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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賤役 金正日 暗殺 試圖 “爆發 때 盟員 8名 死亡”|新東亞

龍賤役 金正日 暗殺 試圖 “爆發 때 盟員 8名 死亡”

第3國 亡命 反北組織 朝鮮民主統一救國戰線

  • 송홍근 記者 | carrot@donga.com

    入力 2015-11-19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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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용천을 다 날려버려라’ 命令”
    • 國精院, 美 CIA 等과 連繫해 工作活動
    • 北 高位人士 20餘 名 美國 亡命시켜
    • 러시아 居住權 얻으려 체첸 戰爭 參戰
    용천역 김정일 암살 시도 “폭발 때 맹원 8명 사망”

    北韓 龍賤役 爆發 大慘事. 勞動新聞

    2004年 4月 22日 午後 1時께 平安北道 龍川郡 용천驛에서 爆發事故가 일어났다. 김정일이 列車를 타고 中國에서 돌아오던 때다. 爆藥을 실은 列車에 電氣 刺戟이 傳해지면서 連鎖 暴發한 것으로 알려졌다.

    朝鮮中央通信은 “1t짜리 爆彈 100餘 個가 同時에 한 地點에 떨어진 것과 같은 威力”이라면서 “剛한 爆音과 暴風으로 實名하거나 귀가 먹은 사람이 많고, 爆發 地點 1㎞ 周邊은 廢墟가 됐다”고 밝혔다. 김정일의 動線(動線)에 어떻게 爆發物이 設置될 수 있었을까.

    2011年 위키리크스가 暴露한 바에 따르면, 金正日은 龍賤役 爆發事件을 暗殺 試圖로 믿었다. 이 같은 事實은 2009年 2月 26日 현정은 現代그룹 會長이 캐슬린 스티븐스 當時 駐韓 美國大使를 만나 김정일과의 對話 內容을 說明한 자리에서 밝혀졌다.

    朝鮮民主統一救國戰線 幹部 A氏에 따르면 용천驛에서 爆發事故가 났을 때 朝鮮民主統一救國戰線 盟員(盟員) 8名도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러시아 亡命人士 中心 結成


    朝鮮民主統一救國戰線(以下 救國戰線)의 活躍相을 살펴보기 前에 이 組織의 歷史를 알아보자.



    1992年 救國戰線에 參與하는 音樂家 精麤(1923~2013)는 1957年 10月 17日 모스크바大 廣場에 서 있었다. “北韓에 金日成 崇拜가 있다는 게 事實 아닌가. 蘇聯에서도 스탈린을 格下한다. 獨裁는 마르크스 社會主義를 배반하는 것이다.” 靑年 精麤의 외침이 쩌렁쩌렁했다. 光州 出身인 그는 1946年 社會主義革命 雰圍氣가 高調되던 北韓으로 올라갔다. 北韓은 이 天才 音樂家를 버렸다. 그는 1958年 카자흐스탄에서 亡命生活을 始作해 2013年 알마티에서 死亡했다.

    精麤는 末年에 北韓 獨裁政權을 打倒하겠다고 나섰다. 박갑동, 이상조, 허진 等과 救國戰線을 結成한 것. 박갑동은 남로당 出身으로 박헌영의 側近이다. 6·25戰爭 때 北韓으로 넘어가 要職을 맡았으나 1953年 남로당 系列 肅淸 때 박헌영 一黨으로 分類됐다. 死刑執行 待機 中 1956年 釋放됐으며 이듬해 脫出해 日本 도쿄에 定着했다. 이상조는 蘇聯 駐在 北韓大使로 일하다 1957年 蘇聯에 亡命했다. 休戰會談 때 北側 代表였다.

    이들 外에 장학봉(前 北韓 軍官學校 副校長), 박영빈(前 勞動黨 組織委員會 委員), 심수철(蘇聯軍 出身), 정상진(前 北韓 文化性 浮上), 이춘백(前 北韓軍 將星) 等 第3國에 亡命한 人士들이 亡命政府를 構成해 北韓 政權을 打倒하려 했다. 救國戰線은 韓國 國家安全企劃部(現 國家情報院)와 美國 中央情報局(CIA)의 支援도 받았다. 第3國에 亡命한 北韓 人士들은 B氏를 媒介로 황장엽(1923~2010) 前 北韓 勞動黨 祕書와도 連結됐다. 黃氏는 亡命政府를 세운 뒤 김정일을 除去하려 했다. 김정일을 除去하고 亡命政府 人士들이 北韓에 들어가 政權을 잡은 後 南北統一을 推進한다는 構想이었다.

