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傷處 입은 짐승의 絶叫 숨죽인 世上을 할퀴다|신동아

傷處 입은 짐승의 絶叫 숨죽인 世上을 할퀴다

들菊花 ‘그것만이 내 世上’

  • 글·김동률 | 西江大 MOT 大學院 敎授 yule21@empas.com 寫眞·석재현 | 大邱未來大 敎授, 寫眞作家| 東亞日報, CJ文化財團

    入力 2015-11-20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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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時節, 新村과 이태원의 술집에서 ‘行進’을 들으며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리고 行進, 行進하자” 盟誓하던 約束을 다들 記憶하고 있을까. 靑春은 그렇게 흘러갔고 우리의 中年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상처 입은 짐승의 절규 숨죽인 세상을 할퀴다
    “가을은 서글픈 季節이다. 시들어가는 풀밭에 팔베개를 베고 누워서, 琉璃알처럼 파아랗게 갠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까닭 없이 서글퍼지면서 눈시울이 눈물에 어리어지는 것은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順順한 感情이다. 섬돌 밑에서 밤을 새워가며 안타까이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구슬픈 울음소리며, 불을 끄고 누웠을 때 窓戶紙에 고요히 흘러넘치는 푸른 달빛이며, 산들바람이 門風紙를 울릴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 떨어지는 서글픈 소리며…가을빛과 가을 소리치고 어느 하나 서글프고 애달프지 아니한 것이 없다. 가을은 흔히 ‘열매의 季節’이니 ‘收穫의 季節’이니 하지마는, 가을은 亦是 서글프고 애달픈 季節인 것이다.

    (…)

    나는 四時節 中에서 가을을 가장 사랑하듯이, 꽃도 가을꽃을 좋아한다. 꽃치고 정답고 아름답지 아니한 꽃이 어디 있으리요마는, 나는 꽃 中에서는 가을꽃을 좋아하고, 그中에서도 들菊花를 한層 더 사랑한다. 가을에 피는 꽃들은 어딘가 凄凉한 아름다움이 있다. 가을꽃치고 淸楚하지 않은 꽃이 어디 있는가? 코스모스가 그러하고, 들菊花가 그러하다. 들菊花는 特別히 神奇한 꽃은 아니다. 그러나 人家에서 멀리 떨어진 山中에 외로이 피어 있는 氣品이 그윽하고, 봄, 여름 다 지나 가을에 피는 氣槪가 그윽하고, 모든 雜草와 어울려 살면서도 自己의 個性을 끝끝내 지켜나가는 그 志操가 또한 귀여운 것이다. 나는 가을을 사랑한다. 그러기에 꽃도 가을꽃을 사랑하고, 가을꽃 中에서도 들菊花를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정비석의 들菊花, 록밴드 들菊花

    상처 입은 짐승의 절규 숨죽인 세상을 할퀴다

    들菊花 1輯 앨범(1985).

    中年 讀者를 위해 조금 긴 文章이지만 引用했다. 旣成世代가 ‘아!’ 하고 무릎을 탁 칠 文章이다. 記憶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언젠가 國語冊에서 읽었고 大學入試를 위해 밑줄까지 그어가며 工夫하던, 정비석 先生의 隨筆 ‘들菊花’다. 山골 出身인 내가 至賤에 깔린 꽃 中 하나인 들菊花가 주는 깊고 그윽한 意味를 깨달은 것은 바로 이 에세이 때문이다.



    그날 以後 나는 들菊花를 내 마음의 꽃으로 定해버렸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그냥 들菊花라 부르던 꽃들이 九節草, 쑥부쟁이, 벌개미취, 山菊, 甘菊, 각시취 等 저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을 철이 들고 알았다. 그러나 專門家가 아닌 나로서는 都統 區別할 수 없고 그저 素朴한 들菊花로 足하다.

    그런 들菊花가 내 마음의 꽃에서 내 人生의 唯一한 꽃으로 자리 굳힌 것은 傳說의 밴드 ‘들菊花’가 한몫했다. 들菊花가 이 땅에 던진 메시지는 엄청나다. 그들의 노래는 트로트나 발라드에 익숙해 있던 韓國人에게 全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于先 밴드 이름부터 그렇다. 들菊花는 꽃 이름이니 當然히 女性的인 意味 附與가 可能하다. 그러나 이 軟弱한 꽃 이름을 들고 나온 밴드는 놀랍게도 山짐승처럼 거세고 獅子 갈기처럼 머리를 限껏 기른 우악스러운 수컷들의 集合이었다. 낯설기도 하거니와 밴드 構成員의 모습과는 全혀 어울리지 않는 語塞한 이름의 들菊花가 1985年 처음 音盤을 發表했을 때 大衆의 反應은 한마디로 ‘衝擊’이었다.

