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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師罷業은 夢想家 政權과 ‘能力主義’ 靑年醫師의 衝突|新東亞

醫師罷業은 夢想家 政權과 ‘能力主義’ 靑年醫師의 衝突

  • 閔境遇 閔境遇數學敎育硏究所 所長·前 범민련 事務處長

    mkw1972@hanmail.net

    入力 2020-09-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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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6 權力 엘리트와 靑年醫師 간 두 個의 世界

    • 農村의 感受性 vs 尖端技術 文明의 洗禮

    • 同志·友愛·獻身의 價値 vs 인센티브에 依한 補償

    • 쪽數·集團主義·文化 vs 實力·個人主義·專門知識

    • 의·과학 知識, 人文敎養보다 價値 없다 보는 386

    • 文政權 파워엘리트 114名 中 106名이 門과

    • 科學·데이터 아닌 誇張된 同志的 連帶로 얼룩

    • 産業 일군 企業인·전문가 代身 柳時敏·金於俊 主導權 잡아

    閔境遇(55) 閔境遇數學硏究所 所長은 1983年 서울대 醫豫科에 入學한 後 中退했다. 이듬해 같은 學校 國史學科에 再入學했다. 그는 1987年 서울대 人文大 學生會長을 지냈다. 그 뒤 祖國統一汎民族聯合(범민련) 事務處長으로 일했고, 민주노동당에서 活動했다. 그는 NL(民族解放 系列) 陣營의 核心 理論家로 꼽혀왔다. 閔 所長이 醫師 罷業을 새로운 視角에서 照明했다. <編輯者 週>


    9월 1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특별시의사회에서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식이 열렸다. [송은석 동아일보 기자]

    9月 1日 서울 永登浦區 서울特別市醫師會에서 젊은의사 非常對策委員會 出帆式이 열렸다. [송은석 동아일보 記者]

    醫師 罷業은 여러 갈래에서 論할 수 있는 이슈다. 먼저 政策의 脈絡에서 醫大 庭園이나 ‘醫療 酬價’의 問題로 다룰 수 있다. 또 다른 脈絡에는 思想이나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다. 文在寅 政權의 생각과 그에 抵抗하는 醫師들, 特히 靑年 醫師들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짚어야 한다. 

    나는 醫師 罷業을 서로 다른 世界觀의 大衝突로 본다. 이렇게 보는 까닭이 있다. 이番 事態는 내 지난 過去와도 密接한 聯關이 있다. 나는 運動圈의 世界에서 30年 以上의 時間을 보냈다. 文在寅 政權이 推進하는 各種 政策에는 共히 1980~90年代 運動圈의 情緖와 思想이 흐르고 있다. 政府·與黨이 내놓는 政策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時計바늘이 30年 前으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醫師 罷業을 둘러싼 各種 論難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醫師 罷業에 담긴 含意를 理解하기 위해 數十 年 前의 過去를 돌아봐야 하는 理由다.

    긴 밤 지새우고, 거친 들판에 서서

    韓國의 民主化運動은 朴正熙 政權에 對한 抵抗을 통해 發展했다. 이 抵抗을 文化的으로 象徵하는 사람이 金敏基다. 김민기는 20代 靑年의 마음을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아침이슬에 比喩했다. 양희은이 부른 ‘상록수’에 이르면 맑고 純潔한 靑年 大學生들의 마음은 “거친 들판에 솔잎이 되리라”는 다짐으로 나아간다. 

    아침이슬처럼 맑게 살자던 靑年들은 時間이 지나면서 自身들만의 共同體館·社會觀을 形成하기 始作했다. 이를테면 조정래의 小說 ‘太白山脈’은 分斷과 戰爭의 歷史를 地主-小作 關係, 革命의 觀點에서 다룬다. ‘太白山脈’에 따르면 빨치산 運動의 歷史는 繼承해야 할 過去다. 



