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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衆史觀式 敍述 極致 國定化 弊害 反面敎師|新東亞

民衆史觀式 敍述 極致 國定化 弊害 反面敎師

‘朝鮮歷史’ 等 北韓 敎科書 分析

  • 송홍근 記者 | carrot@donga.com

    入力 2015-11-18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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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日成·김정일이 歷史 解釋 獨占
    • ‘外勢 侵略에 鬪爭해온 人民의 歷史’
    • ‘同族의 나라 背信한 新羅=大韓民國’
    • ‘미제의 政治特務, 金永三 力道’
    민중사관式 서술 극치 국정화 폐해 반면교사

    北韓의 義務敎育은 12年이다. REX

    國定 歷史敎科書를 使用하는 나라로는 北韓, 스리랑카, 몽골, 베트남이 있다. 中國과 泰國은 國政과 검정이 共存한다. 經濟協力開發機構(OECD) 國家들은 검정·認定·自由發行制다. 國定인 나라는 한 곳도 없다. 러시아는 2013年 2月 블라디미르 푸틴 大統領이 國定化를 指示했으나 社會的 反撥이 甚해 지난해 8月 國政 發行 計劃을 取消했다.

    偏向 敎科書 어이할꼬

    朴槿惠 大統領은 “바른 歷史를 배우지 못하면 魂이 非正常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歷史에 對한 뚜렷한 價値觀이 없다면) 統一이 돼도 우리의 精神은 큰 混亂을 겪고 中心을 잡지 못하는, 그래서 結局 思想的으로 支配를 받는 기막힌 狀況이 發生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憂慮했다.

    黃敎安 國務總理는 “檢定敎科書가 몇 種인지는 形式的 數字일 뿐이고 事實上 1種의 偏向 敎科書”라며 “高等學校의 99.9%가 偏向的 敎科書를 選擇해 多樣性을 喪失했다”고 말했다. 偏向性 論難의 中心엔 四館(史觀)이 있다. ‘民衆史學’과 이에 反撥하는 側이 衝突한다.

    民衆史學은 半(反)外勢를 앞세운다. 檢定制 施行 以後 民衆史學界 人士 相當數가 敎科書 筆陣으로 參與했다. 現行 敎科書에 偏向性이 있는 건 問題지만, 國定敎科書 1種으로 歷史를 가르치는 것은 時代錯誤的이다. 國情과 검정이 競爭하는 形態도 생각해볼 수 있다.



    歷史 解釋은 누구도 獨占할 수 없으며 獨占해서도 안 된다. 一方的 見解를 注入하는 政策은 成功하기 어렵다. 歷史는 集團의 記憶이다. 權力이 特定 解釋을 注入한다 해서 集團의 記憶이 바뀌는 게 아니다. 記憶 鬪爭은 數十 年에 걸쳐 이뤄지는 것이다.

    北韓의 敎科書에는 國定化의 弊害가 고스란히 담겼다. 權力(金日成, 金正日)李 歷史 解釋을 獨占한다. 階級史觀, 唯物史觀으로 歷史를 敍述했다. 左偏向했다는 指摘이 나오는 우리 民衆史觀式 敎科書 敍述의 最高峯 格이다. 北韓 敎科書 ‘朝鮮歷史’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活動’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曆社’ ‘美製와 日製의 朝鮮侵略 罪行’을 살펴봤다.

    北韓 歷史敎科書의 名稱은 ‘朝鮮歷史’다. 總 6卷. 初級中學校, 高級中學校에서 3卷씩 배운다. 北韓의 義務敎育은 12年이다. 幼稚園 1年, 小學校 5年, 初級中學校 3年, 高級中學校 3年. 2014年 改編된 學制다. 2002~13年엔 幼稚園 1年, 小學校 5年, 中學校 6年이었다. 2002年 以前에는 義務敎育이 11年이었다. 小學校를 人民學校(4年)라고 稱했으며 初級中學校, 高級中學校는 高等中學校(6年)였다.

    ‘朝鮮歷史’는 “우리가 歷史를 배우는 것은 王이나 封建 統治者들의 歷史를 알자는 것이 아니라 人民의 鬪爭 歷史와 創造의 歷史를 알자는 것”이라면서 歷史를 배우는 目的은 “革命을 잘하기 위해서”라고 强調한다. 大衆을 歷史의 中心에 뒀다는 點에서 韓國의 民衆史觀과 視角이 類似하다.

