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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者都市의 劣等感 國際都市의 고단함|신동아

富者都市의 劣等感 國際都市의 고단함

沪 阿片戰爭이 바꿔놓은 漁村

  • 글 · 寫眞 김용한 | yonghankim789@gmail.com

    入力 2015-11-20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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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하이에서 눈치 없는 말을 하면 “너 外地人이지?”라는 핀잔을 듣는다. 그만큼 상하이人들은 自身을 中國과는 別個의 存在로 여긴다. 그렇다고 이 尖端 都市의 삶이 華麗한 것만은 아니다. 상하이에서 집 한 채를 마련하려면 月給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50年을 모아야 한다.
    부자도시의 열등감 국제도시의 고단함
    “어떻게 여기서 女子親舊를 만들 수 있지?”

    상하이 人民公園을 散策하다 만난 西洋 親舊는 내게 뜬금없는 質問을 던졌다. 아니, 尹奉吉 義士가 도시락 爆彈을 던진 훙커우 公園, 由緖 깊은 歷史의 現場에서 웬 뚱딴지같은 소리지? 녀석은 人民公園에 가면 女子親舊를 사귈 수 있다는 所聞을 듣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 밖의 具體的인 情報는 全혀 몰랐다. 그저 所聞 하나만 듣고 오다니! 西洋人의 冒險精神과 戀愛에 對한 熱情에 感歎했다. 100年 前 西洋人들도 一攫千金의 所聞만 믿고 상하이를 찾았겠지.

    ‘絶對甲’ 상하이 虎口

    何如튼 神奇한 얘기였다. 周圍를 둘러봤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 아저씨들이 여러 揭示物 앞에서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揭示物에는 사람들의 身上明細가 적혀 있다. 이름, 나이, 學歷, 經歷, 키 等等. “여기는 그저 人力市場 같은데? 職業 求하는 사람들의 情報 같아.” 이렇게 말하자마자 불현듯 깨달았다. 人力市場은 人力市場인데, 勞動力이 아니라 配偶者를 求하는 거라면? 저 많은 情報가 結婚 情報라면? 아줌마, 아저씨들이 仲媒쟁이라면?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다.

    다시 찬찬히 揭示物을 훑어봤다. 가장 먼저 强調되는 것은 戶口다. 상하이 女子는 ‘後뉘’로 따로 分類했고, 다른 地域 女子는 虎口 말고 自身의 長點을 어필했다. ‘창저우의 재주 있는 女子(常州才女)’는 피아노 10級이고 全國靑年聲樂 1等賞을 탔다. 아버지는 ‘外地’의 公安, 어머니는 政府의 副局長으로 집안도 빵빵하다. 저장省 女子는 父母가 事業家로 집도 있고 車도 있다며 깨알같이 적어놓았다. 勿論 나이가 제법 많은 女子들도 있지만, 條件 좋은 20代 初盤 女子도 많았다. 中國 女子는 大體로 20代 中盤에 結婚한다.



    부자도시의 열등감 국제도시의 고단함
    新郞감 候補 亦是 상하이 戶口를 갖고 있는지가 重要했다. 外地 女子가 상하이 男子를 찾는 건 當然했다. 상하이 戶口를 얻기 위해서니까. 意外는, 상하이 女子가 상하이 男子를 찾는 거였다. 이 境遇는 戶口가 問題가 아니다. 같은 上下이 사람이 아니면 結婚하지 않겠다는, 상하이 女子들의 固執이 읽힌다.

    結婚市場에서 상하이 虎口, 상하이人이란 어떤 存在인지 感을 잡을 수 있었다. 아, 그 西洋 親舊는 어떻게 됐냐고? 中國 女子들이 男子親舊가 아니라 眞摯하게 結婚 相對를 찾고 있다는 것에 于先 失望. 그리고 콧대 높은 中國 女子들의 까다로운 條件을 맞출 수 없어 絶望했지.