    卽 ‘太白山脈’은 文學 텍스트라기보다는 政治 텍스트에 가깝다. 休戰이 되고 智異山에 孤立된 빨치산들은 選擇의 岐路에 直面한다. 이때 그들은 現實鬪爭에서 歷史鬪爭으로 態勢를 轉換한다. 小說 속 作中人物 염상진은 歷史鬪爭에 對해 이렇게 말한다. 

    “現實鬪爭은 人民解放을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눈앞에서 成就시키는 것이며 歷史鬪爭은 人民解放을 우리가 목숨을 바쳐 뒷날 歷史 속에서 成就시키는 것입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1980年代 後半 運動圈의 事故가 實際로 그랬다. 學生들은 每年 初 智異山을 찾아 數十 年 前 빨치산 鬪爭을 記憶하며 새해를 맞곤 했다. 그들은 빨치산 鬪爭을 40年 前의 不幸했던 過去가 아니라 繼承해야 할 現在의 이야기로 봤다. 蘇聯과 東歐圈이 沒落하고 尖端 科學이 發展하는 時代에 그들은 그런 思考方式을 갖고 있었다. 當時 運動圈은 理論과 學習에 起草했다기보다는 文化나 人間的 義理에 기초한 情緖的 共同體였다. 이에 ‘太白山脈’에서 形成된 人間觀·社會觀은 그 小說이 標榜하는 現實의 옳고 그름과 無關하게 질기게 살아남았다.

    農村의 感受性과 尖端 技術文明의 洗禮

    대한의사협회 2차 총파업을 하루 앞둔 8월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복도에서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대자보를 붙이고 있다.[뉴스1]

    대한의사협회 2次 總罷業을 하루 앞둔 8月 25日 午後 서울 송파구 서울峨山病院 複道에서 醫科大學 定員 擴大 等 政府의 醫療政策에 反對하는 專攻醫들이 市民들의 支持를 呼訴하는 大字報를 붙이고 있다.[뉴스1]

    ‘太白山脈’에서 頂點에 이른 運動圈 靑年들의 人間觀·社會觀은 2020年 最高의 엘리트 集團인 靑年醫師들과 衝突한다. 

    첫째, 運動圈이 注目한 이들은 主로 勞動者와 農民 같은 傳統 集團이었다. 그들은 帝國主義와 旣得權 勢力에 依해 經濟 發展이 抑制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勞動者와 農民의 數字가 늘어야 하고, 또 이들이 遂行할 役割이 크다고 봤다. 

    文 大統領을 包含해 執權 勢力이 勞動者와 農民 等을 重視하는 理由가 여기에 있다. 文在寅 政府가 强調하는 ‘勞動 尊重’은 로봇이나 人工知能(AI) 時代의 勞動者가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가 勞動價値說을 통해 主張한 대로 ‘搾取받는 製造業 勞動者’를 뜻한다. 農村과 農民에 對한 愛情도 類似하다. 

    1990~2000年代 韓國은 世界 一流의 産業國家로 發展했다. 이 過程에서 知識勞動者, 엔지니어 等 專門 知識人層이 두텁게 形成됐다. 醫師는 그들 中 가장 重要한 集團이다. 

    事實 두 集團은 全혀 다른 世上에 對해 이야기하고 있다. 文 大統領과 386 權力 엘리트들은 農村에서 자랐고, 靑年 時節 農村을 背景으로 한 社會理論을 追求했다. 靑年醫師들은 돌이킬 수 없을 程度로 都市化된 社會에서 尖端 技術文明의 洗禮를 받은 사람들이다. 

    둘째, 386 權力 엘리트들은 社會 構成 原理로서의 인센티브를 否定한다. 農村 共同體나 同志的 關係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連結하는 機制는 主로 이웃에 對한 愛情과 友愛 또는 社會的 獻身 같은 價値다. 

