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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손便紙 그 溫氣를 찾아서|신동아

잃어버린 손便紙 그 溫氣를 찾아서

  • 정여울 | 文學評論家 suburbs@daum.net

    入力 2015-11-24 0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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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손편지 그 온기를 찾아서
    便紙는 언제나 不滅의 存在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親舊의 肉體 없이 마음만 있는 것이니까요.

    -에밀리 디킨슨

    郵遞筒을 보면 第一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는가. 예쁜 便紙紙나 葉書만 보면 自己도 모르게 멈칫하여 한참을 만지작거리다가 쓸쓸히 돌아선 經驗이 있는가. 그렇다면 當身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或은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瞬間的으로 쉽게 내뱉을 수 있는 말과 달리 便紙의 言語는 정갈하고 정성스럽다. 便紙에는 行間의 沈默에서 더 많은 말을 想像할 수 있는 餘白의 아름다움이 있다. 便紙는 말하기에서는 담아낼 수 없는 수많은 망설임의 餘白을 담아낸다.

    정성스레 손으로 눌러쓴 便紙는 누군가 世上을 떠난 後에도 오래오래 살아남아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證言하고 일깨워주며 每瞬間 새롭게 다시 읽힌다. 이 冊의 지은이는 東西古今의 수많은 便紙 속에 숨은 切切한 事緣을 한 卷의 冊으로 묶어 ‘오늘 우리가 손便紙를 써야 하는 理由’를 알려준다.



    著者는 世上을 떠난 사람의 溫氣에 對한 가장 뜨거운 記錄이 바로 便紙임을 절절히 느껴본 사람이다. 世上 누구보다도 가깝던 언니를 癌으로 일찍 떠나보낸 後, 그 어찌할 수 없는 喪失感을 오래오래 앓는 동안, 언니와 나눈 便紙는 그女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줬다. 언니는 때론 多情하게, 때론 懇切하게 自己 마음속 깊은 곳의 眞心을 동생에게 실어보냈다. “이 葉書를 받을 때쯤에는 眞짜 辯護士가 되어 있겠구나. 祝賀해.” “너무 疲困해서 劇場 밖에서 氣絶했어.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살아남은 동생은 하루하루 나이가 들어가지만, 젊은 나이에 世上을 떠난 언니는 아직도 少女 같은 모습으로 이제는 中年이 된 동생의 외로움을 다독거려준다. “언니가 보내준 葉書들과 거기에 적힌 글과 그림의 實體感은 우리가 姊妹이자 親舊였다는 것을 손으로 直接 만지고 確認할 수 있게 해줍니다.”

    보낼 수 없는 便紙

    때로는 보낼 수 없는 便紙가 모여 살아남은 者에게 깊은 울림을 傳해주기도 한다. 映畫 ‘이오지마에서 온 便紙’는 敗北를 豫感하는 兵士들의 마지막 所願을 담은 便紙 속 事緣을 일깨워준다. 第2次 世界大戰이 끝을 向해 치달을 무렵, 日本 兵士들은 이길 可能性이 全혀 없는 싸움을 繼續할 수밖에 없는 狀況에 處해 있었다. 그 모든 切切한 事緣이 兵士들의 ‘보낼 수 없는 便紙’에 담겨 있었다.

    한 어린 兵士는 어머니에게 돈을 남기며 이런 便紙를 쓴다. “어머니, 이 돈이 도움이 됐으면 해요. 왜냐면 이게 제게 남은 全部거든요. 저는 이제부턴 이 돈이 하나도 必要 없을 거 같아요.” 돈이 必要 없는 世界로 永遠히 떠나며 如前히 돈이 必要한 世界에 엄마를 남겨두는 아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 아들의 切切한 便紙를 傳해 받지도 못한 어머니의 마음은 누가 慰勞해줄 수 있겠는가.

    映畫 속의 한 젊은이는 아내에게 이런 便紙를 쓴다. “우리는 하루 終日 땅을 파. 戰爭이 始作되면 우리가 서 있을 수 있는 塹壕를 파는 거지.” “塹壕의 크기는 우리가 겨우 서 있을 程度야. 幅이 넓지 않아 前進도 後進도 不可能하지.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남아 싸우라는 거야. 이제 나는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어.” 그러나 이 兵士는 千辛萬苦 끝에 살아남아 將兵들이 부치지 못한 便紙들을 땅속에 묻어준다. 그가 땅속 깊숙이 묻은 便紙들은 數十 年이 지난 뒤 戰爭 遺物로 發掘된다. 兵士들은 永遠히 저世上으로 떠났지만, 便紙만은 살아남아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多情한 脅迫, 悲壯한 覺悟

    ‘偉大한 개츠비’의 作家 스콧 피츠제럴드가 딸에게 보낸 便紙는 아버지의 걱정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는 딸에게 이런 便紙를 보낸다. “愛情을 表現하는 것은 괜찮다. 運轉할 때만 아니라면.” “열여섯 살에 우리가 ‘速度違反’이라 불렀던 少女들은 結婚할 나이가 됐을 때 누구든 結婚만 해준다면 아무나하고 結婚해야 하는 處地가 되어 있었단다.” 딸의 未來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多情한 脅迫과 寸鐵殺人의 유머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걱정과 訓戒만 늘어놓는 權威的인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는 딸에게 이렇게 쓴다. “너는 父母에 對한 아주 나쁜 두 가지 例를 보았다. 그냥 우리가 하지 않은 모든 것을 하려무나. 그러면 너는 穩全히 安全할 것이다.” ‘딸아, 엄마 아빠를 본받지 마렴. 우리처럼만 살지 않으면 된단다’고 말하는 아빠, 偉大한 作家였지만 父母로서는 失敗했음을 스스로 認定하는 아버지, 어쩐지 짠하면서도 사랑스럽지 않은가.

