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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抑鬱해도 自殺하지 마세요, 惡을 도와주는 겁니다”|신동아

허문명의 SOUL

“抑鬱해도 自殺하지 마세요, 惡을 도와주는 겁니다”

6年 만에 嫌疑 모두 벗은 박현정 前 서울市響 代表

  • 허문명 記者

    angelhuh@donga.com

    入力 2020-02-2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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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眞實 밝히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일 없었다

    • 거짓말로 남의 人生 파멸시킨 사람들이 乘勝長驅

    • 나 스스로에 對한 潔白이 나를 지킨 힘

    • 弱者 이미지로 同情을 詐欺는 싫다

    • 眞實도 多數決이 決定하는 世上

    누구나 힘든 時期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팎으로 뒤숭숭하고 먹고살기가 漠漠한 이런 때야말로 精神 줄을 꽉 붙잡아야 합니다. ‘허문명의 솔(soul)’은 삶을 뒤흔들어대는 여러 難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靈魂과 精神 줄을 꽉 붙잡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첫 回 主人公은 박현정 前 서울市立交響樂團 代表입니다.<편집자 週>

    [홍중식 기자]

    [홍중식 記者]

    박현정(58) 前 서울市立交響樂團 代表와의 因緣은 그가 市響 代表로 일하던 2013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해 2月 就任한 그는 처음에 클래식에 ‘門外漢’이라더니 빠른 速度로 知識이 늘었습니다. 일에 對한 熱情도 남달라 보였고요. 그러다 ‘서울시향 事態’가 터졌고 記者는 햇數로 6年間 적어도 1年에 한 番씩은 그를 만나 近況을 물었습니다. 

    새해 劈頭 그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그의 변함없는 ‘鬪志’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至難한 法廷싸움 끝에 지난해 末 自身에게 씌워진 마지막 嫌疑에 無罪를 宣告받음으로써 無慮 6年 만에 嫌疑를 모두 벗었습니다. 

    서울市響 職員들이 2014年 12月 强制醜行, 性戱弄, 業務妨害 等 9個 嫌疑로 고소한 事件은 3年 뒤인 2017年 檢察에서 모두 無嫌疑 處分됐고 唯一하게 罰金 300萬 원으로 有罪가 宣告됐던 ‘暴行罪’가 2019年 11月 28日 2審에서 無罪가 나온 것입니다. 

    한때 世上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記憶에서조차 稀微해져가는 서울市響 事態, 數年間 至難한 法廷鬪爭을 벌여온 朴 前 代表를 설 連休가 끝난 2月 5日 만났습니다. 그는 地獄 같았던 時間을 어떻게 지나왔을까요. 



    그는 1962年生입니다. 서울대 敎育學科를 卒業하고 하버드대에서 社會學博士學位를 받았습니다. 교육개발원 先任硏究員. 삼성화재海上保險 常務, 삼성생명보험 專務, 女性리더십硏究院 代表를 지냈고요. 

    朴 前 代表는 겉보기에는 別로 變함이 없었습니다. 목소리는 如前히 우렁차고 카랑카랑했으며 에너지도 넘쳤습니다. 인터뷰 要請을 受諾하면서 “寫眞은 찍지 않았으면 좋겠다. 周圍 사람들이 最近에 찍은 내 寫眞을 보고 웃음氣가 사라졌다고 하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强해 보였지만 그동안 겪었을 마음苦生에 共感이 됐습니다. 記者가 “남들 같으면 무너졌을 試鍊을 겪었지만 堂堂하고 自信感에 찬 에너지가 傳해진다”며 寫眞 찍기를 다시 勸하자 그제야 應했습니다.

    “모든 立證 責任이 나에게 있었어요”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요. 

