는 個體 數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最初로 製作한 英國밴드 비틀스의 不法 複製 앨범. 一名 ‘빽版’이라 불렸다.
냇 킹 콜의 生涯 마지막 公演 實況이 담긴 ‘빽版’. 콜은 韓國에서 열린 이 公演 直後 美國으로 돌아가 死亡했다.
追憶의 大衆歌謠 8트랙 오디오 테이프들. 一名 8트랙 카트리치 테이프로도 불렸다. 最初의 自動車用 音樂 포맷으로 人氣가 높아 1970年代 大部分의 앨범이 8트랙 카트리지 테이프로 出市되었다.
1980年 地球레코드에서 發賣한 조용필 1輯 音盤(오른쪽) 재킷에서 靈感을 받아 김동유 作家가 創作한 조용필 肖像畫. 픽셀 모자이크 話法을 使用했다.
조현수 作家가 歌手 유재하 獨집 재킷을 報告 創作한 美術作品. 題目은 ‘Long-playing Record’다.
현인이 부른 大衆歌謠 名曲 ‘비 내리는 고모령’의 背景인 大邱 고모령과 가까운 곳에 있던 簡易驛 ‘高謀逆’의 마지막 驛長이 着用했던 母子. 2006年 고某驛이 閉鎖되었을 때 崔 代表가 찾아가 救해 所藏하고 있다.
‘키다리 미스터 金’의 歌手 이금희가 公演 때 썼던 밍크 帽子와 케이스(왼쪽). 50-60年代 當時 南大門4街에 所在했던 國內 手製 帽子 製作社로 有名했던 ‘警模寫’ 이름을 確認할 수 있다. 오른쪽은 이금희가 1967年 받은 ‘MBC 10代 歌手賞’ 賞牌.
밴드 ‘白頭山’(左)과 ‘아시아나(郵)’의 멤버였던 김도균이 앨범 재킷 撮影 때 입었던 가죽 점퍼(아래)와 關聯 寫眞. 김도균은 우리나라 ‘3代 기타리스트’ 中 한 名으로 꼽힌다.
歌手 이금희가 입었던 舞臺 衣裳(왼쪽)과 直接 입고 公演했음을 보여주는 證據 寫眞.
포크팬 사이에서 傳說의 音盤으로 통하는 歌手 윤연선의 1972年 發賣한 첫 獨집 ‘平和의 날개’ 재킷(왼쪽). 윤연선은 ‘동그라미 그리려다 無心코 그린 얼굴’이라는 歌詞로 有名한 노래 ‘얼굴’을 부른 歌手다. 오른쪽은 그가 60年代 末에 아버지에게 膳物 받은 첫 기타로, 첫 獨집 재킷 寫眞에서 윤연선이 연주하는 바로 그 實物 기타이다.
1 1959年 洗鑛出版社에서 發行한 大衆歌謠 3輯 노래冊. 2 1966年 發行된 大衆歌謠 雜誌 ‘歌謠生活’ 創刊號. 3 60年代에 發刊된 韓國 록의 代父 신중현의 첫 기타 樂譜集.
大衆歌謠를 主題로 創作된 漫畫들. 허영만의 ‘孤獨한 其他맨’이 눈에 띈다.
신중현社團의 傳說的인 女歌手 김정미의 1973年 發賣 카세트테이프.
朴孝信 1輯 弘報用 初盤(왼쪽)과 재반. 재킷 寫眞이 서로 다르다. 팬들과 蒐集家 사이에서는 少量만 製作된 弘報用 初盤의 人氣가 높다.
그룹 국카스텐이 2009年 發賣한 1輯 앨범. 딱紙를 연상시키는 獨特한 재킷 디자인으로 有名하다.
歌手 인순이(왼쪽)와 이은하가 主演을 맡은 映畫 포스터.
半世紀 동안 大衆歌謠 關聯 資料를 蒐集해 온 최규성 韓國大衆歌謠硏究所 代表.
日帝强占期이던 1930年代 朝鮮總督府의 職印이 鮮明한 國內에서 生産된 眞空管 라디오(왼쪽). 1972年 열린 第5回 난영歌謠祭 트로피.
國內 걸그룹 最初로 1959年 美國에 進出한 金시스터즈의 未公開 데뷔 留聲機 音盤. 金시스터즈는 美國 現地에서 데뷔音盤을 發賣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동안 實體가 알려지지 않았던 이 珍貴한 音盤은 崔 代表가 最近 發見해 最初 公開를 했다. 國內에서 1955-56年(推定) 製作한 이 音盤은 팀 이름 없이 멤버 이름 礙子, 民資, 숙자로 表記했고 ‘블루 카나리아(Blue Canary)’ 等 外國曲을 飜案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