    ‘朝鮮歷史’ 1卷은 을지문덕, 大祚榮, 于勒, 慧超 等 人物 中心으로 옛날 얘기하듯 敍述돼 있다. 2卷은 高麗, 朝鮮 歷史를 事件과 人物 中心으로 紹介한다. 1, 2卷은 “王建은 弓裔를 왕자리에서 내쫓았습니다”(2권 1과 ‘첫 統一國家를 세운 王建’)라는 式의 ‘…습니다’ 文體로 敍述한다.

    3~6卷은 ‘高朱蒙은 紀元前 298年 扶餘에서 태어났다’ 式의 ‘했다’ 文體로 돼 있다. 3~6卷이 本格 敍述이다.

    3卷은 ‘1張: 원시共同體 社會’, ‘2張: 奴隸所有者 社會’, ‘3張: 封建社會-첫 封建國家들’, ‘4張: 渤海와 後期新羅’로 이뤄졌다. 카를 마르크스의 唯物史觀과 歷史發展 5단계설(原始 共産社會-古代 奴隸制社會-中世 封建社會-資本主義社會-社會主義社會)을 따른 것이다. 韓國은 古代, 中世, 近世, 近代, 現代로 時期를 區分한다.

    4卷은 高麗, 5卷은 朝鮮을 다룬다. 6卷은 1905~1929年이다. 北韓은 日帝가 朝鮮을 强占한 때를 1910年 庚戌國恥가 아니라 1905年 乙巳勒約으로 본다. 1905~1945年이 日帝强占期인 셈이다.

    1930年 以後 歷史는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活動’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曆社’라는 이름의 敎科書에 담겼다. 김일성의 歷史가 나라의 歷史가 된 것이다. 1930年부터 最近까지를 다룬 ‘美製와 日製의 朝鮮侵略 罪行’이라는 別途의 敎科書가 있다.

    北韓은 김일성, 김정일이 歷史 解釋 權限을 獨占한다. ‘朝鮮歷史’ 1卷은 김정일의 ‘말씀’으로 始作한다. “偉大한 領導者 김정일 元帥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습니다. .”

    김일성의 말은 ‘校時’, 김정일의 말은 ‘말씀’이다. 北韓은 “首領은 誤謬가 없다”고 가르친다. ‘校時’ ‘말씀’은 人民이 貫徹할 目標다. 生活總和 때도 ‘校時’ ‘말씀’을 根據로 自我批判, 相互批判을 한다. ‘校時’ ‘말씀’은 實際 發言을 적은 게 아니라 特有의 形式으로 脚色해 整理한 것이다. 經濟學 論文도 ‘校時’ ‘말씀’을 引用해 作成한다.

    “同族 背信한 新羅 統治輩”

    ‘朝鮮歷史’에서 事實 敍述이 아닌 歷史에 對한 評價를 다룬 部分은 김일성, 김정일의 解釋을 提示하는 것으로 始作한다. 김일성, 김정일의 歷史 解釋에 따른 嫡統은 古朝鮮→高句麗→高麗→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新羅의 3國統一과 朝鮮 建國의 正統性을 認定하지 않는다.

    新羅에 對한 歷史 解釋은 김정일이 했다. “偉大한 領導者 김정일 元帥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朝鮮歷史 3卷). 統一新羅는 3卷 4張 ‘渤海와 後期新羅’에서 △高句麗에 對한 背信 △백제에 對한 背信 △新羅의 背族行爲 項目으로 다룬다. ‘朝鮮歷史’에서 “後期新羅”는 ‘미제의 앞잡이’라고 가르치는 大韓民國에 比肩되는 存在다.

    北韓에서 高句麗는 强盛大國이다. ‘朝鮮歷史’ 3卷 3張의 目次는 1節 : 强盛大國 高句麗, 2節 : 百濟, 3節 : 新羅로 이뤄졌다.

    高句麗를 다룬 3卷 3張 1節은 “지난날 우리나라 歷史에서 우리 民族이 가장 剛하던 時期는 高句麗였습니다”라는 김일성의 ‘校時’를 引用하는 것으로 始作된다. “常務氣風과 軍事力”을 ‘强盛大國 高句麗’의 背景으로 꼽는다. ‘朝鮮歷史’는 “强盛大國 高句麗는 强大한 國力을 가졌으나 末期에 團合이 이뤄지지 못해 同族의 나라들을 背信한 新羅 統治輩들의 背族行爲와 唐나라 侵略軍에 依해 滅亡한다”면서 “內部가 分裂하고 投降·變節者가 나타나 侵略者와 손을 잡는다면 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强調한다.

