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月 國家生命倫理政策院長에 就任한 金明熙(59) 氏는 醫療界에서 怪짜로 通한다. 그 어렵다는 醫師가 되고도 診療室에 머문 時間이 別로 안 된다. 1991年 大韓赤十字社에 들어가 우리나라 血液 管理 問題點을 告發했고, 이른바 ‘황우석 事態’가 한창일 때는 天主敎 生命運動團體 ‘한마음한몸 運動本部’에서 일했다. 當時 그가 맡은 職責은 ‘生命運動部長’. 말 그대로 ‘運動’을 陣頭指揮하는 責任者였다.
月給도 120萬 원 안팎으로, 一般的으로 생각하는 醫師 給與에 비하면 턱없이 적었다. 하지만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 “生命의 尊嚴과 硏究 倫理의 重要性을 알리기에 좋은 자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金 院長은 “그동안 여러 일을 하면서 돈을 아예 안 받은 때도 있다. 經濟的 補償이 적어도 보람되고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熱心히 했다”며 웃었다.
연세대에서 醫療法倫理學 博士學位를 받은 金 院長은 2012年, 國家生命倫理政策員이 門을 열면서 ‘硏究部長’으로 合流했다. 以後 2016年 ‘事務總長’을 거쳐 이番에 總責任者 자리에 올랐다. 現在 金 院長 執務室에는 이 세 個의 名牌가 모두 놓여 있다. 그는 10名이 채 안 되는 人員으로 出發해 現在 60名 넘는 組織으로 成長한 國家生命倫理政策원의 산 歷史이기도 하다.
國家生命倫理政策員은 國立延命醫療官吏機關으로, 延命醫療制度 運營 및 關聯 硏究를 擔當한다. 또 大統領 傘下 國家生命倫理審議委員會 事務局 구실도 한다. 金 院長은 自身에게 附與된 責任을 다하면서 同時에 社會 全般에 生命倫理의 重要性을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겠다는 抱負를 밝혔다. “硏究倫理는 科學技術 發展을 가로막는 規制가 아니라 硏究의 信賴性, 效率性을 높이는 裝置”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金 院長은 “科學 및 醫學 分野 從事者가 ‘人間은 무엇인가’를 苦悶할 때 共同體 發展에 도움이 되는 硏究 結果가 나온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機關이 그들에게 人文學的 素養을 提供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