    상하이의 略稱은 ‘江 이름 號’字다. 松江(松江) 下流 地域인 상하이를 指稱하는 同時에, 이 地域의 漁夫들이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筒발을 뜻한다. 물고기를 잡고 살던 漁村. 바로 最尖端 國際都市 상하이가 지닌 ‘出生의 祕密’이다.

    戰爭이 膳物한 繁榮

    ‘三國志演義’의 愛讀者라면 松江농어라는 말이 귀에 익을 것이다. 曹操가 잔치를 열었을 때 不請客 道士 좌자가 나타나 “잔치라면 松江농어 程度의 別味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딴지를 걸었다. 동진의 大司馬(國防部 長官) 壯한(張翰)은 故鄕의 농어가 그리워 洛陽의 벼슬을 辭職하고 歸鄕했다. 이때 壯漢은 “가을바람 불어와 景致 아름다울 때, 五江에는 농어가 살찐다네(秋風起兮佳景時, 吳江水兮魚肥)”라고 노래했다.

    松江농어는 松江의 자랑이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오늘날의 超巨大 國際都市 상하이는 元來 농어밖에 자랑할 게 없는 조그만 漁村이었다. 淸나라 末期까지 상하이에는 열 갈래의 道路밖에 없었고, 隣近의 쑤저우가 中心이라 ‘작은 쑤저우(小蘇州)’라고 불리는 것을 榮光으로 여겼다.

    상하이의 發展은 阿片戰爭(1840~42)에서 비롯됐다. 英國은 阿片戰爭을 ‘自由를 위한 戰爭’이라고 包裝했지만, 實狀 그 自由란 英國이 中國에 阿片을 팔아먹을 自由였다. 英國 國會가 阿片戰爭에 對한 決議案을 論議할 때 토리黨員 윌리엄 글래드스톤은 “起源과 原因을 놓고 볼 때 이것만큼 不正한 戰爭, 이것만큼 英國을 不名譽로 빠뜨릴 戰爭을 나는 이제껏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批判했다. 議會 投票 結果는 贊成 271票 代 反對 262票. 아홉 票 差異로 阿片戰爭 決議案이 通過되자 글래드스톤은 “262… 英國 良心의 무게가 고작 이 程度란 말이냐!”라고 恨歎했다.

    英國은 當代 最强의 軍事力으로 淸軍을 擊破하고, 난징條約을 통해 莫大한 經濟的 利得과 租界地를 얻었다. 英國은 난징條約을 記念해 상하이 中心街를 난징루(南京路)라고 이름 붙였다. 恥辱의 이름이지만 난징루는 世界的인 繁華街로 成長한다. 人類 歷史上 가장 醜惡한 戰爭인 阿片戰爭은 상하이의 開港과 繁榮을 가져왔다.

    開放 後 20年도 안 돼 상하이 輸出額은 中國 貿易總額의 折半을 차지했다. 1870年에 이르니 中國 最初이자 最大의 貿易 港口인 광저우는 상하이에 비하면 구멍가게처럼 보이게 됐다. 當時 광저우가 中國 貿易의 13%에 머무른 反面, 상하이는 63%로 中國 貿易을 獨占하다시피 했다.

    상하이는 電氣, 水道, 戰車, 가스燈 等 最尖端 技術과 文物을 西洋과 거의 同時에 導入했다. 1895年 뤼미에르 兄弟가 世界 最初로 映畫를 上映한 지 半 年 만에 상하이도 映畫를 上映했다. 1930年代 상하이 사람들은 재즈를 들으며 댄스홀에서 찰스턴 춤을 췄다.

    ‘I Shanghai You’의 뜻

    檢索 엔진인 固有名詞 ‘Google’이 ‘檢索한다’는 뜻을 갖는 것처럼, 英語에서는 자주 名詞가 動詞로 活用된다. 그렇다면 ‘상하이한다(shanghai)’라는 動詞는 무슨 뜻일까.