    百濟는, 김일성의 解釋에 따르면 “高句麗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 세운 나라”다. ‘朝鮮歷史’의 百濟史(4쪽) 敍述은 高句麗史(18쪽), 新羅史(8쪽)보다 짧다.

    ‘朝鮮歷史’에서 高麗는 高句麗를 直接 繼承한 나라다. 金正日은 “同族의 나라들을 하나로 統合하려던 高句麗의 志向은 10世紀 初에 創建한 考慮에 依해 繼承됐다”(조선력사 4卷)고 解釋했다.

    민중사관式 서술 극치 국정화 폐해 반면교사

    北韓 學生들은 唯物史觀에 立脚한 國定敎科書로 歷史를 배운다. REX

    唯物史觀에 꿰맞춰

    ‘朝鮮歷史’에 따르면 朝鮮은 建國돼서는 안 될 나라다. “理性界 一波”가 王權을 簒奪해 “封建 統治輩”들이 “人民을 收奪한” 부끄러운 歷史다. 김일성의 解釋은 이렇다. “偉大한 首領 김일성 大元帥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敎示하시었다. .”

    ‘朝鮮歷史’ 5卷은 “朝鮮의 封建的 搾取 形態”를 糾彈하면서 “搾取와 壓迫이 있는 곳에서는 反抗이 있는 法”이라는 金日成 ‘校時’를 引用한다. “咸鏡道 農民戰爭”(李施愛의 亂) “平安道 農民戰爭”(洪景來의 난), “1862年 全國 農民暴動”(晉州民亂 等 71個 地域에서 일어난 農民抗爭), “甲午農民戰爭”(東學農民運動)에 傍點을 찍었다.

    ‘朝鮮歷史’는 先史時代를 “원시共同體 社會”로 規定한다. 古朝鮮, 附與 等은 “奴隸所有者 社會”다. “封建社會”는 三國時代~朝鮮時代다. “17世紀에 資本主義的 關係가 나타났다”(조선력사 5卷)고 본다. 카를 마르크스의 唯物史觀에 꿰맞춰 敍述한 터라 억지스럽다.

    1884年 甲申政變은 失敗한 부르주아 改革(金日成, “甲申政變은 宮中에서 일어난 單純한 權力싸움이 아니라 나라의 近代化를 목적한 부르주아 改革이었습니다”)이다. ‘朝鮮歷史’는 “進步的인 官僚들이 政權을 잡아 國家機構를 뜯어고치려고 했으나 金玉均을 비롯한 開化派 指導者들은 兩班 官僚 出身으로 階級的으로 未熟했다”면서 “金玉均은 우리나라를 改名시키려고 한 부르주아 改革運動者였고 愛國者였다”고 敍述한다.

    韓國 歷史敎科書는 甲午改革(1894年) 以後를 近代로 본다. ‘朝鮮歷史’도 5卷이 甲午改革에서 마무리된다. 北韓은 甲午改革을 “民族的 自主權을 지키기 위한 愛國的 改革”이라고 規定하면서 “郵(危)로부터 實施된 改革이었으므로 不足한 點이 많았다. 그中에서도 土地를 農民에게 나눠주지 못한 것이 限界”라고 指摘한다.

    北韓은 1946年 土地改革을 實施한다. 1945~1961年에 걸쳐 生産手段 國有化를 完成하면서 社會主義를 成立한다. ‘朝鮮歷史’에 따르면 原始 共産社會→古代 奴隸制社會→中世 封建社會→資本主義社會(“資本主義的 關係가 나타난 17世紀”부터 日帝强占期)를 거쳐 “社會主義 地上樂園”을 完成한 것이다.

    ‘朝鮮歷史’는 이렇듯 마르크스의 唯物史觀에 맞춰 歷史를 敍述한다. 三國時代~朝鮮時代를 封建社會로 規定하는 것에 同意하는 韓國의 史學者는 없다. ‘朝鮮歷史’의 또 다른 特徵은 韓國에서 ‘民衆史觀’이라고 일컫는 觀點에 忠實하다는 點이다. ‘人民의 抵抗社’가 敍事의 큰 줄기다.

