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느림의 哲學’ 理想鄕은 切實함이 있는 野球”|新東亞

“내 ‘느림의 哲學’ 理想鄕은 切實함이 있는 野球”

時速 130㎞ ‘최동원賞’ 投手 유희관

  • 이영미 | 스포츠 專門記者 riveroflym22@naver.com

    入力 2015-11-20 16:46: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傳說의 이름 새긴 賞牌, 집안 家寶로 모실 터”
    • 祭具의 達人…‘地獄에서 온 모닥불러’
    • “스피드? 쉽지 않아…새 球種으로 勝負”
    • “프리미어12 代表 除外? 내가 不足한 탓”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김형우 記者

    유희관의 2015年 시즌은 해피엔딩이었다. 페넌트레이스 막판에 下向勢를 탔으나 韓國시리즈 最終戰에서 優勝컵을 들어 올리며 활짝 웃었다. 올 시즌 유희관은 8月 中旬 발목 負傷으로 팀에서 離脫했을 때 말고는 꾸준히 로테이션을 消化하며 30競技에 先發로 나섰다. 스스로 定한 目標인 200이닝 達成에는 失敗했지만 그가 消化한 189와 3分의 2 이닝은 팀 內 最多였다. 18勝 5敗 平均自責點 3.94로 多勝 部門 2位. 土種 選手 中에선 多勝 1位다. 시즌 終了 後 親舊들에게 ‘優勝 턱’ 내느라 밤 時間이 바쁘다는 유희관을 만나 ‘키워드 토크’를 했다.

    유희관은 인터넷에 올라온 自身의 記事를 꼼꼼히 챙겨 보는 便이다. 댓글도 빠짐없이 읽는다. 惡性 댓글에 마음 傷하지 않느냐는 質問에 “그런 것들도 좋게 받아들인다. 처음엔 내 記事 댓글의 70~80%가 몸매나 外貌와 關聯된 指摘이어서 재밌게 읽었다”며 ‘쿨’韓 反應을 보였다. ‘유희왕’ ‘뒤態’ ‘바나나牛乳(缸아리牛乳)’ 等 그의 이름과 外貌에서 着眼한 別名과 修飾語가 줄을 잇는다. 느린 拘束(球速)과 關聯해선 ‘느림의 美學’ ‘地獄에서 온 모닥불러’란 別名도 있다. ‘모닥불러’는 흔치 않은 左腕 파이어볼러(강속구 投手)는 ‘地獄에서라도 불러온다’는 野球界 格言에 빗댄 것이다.

    유희관은 인터넷 世上에서 가장 무서운 건 ‘惡플’이 아니라 ‘무플’이라고 强調한다. “注目받는 걸 즐기는 내게 무플은 最惡의 狀況이다. 어떤 內容이든 댓글이 많아야 氣分이 좋다. 惡플조차 고마워하는 選手는 흔치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2015 시즌이 選手 生活 中 가장 華麗했다”고 말하는 유희관과의 聯關 檢索語 인터뷰를 始作한다.

    # 최동원賞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11月 11日, 釜山의 釜山銀行 本店에서 ‘第2回 최동원上 施賞式’이 열렸다. 受賞者는 두산베어스 左腕 에이스 유희관. 올 시즌 30競技에 先發 登板해 絶妙한 制球力과 빼어난 競技 運營으로 18勝 5敗, 平均自責點 3.94의 成跡을 記錄했다. 强速球 投手를 選好하는 KBO 리그에 ‘느림의 美學’ 트렌드를 선보이며 新鮮한 바람을 일으켰다.

    유희관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賞을 받아 監査하고, 先輩님의 대단한 業績에 累가 되지 않도록 熱心히, 模範을 보이는 選手가 되겠다”고 受賞 所感을 밝혔다. 어우홍 審査委員長은 “유희관이 모든 條件을 充足하진 못했지만, 正確한 컨트롤로 打者들의 타이밍을 빼앗으며 좋은 投球를 보였다”며 “功이 안 빠른 投手도 컨트롤(祭具)李 좋으면 勝數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줬다. 올해 두산이 正規 시즌 3位에 오르는 데 큰 功을 세웠다”고 稱讚했다.