    ① [바다 俗語] (船員으로 만들기 爲해) 痲藥 또는 술로 意識을 잃게 한 다음 배로 끌어들이다, 誘拐하다

    ② [口語體 俗語] (어떤 일을) 속여서 하게 하다, 强制로 시키다



    참으로 赤裸裸한 表現이다. 英國이 痲藥으로 中國의 精神을 잃게 만들고 억지로 상하이를 빼앗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逆說的으로 中國의 歷代 王朝가 全盛期를 맞이할 때, 상하이는 窮僻한 시골이었다. 中國이 屈辱을 當할 때, 상하이는 뉴욕, 런던에 이어 世界 3位의 金融 中心地로 華麗하게 피어났다. 이처럼 상하이의 興亡盛衰는 始作부터 帝國主義 列强과 동기화하는 한便 中國과는 非同期化했다.

    이런 歷史的 背景 때문에 상하이人은 스스로를 他 地域 中國人과 다른 存在로 여긴다. 상하이에서는 누군가가 눈치 없는 말이나 답답한 行動을 하면 “너 外地人이냐?”라고 핀잔을 준다. 弄談이지만 外地人을 바라보는 상하이 사람들의 視線이 克明하게 드러난다. 그들에게 外地人이란 ‘멍청하고 덜떨어졌으며 民弊나 끼치는 人間’이다.

    생각해보면 正말 아이러니하다. 美國이 移民者의 나라인 것처럼 상하이 亦是 移民者의 都市다. 상하이 解放 直後 상하이 戶籍上 人口는 554萬 名이었는데 그中 元來 故鄕이 상하이人 사람은 23萬 名에 不過했다. 오늘날 人口 2415萬 名 中에 眞짜 상하이 出身은 1%도 안 된다. 自身도 外地 出身이면서 조금 일찍 와서 자리 잡았다고 새로 온 外地人을 差別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格이다.

    1% 안에 드는 眞짜 상하이 出身이라도 자랑스러울 게 없다. 상하이의 略稱 ‘湖’字를 다시 떠올려보자. 이 말 속에는 “너희가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江에서 물고기나 잡아먹고 살던 村놈에 不過하지!”란 속뜻이 담겼다. 본적이 상하이라면 깡촌 漁夫에 不過하고, 상하이가 아니라면 結局 外地人과 아무런 差異가 없다. 상하이人 그 누구도 元來 出身 앞에 떳떳할 수가 없다. ‘湖’는 상하이의 짧은 歷史, 얄팍한 文化, 뼈대 없는 出身을 指摘한다.

    부자도시의 열등감 국제도시의 고단함

    世界的인 繁華街 난징루(南京路), 20世紀 前半 中國의 名作 映畫를 많이 輩出한 상하이의 映畫博物館, 人民公園에 나붙은 求婚 揭示物(왼쪽부터).

    機會主義的 屬性

    상하이 사람들이 ‘湖’ 代身 使用하고 싶어 하는 略稱은 ‘밝힐 新(申)’字다. 戰國四君子(戰國四君子) 中 한 名인 春申君(春申君)에서 따온 글字다. 상하이人은 約 2500年 前 楚나라 宰相 황헐이 상하이 地域에서 春申君으로 封해졌다고 主張한다. 이 略稱에 따르면 상하이는 悠久한 歷史, 高貴한 血統, 燦爛한 文化的 傳統을 가진다.

    外地人을 無視하고, 스스로를 상하이語를 쓰는 文化人이라고 誇示하는 상하이仁義 態度는 事實 劣等感의 産物이다. 日淺한 歷史와 文化는 상하이仁義 正體性을 確實히 심어주지 못했다. 開港 以後 상하이는 土박이에게도, 最初의 移住民에게도 낯설었다. 西洋 鬼神들이 판을 깔고 主導하는 世上, 하루가 다르게 變하는 都市 속에서 살면서 그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으리라.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또 어디인가?’ 그러나 答을 얻을 수 없었다.