    大院君의 執權~壬午軍亂까지는 “外來資本主義 侵略을 反對한 人民들의 鬪爭”(5卷 4張)이다. “甲午農民戰爭”을 다룬 5卷 5張 3節의 첫 文章은 이렇다.

    “偉大한 首領 김일성 大元帥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敎示하시었다. .” 김일성은 “甲午風雲의 寵兒 全琫準은 내 가슴속에 永遠히 꺼지지 않는 한 點의 불꽃”이라고 評價한다.

    考慮사도 “12世紀 後半~13世紀 初의 對農民 戰爭”을 中心으로 敍述한다. “平壤 農民軍의 鬪爭” “網이農民暴動” “慶尙道 農民軍의 鬪爭” “失敗한 萬積의 暴動計劃”에 傍點을 찍은 것이다. 新羅史를 肯定的으로 敍述한 部分은 “9世紀 後期新羅의 農民戰爭(“붉은바지농민폭동” 等)”李 唯一하다.

    反外勢度 北韓 歷史 敍述의 核心이다. 侵略에 應戰한 歷史도 民衆을 中心에 두고 敍述한다. ‘朝鮮歷史’는 大夢 抗爭期를 “封建몽골의 高麗 侵略期”로 規定하면서 人民의 鬪爭史로 記錄한다. “國土 完定을 위한 考慮民들의 鬪爭” 德分에 “元나라 侵略勢力을 몰아냈다”고 敍述한다.

    사라진 朝鮮 王들

    壬辰倭亂과 丙子胡亂도 마찬가지다. ‘朝鮮歷史’는 壬辰倭亂을 “壬辰祖國戰爭”이라고 稱한다. “王은 逃亡갔”으나 “愛國心에 불타는 우리 人民들은 조금도 屈하지 않고 바다와 陸地에서 敵들을 무찌르기 爲해 한 사람같이 떨쳐나섰다”는 것이다(5권 2張). 李舜臣 將軍이 唯一하게 登場하는 官軍의 이름이다. ‘朝鮮歷史’ 全體에서 “封建 統治輩들의 頂點”인 朝鮮 國王의 呼稱은 單 한 次例도 登場하지 않는다. 丙子胡亂은 “淸나라 侵略을 反對한 人民들의 鬪爭”으로 敍述한다. “王을 비롯한 統治輩들은 平壤이 强占되자 首都를 버리고 江華島 또는 全州로 도망쳤”으나 “人民들은 侵略者에 反對해 到處에서 용감히 싸워 큰 打擊을 안기었다. 그리하여 敵들은 할 수 없이 封建政府와 和議를 맺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 言及했듯 ‘朝鮮歷史’는 外勢의 侵略에 맞서 鬪爭해온 歷史를 强調한다. 近·現代史는 “未濟”와 日帝의 侵略에 맞선 歷史다. “美國 侵略者들을 쳐물리친 人民들의 鬪爭”(辛未洋擾), “프랑스 侵略者들을 물리친 人民들의 鬪爭”(丙寅洋擾)(5卷 4張)은 “事大投降的”인 “封建 統治輩들”의 “賣國背族적 策動”과 比較된다.

    ‘日帝=美帝’ 構圖 敍述

    1866年 셔먼號 事件은 1卷, 5卷에서 다룬다. ‘朝鮮歷史’가 特定 事件을 두 次例 다룬 것은 셔먼號가 唯一하다. 1卷 22과의 題目은 “大同江에 처박힌 셔면號”다. “美國놈”들이 “날强盜만이 할 수 있는 强盜的 要求”를 할 때 “슬기롭고 勇敢한 우리 人民들이 侵略者를 쳐物理치기 위한 성스러움 싸움에 떨쳐 나섰”다는 것이다. 5卷은 셔먼號 事件을 더욱 具體的으로 다룬다. 1卷, 5卷에 똑같은 金日成 ‘校時’가 실려 있다. “美帝國主義는 셔면好意 侵入으로부터 始作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100餘 年 동안이나 우리나라를 侵略해 온 朝鮮人民의 철천지원쑤입니다.”