    “每日每日 搜査와 裁判 準備에 ‘올인’했어요. 眞實을 밝히는 것 外에는 다른 것을 하거나 생각할 餘裕가 없었어요. 저한테 性戱弄과 暴言을 當했다고 主張하는 사람은 10名이나 되고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스무 名도 넘는데 저는 오로지 혼자였으니까요. 當事者들은 한 마디씩이지만 저는 거기에 對해 一一이 數十 個의 證據資料를 찾아야 했어요. 그들 말이 왜 거짓인지 立證해야 할 責任이 제게 있었기 때문에 正말 하루하루 時間이 모자랐어요. 搜査 過程에서 제 辯護士가 제 便이 아닌 境遇까지 있었고요. 世上 工夫 正말 많이 했습니다.” 

    지난 時間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빠른 速度로 흐르는지 그의 얼굴에 웃음氣가 사라지고 表情도 목소리도 가라앉았습니다. 

    “警察과 檢察 調査 過程에서 모두 나온 內容이지만 職員들은 정명훈 監督 等의 指示를 忠實히 따르면서 저에게 오랜 期間 苦痛을 주었습니다. 50年 넘게 차곡차곡 쌓아온 第 커리어는 勿論 全(全) 人生이 悽慘하게 무너져 모든 것을 잃었으니 結局 그들의 意圖대로 된 거지요.” 

    -서울市響 事態는 2014年 12月 2日 事務局 所屬 職員 17名이 暴言, 性醜行, 人事專橫 等을 當했다면서 代表 退陣을 要求하는 匿名의 e메일 呼訴文에서 觸發됐습니다. 그리고 職員들은 當身을 告訴했지요. 

    “職員 10名이 2014年 12月 22日 서울중앙지검 女性兒童犯罪搜査部에 告訴狀을 提出했는데 强制醜行 3件, 性戱弄 4件, 業務妨害 1件, 名譽毁損 1件 等 總 9件이었습니다. 檢察은 이를 鍾路警察署로 보냈고 警察은 9個 嫌疑 모두에 無嫌疑 結論을 내고 2015年 8月 10日 檢察에 送致했습니다. 檢察은 2年이나 지난 2017年 6月, 8個 告訴 事實에 對해 無嫌疑 結論을 내렸고 45歲 女職員이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리는 强制 醜行을 當했다’고 한 것에 對해 ‘强制 醜行이 아닌 暴行’이라면서 罰金 300萬 원으로 略式起訴를 했습니다. 저는 正式裁判을 請求했고 2018年 8月 1審 裁判部가 罰金 300萬 원을 宣告했지만 지난해 11月 28日 2審에서 原審을 깨고 無罪가 宣告된 거죠.” 


    “司法 體系가 正말 問題가 많아요”

    -이 事件은 被疑者가 被害者가 되고 有罪가 無罪가 되고 反轉에 反轉을 거듭했어요. 

    “뒤에 말씀드리고 싶지만, 우리 司法 體系가 正말 問題가 많아요. 누가 檢事고 判事냐에 따라 結果가 달라져요. 어떻든 搜査 過程에서 職員들의 거짓말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性醜行을 當했다는 男子 職員은 거짓말 探知機에서 ‘거짓’ 反應이 나왔고, 會食에 同席했던 사람들이 ‘아무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證言했어요. ‘술집 마담 하면 잘 하겠다’는 말은 直接 들은 게 아니라 共犯者들로부터 傳해 들은 말로 저를 告訴한 것이고, ‘愛嬌가 많아서 老人네들에게 보낸다’는 말도 本人 陳述밖에 없었고, ‘始末書를 쓰게 했다’는 것도 제가 아니라 서울市響 監査役이 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제가 ‘女職員을 껴안아 性醜行하는 걸 봤다’는 目擊者는 以後 ‘못 봤지만 본 걸로 해달라’는 메시지 押收物을 보여준 뒤에야 ‘被害를 主張하는 女職員 付託으로 虛僞 陳述을 했다’고 自白했어요. ‘손가락으로 가슴을 찔렸다’고 主張한 女職員은 性的 羞恥心 때문에 精神과 治療까지 받았다고 했지만 정작 1次 病院 診斷書에는 그런 內容이 없었고요. 그런데 2年 後 檢察은 첫 番째 診斷書를 숨기고 두 番째 診斷書만 添附하면서 저를 起訴했어요. 以後 高檢에서 病院을 押收搜索해 診斷書의 殊常한 點을 밝혀 바로잡혔죠. 氣가 막히죠. 처음부터 제대로 搜査했으면 애當初 起訴도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죠.” 