    結局 상하이人은 自身과 남을 區分 짓고 나서야 正體性을 얻었다. 自矜心을 갖지 못하고, 남을 깔보고 나서야 自身을 높일 수 있었다. 外地人과 다른 存在이기 위해 그들은 많은 돈을 벌어야 했고, 靈惡해야 했고, 상하이語를 써야 했다.

    劣等感이 剛한 사람은 强한 者에게 弱하고, 弱한 者에게 强하다. 상하이仁義 機會主義的 屬性은 베이징과 外國에 對한 態度에서 드러난다. 歷史와 傳統을 자랑하는 首都 베이징인은 상하이人이 말하는 ‘外地人’의 範疇에서 列外가 된다. 또한 상하이는 外國에는 놀라울 程度로 開放的이다. 外地人은 無視하면서 外國人이라면 四足을 못 쓰는 상하이仁義 二重的 態度를 中國人은 이렇게 諷刺한다. “광둥人은 돈이라면 무슨 돈이든 벌고, 베이징인은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떠들고, 東北人은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하고, 상하이人은 外國이라면 어느 나라든 간다.”

    中國人은 손님 待接을 매우 重要하게 여긴다. 그러나 상하이人은 손님 待接은커녕 오히려 外地人이라고 깔보니 憤痛이 터질 수밖에. 따라서 中國人은 大體로 “상하이는 좋지만, 상하이 사람은 싫다”고 한다. 史學者 二重톈은 이를 “상하이 外部 사람들은 上下이라는 都市는 過大評價하면서, 상하이 사람은 過小評價하는 傾向이 있다”고 에둘러 말했다. 어느 留學生이 상하이에서 일하는 外地 出身 아가씨에게 “따가운 差別에도 不拘하고 상하이가 魅力的인 理由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答했다.

    “상하이는 選擇의 幅이 넓어. 自己가 願하는 일을 할 수 없더라도 一旦 機會는 주어진다는 거지. 재미있는 콘텐츠도 많고. 게다가 國內는 勿論 海外 各地에서도 몰려드니까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무엇보다 中國의 다른 都市에 비해 宏壯히 자유로워. 國際都市라 사람들의 생각도 많이 깨어 있는 便이지. 결론적으로 상하이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渴求하고, 그에 挑戰하는 中國人들의 파라다이스野!”

    부자도시의 열등감 국제도시의 고단함

    밤에도 人波가 넘치는 예원상성(豫?商城).



    상하이式 貧困

    부자도시의 열등감 국제도시의 고단함

    상하이 美術館 展示 作品, 物化(物化) 聯作 中 한 作品.

    開港 以後 상하이는 매우 危險하지만 크게 成功할 수도 있는 馬島(魔都)였다. 外國人과 中國人 모두 상하이에서는 本國의 法律과 道德에 拘礙받을 必要가 없었다. 全 世界의 商人과 冒險家가 몰려든 상하이에는 奇妙한 活力이 넘쳐흘렀다. 무엇이든 可能한 魔道의 神通力에 對해 사람들은 말했다.

    “愚鈍한 사람이라도 상하이에서 한番 살아보면 賢明하게 된다. 성실한 사람이라도 상하이에서 한番 살아보면 狡猾해진다. 못생긴 사람이라도 상하이에서 한番 살아보면 아름다워진다. 일자 눈썹에 납작코人 女子라도 상하이에서 며칠만 지내면 어엿한 貴婦人이 된다.”

    近代 상하이에는 “가난이 부끄럽지, 性賣買는 부끄럽지 않다”는 말이 나돌았고, “좋은 男子는 일하지 않고 좋은 女子는 社長님에게 시집간다”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상하이가 얼마나 일찍부터 資本主義에 물들었는지 克明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날 ‘스테로이드 注射를 맞은 뉴욕’이라고 불리는 상하이는 그야말로 미친 速度로 疾走하고 있다.