    그러나 一部 野球 팬은 유희관의 首相에 問題가 있다며 不滿을 나타냈다. 强速球 投手로 代辯되는 최동원과 느린 공을 驅使하는 유희관은 이미지가 다르다는 理由에서다. 유희관의 말을 들어보자.

    “一旦 賞을 받는다는 건 氣分 좋은 일이다. 意味도 있고. 최동원 先輩를 野球選手로 만나진 못했지만 野球選手에게 그분은 神(神)이나 다름없다. 偶像을 넘어 傳說이다. 최동원上 受賞 條件엔 6가지 基準이 있다. 그러나 그 基準을 다 채웠다고 해서 최동원 先輩의 業績을 따라갈 수는 없다. 受賞者 選定은 審査委員의 몫이다. 내가 强速球 投手가 아니라는 걸 野球 팬은 다 안다. 최동원 先輩의 ‘鐵腕’ 이미지도 없다. 그럼에도 올 시즌 最多勝(19勝)에 오른 NC 다이노스 해커 選手에 이어 18勝으로 多勝 2位에 올랐다.

    내가 최동원床을 욕심낸 건 아니지만, 審査委員들이 選定해주셨으니 感謝한 마음으로 받았다. 萬若 나와 受賞 競爭을 벌인 양현종(KIA 타이거즈)李 받았으면 別問題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내가 받았기에 論難이 벌어졌다. 辱을 먹어도 甘受할 部分이다. 受賞者에 걸맞은 活躍으로 來年 시즌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더 努力하겠다. 賞金 2000萬 원을 받았는데 寄附도 하고, 좋은 곳에 쓸 생각이다. 傳說의 이름이 새겨진 賞牌는 집안의 家寶로 여기고 잘 모시겠다.”

    # 韓國시리즈 優勝

    一部에선 두산의 韓國시리즈 優勝을 ‘半쪽짜리’라고 貶下한다. 遠征賭博 波紋으로 三星 라이온즈 主戰投手 3名이 빠지는 바람에 두산이 쉽게 優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5次戰 양의지의 2打點 2壘打, 고영민의 2打點 適時打와 홈스틸, 정수빈의 쐐기 스리런 홈런 等을 묶어 三星을 13-2로 大破한 두산의 火力은 그 3名의 投手가 있었대도 막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意見이 支配的이다. 準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韓國시리즈를 거친 두산의 奇跡 같은 優勝은 롯데(1992年), 두산(2001年)에 韓國 프로野球 歷史上 3番째 記錄이다.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10月 31日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韓國시리즈 5次戰에서 勝利한 두산 先發投手 유희관이 김태형 監督에게 샴페인을 뿌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率直히 포스트시즌이 始作되기 前까지만 해도 내가 隱退하기 前에 韓國시리즈 優勝을 經驗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넥센을 相對로 準플레이오프를 거치며 팀이 漸漸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準플레이오프 4次戰에서 넥센에 7回까지 2-9로 끌려가면서 敗色이 짙었으나 7, 8, 9回에 打線이 暴發해 無慮 9點을 뽑아내면서 11-9로 逆轉勝하고 플레이오프에 進出했다. NC 다이노스와 맞붙은 플레이오프에선 3次戰에서 2-16으로 敗하는 等 守勢에 몰렸지만 4, 5次戰을 잡으면서 韓國시리즈 進出에 成功했다. 韓國시리즈에서는 4年 連續 優勝을 차지한 三星 라이온즈를 만나 14年 만에 4番째 優勝을 차지했다.

    準플레이오프에서 韓國시리즈까지 競技를 치르다보니 體力的으로 많이 힘들었다. 더욱이 正規시즌 막판부터 球威가 떨어지며 마운드에서 제 役割을 못한 나로선 韓國시리즈 5次戰 直前까지 心的 苦痛이 宏壯했다. 監督님은 그럼에도 날 繼續 마운드에 올리셨다. 萬若 5次戰에서 내 役割을 못했다면 韓國시리즈 優勝의 기쁨을 滿喫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以前까지 워낙 辱을 많이 먹은 터라 5次戰 先發登板 結果는 宏壯히 重要했다.”

