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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畫報]‘大體 不可’ 트로트女神 송가인|新東亞

[畫報]‘大體 不可’ 트로트女神 송가인

“좋은 사람 내게 오도록, 착하게 사는 가인이어라” “‘어게인’은 父母님 같은 存在, 고마움에 가슴 벅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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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記者

    kjy@donga.com

    入力 2021-12-16 10: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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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人氣보다 音樂性·팬서비스 重視

    • 無名의 모진 설움만큼 값진 사랑

    • 存在價値 證明한 손재주와 歌唱力

    • 트로트 才能은 아빠, 善行은 엄마 遺傳子

    • 팬덤 ‘어게인’의 歡呼聲이 最高의 補藥

    • 내숭 없는 따뜻한 人間味와 疏通의 힘

    • 人生 目標는 ‘노래 잘하는 國民歌手’



    [홍태식]

    [홍태식]

    “앞으로 이미자의 뒤를 이어 트로트界를 이끌 歌手가 될 것이다.”

    歌手 송창식은 2019年 트로트 競演 프로그램 ‘미스트롯’에서 송가인(35·本名 조은심)의 舞臺를 보고 이렇게 내다봤다. 그의 豫見대로 송가인은 現在 次世代를 이끄는 트로트女王으로 자리매김했다. 發表하는 노래마다 人氣를 끌고 있으며 公式 팬클럽 ‘AGAIN’(以下 어게인)의 會員 數는 約 6萬 名에 達한다. 國內 솔로 女性 트로트 歌手의 팬덤 中 最大 規模다.

    송가인은 中學校 2學年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고 중앙대학교에서 音樂劇을 專攻한 國樂人 出身. 2012年 ‘山바람아 江바람아’라는 싱글 앨범을 들고 트로트 歌手로 데뷔하지만 7年 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 ‘미스트롯’으로 人生 逆轉에 成功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特有의 허스키한 音色과 卓越한 歌唱力으로 每回 카리스마 넘치는 舞臺를 선보였다. 特히 ‘恨 많은 大同江’ ‘용두산 엘레지’ ‘斷腸의 彌阿里고개’ 같은 正統 트로트曲으로 가슴 뭉클한 感動을 안겼다는 評價를 받는다. 放送 初부터 블랙홀 같은 吸引力을 發揮하며 視聽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는 決勝 舞臺에서 優勝을 차지하며 單숨에 스타 班列에 올랐다. 그의 暴發的 人氣 德에 非主流 音樂으로 置簿되던 트로트는 歌謠界의 大勢로 거듭났다. 송가인이 트로트의 全盛時代를 열었다는 評價를 받는 理由다.

    ‘미스트롯’ 以後 송가인은 ‘歌人(佳人)’(2019)과 ‘몽(夢)’(2020) 두 正規 앨범과 여러 싱글 音盤을 냈다. 또 ‘惡人展’ ‘트롯 全國體典’ ‘트롯 매직流浪團’ 等 藝能 프로그램으로 活動 領域을 넓혀 本然의 疏脫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요즘은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餘波로 자주 만나기 힘든 팬들과 音樂으로 疏通하기 위해 새 앨범 準備에 餘念이 없다. 그런 그가 11月 9日 서울 西大門區 동아일보 忠正路社屋을 찾았다. ‘신동아’ 創刊 90周年 送年號를 빛낼 單獨 인터뷰와 畫報 撮影에 나서기 위해서였다.



    人氣보다 音樂性·팬서비스 重視

    [홍태식]

    [홍태식]

    - 새 音盤 準備는 잘돼 가나.

    “繼續 曲을 받으면서 앨범에 담을 노래를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앨범 콘셉트나 타이틀曲은 아직 定하지 못했다. 앨범은 12月 中 낼 計劃이다.”

    - 트로트 競演 프로그램으로 스타덤에 오른 後 달라진 點은 뭔가.

