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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平 食客’ 安堅이 首陽大君 治下에서 목숨 건진 까닭[幻想劇場]|新東亞

‘安平 食客’ 安堅이 首陽大君 治下에서 목숨 건진 까닭[幻想劇場]

‘夢遊桃源圖’ 眼見은 首陽大君의 間者?

  • 윤채근 단국대 敎授

    入力 2021-12-1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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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채근 단국대 敎授가 우리 古典에 記錄된 敍事를 現代 感性으로 脚色한 짧은 이야기를 連載한다. 歷史와 小說, 過去와 현대가 어우러져 讀者의 想像力을 刺戟할 것이다.
    圖畫院 化工 眼見은 景福宮 右側 街回榜에 자리 잡은 自身의 집에서 末年의 平和를 누리고 있었다. 化工 出身으로선 바라기 힘든 情4品 護軍 벼슬까지 下賜받았고, 잘 가르친 子息들을 버젓한 兩班 身分으로 만들었으니 饒足하基 그지없는 삶이었다. 이 모든 幸運은 이미 오래前 世上을 뜬 先王 世祖 德分이었다.

    安堅의 山水畫 大部分은 漢陽 貴한 집 內實마다 걸려 높은 作品性을 인정받았지만, 그 自身이 認定하는 作品은 따로 있었다. 바로 安平大君의 꿈 얘기를 듣고 그려준 夢遊桃源圖였다. 그는 本來 主人을 잃고 自己 居室에 걸려 있는 이 作品을 홀로 鑑賞하며 젊은 時節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失手와 그 失手가 招來한 運命에 對해 생각하곤 했다.

    安堅의 街回榜 邸宅은 제법 컸다. 그동안 불린 財産도 적지 않은지라 수많은 詩人 墨客과 藝術人이 드나드는 名所가 돼 있었다. 손님으로 북적대는 興盛함을 아주 좋아한 眼見은 떠들썩한 잔치 雰圍氣에서 거문고 소리 듣기를 즐겼다. 自身을 따르는 後輩 化工科 淸朗한 樂器 音律을 곱씹노라면 먼 옛날 그리도 欽慕하고 탐내던 安平大君의 호사스러운 삶을 半의半 程度는 따라잡은 듯 感懷에 젖었다.

    獨特한 弄絃 技法으로 安堅의 神經을 곤두서게 한 젊은 演奏家가 出演한 그날, 蕭瑟한 봄바람에 달은 밝았고 술과 按酒 亦是 洽足해 그는 이쯤에서 生을 마쳐도 좋겠다고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그 奇異한 거문고 소리가 차츰 그의 感情을 헤집으며 說明할 길 없는 不安을 불러일으키기 前까지는 그랬다. 演奏를 中斷시킨 眼見은 未知의 젊은 演奏者를 가까이 불러 앉히고 나서 물었다.

    “자네 나이가 아직 어린 듯한데, 그 야릇한 弄絃法은 누구에게 배웠나?”



    갸름한 얼굴에 中性的인 눈매와 날카로운 콧대를 한 젊은이는 暫時 망설이다 천천히 對答했다.

    “시골의 이름 모를 스승에게서 배웠습니다.”

    “시골 어디?”

    “慶北 尙州 고을입니다.”

    “喪主에 그런 弄絃을 하는 樂工이 산다는 얘긴 처음 듣는데?”

    “그저 떠돌이 樂工이셨습니다. 只今은 行方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옛 記憶을 召喚하는 거문고 소리

    靑年을 찬찬히 뜯어보던 安堅이 조용히 속삭였다.

    “그런 弄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시골 官衙에서 아무렇게나 뜯는 樂工 솜씨가 아니라는 뜻이지. 그건 宮闕에서 놀아본 자나 할 줄 아는 弄絃이야! 都大體 네 녀석 正體가 뭐냐?”

    靑年의 눈瞳子엔 唐慌한 氣色이 歷歷했으나 音聲만은 平靜을 잃지 않고 端正히 흘러나왔다.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스승께서 사라지신 뒤 혼자 繼續 硏磨하다가 이제 世上에 試驗해 보려 上京했을 뿐입니다.”