    # 上衣 脫衣

    韓國시리즈 5次戰에서 유희관은 6이닝 동안 90具를 던지며 5被安打, 2四球, 1脫三振, 2失點 快投로 勝利를 따냈다. 데일리 MVP도 유희관에게 돌아갔다. 重要한 競技에서 好投를 펼치며 優勝까지 거머쥔 유희관은 優勝 세리머니로 上衣를 벗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화끈한 팬 서비스를 펼쳤다. 유희관의 上衣 脫衣 세리머니는 照會 數에서 韓國시리즈 關聯 다른 技士들을 壓倒할 만큼 視線을 모았고 제대로 興을 북돋웠다.

    “上衣 脫衣는 많은 苦悶 끝에 한 세리머니다. 시즌 開幕 前 미디어데이 行事 때 김현수가 ‘두산이 優勝하면 晞觀異形 上衣를 벗기겠다’고 弄談처럼 한 말이 기억났고, 韓國시리즈에 進出하면서 ‘或是나…’ 하며 萬一의 ‘事態’에 對備했다. 5次戰에서 우리 쪽으로 일찌감치 勝利가 기울어지자 選手團의 關心은 모두 내 上衣 脫衣에 쏠렸다. 그래서 마운드에서 내려간 뒤 로커룸에 들어가 트레이너와 함께 젖꼭지에 絆創膏를 붙이고 準備를 始作했다.

    率直히 내 몸매가 남에게 보여줄 水準이 아니지 않나. 저녁食事 時間에 TV로 競技를 보는 視聽者의 趣向도 考慮했다. 放送審議에 걸리면 안 될 것 같아 苦肉之策으로 重要한 部分을 가린 것이다(웃음). 오로지 미디어데이에서 한 約束을 지키겠다는 생각에 苦心하다 行動으로 옮겼는데, 以後 正말 많은 얘기를 들었다. 가장 많이 나온 얘기가 ‘運動 좀 해라’ ‘살 좀 빼라’다. 優勝 直後 隣近 호텔에서 열린 祝勝會에서 박용만 두산 會長님이 내가 上衣 脫衣한 모습이 ‘마치 절의 住持스님이 옷을 벗고 뛰는 것 같았다’고 해서 選手團이 爆笑를 터뜨렸다.”

    # 20勝, 200이닝

    올 시즌 내내 유희관은 ‘20勝, 200이닝’ 挑戰과 關聯한 質問을 많이 받았다. 그때마다 유희관은 “20勝은 내가 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只今은 너무 먼 얘기다. 하지만 200이닝은 꼭 達成하고 싶다. 負傷 없이 한 시즌을 꾸준히 던져야 達成할 수 있는, 큰 意味가 있는 記錄이기 때문”이라고 答했다. 土種 20勝 投手는 1999年 정민태(현대 유니콘스) 以後 16年 동안 나오지 않았다. 土種 投手 中 시즌 200이닝을 記錄한 것도 2007年 류현진(한화 이글스, 211이닝)李 마지막이다. 유희관의 올 시즌 目標는 둘 다 이뤄지지 않았다.

    “18勝으로 多勝 2位에 오르긴 했지만 시즌 막판 不振 탓에 20勝을 못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事實 발목 負傷을 當하기 前 15勝을 내달릴 때만 해도 남은 登板에서 20勝을 거두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봤다. 올 시즌 起伏 없이 꾸준하게 나 나름대로 에이스로서의 存在感을 드러낸 터라 自信도 있었는데 잠깐 동안 슬럼프에 빠지면서 잡을 수 없는 數字가 되고 말았다. 18勝도 어려운 일이었다. 來年에 또 그 數字를 記錄한다는 保障도 없지 않나. 올 시즌 正말 좋은 機會였는데…. 200이닝 達成도 마찬가지다. 지나고 나니 더 아쉽다.”

    # 프리미어12 國家代表팀

    10月 25日, 김인식 프리미어12 代表팀 監督은 賭博事件으로 波紋을 일으킨 三星의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 代身 장원준(두산) 임창민(NC) 심창민(三星)을 뽑았다. 多勝 2位 유희관은 名單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最終 엔트리 確定 때도 유희관은 苦杯를 맛봤다. 本人은 “代表팀에 拔擢된다면 家門의 榮光으로 알겠다”라고 했지만 代表팀 코칭스태프는 拘束이 느린 유희관을 國際大會 마운드에 세울 뜻이 없었다. 아무리 制球力 達人이라고 해도 球威가 弱하면 통하기 어렵다고 본 것.