    “日常의 모든 게 달라졌다. 먹고 자는 패턴이나 만나는 사람뿐 아니라 空氣마저 달라진 느낌이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며 반가워하고 서비스도 잘해 주고 割引도 많이 해준다. 가끔 조용히 食事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寫眞 撮影이나 사인 要請을 받으면 기꺼이 應한다. 나이 들면 人氣가 없어질 텐데 이런 關心을 받을 수 있겠나. 모든 게 마음먹기 나름이다. 내가 消化해야 하는 日程이 많아진 것도 큰 變化다. 前에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只今은 쉴 時間이 別로 없다.”

    - 잠은 잘 자는 便인가.

    “한창 바쁠 때는 2時間밖에 못 잔 날도 있다. 한창 살을 빼는 中이었는데도 잠을 못 자서 얼굴이 잘 부었다. 그 때문에 ‘보톡스 注射를 맞았느냐’는 얘기도 들었다. 요즘은 하루 7時間은 자는 것 같다. 예전에는 너무 바빠서 皮膚를 管理할 時間도 없었는데 요즘은 血液循環이 잘되는 마사지를 받아 前보다 덜 붓는다. 그 德에 살 만하다.”

    - 歌手로 살면서 抛棄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人氣보다 音樂性을 重視한다. 나도 아이돌처럼 꾸미고 퍼포먼스를 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러다 보면 音樂이 가벼워질 수 있다. 그래서 내 長點을 돋보이게 하는, 나만의 武器가 될 수 있는 노래를 選擇해 나이 들어 보이게 治粧한다. 내게 노래를 맞추기보다 노래에 나를 맞추는 것이다.”

    송가인은 1986年 國樂의 故障으로 有名한 全南 珍島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國家無形文化財 珍島 씻김굿 傳受敎育助敎이자 巫俗人人 송순단 氏다. 어릴 때부터 우리 소리를 들으며 자란 송가인은 판소리를 專門的으로 배워 여러 大會에서 賞을 받았다. 2008年 全國판소리大會, 2009年 光陽 박해성 판소리競演大會에서 對象을 받은 데 이어 2010年과 2011年에는 文化관광부 長官賞을 連거푸 受賞했다. 송가인이라는 藝名을 使用한 건 2017年부터다. 어머니의 姓氏 ‘宋(宋)’에 노래 ‘가(歌)’와 사람 ‘人(人)’을 붙인 이름으로 ‘노래하는 사람이자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重義가 담겨 있다.

    [홍태식]

    [홍태식]

    無名의 모진 설움만큼 값진 사랑

    - 언제부터 트로트를 좋아했나.

    “어릴 때부터 國樂을 들으며 자라다 보니 판소리를 자연스럽게 接할 수 있었다. 中學校 때는 特別活動 時間에 文化財 先生님들로부터 ‘강강술래’ ‘震度 북놀이’ ‘南道 들노래’ 같은 걸 배웠다. 그러다 한 先生님이 내게 素質이 있으니 시켜보라고 엄마에게 勸해 本格的으로 판소리를 始作했다. 아빠는 平凡한 農事꾼인데 젊은 時節 기타를 배워 잘 치신다. 어릴 때 아빠가 ‘전국노래자랑’를 보면서 ‘目標의 눈물’ 같은 노래를 기타로 치면 나는 그 伴奏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장단이나 發聲이 판소리와 가깝다 보니 트로트가 익숙하고 親近하게 느껴졌다.”

    - 畫報 撮影할 때 개구쟁이 같은 面이 보였다. 어릴 때는 어땠나.

    “오빠들이랑 主로 놀았기 때문에 선머슴 같았다. 親오빠가 2名 있고 洞네에 오빠들이 많아서 激하게 놀았다. 나무 들고 칼싸움하고, 돌 던지기도 하고, 正말 天方地軸이었다.”

    - 國樂人의 길을 가다 歌手로 轉向한 理由가 궁금하다.

    “2010年 엄마의 勸誘로 ‘전국노래자랑’에 偶然히 나갔다가 最優秀賞을 타고 年末 決選에서 2等을 했다. 그 放送을 본 作曲家 先生님의 提議로 2012年 트로트 앨범을 냈다. 트로트 歌手가 되고 싶다기보다 機會가 왔으니 挑戰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엄마 아빠도 負擔 갖지 말고 健康하게만 지내라고 했다.”

