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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州를 품어야 世上을 얻는다” 김종인이 쏘아 올린 작은 공|新東亞

奉達號 便宜店 칼럼

“光州를 품어야 世上을 얻는다” 김종인이 쏘아 올린 작은 공

  • 奉達號 便宜店主

    runtokorea@gmail.com

    入力 2020-09-1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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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民의힘 湖南 껴안기②]

    • 弄談 같은 이야기에 죽자고 덤비는 사람들

    • 自由韓國黨의 寒心한 5·18 公聽會

    • 支持하지 않을 텐데 무슨 헛수고?

    • 바짝 엎드려 껴안고 토닥이는 게 政治

    • 두드리고 또 두드려라!

    *신동아는 9月 18日~21日 午前 10時 4回에 걸쳐 國民의힘 湖南 攻掠 關聯 記事를 揭載합니다.

    김종인 당시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 19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5월 영령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當時 未來統合黨 非常對策委員長이 8月 19日 午前 光州 北區 운정동 國立5·18民主墓地를 찾아 5月 英靈 앞에 무릎을 꿇고 參拜하고 있다. [뉴시스]

    北韓人權團體에서 일하던 時節 脫北者들에게서 “北韓에 있을 때는 光州蜂起를 우리(北韓)가 일으킨 줄 알았다”는 證言을 몇 番 들은 적 있다. 甚至於 “우리 洞네에 特殊部隊 出身 軍人이 있었는데 그가 1980年 光州에서 任務를 遂行하고 돌아왔다고 자랑하곤 했다”는 證言도 있었다. 그러려니 했다. 

    ‘光州蜂起’는 5·18光州民主化運動을 北韓이 일컫는 말이다. 北韓이 그것을 自身들이 主動했다거나 背後에서 操縱했다고 住民들에게 隱然中에 所聞을 퍼뜨리는 일은 어쩌면 當然한 일이다. 韓國에서 일어난 어떤 일이든 北韓에 유리해 보이는 事件에 對해 “英明하신 將軍님께서 直接 指導하셨다”고 內部 心理戰을 펼치지 않는다면 北韓 情報機關 立場에서는 業務 怠慢 아닐까? 特殊部隊 光州 暗約설 亦是 그렇다. “6·25 때 말야, 내가 中共軍 1個 師團을 몽둥이로 때려잡았어!”라고 술만 마시면 뻥을 치던 우리 洞네 洪氏 아저씨의 그것과 다를 게 무엇일까. 그냥 웃어넘기면 되는 일이다.

    弄談 같은 이야기에 죽자고 덤비는 사람들

    그런데 이런 弄談 같은 이야기에 죽자고 덤벼드는 사람이 있다. 1980~ 1990年代에 ‘말’이라는 月刊誌가 있었다. 民主言論運動協議會(現 民主言論市民聯合)에서 펴내던 雜誌인데 當時 運動圈, 特히 NL(民族解放)系列 運動圈에는 必讀書와도 같았다. 거기 실린 칼럼 하나가 唯獨 記憶에 남는다. 銀行에서 番號票 뽑아 順番 기다리는 시스템을 稱讚하는 內容이었는데 筆者 略歷이 좀 特異했다. 시스템工學 博士라나. 그런 學問 分野도 있는가 하고 神奇하게 여겼는데, 게다가 筆者가 軍人 出身이었다. 그것도 豫備役 大領. 그런 사람이 ‘말’에 寄稿하다니 勇敢하단 생각이 드는 한便 ‘말’李 底邊을 넓히려 不斷히 努力하고 있다는 별난 뿌듯함마저 느꼈다. 그래서 오래도록 그 이름을 잊지 못했나 보다. 그가 바로 5·18 北韓 介入說을 꾸준히 主張하는, 그 이름도 有名한 지만원 氏다. 