    한숨을 몰아쉰 安堅이 案席에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마치 꿈을 꾸듯 혼잣말을 했다.

    “그건 요즘 音律도 아니다. 그 長短高低는 世宗께서 다스리시던 太平聖代의 것이다. 말하자면 잘 다스려지는 時代의 소리, 바로 治世之音이다. 그걸 시골 떠돌이 樂工이나 너처럼 어린 것이 알 理 없지 않으냐? 어찌 그리도 옛 音을 잘 짚는단 말이냐? 마치 그 時節로 되돌아간 氣分이구나.”

    世宗 治下의 좋은 時節, 詩書畫(詩書畵) 어느 것 하나 못 하는 게 없던 天才藝術人 安平大君은 사람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다. 長安에 재주 있다는 者는 罪 安平 門下에 들려고 競爭했고, 그 가운데 가장 뛰어난 自慢 大君 邸宅인 無稽正史의 宴會에 招待받을 수 있었다. 無稽情事를 드나든다는 것은 곧 漢陽 文化의 最深部에 進入했음을 의미했고, 더 나아가 王朝 權力의 未來 實勢와 連結됐음을 뜻하는 證票이기도 했다.

    그 좋았던 옛 時節

    안견이 안평대군의 꿈을 바탕으로 그린 ‘몽유도원도’. [위키피디아]

    安堅이 安平大君의 꿈을 바탕으로 그린 ‘夢遊桃源圖’. [위키피디아]

    筆法이 卓越했으나 圖畫院 化工 사이에서 特別히 頭角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던 眼見을 먼저 發見해 준 이도 安平大君이었다. 大軍은 安堅의 非凡함을 한눈에 알아봤다. 언뜻 凡常해 보이는 安堅의 山水畫 한 點을 偶然히 손에 넣은 大軍은 그림 안에서 躍動하는 놀라운 構成力에 魅了됐다. 事物을 全體的으로 透視해 펼치는 壯快한 構圖와 細筆로 이를 하나하나 實現해 내는 妙法은 完成을 기다리는 젊은 大家의 솜씨였다.

    無稽正史의 단골 食客이 된 安堅의 名聲은 하루아침에 漢陽 全體로 퍼져나갔고, 圖畫院에서 그를 對하는 態度마저 바꾸도록 했다. 비록 賤한 靴工이었지만 아무도 넘볼 수 없는 權府의 後援을 받게 된 그를 함부로 볼 사람은 없었다. 夢遊桃源圖는 그 좋았던 時節 그려졌다.

    宴會가 罷하고 寢房에 들기 前, 眼見은 尙州 出身 젊은 樂工을 居室로 불렀다. 거문고를 가르쳐줬다는 스승에 對한 얘기가 께름칙하긴 했지만 그냥 떠나보내기엔 아쉬움이 남아서였다. 그가 靑年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어디 便히 묵을 데가 없다면, 내 집 食客이 되진 않을 테냐?”

    다소곳이 무릎 꿇고 앉아 생각에 잠긴 靑年은 보면 볼수록 끝을 알 길 없는 水深에 잠겼다. 相對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安堅이 덧붙였다.

    “무슨 근심이 그리도 많은 게냐? 내 집에서 묵으며 거문고나 가끔 타다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던 靑年의 눈길이 壁에 걸린 夢遊桃源圖에서 멈췄다. 視線을 그림에 固定한 채 靑年이 입을 열었다.

    “그리하겠습니다만, 저 그림의 事緣이 궁금합니다.”

    흠칫 놀라는 表情을 지은 安堅이 夢遊桃源圖를 바라보고, 다시 그걸 보는 靑年을 바라보며 對答했다.

    “그 事緣이 왜 궁금하지?”

    빙그레 微笑를 띤 靑年이 처음으로 輕快하게 말했다.

    “實은 小人 아비가 절에서 幀畫를 그렸습니다. 그림을 조금 볼 줄 압니다.”