    - 트로트의 人氣가 只今 같지 않아서 힘든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처음 앨범을 냈을 땐 다 잘될 줄 알았는데 해가 바뀌어도 希望이 보이지 않았다. 설 舞臺가 없어 寞寞했다. 所屬社가 新生 企劃社였고 나도 經驗이 없어 힘든 일이 많았다. 어딜 가나 待遇를 못 받고, 누가 늦게 오면 代打로 뛰는 일이 非一非再했다. ‘이쪽 世界에서는 돈도 있고 百度 있고 緣줄도 있어야겠구나. 큰 奇劃社에 들어가야 일할 만하겠구나. 노래 實力은 基本이고 비주얼과 몸매가 좋아야겠구나. 춤도 잘 춰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 가장 힘든 記憶은?

    “所屬社에서 行事場이나 舞臺에 저를 혼자 보낼 때가 많았다. 매니저도 없이 혼자 버스나 汽車를 타고 갔다. 衣裳도 直接 챙겼다. 버스로 移動하는 동안 化粧하고 김밥 먹고 化粧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고단한 나날이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이것도 못 하는 사람이 있을 거다. 앞으로 닥칠 힘든 일에 비하면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러니 只今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그런 생각이 나를 버티게 해줬다.”

    - 險한 말 때문에 傷處받은 적도 있나.

    “‘新人이면 舞臺에 세워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야지,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正말 熱받고 火가 났다. 新人이든 아니든 먹고살려고 일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런 時節이 있었기에 只今 사랑받는 每 瞬間이 所重하고 感謝하다.”

    存在價値 證明한 손재주와 歌唱力

    송가인은 ‘미스트롯’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정규앨범 2장을 내 큰 사랑을 받았다. 송가인이 직접 만든 수공예 비녀. [박해윤 기자]

    송가인은 ‘미스트롯’으로 스타덤에 오른 後 正規앨범 2張을 내 큰 사랑을 받았다. 송가인이 直接 만든 手工藝 비녀. [박해윤 記者]

    - 한동안 비녀를 만들어 生計를 꾸린 것으로 안다.

    “설 舞臺가 없어 深刻한 生活苦를 겪었다. 어쩌다 한 番 行事費로 받는 10萬 원, 20萬 원이 收入의 全部였다. 서울에서 自炊生活을 하는데 그 돈으로는 입에 풀漆하기조차 힘들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비녀 手工藝에 挑戰했다. 東大門市場을 가서 信用카드로 40萬 원어치 材料를 사다가 直接 비녀를 만들어 팔았다. 周圍 사람이 다 國樂人이다 보니 SNS에 비녀 寫眞을 올려놓으면 여기저기서 連絡이 왔다. 期待 以上으로 장사가 잘돼 그 돈으로 5個月을 生活했다. ‘미스트롯’에 出演하기 直前의 일이다.”

    - 손재주가 좋은가 보다.

    “새벽같이 材料를 사 오면 性格이 急해 그날 다 만들었다. 내 손으로 만들어 郵遞局에 가서 宅配로 부치는 일이 재미있고 뿌듯했다. 餘裕가 되면 오프라인 賣場에 陳列해 놓고 비녀를 팔고 싶을 程度였다. 自營業者들의 氣分을 알 것 같았다.”

    - 趣味도 손을 쓰는 낚시라고?

    “낚시를 좋아한다. 팔뚝만 한 숭어도 잡아봤다. 길이가 約 50cm는 될 거다. 進度가 4面이 다 바다다 보니 名節이나 休暇 때 家族끼리 바다낚시를 갔다. 어릴 때부터 바다낚시를 즐긴 걸 알고 팬들이 낚싯대를 膳物해 주셨다.”

    - ‘미스트롯’엔 어떻게 出演했나.