    反面 인센티브는 사람 關係를 規律하는 作動 原理다. 敎育·保健·通信·電氣 等 尖端 技術文明은 엔지니어와 專門 知識人에 依해 支撐된다. 同時에 엔지니어와 專門 知識人은 體系的이고 合理的인 인센티브 制度의 依해 維持된다. 인센티브 制度가 없다면 尖端産業이 存在할 수 없다. 卽 인센티브 制度를 考慮하지 않는 諸般 政策과 言述은 헐거운 基盤 위에 위태로이 서 있을 수밖에 없다. 

    386 權力 엘리트가 社會 作動 原理로 論했던 友愛와 獻身은 現實에 存在하지 않았다. 蘇聯과 東歐圈이 崩壞한 터여서 더는 理論의 餘地가 없었다. 그들은 過去의 鄕愁 或은 文化的이고 情緖的인 바탕에서 友愛·獻身에 對해 思考했다. 386 世代 權力 엘리트는 權力에 近接했을 때 社會가 어떻게 構成되고 作動하는지에 對해 아무런 苦悶이 없었다. 이와 같은 狀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曺國 事態’나 ‘正義連 事態’ ‘朴元淳 事件’이 잘 보여줬다. 

    386 權力 엘리트에게는 牽制와 均衡의 原理라는 게 없었다. 自己批判 및 相互批判 等 抽象的인 同志的 關係가 이를 代身했다. 牽制·均衡과 같은 制度的 시스템이 없는 條件에서 그들은 손쉽게 非理와 犯罪의 誘惑에 시달렸다. 그렇게 386 權力 엘리트들은 ‘文書 僞造, 公金 橫領, 性醜行 疑惑’에 휩싸였다. 

    그들은 인센티브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社會的 責任 代身 모든 사람이 平等한 敎育을 받고 비슷한 住宅에 살자고 提案했다. 막상 그것이 自身의 問題로 轉移됐을 때 거의 大部分의 386 權力 엘리트들이 ‘내로남不’의 덫에 빠졌다. 그들은 美國을 非難하면서 子女를 美國에 留學 보냈고, 特權 敎育을 打破해야 한다고 主張하면서 특목高에 子女를 입학시켰다. 

    여기서도 再次 確認할 수 있다. 386 權力 엘리트의 主張 大部分은 現實에서 檢證된 政策 理論이 아니다. 靑年 時節 가졌던 판타지다. 

    第2次 世界大戰 以後 全 世界的으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났다. 當時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붐 世代라고 한다. 韓國에서는 1955~1963年生을 1次 베이비붐 世代, 1968~1974年生을 2次 베이비붐 世代라고 한다. 1975年 베이비붐 世代의 맏兄 格인 1955年生이 20歲가 됐다. 成人이 된 1次 베이비붐 世代는 巨大한 人口를 武器 삼아 以內 軍部를 退場시키고 民間 政治人들을 政治의 前面에 浮上시켰다.

    醫師 되는 데는 특별한 努力 必要 없다?

    現在 執權 勢力은 이 時期를 背景으로 成長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感受性과 心理 狀態를 基底에서 決定한 要素는 ‘쪽數’였다. 쪽數가 많았기 때문에 自身의 集團을 效果的으로 糾合할 수만 있다면 어지간한 目標는 이룩할 수 있었다. 集團的 一體感을 重視하고 理論보다는 文化와 情緖에 沒頭한 까닭도 그 때문이다. 

    1980~90年代 韓國은 急速히 産業化·現代化됐다. 專門家·엔지니어를 中心으로 中産層이 두텁게 形成됐다. 이들 中産層은 自身들도 工夫를 熱心히 해 富를 形成한 만큼 子女 敎育에 남다른 愛情과 關心을 갖고 있었다. 醫大 神話는 그렇게 始作됐다. 