    專門家들은 이에 더해 “들菊花를 起點으로 韓國 大衆音樂의 새로운 歷史가 始作될 것”이라고 豫言했고, 實際로 이들의 登場은 ‘歷史的’인 事件이 된다. 普通사람들은 밴드 이름과 그들의 音色, 左衝右突 統制되지 않는 性格, 생김새가 너무나 다르다는 點에서 또 한 番 戰慄한다. 가녀린 꽃과는 距離가 멀어도 너무 먼 이 밴드는 一躍 그 時節의 새로운 ‘아이돌’로 떠올랐다.

    상처 입은 짐승의 절규 숨죽인 세상을 할퀴다

    2013年 4月 서울 서교동의 한 公演場에서 연주하는 들菊花.



    땅 위엔 조용필, 땅 밑엔 들菊花

    그들이 世上에 登場했을 當時는 조용필 等 酒類의 舞臺였다. 들菊花는 主流와는 正反對의 길을 걸었다. 냄새 나는 地下 演習室과 劣惡한 小劇場에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라는 이름을 달고 苦難의 行軍을 繼續해간다.

    그들은 演藝人이 아니라 藝術家로 불리길 願했다. 空中波 放送의 莫强한 影響力은 아예 無視하고 오로지 小劇場 콘서트와 앨범으로만 世上을 向해 노래했다. 腰絶 歌手 김현식의 노래 人生과 一致하는 行步였다. 조용필의 록이 放送을 活用한 制度圈 色彩가 짙은 것이었다면, 들菊花는 라이브 公演 中心의, 相對的으로 좀 더 팝(pop)敵이고 西歐 志向的인 록으로 解釋된다.

    그리고 들菊花가 登場한 1980年代를 한番 돌아봐야 한다. 1980年代는 意味深長한 時期, 渴望하던 民主化가 어설프게나마 完成된 時期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開催는 韓國人을 변화시켰고, 世界化와 함께 大幅的인 規制 緩和로 사람들의 思考와 行動이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檀君 以來 最大 好況이라는 韓國 經濟의 르네상스 時節, 젊은 世代는 조금은 낯선 들菊花에 熱狂的인 支持를 보냈고, 大衆音樂界는 새로운 戰士들의 登場에 놀라움과 함께 徐徐히 感歎의 눈길을 보내기 始作했다.

    하지만 如前히 어둡기만 하던 그 時節 캠퍼스엔 늘 運動圈의 북소리, 꽹과리 소리가 울려 퍼졌고, 西歐 팝을 듣는 것 自體가 罪惡視되곤 했다. 大衆歌謠를 듣는 게 奢侈쯤으로 여겨지던 그런 時代, 世上의 모든 孤獨과 鬱憤을 저 혼자 짊어진 것 같은 외침이 傷處 입은 짐승의 목소리로 그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抵抗的이고 不溫한 그들의 노래는 民主化 過程에서 傷處투성이가 된 그 時節 젊음들을 慰撫했다. 그래서 “땅 위에 歌王(歌王) 조용필이 있다면 땅 밑엔 들菊花가 웅크리고 있다”는 말까지 登場한다.

    그러나 暫時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그것만이 내 世上’을 외치며 ‘行進’하고자 했던 그들의 行進은 單 두 張의 正規 앨범으로 虛妄하게 幕을 내린다. ‘榮光의 時代’는 너무나 짧게 끝나버렸다. 當時 젊은이들의 송가(頌歌)이던 ‘行進’과 ‘그것만이 내 世上’의 時代는 單 한 張의 앨범을 頂點으로 빠르게 저물어갔다. 事實上 데뷔 앨범을 마지막으로 들菊花의 歷史는 끝나버렸다고 해도 過言이 아니다.

    鍵盤 走者 허성욱은 永遠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고, 死者머리 전인권은 連이은 痲藥 스캔들로 荒廢하게 무너졌다. ‘그것만이 내 世上’과 ‘每日 그대와’를 내놓은 최성원은 隱遁者가 돼 몸을 숨겼다. 大衆은 그들의 再結合을 懇切히 願했지만 그들은 보란 듯이 제 맘대로 놀았다. 몇 番인가 再結成의 兆朕을 보였지만 實現되지 못했고, 2012年 再結成 公演을 開始하는 等 만남과 헤어짐을 反復한다.

    상처 입은 짐승의 절규 숨죽인 세상을 할퀴다

    서울 明洞4길 歷史의 거리 風景. 들菊花를 비롯해 많은 音樂家가 이곳에서 活動했다.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거리에서 코스튬을 準備하는 女性들(아래).

    너무 짧았던 ‘榮光의 時代’

    들菊花의 노래는 억눌린 世上에서 自由를, 絶望 속에서 希望을 외쳤다. 平坦한 길을 抛棄한 채 굳이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걸어간 그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이 외칠 때면 덩달아 외쳤고, 그들이 憤怒하면 따라서 憤怒했다. 그들이 한때 몸부림치던 地下 演習室은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表象이나 勳章처럼 빛났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밴드 活動의 聖地(聖地)로 자리매김했다.