    疑心이 多少 누그러진 安堅이 느긋한 表情으로 천천히 입을 뗐다.

    “참으로 좋았던 時節이 있었다. 文宗 임금께서 潛邸에 계시던 때지. 누가 날 처음 써주셨는지 아느냐? 바로 안평대군이셨다!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으니 이런 말도 하게 되는구나. 그렇다! 난 한때 逆賊 安平大君의 사람이었다.”

    두 눈이 가는 失禁처럼 가로로 찢어지며 靑年이 물었다.

    “世祖께서 登極하시며 안평대군 사람들은 모두 誅戮되지 않았던가요? 無禮한 質問 悚懼합니다만.”

    “勿論 그랬지. 나도 危險했어. 하지만 살길이 열리더구나. 가만히 돌아보면, 그도 그럴 것이, 난 그저 그림 그리는 化工이었으니, 무슨 罪 지을 일이 있었겠느냐? 게다가 首陽大君 어르신께서는 龍床에 오르기 前부터 가끔 날 불러주시기도 했더랬다.”

    가늘고 긴 靑年의 눈썹이 暫時 찡그려지더니 이내 元來 狀態로 되돌아갔다. 그가 물었다.

    “두 分 大軍님을 다 섬기셨던 것이로군요? 한데 저 그림은 왜 保管하고 계신 건가요? 小人 알기로는 夢遊桃源圖 같습니다만.”

    安堅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疑心의 바람이 다시 그의 마음을 徘徊했지만 애써 억누른 채 對答했다.

    “넌 이미 다 알고 있었구나, 그렇지? 夢遊桃源圖가 맞다. 安平 어르신과 竹馬故友처럼 즐기던 時節 그렸다. 어느 날 꿈속에서 武陵桃源을 보셨다 하시더구나. 꿈 얘기를 그대로 畫幅에 펼쳐 보였더니 뛸 듯이 기뻐하셨지. 수성궁에 걸려 있던 걸 回收해 내가 여태 保管하고 있다.”

    相對 氣色을 차분히 살피던 靑年이 속삭였다.

    “비록 幀畫를 그렸지만 小人 아비 또한 化工인지라 夢遊桃源圖 얘기를 자주 하셨습니다. 저 그림을 보며 그것이겠거니 斟酌해 봤을 뿐입니다.”

    靑年을 지긋이 바라보던 安堅이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이미 아득한 옛 얘기다. 거문고나 한 番 더 타주겠느냐? 그럼 내 수성궁 時節 얘기 한 자락 펼쳐 步이마.”

    수성궁의 興亡盛衰

    인왕산 자락 수성동 계곡 풍경을 담은 겸재 정선의 그림. ‘장동팔경첩’의 한 부분이다. [위키피디아]

    仁王山 자락 수성동 溪谷 風景을 담은 謙齋 旌善의 그림. ‘장동팔경첩’의 한 部分이다. [위키피디아]

    仁王山 자락 景致 좋은 溪谷에 터를 잡은 수성궁은 漢陽의 名所였다. 文宗이 昇遐하고 여러 大軍이 實權을 다투며 角逐戰을 벌이던 時節, 初盤 勝機를 잡은 安平大君은 景福宮 옆 이 絶景에 수성궁을 造成하고 權力을 마음껏 뽐냈다. 비록 首陽大君이 無事를 養成하며 安平의 牙城에 挑戰했지만 兵權을 틀어쥔 金宗瑞가 王室 後援者로 있는 한 全혀 威脅이 되지 못했다.

    安平은 武力이 아닌 文化의 힘으로 世上을 統治하고 싶어 했다. 王室을 保護할 튼튼한 甲옷으로서 武將들을 제대로 禮遇해 주면 世上엔 文武가 평화롭게 共存하는 均衡이 찾아올 거라 믿었다. 結果的으로 이것이 그의 最大 敗着이 됐지만, 風流에 陶醉된 安平은 다가오는 危險을 正確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수성궁은 날마다 미어터지는 訪問客으로 북적였다. 文化界 人物을 接待하고 그들과 宴會를 즐기던 本堂이 있고, 높은 담牆에 가려진 비밀스러운 內堂이 따로 存在했다. 內堂은 東齋와 書齋 두 建物로 이뤄졌다. 수성궁 建立 初期 텅 비어 있던 東齋와 書齋는 安平의 隱密한 計劃에 따라 차츰 사람으로 채워지기 始作했다.