    -當身이 2014年 12月 19日 虛僞 呼訴文을 流布한 匿名의 17人을 찾아내 處罰해 달라고 서울地方警察廳 사이버安全課에 陳情書를 낸 事件은 어떻게 處理됐나요. 

    “15個月 동안 3次例 押收搜索, 33名에 對한 85回 調査 等을 통해 呼訴文 內容이 모두 虛僞임을 밝혀냈습니다. 職員 10名에 對해 起訴 意見, 美國 國籍으로 海外에 滯留하면서 警察의 4回 出席 要求에 不應한 鄭 監督 夫人 丘某 氏는 起訴中止 意見으로 2016年 3月 檢察에 送致됐고요. 檢察은 2年이 지난 2018年 5月에야 虛僞 性醜行을 主張하던 男子 職員만 起訴하고 나머지 職員 9名은 ‘虛僞라는 認識이 없었다’며 不起訴했습니다. 丘氏도 調査 한 番 하지 않고 亦是 不起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高檢에 抗告했습니다. 지난해 7月 檢察은 呼訴文의 虛僞 事實 12個에 對해 鄭 監督 祕書를 비롯한 女職員 네 名을 虛僞 性醜行을 主張하던 男子 職員과 共犯으로 追加 起訴하고 나머지 5名은 起訴猶豫 處分을 내려 現在 裁判이 進行 中입니다.”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14년 12월 5일 박현정 당시 서울시향 대표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서울시향 연습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명훈 예술감독과 서울시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2014年 12月 5日 박현정 當時 서울市響 代表가 서울 鍾路區 世宗大路 서울市響 演習室에서 열린 記者會見에서 정명훈 藝術監督과 서울市響의 問題點을 指摘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記者]

    無罪를 宣告한 2審 判決文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이 事件 呼訴文 및 告訴狀 提出에 同參한 被害者를 비롯한 市響 職員 10名은 呼訴文 流布 以後 團體 對話房을 만들어 被害 事例를 誇張하거나 거짓말을 보태어 被告人을 性戱弄 等으로 告訴하고 서울市響에서 내보내는 것은 勿論, 더 以上 社會生活을 할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戰略을 세우는 對話를 나누기도 했으며 (暴行) 被害者 亦是 自身이 생각하는 方案을 提示하고 辯護士로부터 相談받을 것을 勸誘하며 나아가 ’티 안 나게 診斷書까지 發給받으라’는 等으로 積極 同參하였다고 했다.’ 

    -‘더 以上 社會生活을 할 수 없도록’이란 대목을 읽는 저도 가슴이 오그라들더군요. 

    “거짓말로 남을 謀陷하고 他人의 삶을 파멸시킨 사람들이 罰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乘勝長驅하는 모습을 보면서 天罰이라는 게 없어진 世上 아닌가, 勸善懲惡이란 게 사라져버린 거 아닌가 絶望할 때가 많아요. 罪를 짓고도 被害者인 척 코스프레를 하면 同情받는 世上,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잘사는 世上이란 생각에 하늘이 正말 있는지 한숨이 나옵니다. 