    “放送作家에게서 出演 提議를 받았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現役 歌手가 一般人하고 붙어서 떨어지면 스크래치가 클 것 아닌가. 苦悶 끝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냥 나가라’고 하셨다. ‘나가면 大박 나겠다’고 하시더라. 그 말에 勇氣를 얻어 出演했지만 잘될 거란 期待는 하지 않았다. ‘나는 옛날 노래인 正統 트로트歌謠를 부르는데, 요즘은 몸매가 좋고 얼굴도 예뻐야 關心을 받는데 나 같은 애가 되겠어?’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競演 參加者 100名 中 내가 1等에 뽑혀서 ‘아, 여긴 非理가 없구나’ 하며 洽足해하던 記憶이 난다.”

    - 勝負를 걸어볼 自信感이 없었나.

    “요즘은 비주얼이 뛰어난 歌手가 많으니까 얼굴도, 몸매도 안 되는 나는 競爭力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實際로 ‘너는 얼굴도, 몸매도 안 되니 노래로 勝負를 내야 한다, 노래만 熱心히 練習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만 죽어라 練習했다.”

    - 그동안 發表한 앨범 收錄曲 가운데 가장 愛着이 가는 노래를 꼽는다면.

    “모든 曲에 愛着이 가지만 그中에서도 첫 正規 앨범에 收錄된 ‘서울의 달’은 어릴 적 꿈꾸던 삶과 正말 힘들었던 時節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라 더 마음에 와 닿는다.”

    [홍태식]

    [홍태식]

    트로트 才能은 아빠, 善行은 엄마 遺傳子

    - ‘미스트롯’ 以後 20篇이 넘는 廣告를 찍었다. 收入이 많은 演藝界 스타 가운데 집이나 建物에 投資한 사람이 많은데 本人은 어떤가.

    “사람들은 내가 큰돈을 번 줄 아는데 實際로는 그렇지 않다. 只今도 傳貰로 살고 있다. 傳貰집에도 貸出받아 들어갔고, 아직도 갚아야 할 貸出金이 남아 있다.”

    - 그동안 어려운 이웃을 돕고 코로나19 擴散 防止를 위해 꾸준히 寄附해 왔다. 그 나름의 理由가 있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하고 싶었다. 父母님의 影響이 크다. 엄마는 不遇이웃을 돕는 放送을 즐겨 보셨다. 그럴 때마다 눈물을 보이며 後援金을 보내셨다. 冬至날이면 떡국을 한 솥 끓여 洞네 어르신들에게 갖다드렸다. 그렇게 나눠 먹는 걸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자라다 보니 나도 베푸는 걸 좋아한다.”

    옆에서 이 얘기를 듣던 송가인의 매니저는 “歌人 氏가 平素 같이 다니는 매니저나 스태프에게도 正말 잘한다. 情이 많아서 밥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뭐든 잘 사준다. 이런 데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남에게 베풀면 自身도 幸福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다. 그래서 ‘미스트롯’ 끝나고 나서 百貨店을 자주 찾았다. 그 때문에 記者들 사이에서는 ‘송가인이 돈을 벌더니 名品을 사러 다닌다’는 所聞이 돌았다는데, 歪曲된 얘기다. 名品을 산 건 맞는데 내 것이 아니다. 엄마 아빠, 오빠들, 親舊들, 판소리 先生님 等 내가 힘들 때 잘해 준 고마운 사람들에게 줄 膳物이었다. 늘 고마운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表現하고 싶었다. 판소리 先生님 生辰 때 弟子로서 변변한 膳物 한番 못 해드려 늘 罪悚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좋은 膳物을 하고 싶었다. 내 것은 안 샀다. 나한테 돈 쓰는 게 아깝다.”

    - 本人에게 善한 影響을 받아 팬들도 善行을 꾸준히 하고 있다. 팬덤 ‘어게인(AGAIN)’李 寄附나 奉仕活動을 했다는 消息을 接하면 어떤 氣分이 드나.

    “너무나도 흐뭇하고 뿌듯하다. ‘팬들이 나를 위해 이런 일까지 하는구나’ 하며 새삼 感歎하곤 한다. 어르신들이 많지만 아이돌 팬덤 못지않게 나를 應援하고 支持하려는 熱意가 대단하다. 感動 그 自體다.”

