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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리지 않았다”|신동아

“루벤스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리지 않았다”

‘朝鮮 複式을 입은 男子’ 모델 論難

  • 노성두 | 美術史學者 nohshin2@naver.com

    入力 2015-11-20 14: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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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圓筒形 防乾? 접어서 保管…各 안 사라져
    • 朝鮮 철릭? 옷깃 同情 없는 中國 철릭 가까워
    • 1607~08年 製作? 루벤스 健康·財政 惡化 時期
    “루벤스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리지 않았다”

    <그림 1> 루벤스 ‘朝鮮 複式을 입은 男子’, 종이 素描, 1617年頃, 38.4 x 23.5㎝, LA 게티 美術館. <그림 2> 루벤스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奇跡’, 1617~18年, 5.35 x 3.95m, 빈 美術史博物館.

    안토니오 코레아는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베니스의 開城商人’ 等 베스트셀러의 主人公으로 東西洋의 時代와 歷史를 가로질러 興味津津한 活躍相을 펼친 朝鮮人이다. 안토니오는 1600年頃의 實存 人物로, 倭寇에게 拉致돼 奴隸로 팔렸으나 運命의 무거운 수레바퀴를 스스로 돌려 開拓한 風雲兒로 알려져 있다. 特히 플랑드르 바로크 美術의 巨匠 페테르 파울 루벤스가 그의 肖像을 그렸다고 해서 우리에게 더욱 살갑다. 루벤스는 ‘플랜더스의 개’ 마지막 背景으로 나오는 안트베르펜 大聖堂의 祭壇畫를 그린 巨匠이다.

    現在 美國 LA 게티 美術館이 所藏하고 있는 ‘朝鮮 複式을 입은 男子’가 바로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린 것이라는 主張은 곽차섭 부산대 史學科 敎授의 冊 ‘朝鮮 靑年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푸른역사, 2004年)에서 비롯한다(그림 1). 2011年 9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野心 차게 準備한 ‘肖像畫의 祕密’ 展示會에선 루벤스의 그림이 大型 걸개그림으로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歷史에 關心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루벤스가 안토니오 코레아의 肖像을 그렸다는 걸 常識으로 여기게 됐다.

    “朝鮮人 可能性 낮다”

    게티 美術館이 個人 所長家로부터 購入한 루벤스의 素描는 當初 中國人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머리에 쓴 冠毛가 防乾(方巾, 朝鮮時代 士大夫들이 平常時 着用한 死角 건)이라는 郭 敎授의 主張에 따라 朝鮮人으로 身分이 바뀌었다. 여기에다 상투를 틀고 朝鮮 철릭을 입었다는 觀察이 덧붙으면서 게티 美術館 側은 郭 敎授의 見解를 受容하고 作品 題目을 修正했다.

    郭 敎授는 한발 더 나아가 루벤스 素描의 主人公이 朝鮮人日 뿐 아니라 다름 아닌 안토니오 코레아이며, 따라서 作品 製作 時點을 1607~08年으로 앞당겨야 한다고 主張한다. 이 部分은 아직 게티 美術館 側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作品은 안트베르펜의 예수회 敎會 駐祭壇畫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奇跡’에 나오는 登場人物 中 東洋人을 그리기 위한 準備 素描로 알려졌다. 그래서 祭壇畫의 注文 및 完成 時點을 考慮해 製作 時點을 1617年쯤으로 보는 게 學界의 通說인데 이것도 바꿔야 한다고 主張한 것이다(그림 2).



    안트베르펜을 떠나 現在 빈 美術史博物館에서 所藏하는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奇跡’에 登場하는 東洋人과 게티 美術館의 素描 主人公은 옷차림과 생김새가 版박이 같아 同一 人物로 보인다. 學界와 郭 敎授 모두 이에 同意한다. 두 사람의 얼굴만 比較해도 雙꺼풀진 눈, 바깥으로 솟은 눈꼬리, 깡총한 눈썹, 내려앉은 콧부리, 단단한 콧방울, 突出型 齒牙와 도톰한 입술, 동그란 광대뼈, 좁은 下棺, 그리고 귓불의 模樣이 같아서 같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學界는 루벤스의 이 作品을 本格的인 宥和 作業의 準備 素描로 보는 反面, 郭 敎授는 素描가 獨立 作品이며 루벤스가 로마에서 안토니오 코레아를 만나 챙겨둔 朝鮮人 素描를 10年 뒤 안트베르펜 祭壇畫를 作業하면서 꺼내 베껴 썼다는 主張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11年 展示에서도 안토니오 코레아에 對한 郭 敎授의 主張을 相當 部分 認定하고 圖錄에 收錄했다.

    하지만 結論을 미리 말하자면, 안타깝게도 루벤스 素描의 主人公은 朝鮮人日 可能性이 稀薄하고 그가 안토니오 코레아日 可能性은 더욱 낮다.