    內堂은 禁男의 場所였다. 安平은 閭閻집 處女 가운데 재色이 있는 少女를 選拔해 內堂에 가두고 마치 宮女처럼 訓鍊했다. 그女들은 다양한 樂器를 다룰 줄 알았고 唐樂과 享樂을 두루 익혔으며 專門的으로 詩文 創作을 敎育받았다. 外部와 徹底히 隔離된 內堂에선 달마다 東齋와 書齋 사이에 技藝 競演이 벌어졌다. 두 再議 ‘宮女’들은 相對를 꺾고자 늘 피나는 努力을 傾注해야 했다.

    놀랍게도 安平은 수성궁 宮女 그 누구와도 同寢하지 않았다. 그는 수성궁을 世俗과 完璧히 分離된 純粹한 空間으로 만들고 싶어 했고, 그 嚴格한 잣대를 스스로에게도 適用했다. 首陽大君의 反擊으로 宗廟社稷의 向方을 알 수 없게 됐을 때조차 安平은 수성궁 內堂만큼은 끝까지 保護하고자 했다. 하지만 수성궁의 沒落은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始作됐다.

    “金進士라는 人物이 수성궁을 무너뜨렸다는 말씀이신가요?”

    靑年 樂工의 質問에 默默히 고개를 끄덕인 安堅이 손가락으로 거문고를 가리켰다. 相對 意中을 看破한 靑年이 거문고를 가져와 줄의 힘을 알맞게 조이더니 슬픈 界面調 演奏를 始作했다. 한참을 演奏에 心醉해 있던 安堅이 입을 뗐고 그와 同時에 演奏도 멈췄다.

    “난 네가 眞짜 듣고 싶어 하는 게 뭔지 안다. 이 나이쯤 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게 많지. 그냥 듣기만 해라. 金進士를 수성궁에 끌어들인 게 바로 나였다. 왜 그랬느냐고? 네가 斟酌하는 대로다. 난 首陽大君이 심은 間者였다. 대꾸할 必要 없다. 네가 안다는 걸 이미 다 아니까. 널 어떻게 할 생각이었다면 벌써 네 목은 날아갔겠지? 수양의 提案은 別것 아니었다. 수성궁 內堂의 正體를 알아내라는 거였지. 하지만 내가 直接 그곳에 들어갈 수는 없지 않으냐? 수양이 手足처럼 부리던 金進士란 젊은이가 퍼뜩 떠오르더구나. 手腕 좋은 그 親舊라면 安平 어르신을 어찌어찌해서 內堂까지 들어갈 수 있으리라 여겼거든. 어느 날 貴한 畫帖 하나를 손에 들려 金進士를 수성궁에 심부름 보냈다. 내가 한 일이라곤 딱 그거 하나였어! 安平 나으리를 害코지할 생각은 秋毫도 없었다. 眞心이다. 그때는 首陽大君이 그토록 殘忍한 일을 벌이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金進士의 危險한 사랑

    아무 말 없이 거문고를 내려다보던 靑年이 操心스레 입을 열었다.

    “首陽大君의 사람이라는 그 金進士라는 젊은이, 어떻게 수성궁을 沒落시켰는지요?”

    “金進士가 수성궁 本堂 居室에서 내가 보낸 畫帖을 安平 어르신께 傳達할 때, 何必 內堂 동재의 宮女 하나가 車 심부름을 하러 나와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運營이라고 했지. 그 짧은 瞬間에 두 젊은 男女가 情分이 나버렸다. 아무도 말릴 수 없었지. 金進士는 別別 手段을 다 써서 運營이와 密會를 이어갔다. 甚至於 사다리를 利用해 東齋 안까지 侵犯하기도 했다지. 이건 다 後날 들은 얘기다. 金進士를 安平 어르신께 紹介한 罪로 난 다시는 수성궁에 들어갈 수 없었거든.”