    5·18 北韓 介入說까지는 百番 讓步해 그렇다 치자. 지만원 氏가 이른바 ‘?番 광수’라는 人物을 指目하기 始作했을 때 筆者는 一種의 미러링 그런 건가 했었다. ‘광수’는 光州의 狂(光)과 特殊部隊의 數(殊)를 結合한 造語로, 池氏가 1980年 5月 光州에서 찍힌 寫眞을 인터넷 揭示板에 올리며 “이 寫眞에 稀微하게 얼굴이 나오는 사람은 北韓의 누구와 닮았다 (…) 그러니까 31番 광수”라는 式으로 番號를 매기는 놀이(?)를 始作하며 世上에 알려졌다. 그런 證據로 北韓이 光州의 背後라고 主張했다. 처음엔 正말 놀이인 줄 알았다. 놀아도 宏壯히 뜨악하고 誘致한 놀이. 勿論 本人조차 그것이 억지란 걸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北韓軍 光州介入說을 檢證하고픈 一種의 誤記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正말 眞摯하게 그렇게 믿고 行動하는 것이다! 



    그의 ‘광수’에는 限界가 없어, 韓國으로 亡命한 황장엽 前 朝鮮勞動黨 祕書까지 ‘71番 광수’로 指目하는 奇拔한 主張을 이어가고 있다. 1980年이면 황장엽이 예순에 가까운 나이인데, 그리고 勞動黨 總祕書長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拳銃 차고 潛水艦 타고 光州까지 내려와 活躍했다고? 아예 람보나 코만도, 슈퍼맨과 배트맨度 光州에 들렀다 하지 그런가? 結局 5·18을 우스꽝스럽게 만들려는 깊은(?) 意圖 아닐까 싶다. 그가 若干이라도 正常的 思考 能力을 갖춘 사람이라는 假定下에 不得不 推定하자면 말이다. 

    世上엔 稀罕한 사람이 많고도 많아, 이런 五萬가지 雜多한 이야기에 다 神經 쓰다 보면 疲困해 살 수가 없다. 反駁할 價値조차 없는 誘致한 놀이에 一一이 대꾸하면 自身마저 초라해질 수 있으니 그런 일엔 아예 視線조차 던지지 않는 便이 낫다. 뭐라 떠들든 말든 내버려두면 되는 일이다. 지만원 氏의 광수 놀음이 그렇다.

    自由韓國黨의 寒心한 5·18 公聽會

    그런데 公黨의 國會議員이라는 사람들이 이런 稀罕한 사람을 불러 ‘公聽會’라는 이름으로 講演會를 열었다. 2019年 2月에 벌어진 일이다. 귀를 씻고 싶은 말들이지만 當時 發言을 다시 꺼내보면 다음과 같다. 

    “5·18 問題에 있어서만큼은 右派가 물러서면 안 된다 (…) 제가 第一 尊敬하는 池萬元 博士 (…)”(金鎭台) “5·18 暴動이 20年 後 民主化運動으로 變質됐다. (…) 北韓軍이 介入한 暴動이라는 것을 밝혀내야 한다.”(이종명) “從北 左派들이 판을 치면서 5·18 有功者라는 怪物 集團을 만들어내 우리 稅金을 축내고 있다.”(김순례) 

    이런 말을 果然 ‘表現의 自由’라고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大抵 荒唐한 發言에 對해서는 “나는 當身과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當身이 그 생각을 말할 權利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우겠다”고 말하면 좀 槪念 있어 보인다. 그렇게 젠체하려고 金振泰 等의 發言을 ― 內容이 아니라 形式 側面에서 ― 斗頓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도 當事者들이 言行에 비해 지나치게 苛酷한 處罰을 받고 있다고 判斷될 때나 可能한 法이다. 이들의 妄言에 當時 自由韓國當 指導部는 어떤 措置를 取했던가. 