    1970年代만 해도 서울對 工大의 入學 커트라인이 매우 높았다. 勿論 서울대 醫大의 入學 커트라인이 더 높았지만, 서울對 工大의 氣勢가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서울대의 거의 모든 理工系列 學科가 延世大 醫大보다 入學 커트라인이 높았다. 延世大 醫大가 그러하다면 다른 醫大는 말할 것도 없었다. 只今은 狀況이 다르다. 거의 모든 醫大가 서울對 工大보다 入學 커트라인이 높다. 

    醫師 罷業을 主導한 靑年醫師들은 最頂上級 學歷을 가진 사람들이다. 學窓 時節 남보다 努力해 自身의 目標를 爭取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努力으로 남보다 좋은 結果를 얻고, 이를 통해 社會的 部와 尊敬을 받는 것을 當然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執權層인 386 權力 엘리트 集團을 만들어낸 키워드가 쪽數, 集團主義, 文化와 感受性이라면 靑年醫師들의 思考를 支配하는 키워드는 實力, 個人主義, 專門知識이다. 特히 公共醫大 新入生 選拔을 둘러싼 論難에서 兩者 間 差異가 克明하게 드러났다. 保健福祉部 資料에 따르면 公共醫大 新入生을 市民團體가 推薦한다는 內容이 있었기 때문이다. 

    386 權力 엘리트들은 醫大 工夫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지 못한다. 그들 大部分은 제대로 된 專攻 工夫도 하지 않고 大學을 卒業했다. 베이비붐 世代가 나이를 먹고 勢力을 擴張함에 따라 큰 努力 없이 成功할 수 있던 사람들이다. 

    386 權力 엘리트가 보기에 醫大에 進學하고 醫師가 되는 것은 특별한 努力을 기울이지 않고서도 可能한 일이다. 그들은 醫師가 갖고 있는 尖端科學 知識에는 거의 門外漢이다. 정작 醫學·科學이 歷史와 哲學 等 그들이 한때 習得했던 人文敎養에 비해 한물 떨어지는 機能的 知識이고, 醫師들은 自身들이 民主化運動 하던 時節 工夫나 하던 덜떨어진 俗物이라고 본다. 

    따라서 386 權力 엘리트는 適當한 水準의 知識이 있으면 누구라도 醫師가 될 수 있고, 醫師가 되기 위해서는 專門 知識보다 人文的 素養 또는 品性이 더 重要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人文的 素養과 品性은 民主化運動 經歷을 가진 本人들이 判斷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조금 더 赤裸裸한 이야기

    정부의 공공의대 신설 정책 등에 반발해 전국의사 총파업이 진행된 가운데, 8월 28일 오후 대전에 위치한 의과대학 앞으로 의료진이 마스크를 쓰고 지나고 있다.  [뉴스1]

    政府의 公共醫大 新設 政策 等에 反撥해 全國醫師 總罷業이 進行된 가운데, 8月 28日 午後 大田에 位置한 醫科大學 앞으로 醫療陣이 마스크를 쓰고 지나고 있다. [뉴스1]

    조금 더 赤裸裸한 이야기가 있다. 386 權力 엘리트, 卽 ‘民主化 世代’ 大部分이 自身의 民主化運動 經歷을 誇張하곤 하지만 實狀은 그렇지 않다. 當時 大學生들은 解放區에 가까운 캠퍼스에서 相當한 自由를 누렸다. 가끔 있는 警察과의 衝突 以外에는 大部分의 運動 局面이 祝祭에 가까웠다. 

    學生 時節 運動을 했음에도 아무 支障 없이 職場에 進入할 수 있었다. 판·檢事나 敎師가 되는 데도 거의 아무런 障礙가 없었다. 運動圈 經歷은 漸次 訓長이 됐고, 不動産 價格 上昇과 高賃金 等 韓國 資本主義 發展 過程에서 특별한 惠澤까지 입었다. 