    “密會는 畢竟 오래지 않아 發覺됐을 텐데, 어쩌다 수성궁 全體가 무너졌는지요?”

    “安平 어르신의 慈悲心 때문 아니겠느냐? 金進士와 運營을 問招하던 大軍께서 사람의 타고난 欲望을 누구도 어쩌지 못함을 깨달으시고 수성궁 內堂 門을 열어 宮女들을 내보냈다고 들었다. 곧이어 本堂 宴會도 시들해졌고, 마침내 首陽大君의 世上이 찾아왔지.”

    한참 동안 靑年을 뜯어보고 있던 安堅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알고 있던 事實과 많이 다르더냐?”

    靑年이 對答 없이 긴 한숨을 내쉬자 安堅이 다시 물었다.

    “이게 내가 아는 全部다. 이제 네 正體를 말해 주겠느냐? 넌 必是 수성궁과 관계된 者임에 틀림없다. 누구냐, 넌?”

    가늘게 흘러내린 靑年의 눈꼬리가 꿈틀대다 멈췄다. 靑年이 속삭였다.

    “그 거짓말을 믿어드리지요. 代身 金進士와 運營 사는 곳을 알려주셔야 합니다. 꼭 그래주시리라 믿습니다.”

    소매에서 날카로운 匕首를 꺼내는 靑年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安堅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나이에 내가 그러지 않을 理由가 있을까? 그 칼만 于先 거두어라. 더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金進士를 수성궁에 들여보낸 일은 只今도 後悔莫甚이구나! 나 같은 化工 따위가 世上 일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느냐?”

    代를 이은 復讐

    젊은 樂工 한 名이 거문고匣을 등에 지고 龍山 淡淡情 터에 나타난 건 이른 아침 햇살이 담牆에 비껴들 무렵이었다. 오래前 집主人이 바뀐 淡淡情은 한때 安平大君이 自身의 書齋 兼 別莊으로 쓰던 場所였다. 初老의 집主人 夫婦와 마주한 樂工이 鄭重히 고개를 숙여 人事하며 말했다.

    “初面에 불쑥 찾아와 悚懼합니다. 尙州 出身 樂工 조묵금이라 합니다.”

    묵金을 노려보던 집主人 사내가 마루에 자리를 내주며 물었다.

    “집은 넓지만 외동딸을 막 分家시킨 터라 歌詞를 돌볼 손조차 不足합니다. 食客을 두기엔 힘에 부치는데, 어인 일로 찾아오셨는지?”

    거문고匣을 내려놓고 집안 구석구석을 훑어보던 묵金이 낮은 音聲으로 對答했다.

    “어제 저녁 街回榜 安堅 先生 宅에서 묵었습지요. 밤을 지새우며 옛이야기를 나눴는데 金進士 어른을 言及하시더군요. 好奇心에 이리 찾아왔습니다.”

    金進士로 불린 집主人 사내가 흠칫 놀라 뒤에 서 있던 아내를 돌아본 뒤 천천히 마루에서 몸을 빼냈다.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묵金이 다시 말했다.

    “허깨비 같은 家奴들 부르실 생각은 마시지요. 부질없는 짓입니다. 한데 運營 娘子님께선 참 대단하시군요. 한때 自身을 키워준 主君의 別莊을 차지할 생각을 다하셨습니다그려?”

    잔뜩 緊張한 中年의 運營이 男便 앞으로 나서며 斷乎하게 말했다.

    “正體가 뭐냐? 安堅 늙은이와는 消息 끊은 지 이미 오래다. 뭔가 誤解가 있다면 말로 풀어주겠지만, 묵은 怨恨이라도 있거들랑 그냥 삭이고 조용히 떠나라. 너처럼 어린 것한테 當할 내가 아니다.”

    거문고匣에서 長劍을 꺼내 손에 움켜쥔 묵金이 속삭였다.