    急速한 資本主義化만큼 兩極化도 빠르다. 상하이의 賃金과 輸入은 他 地域에 비해 높지만, 同時에 物價도 비싸고 消費의 誘惑도 크다. 名目賃金은 높지만 支出이 많아 實質的으로는 더 가난해지는 現象을 中國에서는 ‘상하이式 貧困’이라고 한다.

    經濟成長期에 돈을 버는 가장 效率的인 方法은 不動産 投資다. 外國人 投資者와 中國 不動産業者들의 投機로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정작 상하이人은 상하이에서 살 자리가 없어진다. 갈수록 市 中心에서 邊두리로 밀려나는 상하이人은 自嘲的으로 말한다. “內部循環線 안에서는 英語로 말하고, 內部循環線과 外部循環線 사이에서는 標準語를 쓰며, 外部循環線 밖에서는 상하이語를 한다.”

    2009年 ‘워쥐’(蝸居, 달팽이집)라는 상하이 드라마가 큰 人氣를 끌었다. 달팽이집처럼 좁디좁은 집에서 벗어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成功談이다. 왜 이 드라마가 큰 人氣를 끌었는지는 明確하다. 작은 空間에서 살아가는 哀歡에 共感하고, 번듯한 내 집을 갖는 모습을 보며 代理滿足한다.

    그러나 現實은 차갑다. 상하이 都心의 아파트 平均 價格이 300萬 위안(藥 5億4000萬 원)으로 상하이 勤勞者 年平均 賃金(藥 5萬8000위안)의 約 51倍 水準이다. 月給의 折半을 고스란히 貯蓄해도 집 사는 데 100年, 한 푼도 안 쓴다 해도 50年이 걸린다.

    追憶 속 黃金時代

    外部 사람들의 羨望과 嫉妬를 받는 상하이지만, 그 속에서 사는 것은 實狀 매우 고단하다. 상하이의 榮光과 大多數 상하이仁義 日常은 따로국밥이다. 臺灣 知識人 禹샹後이는 國際金融의 中心地를 꿈꾸는 상하이를 批判했다.

    “國際的인 公信力을 갖추지 못하고, 貨幣와 情報의 自由化가 이뤄지지 못하고, 法制度 構築되지 못했으며, 政府가 청렴하지도 않고, 效率性이 떨어지고, 社會의 信賴度마저 낮은 國家는 決코 國際金融의 中心地가 될 수 없다.”

    이를 비웃듯 中國은 상하이-홍콩 證市 聯動 시스템인 후강퉁을 出帆시켰다. 많은 期待와 憂慮를 同時에 모은 中國 證市는 반짝 上昇 後 다시 暴落했다. 일찍이 ‘中國 證市 콘서트’를 쓴 한우덕 ‘中央日報’ 記者는 現在 中國 株式이 하나도 없다며, 中國 證市의 屬性 3가지를 警告한다. 첫째, ‘中國 經濟의 良心’인 雨徵禮 敎授의 批判대로 中國 證市는 內部者 去來, 虛僞 公示, 株價造作 等 不法의 溫床이며 巨大한 賭博場이다. 둘째, 國家가 나서서 證市를 歪曲한다. 셋째, 株價가 市場 狀況을 反映하지 못하고 “詐欺꾼과 投機꾼이 어떻게 어울려 노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文化는 어떨까. 人民公園 地下의 風景가(風情街)는 1930年代에 對한 상하이의 愛着을 잘 보여준다. 양우記念館의 編輯者 친링은 상하이의 1930年을 ‘黃金時代’라고 回顧한다. “이 時代는 自由, 開放, 先進이라는 3가지 키워드로 壓縮된다. 西方의 새로운 文化와 科學技術을 받아들이려는 開放的인 기운이 넘쳐흘렀다.”

