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赤兎馬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동물萬事?]|신동아

赤兎馬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동물萬事?]

項羽의 梧秋, ‘三國志’의 積土 둘러싼 傳說

  • 이강원 動物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入力 2021-04-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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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龍이 變해 말 됐다던 梧秋

    • 主人 죽자 따라 목숨 끊어

    • 웬만한 長壽보다 有名한 三國志의 積土

    • 事實은 汗血馬 系統의 總稱이었다는 說도

    말의 수명은 보통 25~30년 남짓이다. [GettyImage]

    말의 壽命은 普通 25~30年 남짓이다. [GettyImage]

    戰爭史에 이름을 남긴 英雄들에게는 共通點이 있다. 有名한 名馬를 거느렸다는 點이다. 마케도니아의 征服君主 알렉산드로스 3歲(알렉산더 大王)에게는 부케팔로스가 있었고 中世 스페인 中部의 王國 카스티야의 救國 英雄 엘 시드는 名馬 바비에카를 탔다. 이는 現代社會에서 有名人이 타고 다니는 車가 有名해지는 것과 같은 現象이다. 말의 能力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말을 有名하게 만드는 것은 主人의 名聲이라는 이야기다. 東洋의 戰爭 英雄들도 마찬가지다. 當代의 長壽보다 더 이름을 날리는 말도 있었다. 代表的인 事例가 楚나라 王 項羽의 烏騅馬와 三國志의 赤兎馬다.

    誕生說話까지 있는 項羽의 愛馬 梧秋

    초나라의 왕 항우와 그의 애마 오추. [박순철]

    楚나라의 王 項羽와 그의 愛馬 梧秋. [박순철]

    力拔山氣蓋世(力拔山氣蓋世), 힘으로 産을 뿌리째 뽑고 堂堂한 氣勢가 世上을 뒤덮는다. 中國 楚나라의 王 項羽(項羽)의 이야기다. 項羽는 中國 歷史上 最高의 長壽 中 하나다 

    項羽는 漢高祖 劉邦(劉邦)과 중원의 主人 자리를 놓고 競爭했지만 끝내 敗했다. 歷史의 主人公은 劉邦이었지만 超한대전(楚漢大戰)의 主人公은 戰場에서 悲劇的 最後를 맞는 項羽라 보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그의 삶이 浪漫的이었기 때문이다. ‘英雄好色(英雄好色)’이라지만 項羽는 살아生前 戀人이라곤 絶世佳人(絶世佳人) 우희(虞姬) 한 名뿐이었다. 

    우희와의 사랑 말고도 項羽의 生涯에 浪漫을 더하는 素材가 있다. 初寒爭霸機 當時 最高의 名馬라고 손꼽히던 秋(?)다. 司馬遷(司馬遷)의 ‘詐欺(史記)’ 中 項羽本紀(項羽本紀)에는 醜에 對한 記錄이 있다. 本紀는 項羽 같은 王의 記錄을 남긴 글이다. “유미인명우(有美人名虞), 上行種(常幸從), 駿馬名秋(駿馬名?), 上基地(常騎之)”, 項羽는 虞美人과 함께했고 秋(?)라는 날랜 말을 타고 다녔다는 이야기다. 

    項羽의 愛馬 추는 사람이 아닌 말이지만 自身만의 誕生說話가 있다. 傳說에 따르면 추는 元來 말이 아닌 龍이었다. 이야기는 하늘에서 始作된다. 하늘의 검은 龍(黑龍)李 검은 말로 變해 물가로 내려온다. 外貌는 말의 모습이지만 사나운 性味는 하늘에서 龍으로 살 때와 같았다. 



    말이 된 龍은 논밭을 橫行하며 作物을 짓밟고 다녔다. 말은 元來 사람이 타는 家畜이다. 사람이 充分이 쫓아낼 수 있는 動物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말의 亂動事件을 解決하겠다며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말이 사납게 날뛰면 大多數의 사람은 다칠까 두려워 쉽게 다가설 수 없다. 말은 家畜이지만 龍만큼 危險한 動物이다. 빠른 다리로 땅 代身 사람을 박차면 말에 치인 사람은 重傷을 免하기 어렵다. 몇몇 사람이 검은 말의 亂動을 막으려 해 봤지만 番番이 失敗했다. 傷處만 늘어서 돌아오는 事例가 늘자 사람이 家畜을 두려워하게 돼 버렸다. 

    英雄인 項羽는 半나절 만에 天性이 黑龍(黑龍)인 말 等에 오른다. 그뿐만 아니라 完璧히 自身의 愛馬로 길들인다. 이 같은 傳說은 世上을 뒤집을만한 힘을 가진 英雄이라면 平素 타고 다니는 말도 當然히 匹夫의 말과는 달랐을 것이라는 想像力을 후세인에게 심어줬다.

