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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侮辱하는 건 누구인가, 紅衛兵 닮은 ‘대깨文’이 사는 法|新東亞

奉達號 便宜店 칼럼

노무현을 侮辱하는 건 누구인가, 紅衛兵 닮은 ‘대깨文’이 사는 法

  • 奉達號 便宜店主

    runtokorea@gmail.com

    入力 2020-02-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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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켜주지 못해 未安하다’는 心理

    • 테러리즘의 어원, 恐怖政治

    • 歷史는 舞臺와 服裝만 다른 役割劇

    • 曺國과 鄭慶心은 四人幇인가

    • 산 者들의 曲解와 아귀다툼

    [뉴시스, 동아DB]

    [뉴시스, 東亞DB]

    親舊 中에 ‘門派’(文派·文在寅 大統領 熱誠 支持 그룹)가 있다. 元來 親盧(親盧武鉉)였는데 自然스럽게 門派가 됐다. 이른바 ‘援助 노사모’는 아니다. 나는 親舊가 親盧가 되길 決心한 날을 記憶한다. 그날은 盧武鉉 前 大統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었다. 大韓民國 成人이라면 大體로 그랬겠지만, 悲報를 接한 그날 우리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心情으로 술자리에 마주 앉았다. 말없이 술盞을 몇 次例 주고받다 親舊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이 親舊가 元來 이렇게 政治에 關心이 많은 親舊였던가. 

    그날 以後 親舊는 熱誠 親盧가 됐다. 盧武鉉의 映像을 뒤늦게 찾아보고, 노무현에 對한 冊이나 資料라면 뭐든지 읽고, 韓國에 갈 때마다 烽下마을을 찾아 參拜하고, 이런저런 ‘굿즈’까지 챙긴다. 盧武鉉의 죽음은 그렇게, 中國에서 語學院을 運營하는 平凡한 40代 家長을 熱誠 親盧로 만들었다.

    ‘지켜주지 못해 未安하다’는 心理

    2009년 5월 29일 서울광장에서 노제를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 행렬이 남대문으로 향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2009年 5月 29日 서울廣場에서 路祭를 마친 盧武鉉 前 大統領의 葬禮 行列이 南大門으로 向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記者]

    盧武鉉 大統領 退任 時 國政 遂行 支持率은 27% 程度였다. 歷代 다른 大統領의 退任 時 支持率과 비슷한 水準이긴 하지만 노무현의 特徵이라면 就任 直後 잠깐 60%를 記錄하고는 20~30%臺 낮은 支持率에 줄곧 머물렀다는 事實이다. 한때 12% 支持率을 보인 적도 있다 (박근혜의 境遇 彈劾 1年 前만 해도 47% 支持率까지 나왔다). 그만큼 노무현은 任期 내내 人氣 없는 大統領이었고 쓸쓸히 退場했다. 

    그런데 只今 閭閻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12% 支持를 받았던 大統領 맞나?’ 하는 疑問이 들 程度다. 모두 노무현을 ‘좋은 大統領’이었다고 追憶하며 애잔하게 생각한다. 勿論 ‘좋은’ 大統領과 ‘잘한’ 大統領은 다르다지만, 노무현을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은 一種의 禁忌로 여겨질 程度다. 88%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어느 틈에 끼어 나지막이 ‘노무현이 그립다’ 말하고 있을 것이다. 리(理)보다 鄭(情)에 이끌리는 韓國人의 情緖, 어떤 理由가 됐든 故人이 된 사람을 侮辱하는 일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 여기는 탓도 있을 것이다. 

    盧武鉉의 죽음을 復棋해 보자. ‘家族과 側近에게 若干의 問題가 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게 그렇게 죽을 일이었을까?’ 大體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世上에 더 큰 罪를 짓고도 살아가는 者가 수두룩한데 그깟(?) 일로 스스로 죽음을 選擇하다니, 亦是 노무현은 淳朴한 사람…. 내 親舊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해’ 죽었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믿고 따르면서 熱誠的으로 支持해 주는 勢力이 없어서 노무현은 외롭고 안타까운 選擇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故人에게 未安하게 생각한다. 自身의 責任으로까지 느낀다. 그가 親盧가 된 理由다. 