    救國戰線의 上層部를 形成한 亡命人士는 20名假量이다. 다음은 精麤의 生前 證言이다.

    “光復 前 蘇聯에 있다가 北韓으로 들어간 사람이 500名쯤 된다. 北韓이 共和國을 세울 때 主軸이 된 사람들이다. 蘇聯에서 指示한 대로 스탈린주의 北韓을 만든 張本人들이다. 北韓에 들어가서도 蘇聯 國籍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은 蘇聯系 肅淸 때 죽지 않고 亡命할 수 있었다.”

    “安企部 工作金으로 學校 세워”


    1957年 모스크바대 半(反)김일성 示威는 蘇聯으로 亡命한 人士들과 精麤 같은 留學生들이 힘을 합쳐 일으킨 것이다. 蘇聯 駐在 北韓大使이던 이상조는 허진과 함께 1992年 結成된 救國戰線에서 核心 役割을 했다. 이상조는 1956年 이른바 8月 宗派事件 때 蘇聯의 도움을 받아 金日成을 受賞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려다 失敗한 人物이다.

    허진은 1989年 서울을 訪問해 노태우 當時 大統領을 만나기도 했다. 複數의 救國戰線 人士에 따르면 허진은 安企部가 工作費로 준 돈으로 新聞社를 引受하는가 하면 작은 大學을 세우기도 했다.

    한 人士는 “工作費로 준 돈을 橫領한 셈”이라고 말했다. C氏는 “救國戰線에 준 게 아니라 허진에게 준 것이라고 했다. 허진이 그 돈으로 알마티에 있는 新聞社를 샀다. 新聞社를 1年쯤 하다가 말고 모스크바에 學校를 세웠다”고 說明했다. 事實이라면 韓國 政府가 北韓 革命에 使用하라고 支援한 돈의 一部가 虛套로 쓰인 셈이다. 複數의 救國戰線 人事는 허진은 安企部, 박갑동은 CIA의 支援을 받았다고 한다. 박갑동은 朴正熙 大統領과도 數次例 만났으며, 2005年 조지 W 부시 美國 大統領 就任式에도 參席했다.

    A氏는 옛 蘇聯 ○○○共和國에서 結成된 救國戰線 ○○○同志會의 責任者였다. 허진의 指導를 받았다. 나중에 救國戰線 ○○支部長을 맡았다. 韓國에 들어와 定着한 唯一한 救國戰線 人士다. 現在 60臺로 40代 初盤부터 救國戰線에서 活動했다.

    救國戰線은 모스크바, 하바롭스크를 비롯해 옛 蘇聯 및 自治共和國에 下部 組織을 두었다. 救國戰線 指導部가 60~70代일 때 40代들이 現場에서 活躍한 것이다.

    ‘신동아’는 A氏의 證言을 多角度로 檢證했다. 未來戰略硏究院(院長 구해우)李 統一部의 依賴를 받아 救國戰線 核心 人士를 비롯해 第3國에 亡命한 北韓 人士들의 證言을 錄取한 記錄이 있다. 이 錄取는 外部에 公開되지 않았는데, A氏의 證言은 救國戰線과 關聯한 다른 亡命人士들의 證言과 뼈대와 디테일이 一致했다. 精麤의 證言과도 통했다. 그가 證言한 事案의 日時와 팩트, 人命을 旣存 證言 및 文獻과 比較했는데 亦是 一致했다.

    A氏에 따르면 救國戰線의 蘇聯 內 盟員은 400名에 達했다. 북중국을 中心으로 中國에도 組織이 있다. 脫北者들을 吸收해 盟員으로 삼은 것이다. 現在도 活動 中이다. A氏가 이끌던 ○○○同志會는 ○○名이었다. 大學을 卒業한 北韓의 엘리트 中心으로 組織이 이뤄졌다.