    안토니오 코레아에 關한 文獻 記錄은 이탈리아 피렌체 出身의 商人 프란체스코 카를레티가 쓴 ‘나의 世界一週忌’에 簡略하게 남아 있다. 카를레티는 △日本에서 朝鮮人 奴隸 5名을 歇값에 사서 洗禮를 받게 한 뒤 印度 孤兒에 4名을 풀어주고 나머지 1名을 이탈리아로 데려왔는데 △그가 피렌체에 머물다 只今은 로마에 있는 것으로 알며 △그의 이름은 안토니오라고 밝혔다. 朝鮮人이라는 意味에서 안토니오 코레아라고 알려진 그의 나이나 생김새에 對한 記錄은 없지만 儼然한 歷史的 實存人物이다.

    網巾은 어디로 갔을까

    곽차섭 敎授는 素描의 主人公이 朝鮮人이 맞다면 或是 그가 文獻에서 立證된 안토니오 코레아日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그 可能性을 좁혀본다. 안토니오는 1606年 末 以後 로마에 滯留한 것으로 推定되는데, 루벤스는 1608年 가을까지 로마에 머물렀으니 畫家와 모델이 1607~08年에 만나 素描를 그렸다면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흩어진 퍼즐 조각처럼 難解하고 複雜한 美術史의 迷路(迷路)에서 實物과 文獻이 絶妙하게 一致하는 幸福한 事例가 아닐 수 없다.

    硏究 結果는 놀라웠다. 郭 敎授의 冊 ‘朝鮮 靑年 안토니오 코레아, 루벤스를 만나다’가 學界의 새로운 學說로 인정받았고, 歷史學者가 分野도 生疏한 西洋美術史學의 오랜 難題를 解決한 事例로 자리매김했다. 只今껏 누구도 異議를 提起하지 않았다.

    그러나 筆者가 보기에 郭 敎授는 그림을 올바로 觀察하지 않은 것 같다. 素描의 主人公이 朝鮮人이라는 가장 큰 證據는 朝鮮 防乾을 쓰고 있다는 點이다. 그런데 果然 房件이 맞을까. 冠帽의 形態를 보면 윗部分이 넓어지는 둥근 圓筒形이다. 防乾은 正四角形에 가까운 角진 形態가 特徵이다. 둥근 房건은 ‘동그란 四角形’이라는 表現만큼 深刻한 形容矛盾이다. 이 問題에 對해 郭 敎授는 “언뜻 보기에 드로잉 속의 房건은 四角形이 아니라 둥근 模樣인 듯도 하지만, 이는 여러 해에 걸쳐 使用함으로써 角진 部分이 緩和된 結果로 볼 수 있다”(책의 89쪽)고 婉曲하게 解明한다.

    防乾을 오래 쓰면 세로로 角진 部分이 저절로 펴진다는 主張인데, 防乾은 벗어둘 때 납작하게 접기 때문에 해져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써도 角이 사라지지 않는다. 勿論 이마에 密着하는 部分은 角이 多少 ‘緩和’될지 몰라도, 防乾 윗部分까지 반듯하게 펴地震 않는다. 防乾은 굵은 材料로 四角形 틀을 만들고 가는 올로 面을 엮은 다음 4個의 四角形 틀을 옆으로 連結해 製作한다. 防乾을 오래 使用할 境遇 四角形 틀을 묶은 部分이 떨어져나갈 수는 있어도 굵은 틀과 角이 사라져 둥근 模樣으로 變할 수는 없다. 生鮮구이 석쇠를 오래 썼다고 가운데 網은 멀쩡한데 바깥의 굵은 틀이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겠는가.

    網巾(網巾, 상투를 틀 때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이마에 두르는 幅 10㎝假量의 그물처럼 생긴 띠)도 보이지 않는다. 網巾을 안 두르고 房件을 쓰는 건 맨발에 正裝 구두보다 角이 안 나오는 ‘難堪 패션’이다. 17世紀 北유럽 美術界를 이끌며 플랑드르 바로크 黃金時代를 연 巨匠 루벤스의 눈이 防乾 아래 網巾을 놓쳤을까. 더욱이 ‘낡은 防乾 理論’이 事實이라면, 빈 祭壇畫의 主人公은 金실로 짠 緋緞 철릭과 값진 가죽 신발과는 어울리지 않게 角이 사라지도록 낡아빠진 官帽를 보란 듯 쓰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루벤스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리지 않았다”

    <그림 3> ‘프란시스코 하비에르의 奇跡’의 部分 그림. <그림 4> ‘朝鮮 複式을 입은 男子’의 復元 그림.

    잘려나간 가장자리

    루벤스 素描의 主人公을 朝鮮人으로 보는 또 다른 證據는 ‘朝鮮 철릭’이다. 郭 敎授는 自身의 主張을 뒷받침하기 위해 服飾史學者 석주선 先生의 見解를 引用한다. 하지만 이 옷은 깃이 넓고 동정이 없어 朝鮮 철릭이라기보다는 같은 時期 예수회 宣敎師 니콜라스 트리고나 마테오 리치가 입던 中國 철릭에 가까워 보인다. 목깃에 달린 얇은 同情이 朝鮮 철릭의 特徵인데, 素描 속 東洋人이 입은 철릭에는 同情이 없다. 萬若 冠帽와 複式이 朝鮮人의 것이 아니라면 이를 根據로 素描 主人公을 朝鮮人으로 보는 主張은 根據를 잃게 된다.