    國民의힘이 自由韓國黨 時節 벌인 일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寒心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中 가장 寒心한 일이 바로 이 5·18公聽會 아닐까 싶다. 羅卿瑗 當時 院內代表는 黨의 公式 立場이 아니라고 남 일처럼 말했고, 金秉準 當時 非常對策委員長은 그런 얘기에 同意하지 않는다고만 말하는 데 그쳤다. 當時 韓國當 指導部가 이 問題를 얼마나 미적지근 安易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如實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懲戒는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後에야 이루어졌다. 金振泰는 가장 낮은 水準 懲戒인 警告를 받았고, 金順禮는 3個月 黨員權 停止에 處해졌다. 李鍾明에 對해서는 除名 處分이 내려졌으나 이를 最終 決定할 議員總會를 此日彼日 미루다 結局 總選 直前에야 衛星政黨人 未來韓國黨으로 옮기는 方式으로 除名됐다. 이게 除名인가? 게다가 金順禮는 黨員權 停止가 끝나자마자 最高委員으로 復歸했고, 이듬해 總選에서 共同選對委員長까지 맡았다. 金鎭台度 堂堂히 公薦받았다. 그런 統合黨이 總選에서 100席이라도 건진 것은 오히려 奇跡 아닐까?

    支持하지 않을 텐데 무슨 헛수고?

    5·18민주화운동 [동아DB]

    5·18民主化運動 [東亞DB]

    2020年 8月 19日, 金鍾仁 未來統合黨 非常對策委員長이 國立 5·18民主墓地를 찾았다. 그는 “光州에서 일어난 悲劇的인 事件을 否定하고 5月 精神을 毁損하는 一部 사람들의 어긋난 發言과 行動에 저희 黨은 더욱 嚴重한 회초리를 들지 못했습니다”라고 謝過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고 했고 “罪悚하고 또 罪悚하다”고 했다. 光州를 訪問한 異常 謝過 메시지 程度는 있을 것이라고 豫想했지만, 金鍾仁은 그리 破格을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八旬 老人이, 追慕塔 앞에 무릎 꿇었다. 따지자면 自身의 過誤가 아닌 일까지 모두 거두어 謝過해 버렸다. 謝過文을 읽으면서 울먹이기까지 했다. 豫想을 뛰어넘는 破格이었다. ‘무릎 謝罪’는 크게 話題가 됐다. 

    김종인의 謝罪가 있던 날,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을 보니 大體로 好評 一色인데, 間或 이런 意見이 눈에 띈다. “거기 가서 謝過한다고 湖南 사람들이 統合黨을 支持하지도 않을 텐데 무슨 헛수고냐.” 김종인이 湖南에 간 것이 果然 單純히 ‘湖南 票’를 얻으려는 意圖일까. 김종인이 光州에서 謝過한 것이 但只 ‘光州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려는 試圖일까. 잘라 말하면 김종인의 謝罪는 “統合黨이 漸次 正常的인 政黨이 돼가고 있습니다”라고 行動으로 보여주려는 메시지 아닐까 싶다. 굳이 計算的으로 思考하자면 “正常化의 痕跡을 보여주는 데 이만한 象徵職 이벤트도 없다”고 判斷했을 것이다. 

    只今 이 글을 쓰고 있는 筆者는 光州 사람이다. 光州에서 태어나 光州에서 자랐다. 大學을 나온 뒤로는 서울과 京畿에서 살고 있으나 언제 어디에 살든 내가 ‘光州 사람’이란 事實을 잊은 적 없다. 누구나 故鄕을 떠올리면 애틋한 마음을 갖게 마련이지만 湖南 사람이 故鄕에 갖는 感情은 唯獨 남다른 側面이 있다. 그건 亦是 ‘5月 光州’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마치 아픈 누이를 남겨두고 故鄕을 떠나온 그런 心情과 같다. 

    누구는 짐승처럼 말한다. 이미 40年이나 지난 일을 갖고 “징하게 해 처먹는다”고(한국당 時節 車明進이 세월호 事件에 對해 한 表現이다). 또 누군가는 짐짓 冷靜하게 말한다. 다른 民主化運動이나 悲劇的인 事件들과 衡平에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왜 光州만 唯獨 優待해 줘야 하는지 理由를 모르겠다고. 勿論 그런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5·18이 품고 있는 歷史的 意味, 社會的 感情 等을 正確히 알지 못한 側面이 있다. 