    [홍태식]

    [홍태식]

    내숭 없는 따뜻한 人間味와 疏通의 힘

    - 公式 팬클럽 ‘AGAIN’ 會員 數가 約 6萬 名에 達한다. 이토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理由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歌手가 노래를 잘해야 하는 건 基本이니 舞臺 뒤 待機室에서 보여주는 率直하고 疏脫한 모습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내가 平素 사투리를 쓰고 내숭을 안 떨어서 팬들이 親近하게 느끼는 것 같다. 食堂에 가서도 일하는 분들을 ‘姨母’라 부르고 누가 寫眞을 같이 찍자고 請하면 기꺼이 應하는데 그런 모습을 좋게 보시는 분이 많았다. 食堂 姨母가 한番은 ‘가인아, 너는 恒常 이러고 다녀라. 이런 모습 때문에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는 거야. 그리고 너는 實物이 TV보다 훨씬 예쁘니까 全國 八道를 구석구석 돌아다녀라. 八道를 다니며 實物이 얼마나 예쁜지 좀 보여줘야 한다’고 하더라. 하하하.”

    팬카페의 總括 管理者인 카페지기는 송가인의 切親한 親舊 한송영 氏다. 송가인은 그를 “高等學校 때부터 가장 親한 親舊”라고 紹介하며 “그 親舊가 ‘미스트롯’ 放映 初期부터 팬카페를 管理했다. 팬카페를 만들어놨더니 하루에 數千, 數萬 名이 들어왔다. 나 혼자선 堪當하기 힘들어 그 親舊한테 付託해 管理를 맡겼는데 그 德分에 팬카페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컴퓨터 文盲이던 어르신들도 各 地域 스터디 모임을 통해 音源이나 映像을 스트리밍(以下 스밍)하는 方法을 배워 아이돌 팬들 못지않게 熱烈히 應援에 同參한다”고 傳했다.

    송가인은 팬들과 좀더 자주, 가까이에서 疏通하기 위해 팬카페에 들어가 글을 올리고, 自身의 所藏品을 膳物로 주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또 ‘송가인과 映像通話’나 ‘송가인과 食事’를 商品으로 내걸 때도 있다. 송가인은 “이벤트 當籤者들과 이番 週末에도 만난다”며 “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感動 그 自體”라고 告白했다.

    - 콘서트나 行事가 끝나면 卽席 팬미팅을 한다고 들었다.

    “콘서트가 됐든 行事가 됐든 끝나고 나면 팬들과 만남의 時間을 갖는다. 팬들이 나를 몇 分이라도 直接 보고 싶어 飛行機 타고 배 타고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데 舞臺를 잠깐 보고 헤어지면 아쉬움이 클 것 같아 밤늦게라도 卽席 팬미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事態로 한동안 그런 팬미팅을 하지 못해 안타깝고 罪悚한 마음이 크다. 만남의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이벤트를 여는 것도 그런 理由에서다. 송가인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더 좋아해 달라고 말이다.”

    [홍태식]

    [홍태식]

    - 송가인에게 ‘어게인’은 어떤 存在인가.

    “또 다른 둥지이자 父母님 같은 存在다.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라고 할까. 그분들이 있어 엄청 든든하다. 언제나 큰 힘이 된다. 팬덤 色相인 핑크色 옷을 다 함께 입고 와 같은 色 風船과 夜光棒을 흔들며 신나게 應援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그 고마움을 말로 다 表現할 수 없을 程度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 팬들의 應援 口號 ‘엘오브이이(LOVE) 사랑해요 송가인’을 아는가.

    “勿論이다. 公式 팬카페를 통해 팬들이 만든 應援 口號다. 손가락으로 엘오브이이(LOVE) 模樣을 만들면서 ‘사랑해요 송가인’이라고 외치는 팬들의 喊聲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든든하다.”

    - 豫定된 콘서트 計劃이 있나.