    便紙는 多情한 메시지만 담는 것은 아니었다. 自身의 元首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確實하게 제 意見을 表現할 수 있는 方法이기도 했다. 平生 奴隸로 살았지만 이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獨立한 黑人 男子 조단이, 自身을 다시 불러들여 奴隸로 부려먹으려는 옛 主人에게 보내는 便紙에는 悲壯한 覺悟가 서려 있다.

    “우리에게 延滯된 임금을 보내준다면 過去의 해묵은 怨恨은 容恕하고 잊어버리며, 앞으로 主人님이 우리를 公正하게 親舊로 對하리라고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32年을, 그리고 아내 맨디는 20年間 主人님을 충직하게 섬겼습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被服費와 내가 세 番 醫師의 診療를 받은 것, 맨디가 발치 治療를 받은 費用을 除하면 우리가 公正하게 받아야 할 金額이 될 것입니다.”

    自由人이 된 조단은 奴隸制의 그늘 아래 恣行된 그 어떤 暴力도 家族을 해치지 못하도록 家族을 保護하겠다고 主人에게 決然히 宣言한다. “이제 다 자란 處女가 된 어여쁜 밀리와 諸人의 安全을 保障하겠다고 말씀해주십시오. 불쌍한 마틸다와 캐서린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主人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나는 내 딸들이 젊은 主人들의 暴力과 邪惡함에 恥辱을 當하게 하기보다는 여기에 남아 굶는 것-그리고 萬若 狀況이 그렇게 된다면 죽는 것-을 擇하겠습니다.” 當身의 奴隸로 살다가 自身의 딸들이 主人집 男子들에게 恥辱的인 일을 當하느니, 차라리 여기서 굶어 죽는 것을 擇하겠다는 조단. 그는 30年 넘게 奴隸로 살았지만, 靈魂만은 決코 奴隸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當身은 가도 便紙는 남아

    고맙습니다 이 世上에 태어나줘서. 그리고 便紙들을 보내줘서.

    -조지아 오키프

    죽은 사람이 산 者에게 남긴 便紙도 흥미롭지만, 살아남은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에게 보낸 便紙들은 더욱 재미있다. 한 男子는 죽은 아내에게 이렇게 便紙를 쓴다. “當身에게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이렇게 邪惡하게 구는 거요? 나는 젊었을 때 當身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當身과 離婚하지 않았습니다. (…) 지난 3年間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집에 있는 아가씨들에 對해서도, 그들 中 어느 누구에게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抑鬱했으면, 얼마나 恨이 쌓였으면, 이미 죽어 世上을 떠난 아내에게 이런 기나긴 抗議의 便紙를 쓴 걸까. 옛사람에게 죽음은 ‘또 하나의 權力’이었을지도 모른다. 산 者들의 世上을 左之右之할 수 있는 힘, 산 者들이 어찌하지 못하는 世上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죽은 者들에게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古代 이집트人들은 글을 直接 읽거나 쓸 수는 없었지만 便紙는 보냈다고 한다. 專門 筆耕士들이 있었던 것이다. 數千 年에 걸친 이집트 王朝의 거의 全 時代를 網羅하는 數千 通의 便紙가 지난 100餘 年 동안 꾸준히 發見됐다. 古代 이집트에서 便紙가 얼마나 所重했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便紙를 보자. 한 專門 筆耕士가 어린 修習生에게 보낸 것이다.

    “이 高貴한 職業에 專念하거라. 이 일이 有用함을 알게 될 것이다. 글 쓰는 것을 사랑하고 춤추는 것은 멀리해라. 그러면 훌륭한 管理가 될 것이다. 종이 두루마리와 팔레트를 親舊로 삼아라. 그것이 葡萄酒보다도 더 큰 기쁨을 준다. 글을 쓰는 것이 그 어떤 職業보다 낫다. 그것은 빵과 麥酒보다도, 옷과 軟膏보다도 더 큰 기쁨을 준다. 또한 그것은 이집트에서 遺産을 相續받는 것보다도, 나일 江 西岸의 무덤보다도 더 價値가 있다.”

    나는 글쓰기가 正말 所重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이 便紙로 인해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진 힘을 ‘나는 왜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하는 걱정에 쏟아부을 게 아니라 더 깊이 있고 단단한 靈魂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데 쓰고 싶어졌다. 數千 年 前 꼬맹이 修習生에게 보낸 이집트 筆耕士의 아름다운 當付 便紙는 只今도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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