    이番 김종인의 謝過文에서 唯獨 눈에 띄는 單語가 있다. 바로 ‘孤立’이란 表現이다. 金鍾仁은 6·25 때 自身과 家族들이 北韓軍에 쫓기던 記憶을 이야기하며 “쫓기는 者의 恐怖와 孤立된 者의 挫折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5·18로 因해) 湖南 住民들이 겪었을 孤立과 슬픔의 感情 또한 그에 못지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대목이었다. 光州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이런 孤立感의 意味를 쉽게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짝 엎드려 껴안고 토닥이는 게 政治

    光州 사람들이 5·18에 對해 갖는 感情은 單純히 數百 名이 죽거나 다쳤다는 그런 犧牲의 意味가 아니다. 가장 쓰라린 記憶은 ‘孤立됐다’는 事實이다. 그것은 一種의 集團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展示도 아닌데 民間人이 軍人에게 ― 그것도 ‘우리’ 軍人에게 ― 숱하게 銃을 맞아 죽었다 (勿論 戰爭 中에도 그것은 許容되지 않는 虐殺이다). 그것도 一切 뉴스와 情報가 遮斷된 狀態에서 남모르게 외로이 悲鳴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었다. 그런 일이 벌어진 뒤에도 光州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숨죽이며 살아야 했고, 그 事實을 알리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고, 워낙 기막힌 일이라 外地 사람들은 듣고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만 외로이 바다에 남아 거센 波濤를 맞는 ‘바위섬’李 된 氣分이었다. 그것이 光州가 지닌 오랜 孤立感이다. 애初에 湖南이 産業化 過程에서 疏外됐다는 多少 섭섭한 感情이 있던 次에 孤立感은 憤怒로 바뀌었고, 表出할 수 없는 憤怒는 오래도록 설움이 돼 쌓였다. 그것이 湖南이 지닌 歷史의 한(恨)이다. 

    或者는 光州의 集團 投票 性向을 나무라듯 이야기한다. 어떻게 그렇게 特定 政黨에 몰票를 던질 수 있는 거냐며 嘲弄하는 意味로 말하기도 한다. 光州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이렇게 對答할 것이다. “아직 멀었다”고. 恨을 풀려면 아직 멀었다고. 光州의 몰票는 ‘우리끼리라도 똘똘 뭉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깊은 孤立感에서 나왔다. ‘이것만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最小限의 合法的 힘’이라는 懇切함과 切迫함에서 나왔다. 戰略的 投票 性向이 없다느니, 그런 몰票가 오히려 다른 地域에 逆效果만 낳는다느니, 그런 말은 다 소용없을 것이다. 光州는 光州의 길을 가는 거니까. 살고자 하는 團結 앞에 무슨 말이 必要하겠나. 光州와 湖南의 오랜 政治的 孤立感을 풀어주지 않고서는 決코 解決할 수 없는 일이다. 

    平凡한 市民으로 政治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깨달은 敎訓이 하나 있다면 ‘國民을 가르치려는 態度로 政治를 해서는 안 된다’는 事實이다. 바짝 엎드려 껴안고 토닥이면서 나아가도 될 듯 말 듯한 領域이 바로 政治라는 비즈니스다. 光州에 對해서도 그렇다. 껴안는 것 말고 大體 무슨 方法이 있겠나. 光州가 큰 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무슨 엄청난 待遇를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貶毁만 하지 말라는 것이다. 自由韓國黨의 이른바 5·18公聽會에 光州가 憤怒한 理由는 禮遇를 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嘲弄’ 當했기 때문이다. 只今도 인터넷에 떠도는 여러 侮辱의 文章 亦是 그렇다. 光州를 政治的으로 包圍하고 氣를 죽여 이기겠다고? 아서라.