    北韓 食糧難 以前 蘇聯에 亡命한 이들이 組織을 만들어 젊은 脫北者를 追加로 迎入했다. 食糧難 以後 脫北한 生計型 脫北者들과는 性格이 다른 사람이 모인 것이다. 救國戰線 元老들은 死亡했거나 高齡이다. 40代로 現場에서 活動하던 이들이 脫北者들을 吸收해 命脈을 잇는다. 現在는 金正恩 政權 打倒를 目標로 活動한다.

    A氏와의 對話는 正式 인터뷰가 아닌 밥床머리에서 이뤄졌다. 그는 取材에 應하는 것을 꺼렸다. 具體的 活動 內容에 對해서는 “食口들에게 누가 될 수 있다”면서 答하지 않으려 했다. 對話는 衆口難防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A氏의 許諾을 받고 對話를 錄音했다. A氏는 身元을 保護해줄 것, 具體的 內容은 다루지 말 것을 前提로 答했다. “現在의 活動 事項에 對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A氏와의 對話를 1門1答 形式으로 紹介한다.

    “目標는 臨時政府 建設”


    ▼ 누구와 일했나.
    “허진 先生이 直屬上官이었다.”

    ▼ 核心 人士들은 死亡했거나 高齡이다. 現在 活動은?
    “企業 形態다. 돈을 벌어야 할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慰勞金 보내줘야 하고 家族生活을 責任져야 한다. 龍賤役 爆發事故 때 盟員 8名이 죽었다.”

    ▼ 具體的으로 어떤 일을 하나.
    “나는 韓國에 들어와 있지만 言論에서 잘못 다루면 우리 食口들이 危險할 수 있다. 잘못하면 테러 組織으로 規定될 수 있다.”

    ▼ 韓國에는 어떻게 들어왔나.
    “○○라는 러시아 高麗人을 통해 바티칸 敎皇廳 高位 人士를 만나기로 했다가….”

    ▼ 救國戰線에는 어떻게 加入했나.
    “救國戰線의 中心은 러시아와 옛 蘇聯 共和國 亡命者들이다. 허진 先生이 主導했다. 許 先生이 모스크바로 오라고 連絡해왔다. 地域을 맡을 사람 3名 程度를 推薦해달라고 했는데, 내가 選出됐다. 40代 初盤으로 피가 끓던 때다. 別途의 組織을 만들어 救國戰線에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 救國戰線의 目標는 무엇이었나.
    “허진 先生의 目標는 臨時政府가 建設되고 그곳에 參與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鬪爭過程과 活動經歷에 허진 先生이 끼친 影響은 많지 않다. 活動資金을 支援한 것도 많지 않다. 새 발의 피다. 돈 들어온 게 宏壯히 많았는데, 그분이 돈과 關聯해 問題가 있었다. 韓國에서 돈 주고 그런 것을…. 우리도 韓國 大統領이 준 時計는 하나 받았다. 허진 先生의 아내가 脫北者들을 아랫사람 다루듯 했다. 카자흐스탄 버섯工場 하나를 우리한테 넘겨줬는데 정상진(前 北韓 文化性 浮上)이 다 팔아먹었다.
    30~40代 피 끓는 靑春은 自生 能力이 매우 剛했다. 러시아의 伐木場度 引受했다. 救國戰線의 實際 活動은 젊은이들 몫이었다. 어른들은 워싱턴, 도쿄를 다니면서 北韓을 糾彈하는 세미나를 열었을 뿐이다. 얼굴마담 노릇을 한 것이다.”

    敎皇廳에 北 人權 呼訴


    ▼ 週(駐)모스크바 北韓大使….
    “이상조 先生 딸들이 蘇聯에서 어렵게 살았다. 우리가 잘나갈 때, 잘나갔다고 表現하면 안 되겠지만, 上層部에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組織의 上層部에서 無視했다. 上層部는 1994年 김일성이 죽었을 때 北韓이 崩壞 直前이라고 봤다. 그때 확 밀어붙였어야 했는데 안타깝다.”

    ▼ 精麤, 허진 等은 김일성, 김정일 政權에 反對했을 뿐 社會主義者였던 것으로 안다.
    “허진 先生은 ‘國家的인 供給體系는 옳았다, 좋았다’고 말했다. 思想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대목에서 젊은 사람들과 생각이 달랐다. 路線에서 差異가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 태어나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哲學的인 것을 떠나 자유롭게 제대로 살아보자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꽉 막힌 시스템에서 산 우리가 志向한 것은 自由였다.”