    “只今은 콘서트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當場 時急한 것이 音盤 準備다. 콘서트는 새 앨범이 나오고 나서 코로나19 事態 推移를 지켜보며 計劃할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에는 팬들과 자주, 많이 만나고파

    [홍태식]

    [홍태식]

    - 올해가 한 달 남았다. 다가오는 새해에 이루고 싶은 所望이 있다면,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事態로 팬들을 많이 만나지 못했다. 새해에는 팬들을 더 많이 자주 만나고 싶다. 팬미팅度 자주하고 싶다. 내 팬들은 年齡帶가 높다. 그분들에게는 時間이 없기에 나를 더 많이, 자주 보여드리고 싶다. 팬카페에서 돌아가신 분의 消息을 接하니 마음이 몹시 아프다. 行事나 팬미팅에 參席해 나와 같이 춤추고 즐기던 분들 가운데 擧動이 不便해진 팬도 있다. 아프고 入院하시고 돌아가신 팬들의 消息을 ‘카페知己(팬카페 運營을 總括하는 管理者)를 통해 接하곤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 어떤 팬이 癌에 걸려 時間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를 傳해 듣고 映像便紙를 보내드리기도 했다. 내 便紙가 그분의 삶에 조금이나마 慰安이 되고 힘이 되길 바라서다. 그런 懇切한 마음이 닿아서인지 癌 治療를 잘하고 온 분도 있다. 그분이 ’折半은 醫師가 낫게 해주고, 남은 折半은 街인이가 낫게 해줬다’고 하시더라.”

    - 팬들에게 힘이 되고자 스스로도 健康管理를 잘하고 있나.

    “非對面 狀況이 길어지니 營養劑를 챙겨 먹어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拍手소리를 듣고 싶은데 公演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最近 코로나 事態가 좀 누그러져 오프라인 行事를 두 番 程度 했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왔더라. 拍手 소리, 歡呼 소리를 들으니 막 신이 나고 기운이 솟았다. 팬들과 어우러져 노래하면서 ‘拍手 한番 주세요’ 하니까 뜨거운 喊聲과 拍手喝采가 나왔다. 30分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했는데도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팬들을 만나면 그렇게 에너지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팬들과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면서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다.”

    - 살다 보면 彷徨하거나 길을 잃을 때도 있다. 그럴 때 마음을 다잡는 노하우가 있을 법하다.

    “‘肯定 마인드를 恒常 마음에 새기고 착하게 살자, 只今 힘든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힘든 일이 많을 거야, 내가 좋은 사람이 돼야 해, 나에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 이런 생각을 繼續하면 마음이 便安해진다.”

    - 人氣를 얻으면 初心을 잃기 쉽다. 송가인 氏의 境遇는 어떤가.

    “變한 게 없다. 親舊들이나 先生님들이 ‘넌 어쩜 그대로냐?’ ‘放送에서 뜨면 演藝人病에 걸린다는데 예나 只今이나 어쩜 이리 똑같으냐?”며 놀라워할 程度다. 放送을 보고 내 이미지가 억세다고 하는 분도 있다. 그런데 어쩌겠나. 나는 나다. 億萬金을 준다고 해도 내가 아닌 것처럼 내숭 떠는 건 못 하겠다.“

    - 앞으로 어떤 歌手가 되고 싶나.

    “이미자·심수봉·주현미 先生님처럼 되고 싶다. 노래 實力은 勿論 私的인 領域에서도 아무런 雜音 없이 한길을 걷는 한결같은 그분들이 존경스럽다. 李美子 先生님 같은 國民歌手, 眞짜 노래 잘하는 歌手가 되는 게 人生 最大의 目標다. 그리고 10年 後쯤엔 李美子 先生님이나 심수봉 先生님처럼 後輩들의 롤 모델이 될 만한 歌手가 돼 있으면 좋겠다.”


    #송가인 #트로트女神 #어게인 #國民歌手 #新東亞



    김지영 기자

    김지영 記者

    放送, 映畫, 演劇, 뮤지컬 等 大衆文化를 좋아하며 人物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文化와 不動産, 流通 分野에도 특별한 關心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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