    主人 따라 스스로 목숨 끊어

    바위에 꽂힌 엑스칼리버(Excalibur)를 뽑은 아서왕(King Arthur)의 傳說도 錘의 黑龍 傳說과 비슷하다. 아서는 바위에 단단히 박혀 아무도 뽑지 못하던 劍을 뽑으면서 豫言에 있는 것처럼 브리튼(Britain)의 支配者가 됐고, 項羽는 아무도 接近하기 어려웠던 錘를 길들이며 楚나라의 君主로 자리매김했다. 項羽는 戰場을 錘와 누비며 傳說的 英雄으로 거듭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法. 마지막 決戰人 烏江(烏江)戰鬪를 앞두고 項羽는 自身의 죽음을 直感한다. 項羽는 自身이 아끼던 말까지 죽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錘를 戰場에서 내보내기로 한다. 項羽는 오강의 下級 官吏인 正裝(亭長)에게 錘를 배에 태워 江 건너로 가라고 指示한다. 正裝의 손에 이끌려 배에 오른 추는 項羽가 死力을 다해 싸우는 모습을 보고 主人에게 달려가기 위해 江에 뛰어든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醜는 다시는 거센 江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傳해진다. 

    秋는 검은 말이라는 意味를 담고 있다. 後代 사람들이 錘의 이름을 고쳤다. 까마귀 吳(烏)字를 秋 앞에 붙여 梧秋(烏?)라 불렀고 이제는 이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있다. 까마귀의 潤氣 나는 검은 깃털처럼 追加 새까맣다는 것을 强調한 이름이다.

    高位層의 專有物이던 名馬

    項羽 事後 400餘 年 後 登場한 名匠 呂布(呂布)도 ‘積土(赤兎)’라는 이름의 名馬를 타고 다녔다. 名馬는 現在의 基準으로는 高級 乘用車와 비슷하다. 社會的 地位가 높고 餘裕가 있는 사람만 名馬를 타고 管理할 수 있었다. 項羽는 名門巨族(名門巨族) 出身에 楚나라의 君主였다. 濾胞는 項羽처럼 王位는 없지만 漢나라 調整에서 逆賊 童濯(董卓) 刺殺의 功勞를 인정받아 溫厚(溫侯)라는 爵位를 받은 高位層 人士였다. 古代 中國에서 皇帝 아래 身分序列은 王侯將相(王侯將相) 巡이다. 

    溫厚 濾胞의 食邑은 當時 行政單位로는 下內軍(河內郡)에 位置한 온縣(溫縣)이다. 後漢 時節 河內軍은 只今의 京畿道와 비슷한 크기의 넓은 땅이다. 帝國의 首都 洛陽(洛陽)이 있는 軍(郡)이다보니 箕君(畿郡)이라고도 했다. 後日 北送(北宋)의 首都가 되는 開封(開封)도 河內軍에 屬한다. 온玄은 諸葛亮(諸葛亮)의 北伐에 맞서 曺偉(曹魏)를 지켜낸 司馬懿(司馬懿)의 故鄕으로도 有名하다. 

    濾胞의 붉은 말 積土는 ‘三國志’에 나와 項羽의 梧秋보다 더 有名하다. “人中濾胞 마중積土(人中呂布 馬中赤兎)”라는 말이 있을 程度다. 사람 中에서는 濾胞가 最高, 말 中에서는 積土가 最高라는 뜻이다. 項羽에게 吳追加 있다면 濾胞에게는 積土가 있다. 

    積土는 梧秋처럼 自身의 발자국을 남겨놓았다. 後漢의 歷史를 담은 ‘後漢書(後漢書)’ 遺言元述餘抛列傳(劉焉袁術呂布列傳)에는 “褒賞語良馬(布常御良馬) 호왈積土(號曰赤?) 能治性悲慘(能馳城飛塹)”이라는 句節이 있다. “濾胞는 積土라는 좋은 말을 늘 타고 다녔다. 積土는 능히 城을 넘을 수 있었고 塹壕 위를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注目할 대목이 있다. 後漢書는 붉은 토끼라는 뜻의 ‘赤兎’ 代身 붉은 虎狼이라는 뜻의 ‘赤?’라는 用語를 쓰고 있다는 點이다. 古代 中國에서는 世上에서 第一 빠른 動物은 토끼였고 가장 勇猛한 動物을 虎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赤兎馬(赤?馬)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虎狼이 같이 勇猛한 붉은 말이라는 意味가 된다. 무엇이 됐든 間에 赤兎馬는 軍馬에게 最高의 이름이다.

