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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에게 亡國 責任 탓한 李在明의 歷史 認識|新東亞

‘가쓰라-태프트’에게 亡國 責任 탓한 李在明의 歷史 認識

[노정태의 뷰파인더-59] 進步派가 美國 鐵石같이 믿어…냉철한 認識 必要한 때

  • 노정태 經濟社會硏究院 專門委員·哲學

    basil83@gmail.com

    入力 2021-11-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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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外勢 對 自主’ 構圖 만들려는 意圖

    • 陳重權이 曖昧한 코멘트 남긴 理由

    • 嚴密히는 가쓰라-태프트 密約 없어

    • ‘協定’ 아니라 日本의 外交戰·言論戰

    • ‘純粹한 被害者’ 前提한 歷史解釋

    • 末路는 自主 외치지만 意識世界는…

    뷰파인더는 1983年生 筆者가 陣營 論理와 묵은 觀念에 얽매이지 않고 써 내려가는 ‘時代 診斷書’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을 접견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大選候補(오른쪽)가 11月 12日 서울 汝矣島 中央黨舍에서 존 오소프 美 上院議員을 接見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記者]

    “韓國이 日本에 合倂된 理由는 美國이 가쓰라-태프트 協約을 통해 承認했기 때문이다.”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大選候補가 11月 12日 존 오소프 美國 上院議員을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韓國이 美國의 도움으로 體制를 維持하고 經濟成長을 이룬 것은 맞지만 兩國 關係에 ‘작은 그늘’이 있다며, 따지고 보면 分斷의 責任도 美國에게 있다는 이야기까지 빼놓지 않았다. 支持率 停滯期에 ‘外勢 對 自主’ 構圖로 大選을 끌고 가려는 意圖가 보이는 發言이다.

    問題는 同意하지 않는 사람들의 對應이다. 尹錫悅 國民의힘 大選候補는 같은 날 “韓美 間 友好協力을 위해 來訪한 분에게 過去 歷史를 擧論하는 것보다 우리 未來를 위한 協力을 얘기하는 게 맞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李在明의 發言 內容에 對한 論議는 避하고자 하는 態度다. 陳重權 前 東洋代 敎授는 “‘外交’의 基本을 모르는 것”이라고 指摘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거기서 할 말은 아니라는 意味다.

    가쓰라-태프트 密約을 맺어 美國이 日本의 朝鮮 倂合을 默認했기 때문에 朝鮮은 日本의 植民地가 됐을까? 그리하여 分斷과 內戰이라는 歷史的 悲劇을 겪어야만 했을까? 이러한 觀點은 進步 陣營에서는 常識으로 통한다. 陳重權이 特有의 寸鐵殺人 代身 曖昧한 코멘트를 남긴 것은 그런 理由 때문이리라. 그런데, 果然 그럴까?



    ‘密約’李 애當初 없는 두 가지 理由

    嚴密히 말하자면 가쓰라-태프트 密約은 存在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따져보도록 하자. 1905年 러일戰爭이 日本의 勝利로 마무리돼갈 무렵, 가쓰라 打로 日本 首相이 필리핀의 初代 總督을 歷任한 陸軍長官 태프트를 만난 것은 事實이다. 가쓰라가 태프트에게 ‘日本은 美國의 필리핀 支配를 容認할 테니, 美國도 日本의 朝鮮 支配를 默認해달라’는 趣旨의 이야기를 한 것 또한 分明한 事實이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密約’은 存在하지 않는다. 두 가지 理由 때문이다. 첫째, 태프트는 日本에 그 어떤 約束도 하지 않았다. 兩國 간 祕密 協定이 締結되지도 않았다. 當時 그는 필리핀 總督이었을 뿐 美國의 國防·外交 政策을 左右할만한 자리에 있지 못했다. 애初 그러한 ‘密約’을 맺을 權限이 없었다는 소리다. 다만 가쓰라가 워낙 執拗하게 물어본 통에, ‘個人的인 見解’라는 前提를 붙여 ‘日本이 韓國에 宗主權을 確立하는 것에 同意한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태프트는 1905年 7月 29日子로 美國 外務長官 루트(Eligu Root)에게 전보문서(電文)를 보냈다. 日本에서 이러저러한 對話가 있었다는 內容을 報告하는 業務 메모였다. 1924年 존스홉킨스大 歷史學部 敎授 타일러 데넷(Tyler Dennett)은 美國 議會圖書館에서 그 메모를 發見하고는 ‘美國과 日本 사이에 幕後 協商이 存在했다’는 內容의 論文을 發表했다. 日本의 植民地였던 朝鮮은 발칵 뒤집혔다. 설마 싶었던 內容을 確認했다는 認識이 퍼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메모는 ‘祕密協商’의 存在를 證明하지 않는다.