    ▼ 組織員은 어떻게 뽑았나.
    “大學 卒業生 아니면 받지를 않았다. ○○○同志會에 大學 안 나온 사람은 딱 2名 있다.”

    ▼ 日本 政府와의 連繫는 없었나.
    “日本에서도 注文이 왔다. 박갑동 先生은 洋服 한 벌씩 나눠준 게 거의 全部다.”

    ▼ 敎皇廳과는 어떤 일을 했나.
    “北韓人權白書를 만든 게 우리가 처음이다. 北韓의 人權 問題를 바티칸에 呼訴했다. 그 사람들이 關心 있는 것은 人權밖에 없다. 러시아는 正敎徒다. 옐친이 執權할 때 우리는 北韓 打倒 運動한다고 다 러시아 正敎에 들어갔다.”

    ▼ 親北 高麗人 組織도 있었을 텐데.
    “러시아에서 가장 센 親北 組織으로 ‘아소크’가 있다. 亞소크가 우리 情報를 빼내 北韓 쪽에 傳達한 적도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活動하던 盟員이 逮捕되기도 했다.”

    “싫든 좋든 이젠 韓國이 曺國”


    ▼ 不法 滯留 身分이었겠다.
    “체첸에 간 이들 中 2名이 죽었다. 高麗人에게 參戰을 勸誘했는데, 高麗人들이 꺼렸다. 체첸에 가면 居住權을 保障하고 러시아에서 살게 해준다고 했다. 그래서 脫北者들이 체첸 戰爭에 參與한 거다. 1, 2期 두 番에 나눠 체첸에 보냈다. 러시아는 체첸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補償을 해주지 않았다. 목숨 바쳐 죽은 사람들 돈을 떼먹은 것이다. 우리는 뜨겁게, 熾烈하게 살았다. 죽기도 하고, 處斷도 하고.”
    그는 북받친 목소리로 이렇게 덧붙였다.
    “北韓놈들이 잡혀서 왔는데, 우리 內部에 間諜이 있었다고…. 大使館에 連絡하고 그런 놈이 있었단 말이야. 內部 告發者는 金策工業臺 出身이야. 우리 애들이 때려 죽였어.”

    ▼ 中國 쪽 組織은.
    “救國戰線이 北中國에 많다. 組織할 때 나는 反對했다. 中國을 통하면 情報가 샌다고 봤다. 김정일이 龍泉 爆發事件 때 다른 路線으로 갔다. 그래서 待機하던 우리 人員들이 죽었다. 宏壯히 오래 準備했다. 暗殺 試圖 消息을 들은 김정일이 용천을 다 날려버리라고 指示한 것으로 안다.”
    救國戰線은 北韓 勞動黨 幹部를 美國에 亡命시키는 일도 했다.
    “○○쪽 라인에서 돈이 나왔다. 北韓 勞動黨 人士를 美國으로 보내는 일을 했다. 韓國 言論에 ‘김정일 統治資金 40億 달러…’라고 報道되는데, 우리가 美國으로 亡命시킨 조선중앙은행 高位人士 發言을 西方 言論이 報道한 게 始初다. 北韓이 어려울 때 김정일 一家가 保管하던 數十億짜리 스트라디바리우스 樂器 팔러 中國에 나온 組織指導部 人事도 우리가 美國으로 보냈다.”

    ▼ 몇 名이나 美國으로 보냈나.
    “우리가 한 게 20名 넘는다. 政治官僚, 學者, 科學者, 實際 現場에서 일하던 사람들….”

    ▼ 國精院과 한 일은.
    “일은 했지만, 내가 韓國에 있는데 어떻게 얘기를 하나. 國家란 게 싫든 좋든 韓國이 이제 우리 祖國이지 뭐. 그렇지 않나.”
    救國戰線의 現在 責任者는 脫北 高位人士 D氏다. 남재준 國精院長 時節 救國戰線을 再構築하려고 試圖하면서 D氏가 責任者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國精院長이 바뀐 뒤 이러한 試圖는 흐지부지됐다. 精麤, 허진 等이 세운 救國戰線을 只今껏 지켜온 第3國 亡命人士들과 D氏의 活動은 無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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