    또 하나. 루벤스의 素描는 完全한 狀態가 아니다. 애當初 루벤스가 完成한 素描 作品은 現在 狀態보다 조금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무슨 理由에선지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크기가 줄었는데, 그 證據는 作品의 가장자리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素描의 가장자리에는 上下左右에 테두리 線이 그어져 있다. 그런데 테두리 線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테두리 線을 넘어 종이 끝까지 素描 線들이 進行하는 것을 確認할 수 있다. 作品 下端不渡 똑같이 잘려나갔다. 左右는 切斷 與否를 確認하기 어렵다.

    따라서 素描의 主人公이 쓴 冠帽는 角이 진 防乾 形態가 아니라 높이가 훨씬 더 올라가는 圓筒形이며, 빈 祭壇畫의 東洋人이 머리에 쓴 冠帽와 同一한 形態로 推定할 수 있다. 이에 터 잡아 復元하면 全혀 다른 그림이 된다(그림 3, 4). 郭 敎授는 素描 作品의 상하단 디테일을 흘려보거나 놓친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自身의 ‘防乾 論理’를 貫徹하기 위해 意圖的으로 無視했을 수도 있다.

    防乾과 朝鮮 철릭이 朝鮮人이라는 主張의 根據라면 루벤스 素描의 모델은 朝鮮人이 될 수 없다. 朝鮮人이 어쩌다 異國의 服飾을 입었을 可能性도 排除할 수 없지만, 같은 論理로 泰國,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사람이 그랬을 可能性도 똑같이 存在하기에 이런 主張은 別 意味가 없다.

    “루벤스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리지 않았다”

    <그림 5> 國立中央博物館 걸개그림.

    ‘不可能에 가까운 確率’

    그림의 主人公이 朝鮮人이 아니라면 그가 안토니오 코레아日 可能性도 없다. 하지만 郭 敎授의 主張대로 1607~08年 루벤스가 로마에서 朝鮮人 안토니오를 만나 모델이 돼달라고 要請하고 素描 作業을 했다는 推理가 成立하려면 어떤 條件들이 充足돼야 할까.

    루벤스에게 1607~08年은 로마 키에사 누오바 敎會의 발리첼라 祭壇畫 首領 拒否, 敎會 主題端部 裝飾 프로그램의 全面的 修正과 再作業, 또한 健康과 財政 問題로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때였다. 그런데 이런 時期에 △張差 10年쯤 뒤에 안트베르펜 예수회 敎會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祭壇畫 注文에 對備해 △예수회 宣敎活動을 벌이던 印度, 中國, 日本을 代表할 人物像을 摸索하고 △유럽에서 모델을 求하기가 相對的으로 수월한 中國人은 제쳐놓고 △예수회 宣敎와도 상관없고 外交關係도 없어 유럽 全體에 한 名 있을까 말까 한 朝鮮人을 굳이 搜所聞해서 안토니오를 찾아낸 뒤 △그에게 或是 東洋의 高官大爵이나 外交 官僚, 高位 聖職者가 걸칠 만한 衣冠을 갖고 있는지 確認하고 △衣冠을 精製해 肖像 素描의 모델로 서줄 것을 要請하고 △가뜩이나 없는 살림에도 相當한 모델料를 支拂했다.

    또한 안토니오는 倭寇에게 拉致돼 奴隸로 팔린 뒤 波瀾萬丈한 逆境과 거친 歷史의 波高를 넘나들면서도 自身의 身分과 어울리지 않는 黃金色 緋緞 철릭과 사치스러운 異國風 가죽 신발, 높은 官帽를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플랑드르 畫家의 모델을 설 때 要緊하게 活用했다.

    正말 그랬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郭 敎授의 推理는 不可能에 가까운 確率이 數次例 重疊됨으로써 論理의 蓋然性을 擔保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루벤스는 안토니오 코레아를 그리지 않았다”
    노성두

    1959年 慶南 山淸 出生

    韓國外大 獨逸語科 卒業, 獨逸 쾰른대 哲學 博士(서양미술사 專攻), 이탈리아 語文學 博士

    現 市民아카데미 人文學濕原 校長

    著書 및 論文 : ‘聖火의 微笑’ ‘그리스 美術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繪畫論’ 等


    現在로서 斷定하기는 어렵지만, 루벤스의 東洋人 모델은 1617年頃 안트베르펜 또는 隣近 都市를 訪問한 예수회 宣敎 關聯 人物이거나 外交使節의 一員이 아닐까. 服飾史 硏究와 文獻 硏究가 더 蓄積되면 언젠가 실마리가 나타날 것으로 期待한다. 루벤스의 東洋人 모델이 400年을 건너뛰어 大韓民國 國立中央博物館에 大門짝보다 더 큼직하게 걸린 自身의 肖像을 봤다면 어떤 表情을 지었을지 궁금하다(그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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