    “내가 代表팀에 拔擢됐으면 오늘 ‘신동아’와 인터뷰하지 못했을 것이다(웃음). 結論은 내 탓 아니겠나. 不足한 面이 있어 選擇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김인식 監督님께 믿음을 주지 못한 것도 있었을 테고. 좋은 쪽으로 理解하려 했다. 올 시즌 韓國시리즈 優勝으로 멋지게 피날레를 裝飾했는데, 代表팀 가서 不振한 모습을 보이면 또 非難이 들끓고 그로 인해 올 시즌 내 努力과 成果가 다 묻힐 수도 있으니 이렇게 시즌을 整理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常務 時節부터 只今껏 쉼 없이 달려왔다. 더욱이 올 시즌은 例年보다 18競技 늘어난 144競技를 치르며 體力 負擔이 컸다. 비록 代表팀에선 뛰지 못했지만 來年 시즌을 잘 準備하라는 메시지라고 여기고 體力 回復에 重點을 두며 비(非)시즌을 보낼 計劃이다.”

    # 熱愛와 結婚

    “하루라도 빨리 結婚하고 싶다. 結婚한 選手들이 데려온 아이들을 보면 내가 더 좋아할 程度다. 내 아이가 생긴다면 正말 눈에 보이는 게 없을 것만 같다(웃음). 그런데 結婚은 正말 좋은 因緣으로 맺어져야 한다. 둘만 좋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요즘 거리를 돌아다니면 알아봐주시는 분이 正말 많다. 그러니 마음 便하게 戀愛하기가 어렵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가 없으니.

    시즌 中에 골프選手와 熱愛說이 났다(스캔들의 實相과 關聯해 유희관이 입을 연 것은 처음이다! 유희관은 시즌 中 프로골퍼 양수진과의 熱愛說에 휘말렸다). 어느 媒體에 寫眞이 찍혔고, 記者들로부터 이런저런 質問을 많이 받았다. 神奇한 건 熱愛說 直後 자연스럽게 整理가 됐다는 點이다. 그때만 해도 몇番 만나서 食事하는 사이 程度였는데 記事가 나오니까 서로 語塞해지고 부담스러워 더는 만날 수가 없었다. 아, 이래서 演藝人이 熱愛說 나면 안 되는구나 싶더라.”

    # 野球選手의 私生活

    유희관은 自身이 만나는 女性이 野球에 對해 깊은 知識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野球 팬을 自處하는 女性이라면 만나서 野球 얘기만 할 테니 野球를 ‘조금만’ 좋아하는 女性이길 바란다고 했다. 얘기가 나온 김에 野球選手들의 私生活에 對해 물었다. 遠征賭博 波紋 以後 프로野球 選手들의 私生活이 注目받고 있다.

    “運動選手도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라 私生活과 關聯해 操心해야 할 部分이 있다. 더욱이 프로野球는 大衆의 사랑을 많이 받는 種目이다. 어린아이들도 좋아하는 스포츠라 더 큰 責任感을 갖고 生活해야 한다. 그런 現實에서 遠征賭博 事件이 터진 건 같은 野球人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털사이트에 ‘유희관’을 치면 聯關檢索語로 ‘人性’李 뜬다. 승부욕이 철철 넘치는 내가 마운드에서 보인 行動 때문이다. 例를 들면 砲手인 양의지에게 내가 어떤 제스처를 取했다고 하자(유희관은 放送 畵面에 잡힌 모습 탓에 辱을 먹은 적이 있다). 그건 양의지에게 不滿을 表出한 게 아니라 祭具가 안 되는 部分과 關聯해서 信號를 주고받다가 나 自身에게 火를 낸 것이다. 그래도 中繼 中인 TV를 意識해서 操心했어야 했다. 나의 人性 問題가 擡頭되면서 苦悶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그런 視角으로 날 바라보는 視線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고 反省의 時間을 가졌다. 내 잘못이기 때문이다.”