    가쓰라-태프트 ‘密約’이 存在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두 番째 理由.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 오간 對話는 ‘祕密’이 아니었다. 태프트가 日本을 訪問해 가쓰라와 만난 時期는 1905年 7月 27日. 그런데 約 3個月이 지난 10月 4日, 親政府性向의 高쿠민新聞(?民新聞)에 對話 內容이 大書特筆됐다. 勿論 美國 側은 認定하지 않았다. 20餘年 後 데넷의 硏究에 依해 그러한 對話가 事實이었다는 點이 드러난 것이다. 아무튼, ‘協定’은 없었고 ‘祕密’도 아니었으니 ‘密約’이 아닌 것이다.

    이런 見解는 筆者가 獨自的으로 創作해낸 게 아니다. 美國의 歷史學者 에스더스(Raymond Arthur Esthus)가 1959年 提起한 反論을 要約한 것이다. 가쓰라와 태프트는 ‘密約’을 한 적이 없다. 태프트에게는 美國의 太平洋 戰略에 對해 決定할 權限이 없었고, 따라서 어떤 外交的 協商도 約束도 하지 않았다. ‘個人 意見’이라는 前提를 달아 한 마디 했고 그 事實을 上部에 報告했는데, 놀랍게도 對話 內容이 言論에 報道됐다. 태프트나 美國 側에서는 難處한 立場에 놓였던 셈이다.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다!

    1905年, 大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왜 있지도 않았던 ‘密約’이 言論에 大書特筆됐을까? 日本이 言論을 動員한 外交戰을 펼쳤다는 것이 歷史學界의 支配的 見解다. 러일戰爭에서 이겼는데도 朝鮮에 對한 支配權을 完全히 確保가지 못할까 두려웠던 탓이다. 이에 日本은 여러 段階에 걸쳐 無理數를 뒀다. 굳이 日本에서 태프트와 만나 朝鮮 支配를 諒解한다는 趣旨의 表現을 끌어낸 後, 그것을 言論에 살짝 흘려 旣定事實化하는 手法을 썼다.

    이는 마치 마를 캐는 少年이던 薯童이 ‘薯童과 善花公主는 밤마다 함께 잔다’는 動搖를 퍼뜨려 善花公主를 夫人으로 삼은 것과 類似한 手法이다. 願하는 바를 얻기 위해 自身에게 유리한 所聞을 퍼뜨린 것이다.

    오늘날 美國은 ‘世界의 警察’로 꼽히지만 20世紀 初까지만 해도 美國은 外國과의 同盟도 戰爭도 避하는 性向을 지닌 ‘잠자는 巨人’에 가까웠다. 朝鮮 支配에 對해 美國의 公式的 支持를 正常的 經路로 얻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朝鮮을 確保해야 했던 日本은 美國과의 關係가 多少 뒤엉킬 危險을 甘受하고 外交戰, 言論戰을 펼쳤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韓國 뿐 아니라 海外 歷史學者들도 두루 共有하고 있는 認識이다. 가쓰라와 태프트 사이에는 ‘몰래 맺은 協定’이라는 뜻을 지니는 ‘密約’ 같은 게 存在하지 않았다. 代身 이런 歷史的 事實들이 存在했다. 高宗이 德壽宮을 버리고 러시아 公使館으로 避身하는 ‘俄館播遷’이 벌어졌다는 것. 英國은 러시아의 影響力이 東아시아에서 더 커지는 것을 願치 않았다는 것. 그리하여 日本을 支援했고 日本은 러日戰爭을 벌여 開港 50餘年 만에 宿敵 러시아를 꺾는 快擧를 이루었다는 것. 따라서 朝鮮은 日本의 입 속으로 굴러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强者가 弱者를 집어삼키는 게 너무도 當然했던 20世紀 初 帝國主義 時代, 美國은 朝鮮을 지켜줄 理由도 名分도 없었다는 것.

    우리는 스스로를 ‘純粹한 被害者’의 자리에 놓고 歷史를 解釋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當時는 懦弱했던 朝鮮마저도 ‘大韓帝國’이라는 巨創한 이름을 붙였던 時代다. 帝國主義의 弱肉强食 論理가 支配했다. 只今처럼 國際 秩序에도 普遍的인 道德과 當爲를 前提하고,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侵略하면 함께 非難하며 沮止하는 時代가 아니었다. 英國과 러시아가 힘겨루기를 하던 20世紀 初의 國際 情勢를 完全히 誤判한 高宗이 英國, 或은 英國의 支援을 받는 日本을 버리고 러시아의 便에 섰을 때, 러일戰爭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朝鮮은 스스로를 ‘巨大한 체스板’의 戰利品으로 올려놓은 채 잘못된 쪽에 판돈을 걸고 말았다.