    反面 386 權力 엘리트가 쌓은 知識과 素養은 憂慮할 만한 水準이었다. 그들이 活動했던 空間의 大部分은 科學的 探究와 데이터가 支配하는 곳이 아니었다. 誇張된 同志的 連帶와 이를 確認하는 文化的 行事로 얼룩졌다. 그들이 갖고 있던 知識의 相當量은 이미 學問的으로 틀렸다고 判明이 난 主張이었다. 그들은 그런 主張을 檢證도 없이 反復해서 외쳤다. 

    市民團體 大部分이 그러하다. 斷言하자면 環境團體들의 境遇 原子力發展 問題에 介入할 專門性은 勿論 科學과 工學에 對한 基礎 知識조차 없다. 公共醫大 選拔 過程에 市民團體들이 關與할 수 있다고 構想했던 것은 逆說的으로 그들이 現代 科學의 水準에 對해 無知하다는 事實을 傍證한다. 

    2005年 베이비붐 世代의 맏兄 格인 1955年生이 50살이 됐다. 그즈음부터 韓國 社會는 베이비붐 世代의 입맛에 맞게 次例로 變貌할 運命이었다. 多少間의 例外는 있지만 民主化 勢力은 次例로 敎育監 選擧, 國會議員 選擧, 大統領選擧 等을 席卷하며 韓國 社會의 主流로 떠올랐다. 不幸한 것은 그 過程에서 民主化 勢力 中 가장 復古的이고 思辨的인 集團이 主導權을 잡았다는 點이다. 

    2017年 大選 直後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문재인 時代 파워 엘리트 114名을 紹介한 일이 있다. 筆者는 114名을 學部 時節 專攻 基準으로 文科와 理科로 區分한 바 있다. 分析 結果, 114名 中 文科 出身이 106名으로 約 93%에 達했다. 碑文과 出身은 姜琪正(전남대 工大), 金容益(서울대 醫大), 朴釘(서울대 弄生), 孫惠園(홍익대 應用美術), 염한웅(서울대 物理), 禹元植(연세대 土木), 全賢姬(서울대 齒大), 鄭淸來(建國大 産業工學)였다. 

    卽 文在寅 政府 파워 엘리트 集團의 大部分은 歷史나 勞動, 歲月號 慘事나 慰安婦 問題 等에 關心이 많고 談論과 論爭 그리고 便 가르기에 能한 사람들이다. 反面 韓國이 高度로 産業化되는 過程에서 成長한 企業인, 엔지니어, 專門家 集團은 排除됐다. 오랜 歲月 産業 現場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代身 柳時敏, 金於俊 같은 이른바 論客들이 主導權을 잡았다.

    巨大한 판타지의 終末

    歷史 바로세우기, 積弊淸算과 같은 巨大한 판타지가 幕을 내렸다. 代身 우리는 生活 現場에서 매우 낯선 두 個의 場面을 目擊하고 있다. 한便에서는 世界 一流의 原子力 代身 太陽光과 같은 親環境 에너지를 써야 한다고 主張한다. 自私高나 특목高는 特權敎育이며, 1家口 1住宅 基準을 넘어서는 住宅 保有는 投機에 該當한다고 소리 높여 말한다. 다른 한便의 사람들은 더 良質의 敎育을 願하고 首都圈의 번듯한 아파트에 살기를 希望한다. 

    이 衝突의 頂點에서 우리는 醫師들의 罷業을 지켜봤다. 한쪽은 平等主義로 武裝한 思辨的인 夢想家들이다. 다른 한쪽은 專門知識과 그에 따른 正當한 補償을 願하는 靑年醫師들이다. 兩者의 衝突은 醫療 問題를 넘어 大韓民國의 未來가 어떤 模樣새여야 하는지에 對해 根本的 質問을 提起했다. 이것이 醫師 罷業을 비전과 思想의 觀點에서 바라봐야 하는 理由다. 

    아마도 2020年 靑年醫師들 德에 睡眠으로 드러난 이 戰線은 順次的으로 政治의 前面에서 存在感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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