    # 김태형 監督

    두산 베어스가 前任 송일수 監督을 單 1年 만에 更迭하고 김태형 監督을 迎入한 건 結果的으로 大成功이었다. 金 監督은 두산에 14年 만에 韓國시리즈 優勝컵을 안겼다. 그리고 國內 最初로 選手(1995年, 2001年)와 監督(2015年)으로 한 팀에서 優勝한 野球人이 됐다. 유희관이 생각하는 김태형 監督은 어떤 사람일까.

    “監督님이 처음 赴任했을 때 選手들을 모아놓고 ‘斗山다운 野球를 하자’고 하셨다. SK 코치로 있을 때 두산 選手들의 플레이를 보며 ‘허슬 두’의 이미지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스프링캠프 때도 野球場에서 野球場으로 移動할 때 모두 뛰어다녔다. 選手들에게 弄談도 잘하고 유머러스하지만 內面의 카리스마가 대단한 분이다. 시즌 開幕 前까지만 해도 ‘初步 監督’이란 꼬리票 때문에 監督님에 對해 不安한 視線이 많았지만, 두산 出身 監督이다 보니 팀에 對한 理解가 깊고 選手들을 잘 配慮하셨다.

    내가 正規시즌 後半期 접어들면서 不振을 거듭할 때 다른 監督이라면 날 아예 엔트리에서 除外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나를 韓國시리즈까지 끌고 가신 걸 보면 忍耐心이 엄청난 것 같다. 내가 成跡을 내지 못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다가오셔서 ‘고개 들어라. 優勝은 하늘이 定해주는 거니 成跡에 一喜一悲하지 마라. 네가 18勝을 못했다면 두산이 포스트시즌에 進出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어깨를 다독여주셨다.”

    # ‘니느님’ 니퍼트

    더스틴 니퍼트는 2011年 두산 베어스와 契約한 後 해마다 두 자리 勝數를 올렸다. 그러나 올 正規 시즌에선 6勝5敗, 平均自責點 5.10으로 不振했다. 게다가 負傷 等으로 3個月假量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올해 年俸이 150萬 달러. 歷代 外國人 最高 몸값이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에서 拔群의 活躍으로 두산 마운드를 지켜냈다. 넥센과의 準플레이오프 1次戰에서 7이닝 2失點, 플레이오프 1次戰과 4次戰, 韓國시리즈 2次戰과 5次戰에선 無失點 完璧投로 奮鬪했다.

    “니퍼트는 우리한테 外國人 選手 그 以上이다. 배울 點도 많고 選手들을 對하는 行動에서도 베테랑다운 무게感이 묻어난다. 두산과 5年째 因緣을 맺어 오면서 選手들도, 니퍼트도 서로 家族 같이 여긴다.

    니퍼트는 내게도 重要한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줬다. 2013年 5月 4日, 常務에서 除隊한 後 첫 復歸戰을 치른 날이다. 元來 그날은 니퍼트가 先發로 나설 豫定이었다. 그런데 니퍼트가 感氣 몸살로 몸져눕는 바람에 갑자기 내가 先發로 나가는 幸運을 얻었다. 蠶室 라이벌 LG와 ‘어린이날 더비’로 갖는 重要한 競技였다. 두산 팬들은 니퍼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내가 先發로 마운드에 오르니 여기저기서 失望하는 소리가 들렸다. 率直히 나도 내 공에 自身이 없었다. 常務에서 좋은 活躍을 했지만 프로 마운드이고, 除隊 後 復歸戰 첫 舞臺라 절로 緊張됐다. 그런데 그 競技에서 無失點으로 프로 데뷔 5年 만에 첫 勝을 챙겼다. 그날 競技를 본 LG 팬들이 ‘야, 都大體 유희관이 뭐 하던 애냐?’고들 했다더라.”

    # 상무 入隊

    유희관은 2009年 두산 베어스 2次 6順位 指名을 받고 入團했지만, 2010年 시즌까지 별다른 活躍을 보여주지 못했다. 結局 2010年 시즌을 마치고 入隊한다.