    노무현에 對한 애틋한 心情은 엉뚱하게도(!) 文在寅에게 옮겨간다. ‘문재인은 노무현처럼 만들지 않겠다!’ 그래서 親舊는 오늘도 “대깨文(대가리가 깨져도 文在寅)”이라고 堂堂히 외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문재인을 支持하는 마음은 거두지 않겠다’ ‘노무현을 敬遠視했던 失手, 盧武鉉이 當했던 悲劇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覺悟한다. 

    盧武鉉이 果然 ‘臺깨노’가 없어 그런 選擇을 했던 것일까? 그에 對한 論證은 且置하고 ― 是非를 따지기 어려운 論證이니까 ―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데 그것을 期於이 말려야 할 理由는 없다. 筆者가 人生을 살아오며 攄得한 處世의 技術이 하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누군가 所重히 여기는 것을 함부로 貶毁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말해 봤자 本錢도 못 찾는 일들이 있다. 只今 이른바 門派를 擧論하는 일이 그렇다. 그럼에도 펜을 들 수밖에 없는 것은 BTS(防彈少年團)를 좋아하는 팬덤과 특정한 政治人(또는 政治勢力)을 좋아하는 팬덤이 미치는 社會的 意味는 比較할 수 없이 다르다는 至極히 常識的인 理由에서다.

    테러리즘의 어원, 恐怖政治

    중국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 [GettyImage ]

    中國 文化革命 時期 紅衛兵. [GettyImage ]

    몇 달 前 이 紙面을 통해 조지 오웰 小說 ‘동물농장’에 빗대 文在寅 政府를 批判하는 칼럼을 썼더니 親舊는 當然히 怒發大發했다. 敢히 그것과 그것을 連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마저도 宏壯히 純化해서 쓴 것’이라고 辨明했다. 

    事實은 中國 文化革命 當時 紅衛兵에 빗대 쓰려고 했다. 나는 數年間 中國에 滯留하며 過去 紅衛兵이었던 사람과 被害者였던 사람을 여럿 만난 적 있고, 文化革命이라는 말만 들어도 나 自身이 겪은 일처럼 애잔하게 느끼는 多少 지나친 所懷마저 있다. 하지만 紅衛兵과 門派를 比喩하는 方式은 손쉬운 直喩라 오히려 꺼려졌다. 뭐든 너무 原色的이면 感興이 떨어지는 法이다. 

    하지만 實狀을 놓고 보면 紅衛兵과 門派는 版박이처럼 똑같다. 2020年 大韓民國 門派를 보면서 1960年代 中華人民共和國 紅衛兵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異常한 일이다. 勿論 紅衛兵이 생겨나고 作動되는 過程은 門派와 若干 다른 側面이 있지만 本質上 相通하는 地點이 셀 수 없을 程度다. 亦是 가장 核心的인 共通點은 ‘自身들이 只今 무슨 일을 하는지, 歷史에 어떤 害惡을 끼치고 있는지, 本人들 스스로 全혀 모르고 있었다’는 點이 아닐까 싶다. 

    全體主義의 무서움은 ‘떼’의 힘으로 發言을 누르려는 데 있다. 自身의 생각과 見解가 아직 未洽하다고 判斷해 發言을 自制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勢力’李 무서워 말을 아끼는 社會라면 問題가 있는 것이다. 勿論 ‘그들’은 말할 것이다. “내가 언제 當身보고 말하지 말라고 그랬어? 말해 봐. 어서 말해 봐” 하면서 쿡쿡 찔러댈 것이다. 그래서 말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털어낼 것이다. 身上을 털고, 過去를 털고, 動線을 털 것이다. “너는 얼마나 잘났는지 確認해 보겠어” 하면서 確認(!)할 것이다. 職場과 學校에 壓力을 加하기도 할 것이다. 勿論 ‘그들’은 말하겠지. “깨어 있는 市民들이 自發的으로 하는 일인데 우린들 어쩌겠어? 그러게 누가 그렇게 살래?” 