    三國志 主要 場面 빛낸 助演 積土

    삼국지연의의 관우는 명마 적토를 타고 전장을 누볐다. [위키피디아]

    三國志演義의 關羽는 名馬 積土를 타고 戰場을 누볐다. [위키피디아]

    濾胞는 戰場을 누빈 장수인 만큼 體軀가 크다. 게다가 敵의 攻擊에 對備해서 무거운 甲옷을 입고 가볍지 않은 兵仗器를 들고 다녔다. 積土는 이렇게 무거운 主人을 태우고 冊의 表現처럼 城을 넘고 塹壕 위를 날았다고 한다. 後漢書가 事實이라면 歷史에 길이 남을만한 名마다. 

    정사인 後漢書와는 달리 小說 ‘三國志演義’에는 積土에 關한 內容이 많다. 作家的 想像이 許容되는 小說의 長點이 十分 發揮된 것이다. 演義에서 積土는 웬만한 長壽보다 比重이 높다. 

    鳶의 속 積土는 元來 病注目(幷州牧) 동탁의 말이었다. 동탁은 積土를 執金吾(執金吾) 庭園(丁原)의 手下 濾胞를 거두기 위한 賂物로 活用한다. 執金吾는 現在 首都防衛司令官과 비슷하다. 이렇게 演義에서 積土는 濾胞가 동탁의 手下가 되는 決定的 契機가 된다. 

    以後 積土는 濾胞를 등에 태우고 東奔西走한다. 하지만 濾胞의 最後는 좋지 않았다. 西周(徐州)에서 曹操에게 敗하고 刑場의 이슬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積土를 手中에 넣은 曹操도 童濯과 마찬가지로 自身의 말로 삼지 않고 積土를 懷柔 手段으로 活用한다. 

    曹操는 人材에 對한 欲心이 대단했다. 關羽(關羽)를 手下로 삼기 위해 積土를 膳物하지만 曹操의 意圖와 달리 關羽는 身世를 갚을 程度의 功勳을 쌓은 後 積土를 타고 劉備의 품으로 떠난다. 以後 關羽는 茂盛(武聖)으로 推戴될 만큼 많은 軍功을 세운다. 

    하지만 지나치게 自尊心이 높던 關羽는 平素 우습게 여기던 동오(東吳)에게 急襲을 받고 敗戰해 死亡한다. 關羽 다음으로 積土의 主人이 된 이는 孫權(孫權)이었다. 하지만 孫權도 積土를 直接 타지 않고 功을 세운 麻蟲(馬忠)에게 膳物로 준다. 하지만 積土는 英雄이 아니면 自身의 主人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關羽를 잊지 못해 斷食鬪爭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기 때문이다. 積土에게 麻蟲은 눈에 차지 않은 主人이었다.

    積土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일 수도

    書記 189年 濾胞는 積土를 膳物로 받고 上官인 執金吾 定員을 害치고 童濯에게 投降한다. 그리고 10年 後인 199年 曹操 軍에 逮捕돼 처형당하게 된다. 濾胞가 積土의 主人이었던 時期는 10年이나 된다. 말의 壽命은 25年이니 10年은 一生의 折半假量에 該當하는 긴 時間이다. 

    呂布 死後 1年 後인 200年 關羽는 曹操에게 받은 積土를 타고 元素의 盲腸인 안輛(顔良)과 문추(文醜)를 刺殺한다. 그리고 機會를 엿보다 五官陸參의 傳說을 남기고 劉備의 軍營으로 돌아간다. 20年 뒤인 220年 東伍軍에 敗해 刑場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러니 小說 속의 이야기를 모두 眞實이라고 假定하면 關羽는 20年이나 積土의 主人이었다. 濾胞와 關羽 두 英雄이 積土를 탄 期間을 합치면 30年이 넘는다. 말도 動物이므로 壽命이 있고 老化를 겪게 된다. 30年間 現役으로 活動한다는 것은 不可能한 이야기다. 말의 身體的 全盛期는 普通 4~5歲 假量이다. 말이 15世가 넘으면 軍馬로는 쓰기는 어렵다. 合理的으로 判斷하면 積土는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일 可能性이 높다. 當時 積土는 特定 말의 이름이 아닌 붉은 汗血馬(汗血馬) 系列의 말을 이르는 總稱日 수 있다는 說도 있다. 이 說에 따르면 동탁이 呂布에게 賂物로 준 積土, 曹操가 關羽에게 膳物로 준 積土, 孫權이 麻蟲에게 하사한 積土가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 想像의 發露일 뿐이다. 戰場에서 濾胞를 태우고 다닌 積土의 以後 行跡은 確實치 않다. 그 누구도 眞實을 모른다. 죽은 曹操나 關羽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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