    “萬若 그때 상무에 入隊하지 못했다면 放出됐을지도 모른다. 상무 入隊는 내 野球 人生의 마지막 ‘끈’이나 마찬가지였다. 入隊 前, 두산에서 機會는 줄곧 있었다. 그러나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大學 때처럼 自信感 있게 던지질 못했다. 차라리 제대로 던져서 얻어맞았다면 後悔라도 안 했을 텐데, 마운드에만 오르면 떨리고 緊張됐다.

    그런 狀況에서 正말 運 좋게 常務에 들어갔고, 줄곧 先發로 投入되면서 漸次 내 功에 對해 自信感이 붙었다. 내 공을 믿을 수 있었다. 그렇게 常務에서 左腕 에이스로 猛活躍했고 그게 팀 復歸 後 至大한 影響을 미쳤다. 復歸할 때만 해도 내 目標는 시즌 開幕 엔트리 進入이었다. 當時엔 엔트리 進入 自體가 不透明했기에 目標價 素朴할 수밖에 없었다. 2013年 5月 4日 니퍼트의 感氣가 나를 살려준 셈이다.”

    # 느림의 哲學

    유희관 하면 ‘느림의 美學’이란 말이 뒤따른다. 그는 ‘느림의 哲學’도 實踐한다. 프로野球에서는 보기 드물게 時速 74㎞의 커브와 最高 拘束 138㎞의 直球를 던지는데, 이런 스피드를 가진 投手가 프로에서 통한다는 게 神奇할 程度다. 그만큼 制球力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피드가 안 나오는 건 내 努力이 不足한 탓이다. 아마추어 때는 그 스피드로 充分히 통했고, 勝利 投手가 되면서 滿足하고 安住하던 게 내 발목을 잡았다. 나도 빠른 볼을 던지고 싶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되는 게 아니더라. 萬若 내가 140~150㎞의 공을 던졌다면 只今과 같은 關心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쉽게 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린 공으로 强打者들을 堂堂히 相對하는 모습에 팬들이 더 應援을 보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피드를 올리려는 努力보다는 새로운 舊種을 開發해 올 시즌 내 공에 익숙해진 打者들을 또 다른 武器로 相對하고 싶다.”

    # 손민한

    “내 ‘느림의 철학’ 이상향은 절실함이 있는 야구”

    김형우 記者

    유희관은 NC 다이노스 손민한을 보며 많은 ‘느낌標’를 찍었다고 말한다. 손민한은 올 시즌을 끝으로 隱退를 宣言했지만, 曲折 많은 마흔 살 野球 人生을 통해 後輩들에게 ‘나이는 數字에 不過하다’는 메시지를 마운드에서 보여줬다. 그런 손민한을 유희관은 “존·警·韓·다”고 했다.

    “只今은 美國으로 떠났지만 올 시즌 우리 팀에 앤서니 스와잭이란 外國人 選手가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活躍을 펼친 選手다. 그런데 그는 自身이 메이저리그 出身이란 생각만 했다. 韓國 舞臺에서 뛰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韓國 野球에 適應하지 못했고 結局 失敗하고 돌아갔다.

    우리 팀을 거쳐간 外國人 選手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切實한 心情으로 韓國 野球 안으로 들어오는지에 따라 成功과 失敗로 나뉘는 것 같다. 니퍼트가 꾸준히 成跡을 내는 것은 그가 韓國을, 韓國 野球를 좋아하고 尊重하기 때문이다. 스와잭은 그런 部分이 不足했다. 切實함은 누구에게나 重要한 게 아닐까. 손민한 先輩에겐 늘 切實함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런 點을 배우고 싶고, 늘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 宿題

    유희관에게 2015年 시즌은 ‘多事多難’ ‘버라이어티’ ‘波瀾萬丈’ ‘迂餘曲折’로 整理된다. 20勝을 노릴 만큼 上昇勢를 持續하다가 負傷과 스캔들, 슬럼프로 내리막길로 치달았고 韓國시리즈에서 以前의 유희관으로 돌아왔다. 그는 “優勝에 따른 기쁨, 후련함에도 來年 시즌 또 다른 宿題가 생겼다는 點에서 마냥 緊張을 늦출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 ‘宿題’가 뭐냐고 묻자, 곰곰이 생각하더니 來年 스프링캠프 때 答을 해주겠다고 했다. 果然 그 ‘宿題’는 무엇일까.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