    ‘朝鮮歷史’ 6卷은 日帝强占期를 다룬다. “歷史 硏究에서 언제나 主體를 튼튼히 세워야 합니다”라는 金正日 ‘말씀’으로 始作한 6卷의 머리말은 “外來 侵略者들과 反動的 封建 統治輩들을 反對해 줄기차게 싸우면서 歷史 發展을 추동한 우리 人民의 鬪爭에서 矜持와 自負心을 가져야 한다”고 强調한다.

    6卷의 1章은 反日 義兵鬪爭과 愛國文化運動을 다룬다. 2張의 題目은 “1919年 3·1 人民蜂起”다. 3章은 3·1運動 以後 “부르주아 民族運動의 衰退”와 初期 共産主義 運動을 다룬다. 1張의 敍述은 韓國 敎科書와 區分되는 特異點을 찾기 어려우나 日帝 强占과 關聯해 美國의 責任을 擧論하는 대목이 있다.

    민중사관式 서술 극치 국정화 폐해 반면교사

    北韓의 學制는 幼稚園 1年, 小學校 5年, 初級中學校 3年, 高級中學校 3年이다. REX

    “偉大한 首領 김일성 大元帥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敎示하시었다. .”

    6卷 2章은 “愛國的인 靑年學生들이 부르주아 民族運動 上層部의 投降主義的 行動을 박차고 反日抗爭에 나섰다”고 敍述하면서 3·1運動을 “3·1 人民蜂起”라고 規定한다. 民族代表 33人은 登場하지 않는다. ‘日帝=未濟’ 構圖의 敍述도 이어진다. “美製는 3·1 人民蜂起가 부질없는 짓이라며 우리 人民을 冒瀆하고 日帝놈들에게 朝鮮 人民의 反日 鬪爭은 銃칼로 사정없이 죽여야 한다고 부추겼다.”(2장 3節)

    6卷 3章은 初期 共産主義 運動을 다룬다. “부르주아 民族運動의 上層 分子들이 反日 獨立運動을 집어치우고 日帝의 품속으로 기어들거나 다른 나라에 가서 賣國背族的인 策動을 敢行”하면서 “3·1 人民蜂起”를 契機로 “大衆運動이 將星(成長)”했다는 것이다. “獨立軍은 資産階級의 利益”을 代辯했다면서 1925年 “朝鮮共産黨이 創建”됐으나 “宗派分子들” 탓에 “組織思想的 統一”을 이룰 수 없었으므로 “이 時期 鬪爭은 守令의 出現을 목마르게 古代”했다고 敍述한다.

    博物館 보내야 할 敎科書

    1930年 以後의 歷史는 앞서 言及했듯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活動’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曆社’와 ‘美製와 日製의 朝鮮侵略 罪行’으로 가르친다. 北韓 敎科書는 “帝國主義의 植民地”면서 “事大賣國 政策”을 踏襲하는 곳으로 大韓民國을 規定한다. 大韓民國을 “人民에 依한” “自己의 自主性을 擁護하고 實現하기 위해 鬪爭해온 자랑스러운 歷史”의 對蹠點에 두는 것이다.

    ‘美製와 日製의 朝鮮侵略 罪行’ 1章은 1930年 以後의 日帝强占期(“朝鮮에 對한 日帝의 植民地파쑈통치”)를 다룬다. 2章은 “미제의 南朝鮮 强點” “朝鮮侵略戰爭 挑發” “日本 軍國主義의 朝鮮 戰爭 加擔” 等 8·15光復~6·25戰爭을 다룬다. 3張의 題目은 “戰後 米帝의 새 戰爭挑發 策動과 日本 軍國主義의 南朝鮮 재침 策動”이다. 4章은 ‘미제와 日本 反動들의 ‘두 個 朝鮮’ 造作 策動과 反共和國 壓殺 策動”을 다룬다. “리승만 傀儡政權” “朴正熙 驛도” “維新 殘黨, 全斗煥 力道” “미제가 오랫동안 묻어둔 政治特務 金永三 力道”가 4張에 登場한다. “미제가 政權 交替 演劇을 벌여 ‘國民의 政府’를 출현시켰으나 ‘國民政權’ 亦是 事大賣國 政策을 踏襲했다”고도 評價했다.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活動’ ‘김일성 大元帥님 革命曆社’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김일성의 行跡이 歷史가 돼버린 偶像化 或은 神格化 敎材다. 統一 後 가장 먼저 博物館으로 보내야 할 敎科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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