    들菊花의 活動 空間은 그 時節 젊음들이 苦悶하던 空間과 大槪 一致한다. 서울 신촌과 大學路, 이태원이 그곳이다. 아직은 홍대 入口가 登場하기 全義 신촌은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本鄕이었다. 여기저기 록카페가 盛況을 이뤘고, 밤이 이슥하면 카페에는 西歐 팝이 흘러나오고 그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는 光景이 낯설지 않았다. 그들의 몸짓은 재니스 조플린, 지미 페이지, 리치 블랙母語, 지미 핸드릭스 같은 傳說的 西歐 록밴드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촌 로터리에 있던 크리스털百貨店 小劇場은 들菊花가 世上을 向해 咆哮하기 위해 칼을 갈던 곳이다. 한때 잘나가던 百貨店이 들어서 있던 10層짜리 빌딩은 이제 온갖 粗惡한 商品을 싸게 파는 複雜한 割引 商街로 變해 있다. 그 건너便에 우뚝 선 財閥家의 百貨店은 지난날 新村市場이 있던 자리다. 록밴드를 꿈꾸며 이 一帶를 徘徊하던 젊음들이 새벽녘 독한 燒酒와 값싼 按酒를 털어 넣던 追憶의 空間이다.

    들菊花가 자주 찾던 이태원도 1980年代 히피들의 聖所쯤 된다. 課外 아르바이트로 얼마間의 用돈이 생기면 無理해서 進出한 하얏트호텔 地下의 제이제이 마호니즈 바, 아무나 갈 수 없던, 自他가 認定하는 그 時節 장안 最高의 술집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레이디 가가가 專用機 타고 와서 하룻밤 놀고 떠난 淸潭洞 A클럽쯤 된다.

    상처 입은 짐승의 절규 숨죽인 세상을 할퀴다

    들菊花 1輯 全曲을 리메이크한 ‘들菊花 30’ 앨범 作業에 參與한 音樂人들. 들菊花 憲政 音盤은 11月 30日 發賣된다.



    世上을 向해 칼 갈던 곳

    週末 마호니즈 바에 가면 마티니를 멋지게 홀짝거리며 바람난 女大生을 不穩한 눈길로 훑어보는, 前方 師團에서 外出 나온 洗練된 美軍 將校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바 건너便 空間에는 아직은 익숙지 않던 포켓볼 撞球臺가 있었고, 좀 ‘있어’ 보이는 僑胞 男女가 英語와 韓國말을 섞어가며 자욱한 담배煙氣 속에 껴안고 뒤엉켜 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얏트를 내려오면 이태원 술집들이 華麗하게 반긴다. 볼프스부르크(늑대들의 姓), 오울드 저머니, 이브, 야누스 等等 異國的인 이름의 술집들은 데카당한 히피들의 아지트였다. 巡禮하듯이 술집을 돌아다니며 뿌연 煙氣 너머로 독한 버번위스키를 들이켰고, 누군가는 구석에 숨어 낯선 外國人들과 大麻草를 돌려가며 피웠다. 그때 大麻草에 醉해 듣던 노래가 ‘그것만이 내 世上’이다. 들菊花의 노래가 西歐 팝과 가장 가까웠을까. 그 時節 이태원 술집에서는 들菊花 노래만 나왔다고 보면 된다.

    正말 後悔 없이 살았다

    歲月이 흘렀다. 나는 전인권을 볼 때마다 마음이 鬱寂해진다. 世上을 向한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大學生에서 職場人이 되고, 結婚을 하고 男便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그리고 어른이 됐다. 新村 록카페에서, 이태원 술집 ‘늑대들의 性’에서 取해 ‘그것만이 내 世上’을 외치던 靑年은 이제 世上과 適當히 妥協하며 살아가는 普通의 男子가 돼 있다. 스타 아티스트 전인권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 또한 늙어간다는 생각을 하며 가끔은 목이 멘다. 우리는 正말 熱心히 살았고 또 後悔 없이 살았다.

    世上을 너무나 모른다고 나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未安한 웃음으로

    그래 아마 난 世上을 모르나봐 혼자 이렇게 먼 길을 떠났나봐

    하지만 後悔 없지 울며 웃던 모든 꿈 그것만이 내 世上…

    新村과 이태원의 술집에서 ‘行進’을 들으며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눈이 내리면 두 팔을 벌리고 같이 行進하자”고 盟誓하던 그 時節의 約束을 우리는 記憶하고 있을까. 靑春은 그렇게 흘러갔고 우리의 中年은 너무 빨리 왔다.



    連載를 마치며…

    지난 數年間 連載된 ‘노래가 있는 風景’은 삶의 辛酸함을 겪은 이 땅의 中年에게 바치는 나의 素朴한 獻辭다. 人生도, 靑春도, 꿈도 노래와 함께 간다. 열아홉 純情은 黃昏 속에 슬퍼지고 얄궂은 노래와 함께 歲月은 간다. ‘신동아’ 讀者와 참으로 오래 만났다. 例外的으로 오랜 期間 紙面을 割愛해준 德分이다. 깊이 感謝드리며, 讀者 여러분께 作別人事를 드리고자 한다. The best is yet to be! 그래도 좋은 것은 언제나 未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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