    平生 남에게 나쁘게 行動한 적이 없고 被害나 損害를 끼친 적이 없어요. 어릴 적부터 ‘바른生活 어린이’였어요. 完璧하지는 않아도 最小限 그렇게 살려고 努力했는데 한瞬間에 거짓에 犧牲돼 모든 것을 잃으니 氣가 막혔죠. 무엇보다 正말 사이좋게 지냈던 職員들이 거짓 證言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苦痛이었습니다. 거짓말을 만들고 서로서로 證人이 돼주었어요. 背信感과 人間에 對한 會議,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番 일을 겪으면서 이른바 社會 上流層, 指導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不道德을 너무 많이 經驗했어요. 自身들의 告訴狀을 作成해 주는 辯護士를 向해 團톡房에서 ‘有名한 劇作家 저리 가라다’ ‘서울 法大에서 이런 것도 가르쳐주나, 文創科 出身인 듯’이라는 對話가 나올 程度였으니까요. 市響 職員들은 大部分 裕福한 環境과 有名한 父母 밑에서 자랐는데, 僞證을 하고 虛僞 證人을 涉外하고, 診斷書와 錄音을 造作하는 걸 보면서 子女 敎育에 對한 생각도 많이 했어요. 카톡 對話에는 10名 職員의 父母들도 登場하는데 엘리트 階層의 그릇된 思考에 對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지요.”

    “極端的 選擇은 악에 屈服하는 거예요”

    -操心스러운 質問이지만 精神과 治療 같은 것을 받은 적은 없나요. 

    “없어요. 제가 좀 鈍해요. 銳敏한 性格이었다면 正말 견디지 못했을 거예요.” 

    -當身을 버티게 해준 힘은? 

    “家族과 親舊들이죠.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平素와 다름없이 對해줬어요. 저의 潔白을 믿으니 걱정도 應援도 하지 않았어요. 함께 勤務하던 옛 職場 職員들과 同僚들의 應援도 큰 힘이 됐어요. ‘내가 헛살지는 않았구나’ 했죠.” 

    -宗敎가 있나요. 

    “없어요. 저를 謀陷한 사람들이 오히려 篤實한 信仰人임을 내세우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하늘이 있다면 반드시 勸善懲惡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고, 믿고 있어요. 저는 神이 果然 계신지, 하늘이 있는지 지켜보려고 해요.” 

    그는 “가장 큰 힘은 事實, 나 스스로에게 潔白하고 眞實하다는 거였다”며 “나 스스로에 對한 믿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潔白해도 아무도 그걸 받아주지 않으면 精神的으로 지치게 마련입니다. 極端的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말이죠. 

    “그런 생각은 한 番도 하지 않았어요. 惡(惡)에 지는 거잖아요. 저를 向해 많은 惡플이 있었다는데 全혀 보지 않았어요. 인터넷도 일부러 하지 않았고요. 아직까지도 新聞이나 TV는 보지 못해요. 트라우마가 이렇게 무서워요. 永遠히 克服하지 못할지 몰라요. 

    集團 惡플에 시달리거나 抑鬱하게 손가락질받는 사람들이 極端的 選擇을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 心情을 너무 잘 알지만, 제발 屈服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自己 스스로 潔白하다면 自身을 믿어야 해요. 抛棄하고 무너지는 건 나를 수렁에 빠뜨린 惡人(惡人)들을 즐겁게 해줄 뿐이란 생각으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버텨야 해요. 내가 잘못한 게 없으면 그 眞實의 힘을 믿어야 해요. 악에 지면 絶對 안 돼요.” 

    그의 語套는 斷乎하게 딱딱 끊어졌습니다. 

    -펑펑 울어본 적이 있나요. 

    “異常하게 눈물이 안 나와요. 한番 크게 울기라도 해봤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눈물이 안 나와요.” 

    -이番 일을 겪으며 그렇게 된 건가요. 

    “元來도 징징대는 스타일은 아니었는데 일을 겪으면서 感情이 얼어붙어 버린 것 같아요. 너무 抑鬱하면 울음도 안 나온다는 걸, 當해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거예요.” 

    砲彈이 어디서 날아올지, 어디에 陷穽이 있는지, 飛行機는 언제 또 集中砲火를 때릴지 모르는 超緊張 狀態로 살아왔어요. 警察, 檢察도 제대로 區分하지 못하던 제가 警察署, 檢察, 法院에 드나드는 것 自體가 侮蔑感이 들어 힘들었습니다. 처음 받아 보는 搜査와 裁判 節次를 홀로 배우면서 對應하는 것이 참 힘들었어요.” 