    反日·反美 武器 삼아 逆轉 노리지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1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존 오소프 미 상원의원(왼쪽에서 두 번째) 일행을 향해 발언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기자]

    李在明 더불어民主黨 大選候補(오른쪽에서 두 番째)가 11月 12日 서울 汝矣島 中央黨舍에서 존 오소프 美 上院議員(왼쪽에서 두 番째) 一行을 向해 發言하고 있다. [안철민 동아일보 記者]

    李在明의 ‘가쓰라-태프트 發言’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支持率에서 守勢에 몰려 있으니 말이다. 反日·反美를 武器 삼아 逆轉의 機會를 노리는 것이다. 問題는 그 發言에 對한 우리 社會의, 特히 知識人들의 反應이다. 앞서 言及한 진중권의 境遇처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기서 할 소리는 아니다’ 같은 式의 反應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其他 다양한 經路를 통해 어렵지 않게 確認할 수 있다. 特히 進步 性向을 지니는 사람들, 美國 中心의 國際 秩序를 反對하거나 代案을 摸索할 必要가 있다고 主張하는 분들이 그렇다.

    이것은 참으로 異常한 일이다. 너무도 앞뒤가 안 맞는 소리다. 20世紀 初의 美國은 只今처럼 絶對的인 影響力을 지니는 强國이 아니었다. 게다가 더 重要한 事實이 있다. 朝鮮은 美國의 植民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外形上 獨立 國家였고 따라서 美國으로서는 日本이 朝鮮을 倂合하건 말건 贊成할 理由도 反對할 根據도 딱히 없었다. 韓國의 進步主義者들은 大體로 美國이 韓半島에 지나친 影響力을 미치고 있다고 批判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大體 왜 100年 前 美國이 植民地도 아닌 朝鮮을 지켜줬어야 한다고 主張하는 걸까?

    一角에서는 1882年 朝鮮과 美國이 맺은 朝美通常修好條約의 第1條가 根據라고 主張한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特使를 보냈던 高宗의 論理이기도 하다. 朝美通商修好條約 1條에 “萬若 他國이 불공경모(不公輕侮)”하면 서로 돕겠다는 句節이 들어 있었으니 美國은 朝鮮을 日本으로부터 지켜줬어야 한다는 論理다. 하지만 該當 句節은 1858年 淸나라가 러시아, 美國, 英國, 프랑스와 맺었던 텐진條約 中 美國과의 協商門에 들어갔던 것과 同一한 것이다. 그렇다면 1894年 淸日戰爭에서 美國이 該當 條約을 理由로 廳과 軍事 協力을 해 淸나라를 지켜줬을까?

    勿論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當時라고 國際 協約과 同盟 等이 모두 休紙조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條約 當事國인 美國은 텐진條約 1條의 ‘佛經共謀’ 句節을 그저 美辭麗句로 取扱했다. 靑果의 條約에서 實效性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 立證된 句節을 두고, 美國이 朝鮮에 對해서만은 그 美辭麗句를 文字 그대로 實踐해 주리라 믿는 것은 合理的 態度가 아니다. 朝鮮 處地에서 抗議할 수야 있겠지만 相對가 欣快히 받아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本來의 質問으로 돌아가 보자. 왜 韓國의 反美主義者·進步主義者들은 美國의 介入과 도움을 當然한 것으로 여길까? 末路는 民族 自決, 獨立, 自主를 외치지만 그들의 思考方式을 잘 뜯어보면 進步 側에서 흔히 非難하는 ‘親美主義者’들보다 더욱 美國을 鐵石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가쓰라-태프트 密約으로 美國이 朝鮮을 日本에 팔아넘겼다! 이 主張은 朝鮮을 美國의 植民地라고 前提하지 않는 限, 或은 弱肉强食의 帝國主義 時代에 오직 美國만은 天使처럼 朝鮮을 지켜주었어야 한다고 斷定 짓고 있지 않는 限, 到底히 成立할 수 없는 主張이기 때문이다.

    亡國은 누구의 責任인가

    朝鮮이 日本에 合倂된 理由는 美國이 가쓰라-태프트 密約으로 默認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朝鮮 亡國의 責任은 結局 朝鮮 스스로에 있었다. 西洋과의 接觸 및 近代化가 늦었다. 後發走者의 不利한 與件을 克服하는데 總力을 기울였어야 할 支配層은 제 배를 불리는 데에만 血眼이 돼있었다. 게다가 決定的으로 國際 情勢에 어두웠다. 그러면서도 國內 政治의 必要를 위해 國際 政治를 아무렇게나 갖다 썼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왠지 낯설지 않다고 느끼는 건 筆者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冷徹한 머리로 우리의 客觀的 處地와 現實을 把握하여 膽大하게 올바른 決定을 내리는 그런 政治가 必要하다.


    #李在明 #가쓰라태프트 #日帝强占期 #反美 #反日 #新東亞


    노정태
    ● 1983年 出生
    ● 高麗大 法學科 卒業, 서강대 大學院 哲學科 碩士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韓國語版 編輯長
    ● 著書 : ‘不良 政治’ ‘論客時代’ ‘탄탈로스의 神話’
    ● 曆書 : ‘밀레니얼 宣言’ ‘民主主義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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