    多少 거칠게 表現했지만 全體主義의 本質은 이렇다. 생각이 다르다고 하룻밤에 數千 個 文字 爆彈을 안기고 18원 後援金을 보내는 行動이 本人들로서는 痛快하고 奇拔하며 ‘깨시민’의 停當한 抵抗權 行事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담긴 本質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者가 있으면 우리 集團의 힘으로 얼마든 눌러주겠어’ 하는 힘자랑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한다. “그래도 우리는 朴槿惠 政府처럼 블랙리스트 같은 것은 만들지 않잖아!”라고. 블랙리스트보다 더 强力한 무엇이 作動하고 있는데 굳이 블랙리스트가 必要할까?

    歷史는 舞臺와 服裝만 다른 役割劇

    테러리즘의 어원이기도 한 프랑스 革命期 恐怖政治(Reign of Terror)는 政治的 異見을 가진 사람들이 아예 말門을 열지 못하도록 온갖 方法을 動員한 것에 本質이 있다. 當時 恐怖政治의 主動者들은 스스로 ‘正義’를 行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거기에 一切 망설임이 없었다. 門派와 恐怖政治, 親衛政治, 全體主義, 테러리즘은 本質上 잇닿는다. 

    門派를 紅衛兵이나 恐怖政治에 견주어 말하면 親舊는 “우리가 사람을 죽였어? 監獄에 街뒀어?” 하면서 抗辯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中國 紅衛兵은 正말로 사람을 죽였고, 禹붕(牛棚· 외양間)이란 이름의 社說 監獄을 만들어 政治的 反對者들을 가두고 迫害했다. 프랑스의 자코뱅 클럽은 기요틴을 만들어 靜寂의 목을 잘랐다(정말로 ‘木’을 잘랐다). 

    勿論 韓國의 門派는 그러지는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는’ 環境이다. 여기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光復 直後 우리나라의 피비린내 나는 理念 對立 歷史를 읽을 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理由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兄이 동생을 告發하고, 낮밤을 나눠 左右가 서로 交叉하며 虐殺했던 記錄을 훑다 보면, 現在 우리는 銃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本質上 이들과 무엇이 다를까 하고 섬뜩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다. 只今 이른바 進步를 自處하는 사람이든 報酬를 自處하는 사람이든, 極端的인 性向을 보이는 사람을 그 時代에 옮겨놓으면 分明히 어느 한쪽에서 銃과 낫을 들지 않았을까? 다만 우리가 그 時代에 태어나지 않았을 뿐이다. 

    歷史는 舞臺와 服裝만 달리하는 役割劇이다. 1960年代 中國 紅衛兵을 1940年代 獨逸로 옮겨놓으면 유겐트가 되고, 獨逸의 나치를 1930年代 스페인으로 옮기면 프랑코 王黨派가 되며, 스페인 人民戰線 一部를 1950年代 韓半島에 겹쳐놓으면 서북청년단이 되거나 붉은 腕章을 두른 사람들이 됐다가, 2020年 大韓民國에서 時代에 맞는 服裝과 小品으로 다시 갈아입는다. 親舊는 抑鬱할 것이다. 어찌 그리 ‘끔찍한 것들’과 自身을 比較할 수 있느냐고. 

    勿論 犯罪에도 輕重(輕重)이 있는 것처럼 本質上 相通한다고 모두를 都賣金 取扱할 수는 없다. 이른바 門派에도 여러 性向의 사람이 있을 테고, 그들이 그런 決心을 하게 된 背景 亦是 다양할 것이며, 무엇보다 文在寅 大統領을 支持한다고 모조리 門派라고 싸잡을 수 없다. 앞에서 ‘그들’이라고 表現한 部類는 文在寅 支持 그룹 中에서도 極少數일 것이며, ‘그들’마저 現實에서는 내 親舊처럼 多情한 微笑를 지닌 平凡한 이웃일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純粹한 熱情과 意志를 지니고 있으리라 믿는다. 歷史의 悲劇性은 그러한 平凡함에서 도드라진다.