    -平素 處身이 서툴러 일을 自招했다는 自責感 같은 感情은 없었나요. 

    “왜 市響에 갔을까 後悔한 적은 있어요.”

    “健康하게 살아서 오래오래 버티라는 말이 힘이 되더군요”

    -市響에는 어떻게 가게 됐죠. 

    “삼성그룹에서 女性人力 關聯 業務를 하다 커리어우먼들의 會社 生活에 도움을 주고 싶어 女性리더십硏究員이라는 個人 硏究所를 運營했어요. 서울市에서 마침 關聯 프로젝트를 公募한다고 해서 서울市 關係者를 만나던 中에 市響 代表職 提議를 받았죠. 처음에는 固辭했다가 정명훈 監督과 朴元淳 市長이 모두 同意한 候補는 1年 만에 처음이라면서 懇曲히 要請하기에 應했습니다. 年俸도 커리어度 모두 損害 보는 일이었지만 奉仕한다는 생각으로 決心했죠. 

    鄭 監督이 서울市에 저의 退陣을 要求했을 때, 未練 없이 떠나려 했어요. 다만 서울市 傘下機關長으로서 서울市民에 對한 禮儀가 있으니 ‘市議會가 끝나는 12月 中旬에 그만두겠다’고 分明히 意思表示를 했기 때문에 기다려 줄 줄 알았죠. 

    굳이 그만두겠다는 사람을 虛僞 呼訴文까지 言論에 터뜨려 社會的으로 埋葬하려 했던 理由를 처음엔 잘 理解하지 못했어요. 이제는 全貌를 알게 됐지만 말이죠. 제가 目擊한 것은 不法과 불의, 不當한 것들이었어요. 저는 只今도 稅金을 使用하는 組織을 그렇게 運營해서는 안 되며, 서울市나 言論도 제대로 監視하지 않은 責任이 크다고 생각해요. 

    이番 일을 통해 많은 사람이 가진 僞善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惡人도 싫지만 착한 척, 國家와 國民을 위하는 척, 藝術에 沒頭하는 척, 人權을 내세우며 온갖 華麗한 表情과 제스처를 動員하고 뒤로는 온통 自己 欲心밖에 없는 僞善者들의 모습은 正말 가증스러웠어요. 自己들끼리 나눈 카톡에도 나와요. ‘大衆 앞에서는 溫和하게, 두 個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고.” 

    -怪物과 싸우면 怪物을 닮아간다고도 하던데요. 

    “心身이 疲弊해지는 건 事實이에요. 하지만 怪物이 될까 두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오로지 潔白을 證明하고 眞實을 밝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하늘은 때로 사람을 크게 키우기 위해 試鍊이라는 祝福을 준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말들이 慰勞가 되던가요. 

    “제게 온 應援 文字 大部分이 그런 內容이에요(웃음). 그런데 엄청난 苦難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리는 사람에게는 ‘試鍊도 約(藥)이다’ ‘큰일하려면 겪어야 한다’는 말은 全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第一 힘이 된 말은 ‘健康하게 살아서 오래오래 버티라’는 素朴한 말이었어요.” 

    -健康은 괜찮은가요. 

    “別로요.” 

    -술도 마시나요. 

    “한 방울도 안 마셔요. 本來부터 즐기는 스타일도 아닌 데다 市響에서 外部 去來處 모시고 單 한 番 가진 ‘술자리’에서 謀陷을 當했는데 술이 제 입에 들어가겠어요.” 

    -弱하게 보이는 게 때로 利得이지 않을까요. 世上으로부터 同情받고 싶지는 않았나요. 

    “大衆 앞에서 눈물 흘리며 同情心을 誘發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眞實을 糊塗하는 僞善者들을 第一 싫어합니다. 眞實에 對한 禮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가 ‘힘들다’고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건 民弊 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내 苦痛을 남에게 移轉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크다 보니 쉽게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해요.” 