    20世紀 100代 中國語 映畫 中 數十 便은 20世紀 全般 상하이에서 撮影됐다. 그러나 現代 상하이는 예전만큼의 活力이 없다. 새로운 것을 創造하지 못하고 옛 映畫만 回顧한다. 經濟에 相應하는 水準의 文化를 創造하지 못한다는 評을 받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 中國 現代 藝術의 異端兒 아이웨이웨이(艾未未)의 事例를 살펴보자.

    상하이는 상하이를 이겨야

    부자도시의 열등감 국제도시의 고단함

    開港 前 상하이의 모습을 只今도 간직한 상하이 郊外地域 走者자오(朱家角). 運河마을의 情趣를 느낄 수 있다.

    2011年 1月 11日 밤, 상하이 政府는 아이웨이웨이의 상하이 스튜디오를 奇襲 撤去했다. 아이웨이웨이는 베이징 올림픽 競技場을 設計한 名望 있는 藝術家로, 自由와 人權을 彈壓하는 中國 政府에 맞서왔다. 그中 하나가 양지아(楊佳) 事件을 告發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은 것이다. 양지아 事件은 상하이 公安이 양지아를 自轉車 도둑으로 誤解해 일어난 事件이다. 取調 中 性不具가 된 양지아는 補償 要求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警察署에 亂入해 警察 6名을 殺害했다.

    아이웨이웨이의 상하이 스튜디오는 元來 상하이 高位 官吏가 文化特區를 만들기 위해 아이웨이웨이를 特別 招聘해 지은 것이다. 官吏들은 그의 建築에 熱狂했고, 建築 過程이 모두 政府의 監督 아래 進行됐다. 그러나 아이웨이웨이의 告發이 거슬린 상하이 政府는 突然 ‘스튜디오가 許可를 받지 않은 不法 建築物이므로 撤去해야 한다’고 通報했다.

    才氣潑剌한 아이웨이웨이는 當局을 嘲弄하는 ‘撤去 記念 파티’를 열었다. 파티에서 사람들은 상하이의 名物 민물게를 먹었다. 中國語로 민물게는 ‘虛셰(河蟹)’로, 후진타오의 슬로건 ‘虛셰(和諧, 弔花)’와 發音이 같다. 當局의 脾胃를 거스르면 許可받은 建物도 不法建築物로 바뀌는 社會. 이것이 當局이 그렇게도 떠들어대는 ‘調和’인지 묻는 퍼포먼스였다. 상하이 警察은 파티 前 아이웨이웨이를 家宅軟禁했다가 파티 다음 날 풀어줬다.

    國際的이고 자유로워 보이는 상하이, 그러나 裏面에선 表現의 自由가 徹底히 彈壓받고 政府에 對한 挑戰이 許容되지 않는다. 상하이 美術館을 運營하는 한 큐레이터는 말한다. “홍콩은 아시아 美術의 中心地로 떠오르고 있어요. 홍콩 政府는 美術館의 稅金을 減免해주고, 中國처럼 이런저런 規制를 거의 두지 않지요. 中國이 經濟成長을 이루면서 中華圈 上流層 美術 愛好家들의 購買力이 홍콩으로 몰려가는 趨勢입니다.”

    부자도시의 열등감 국제도시의 고단함
    김용한

    1976年 서울 出生

    연세대 物理學科, 카이스트 Techno-MBA 專攻

    前 하이닉스반도체, 國防技術品質院 硏究員


    中國처럼 이런저런 規制가 거의 없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充分히 斟酌해볼 수 있다. 상하이 出版界 亦是 “99卷의 좋은 冊을 抛棄할지언정 나쁜 冊은 한 卷도 내지 않겠다”는 愼重한(?) 立場이다. 이런 文化的 風土에서 活力이 생길 理 없다. 中國의 敎育學者 양둥핑은 말한다.

    “상하이의 競爭 相對는 런던이나 뉴욕, 도쿄가 아니다. 상하이가 이겨내야 할 相對는 상하이 自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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