    曺國과 鄭慶心은 四人幇인가

    사법적폐 청산 범국민시민연대 회원들과 시민들이 2019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조국 수호 사법적폐 청산 촛불문화제’를 열고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임명 및 사법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司法積弊 淸算 汎國民市民連帶 會員들과 市民들이 2019年 8月 30日 서울 종로구 옛 日本大使館 앞에서 ‘曺國 守護 司法積弊 淸算 촛불文化祭’를 열고 曺國 當時 法務部 長官 候補者 任命 및 司法改革을 促求하고 있다. [뉴스1]

    果然 紅衛兵은 特出한 사람들이었을까? 中國 現代史에 적잖은 트라우마를 남겼기 때문에 한동안 中國에서는 紅衛兵이라는 用語조차 禁忌語에 屬했지만 이제 被害者 手記는 勿論 加害者들이 남긴 懺悔錄을 통해서도 當時의 實相을 들여다볼 수 있다. 紅衛兵은 그저 平凡한 學生들이었고, 熱心히 일하는 勞動者 農夫들이었고, 新中國의 誕生에 누구보다 感泣하던 풀뿌리 民草들이었다. 그렇게 淳朴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所重한 나라가 한 줌 走資派(走資派·資本主義를 따르는 派)의 隱密한 反擊에 다시 뒤집힐 수 있다는 所聞을 듣고는, “舊惡(舊惡)을 打倒하자”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이다. 마오쩌둥은 “司令部를 砲擊하라”고 그들의 靈魂에 불을 질렀다. 紅衛兵은 純粹했고, 마오쩌둥은 獰惡했다. 

    門派는 ‘檢察과 李明博이 노무현을 죽였다’고 생각한다. 門派의 創世記와도 같은 世界觀이다. “노무현과 側近은 完璧하게 깨끗했다”고 차마 말할 수는 없으니 “‘논두렁 時計’ 같은 것으로 前任 大統領에게 侮辱을 주어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아픈 傷處를 召喚한다. 그런 원的(怨敵) 檢察을 文在寅 大統領이 當選되고 지난 2年間 왜 살려두고 오히려 앞세웠는지 疑問이지만 借刀殺人(借刀殺人·칼을 빌려 사람을 죽임)이나 兎死狗烹(兎死狗烹) 程度로 갈무리瑕疵. ‘檢察이 바뀌면, 檢察을 警察로 代替하면, 世上도 바뀌는 건가?’ 하는 疑問도 이제는 접어두자. 말로 論證할 수 없는 問題는 實證으로 確認하면 되는 거니까. 이제 우리가 살펴볼 대목은 ‘紅衛兵의 純粹함을 利用해 私益을 追求한 마오쩌둥’에 있다. 門派의 이런 世界觀을 꿰뚫고 그것을 自身들의 私利私慾에 利用하려는 勢力 말이다. 

    文在寅 大統領이 마오쩌둥과 비슷하게 行世하는 것은 어쩌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스스로 無所不爲 ‘選出된 權力’이라 생각하니까. 하지만 祖國 前 法務部 長官, 게다가 그의 ‘江南 스타일’ 아내까지 拘置所에서 被害者나 殉敎者 行世를 하면서 ‘깨시민’에게 고마워하고 ‘盧武鉉의 논두렁 時計’까지 끌고 와 夫婦의 破廉恥한 犯罪 行爲를 끝내 美化하려는 몸부림을 보면서 卑劣함과 可憐함마저 느낀다. 檢察이 自身을 起訴하자 그것을 ‘쿠데타’라고 稱한 靑瓦臺 祕書官에게서는 歷史의 旣視感이 느껴진다. 스스로 장칭(마오쩌둥의 아내)이나 四人幇(文化革命 當時 首腦部) 程度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歷史는 왜 이렇게 唯獨 좋지 않은 遺傳子만 國境과 時代를 건너뛰어 遺傳하는 것일까? 世上 모든 그릇된 이데올로기와 政治的 偏向은 그것을 팔아 利得을 보는 勢力이 存在하기 때문에 오늘도 잘 팔리는 人氣 商品으로 流通된다.

    ‘元祖 親朴’도 朴槿惠 彈劾했다

    이제는 結論을 이야기하자. 앞에 잠깐 言及한 것처럼 朴槿惠 前 大統領이 彈劾되기 1年 前 國政 遂行 支持率은 46.7%였다(글을 쓰는 現在 文在寅 大統領에 對한 國政 遂行 支持率은 45%다). 憲法裁判所에서 彈劾 決定이 있은 때로부터 따져보면 그렇고, 國會에서 彈劾 訴追案이 通過되기 딱 9個月 前 支持率이 그랬다. 그런 支持率이 9.7% 바닥을 치기까지 걸린 時間은 不過 8~9個月이었다. 國民은 그만큼 冷靜하다. 