    그는 始終一貫 冷徹한 表情이었습니다. 自身의 삶을 窮地로 몰아넣은 사람들을 떠올릴 땐 憤怒 같은 感情이 실릴 만도 한데 그런 單語들도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무서운 瞬間들은 있었다”고 해요.

    “老後資金을 헐어 쓰고 있어요,”

    박현정 전 서울시향 대표는 2월 5일 ‘신동아’ 인터뷰 자리에 그동안 법정투쟁하며 만든 자료를 모두 들고 나와 조목조목 설명했다. [홍중식 기자]

    박현정 前 서울市響 代表는 2月 5日 ‘신동아’ 인터뷰 자리에 그동안 法廷鬪爭하며 만든 資料를 모두 들고 나와 條目條目 說明했다. [홍중식 記者]

    “事件 初期이던 2014年 12月, 記事가 온 新聞과 放送에 塗褙된 때였어요. 辭退를 發表하는 記者會見을 하기까지 한 달餘 동안 새벽 4~6時에 發信者 情報 없는 不在 中 電話가 3~4日에 한 番씩 와 있는 거예요. 너무 무서웠어요. 只今도 누가 왜 그 時間에 番號까지 숨기고 電話를 했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져요. 多幸히 저는 携帶電話를 默音으로 해놓아 벨 소리를 듣지 못했어요. 萬若 새벽에 받았는데 아무 말이 없다거나 辱說을 해대거나 脅迫이라도 當했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다음으로 무서웠던 瞬間은 職員들이 團톡房에서 저를 陰害하는 메시지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예요. 몇 달 동안 제대로 읽어 내려갈 수가 없었어요. 人間이 어디까지 殘忍하고 邪惡해질 수 있는지, 社會的 名聲, 成功, 貪慾, 爲先, 虛榮, 虛勢, 虛僞 等에 對해 많은 생각을 했어요.” 

    -서울대를 卒業하고 하버드대에서 博士學位를 받았으며 잘나가던 삼성그룹 任員을 지낸 커리어우먼이 한瞬間에 墜落한 것은 말로 表現하기 힘든 삶의 危機인데요. 무너지지 않은 걸 보면 正말 精神力이 대단한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어려운 일을 겪다 보니 저보다 어려운 분들 處地가 切切하게 理解되더군요. 저는 그래도 辯護士 選任費라도 있어서 싸우고 있지만 돈이 없어서 抛棄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나, 그런 분들이 갖게 되는 反(反)社會的인 感情을 理解할 수 있을 것 같아요. 特히 弱者들의 마지막 堡壘라고도 할 수 있는 檢察, 法院, 言論으로부터 抑鬱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모두 같은 心境일 거예요. 正말 言論, 檢察, 法院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自身들이 가진 權力의 크기와 그에 合當한 責任感에 對해 省察하고 苦悶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經濟的으로는 어떻게 버티고 있나요. 

    “老後資金을 헐어 쓰고 있어요,” 

    -그래도 苦難 속에서 얻은 게 있다면요.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쁜 世上에 對해 알게 된 것을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藝術을 왜 하는가’라는 哲學的 命題부터 有名人의 虛名(虛名)과 僞善에 對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藝術界의 非理 構造나 非營利財團, 公共機關의 放漫함에 對해서도 알았고요. ‘내가 내는 稅金이 이렇게 浪費되고 있구나’ 確實하게 알게 됐지요. 

    司法 體系도 問題가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平生 처음 고소란 것을 當해 보면서 警察, 檢察, 法院으로 이어지는 法曹界 問題點을 體得했습니다. 第 事件의 境遇 警察의 押收物이나 誠實하게 搜査한 記錄을 檢察이 自身들이 定해 놓은 結論에 맞게 마음대로 取捨選擇하고, 숨기고, 透明하게 公開하지 않았어요. 