    두드리고 또 두드려라!

    게다가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 있다. 光州는 그저 光州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事實이다. 1980~1990年代 大學을 다닌던 사람들에게, 學生運動의 洗禮를 받은 사람들에게,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未安한 마음으로 지켜본 사람들에게, 같이 孤立感을 느낀 사람들에게, 光州는 마음의 故鄕과도 같은 곳이다. 只今도 적잖이 그럴 것이다. 光州가 侮辱을 當하는 것은 내 靑春이 否定당하는 것이란 느낌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하니 光州와 싸우고 싶으면 싸우시라. 그것은 光州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世代와 싸우는 일이 될 터이고, 내내 歷史와 맞붙는 일이 될 것이다. 光州를 不可觸 聖域(聖域)으로 남겨두란 말이 아니다. 그런 方式으로는 決코 問題를 解決할 수 없으리란 말이다. 

    다시 ‘金鍾仁’으로 돌아와 보자. 그의 무릎 謝罪를 보면서 亦是 金鍾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쇼인지 眞心인지는 心臟을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지만, 어떻게 하면 中道를 끌어올 수 있는지, 그는 그것을 分明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오랜 時間 韓國의 保守政黨은 湖南을 抛棄하다시피 했다. “거기 가봤자 票도 안 나올 텐데” “歡迎받지 못할 텐데” 하는 式으로 시큰둥하게 對했고, 於此彼 當選 可能性도 없을 테니 出馬하고픈 사람은 하라는 式으로 候補者 公薦마저 특별한 苦悶 없이 하는 듯했다. 그것은 單純히 湖南을 버린 것이 아니라 全國 有權者 20~30%假量을 아예 抛棄하고 始作한 셈이다. 金鍾仁은 그 마음을 돌리려 光州를 찾은 것이다. 保守政黨에 光州는 危機가 아니라 오히려 無限한 機會라는 事實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未來統合黨이 ‘國民의힘’으로 이름을 바꿨다. 全斗煥이 만든 原罪로 인해 過去 민정당의 命脈을 잇는 政黨의 候補가 光州에서 當選될 可能性은 遙遠한 일이고, “우리는 그때 그 政黨이 아닙니다”라고 百番 말해도 光州 市民들은 등을 돌리겠지만,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 보면 光州의 마음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光州에서 나고 자란 筆者는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쇼’라고 할지라도 가고 또 갔으면 좋겠다. 이番에는 코로나19 때문에 金鍾仁 홀로 갔다지만 事態가 鎭靜되면 國民의힘 所屬 議員 全體와 黨職者 모두 버스를 타고 갔으면 좋겠다. 굳이 무거운 마음 가질 必要 없이, 親舊 집에 가는 것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간다 해도 상관없으리라. ‘5·18 歪曲 處罰法’이 갖고 있는 憂慮와 問題點 같은 것도 그때에야 비로소 胸襟을 터놓고 討論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 光州가 暴動이 아니라는 當然한 事實은 光州의 眞實을 더욱 널리 알림으로써 사람들의 共感을 얻는 것이지 한 줌도 되지 않는 철없는 무리의 입을 期於이 틀어막음으로써 解決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을까. 죽음의 孤立 속에서도 自由와 民主를 외친 5月 英靈들도 그런 法案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김종인의 謝罪文에 이런 句節이 있다. “歷史의 和解는 加害者의 痛烈한 自己反省과 告白을 통해 가장 理想的으로 完成될 수 있습니다만, 權力者의 眞心 어린 省察을 마냥 期待할 수 없는 形便에서 그 時代를 代表하여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습니다. (…)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벌써 一百 番이라도 謝過하고 反省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우리 社會의 다양한 領域에서 이러한 告白과 反省, 그리고 和解를 向해 나아가는 薰薰한 모습을 더욱 많이 보고 싶다. 그때 우리는 容恕를 이야기할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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