    最近 文在寅 政府가 行하는 一連의 暴走를 보면서 이른바 太極旗 部隊는 이런 푸념을 한다고 한다. “우리 朴槿惠 大統領은 왜 저렇게 果敢하지 못했을까?” 朴槿惠도 끝내 謝過하지 않고, 모른다고 고개 돌리며 버티고, 疑惑을 提起하는 쪽을 向해 도리어 ‘不純하다’ 攻擊하고, “최순실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 말하고, 搜査하는 檢査를 싹 바꿔버리는 式으로 正面 突破했더라면 自身들의(!) 大統領이 彈劾당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긴 한숨을 내쉬며 後悔한다고 한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울 때 좋은 말보다 否定的인 表現이나 卑俗語를 먼저 배우는 것처럼, 亦是 歷史는 이렇게 나쁜 쪽으로 먼저 遺傳한다. 盧武鉉의 죽음에서 全혀 엉뚱한 敎訓을 찾고 오늘 저렇게 暴走하는 것처럼, 앞으로 大韓民國에서 政權을 잡을 勢力은 最近 文在寅 政府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다. 顔面沒收하고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政治에 元來 廉恥나 良心이란 없는 法이라고. 

    朴槿惠 政府가 本格的으로 흔들리기 始作한 것은 2016年 4月 總選 直後다. 總選 때까지는 ‘公薦’이라는 칼날 아래 숨죽이고 있었지만 總選의 다리를 건너니 호두알처럼 단단해 보였던 與黨은 內部에서부터 깨져나갔다. 朴槿惠 彈劾 訴追案에는 새누리黨에서도 折半假量이 贊成 票決했다. 그中에는 ‘元祖 親朴’을 自處했던 議員도 여럿 包含돼 있다. 政治란 그런 것이다. 

    이른바 門派는 다가오는 總選을 勝利로 이끌고, 그러한 威勢로 檢察을 繼續 누르고, 門派의 熱烈한 後援을 받는 사람을 次期 大統領 候補에 올려놓고 政權을 再創出하는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歷史의 무게中心이 完全히 自己들 쪽으로 넘어올 것이라 壯談한다. 그럴듯한 圖式的 思考觀이다. 모든 計劃이 한 치 빈틈없이 完璧하게 進行돼 韓國銀行을 털고 悠悠히 빠져나와 南太平洋 어느 섬에서 칵테일을 들이켜는 犯罪 스릴러 映畫와도 같은 構想이다. 알다시피 現實은 그리 만만치 않다. 世上일이 그리 簡單치 않다. 그中 하나만 삐걱거려도 커다란 破局을 맞게 될 것이다. 하나씩 잘 完遂돼 가다가도 언젠가 大反轉의 드라마를 目擊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또 무슨 敎訓을 찾을까?

    산 者들의 曲解와 아귀다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작성한 유서.

    盧武鉉 前 大統領이 逝去 直前 作成한 遺書.

    盧武鉉 大統領이 遺書처럼 作成한 文書에는 다음과 같은 內容이 主題語처럼 담겨 있다. “未安해하지 마라. 누구도 怨望하지 마라. 運命이다.” 亡者는 分明 未安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未安함을 찾으면서 그것을 自身의 運命이라고까지 끌어 붙인 意圖된 曲解로부터 只今 悲劇은 繼續되고 있다. 亡者는 分明 怨望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 憤怒하라 외치면서 그것을 改革이라는 이름으로 包裝하는 政治的 誤用으로부터 解決은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歷史는 죽은 者를 앞세운 산 者들의 아귀다툼 아닐까 確認한다. 文在寅 政府도 過去 政府와 한 點 틀림없는 내리막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豫感 앞에, 왜 政治는 우성(優性) 遺傳을 하지 않는 것인지, 못내 慘澹함을 느끼며 하릴없이 먼 山등성이만 바라본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碑石 하나만 남기라” 했던 當身의 마지막 한 줄 글 앞에 눈물 흘리며 고개 숙인다. 누가 노무현을 侮辱하는가.

    '신동아 3月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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