    判事들도 法 解釋이 사람마다 너무 다르고 不適切한 프로세스에 對해 檢證이나 評價 節次가 없더라고요. 先進國에서는 證據物과 判決文이 同時에 公開돼 判事가 適切하게 判斷했는지 第3者가 다시 檢證할 수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判決 過程의 不透明함이 가장 큰 問題로 보여요. 판·檢事님들 일이 正말 激務더라고요. 하지만 良心 不良한 一部 判·檢査 때문에 大多數 苦生하는 法曹人의 勞苦가 덮이고, 信賴가 사라진 것 같아 안타까워요.”

    “팩트도 多數決로 定하는 世上이 돼버렸어요”

    그는 “팩트와 眞實이 사라진 時代라는 點을 切感했다”고도 했습니다. 

    “팩트도 多數決로 定하는 世上이 돼버렸어요. 眞實 그 自體가 重要한 게 아니라 ‘어느 便에 서 있느냐’로 定해지는 거죠. 우리는 거짓말에 너무 寬大해요. 罰을 안 받으니 거짓 證言이 나오고 罪意識도 없어요. 無故, 詐欺, 僞證 같은 거짓말 犯罪가 다른 나라보다 많은 게 當然한 거 아닐까요. 停職, 統計, 科學, 眞實이 사라진 자리에 이미지만 亂舞하고 常識과 事實이 尊重받지 못하는 雰圍氣에서 어떻게 노벨賞 受賞者가 나오겠어요.” 

    -特히 當身 事件은 女子 上司가 男子 部下 職員을 性戱弄한 것으로 報道돼 사람들 입에 더 오르내린 側面이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를 亡身 주는 方法으로는 거짓 性戱弄 提起가 요즘 가장 流行 아닌가요. 職員들 告訴狀을 作成한 相對 辯護士가 團톡房에서 ‘勝算 있는 아이템은 性戱弄’이라면서 ‘誇張과 거짓말 양념을 보태서 性醜行+性醜行+性醜行=精神病者로 묶는 그림의 告訴狀을 作成했다’고 말한 대목이 나와요. 

    人生이 참 아이러니한 게 1994年 三星에 入社해 性戱弄 豫防敎育을 처음으로 導入한 사람이 저예요. 只今이야 一般化됐지만 任員과 中間幹部들을 相對로 한 첫 體系的인 敎育이었죠. 美國과 유럽에 出張까지 가서 先進 企業들이 하고 있는 걸 調査하고 工夫해서 우리 現實에 맞게 커리큘럼을 짰어요. 그러던 제가 性戱弄 加害者로 告訴를 當했으니 人生의 한 部分이 完全히 무너진 거죠.”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假짜 미투’도 正말 많잖아요. 性戱弄이나 性醜行은 正말 나쁜 일이지만, 假짜가 亂立하도록 容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假짜 미투는 훨씬 더 嚴하게 處罰해야 합니다. 假짜들 때문에 眞짜 被害者가 保護를 못 받으니까요. 이番 일을 겪으며 또 하나 失望한 건 所謂 ‘女性運動家들’이에요. 三星에서 性戱弄 豫防敎育, 女性管理者 프로그램을 짤 때 女性學者나 女性團體들에도 情報를 提供해 도움을 줬거든요. 그때 因緣을 맺은 사람들은 제가 女權伸張에 얼마나 關心이 많았고 努力한 사람이었는지 잘 알아요. 그런데 일이 터지니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저를 攻擊하거나 外面했어요. 背信感과 씁쓸한 氣分은 이루 表現할 길이 없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쉰둘에 法廷 鬪爭을 始作해 이제 쉰여덟이 됐습니다. 時間이 너무나 아깝네요.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 季節 바뀌는 것도 모르고 警察, 檢察, 法圓滿 쳐다본 歲月이 어느새 6年이 지났습니다. 하는 수 없지요. 抑鬱한 일을 앉아서 當할 수는 없지 않나요.” 

    그는 앞으로의 計劃을 묻는 質問에 “法廷鬪爭은 끝나지 않았다. 謀陷과 거짓으로 내 人生을 破綻으로 몰아간 사람들을 膺懲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신동아 3月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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