    “수성궁을 脫出한 唯一한 生存者 椒蘭을 記憶하시는지요?”

    가벼운 몸놀림으로 안房으로 移動한 運營 亦是 長劍을 손에 쥐고 나왔다. 그女가 묵金을 노려보며 말했다.

    “書齋의 椒蘭을 어찌 잊었을까?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더냐? 或是 네 놈 어미더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묵金이 草食을 밟으며 相對에게 다가갔다. 그가 呻吟하듯 말했다.

    “書齋에는 椒蘭, 東齋에는 運營, 安平大君의 두 날개셨다지요? 그리 寵愛가 깊었건만 어찌 大軍과 同僚들을 背信하신 겁니까? 저따위 허약한 사내 때문이었습니까?”

    劍을 묵金의 목을 向해 겨눈 運營이 스산한 音聲으로 對答했다.

    “椒蘭과 나, 우리 中 하나는 於此彼 버려질 運命이었다. 피 말리는 競爭도 지겨웠거니와, 大軍이 焦蘭伊年을 偏愛하는 꼴은 차마 봐줄 수가 없었지. 그래! 金進士 저 사람 꾐에 넘어갔다. 뭐 어쩌겠느냐? 그리도 至毒히 文武를 익혔건만 내게 돌아오는 게 別로 없었다. 그렇다면 제값을 쳐줄 다른 主君을 찾는 게 理致에 닿지 않겠느냐?”

    몸을 솟구친 묵金이 칼의 方向을 틀어 金進士를 向했다. 칼이 金進士의 배를 가르고 오른쪽으로 號를 그으며 한 回轉을 마감했다. 그사이 男便을 保護하려는 運營의 칼은 뒤미처 虛空만을 가른 채 위로 솟구쳤다. 自身의 죽음을 豫感한 運營은 더는 雲劍하지 않았다. 묵金의 칼이 빠르게 그女 목을 베고 視野에서 사라졌다.

    最後의 生存者

    젊은 男女 사이의 흔한 愛情史라 여긴 安平大君은 金進士를 죽이고 事件을 조용히 덮을 料量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所聞이 밖으로 퍼져 內堂의 正體가 綻露 나는 걸 몹시 두려워했다. 內堂의 東齋와 書齋는 才藝만을 익히는 平凡한 宮女 組織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女들은 有事時를 對備해 育成한 精銳 撒水(殺手)들이기도 했다.

    겉으로는 藝能에 陶醉해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安平에게도 숨은 꿍꿍이는 있었다. 그는 자꾸 武力을 키우던 修養에 맞설 비밀스러운 護衛 組織을 願했다. 하지만 兄처럼 品位마저 잃고 싶지는 않았기에, 窮餘之策으로 急造한 게 수성궁 內堂의 東齋와 書齋였다. 內堂 宮女들은 平素에는 技藝를 두루 갖춘 宮女로 살았지만, 週期的으로 酷毒한 武藝 訓鍊을 받으며 刺客으로서 苛酷한 競爭에 내몰려야 했다.

    安平大君이 운영과 密會를 나누던 金進士를 잡아들여 內堂 뜨락에서 問招하던 밤, 運營의 表情은 奇異할 程度로 平穩해 보였다. 그女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느긋했다. 興奮한 건 그女의 最大 競爭者이자 書齋의 우두머리였던 椒蘭이었다. 椒蘭은 內堂의 禍根인 運營마저 함께 죽여버리자고 强勁하게 要請했다. 運營의 재주를 아끼던 大軍은 새벽까지 망설이며 判決을 미루고 미뤘다. 그리고 느닷없이 그 일이 벌어졌다.

    正體를 알 수 없는 弓手들이 內堂 담牆 위에서 화살을 亂射하기 始作하자 잘 訓鍊된 宮女들조차 隊伍를 잃고 霎時間에 烏合之卒이 돼버렸다. 金進士와 運營만을 남기고 그 자리에 있던 大部分의 宮女가 避身할 곳을 찾지 못한 채 射殺됐다. 安平大君을 몸으로 警護하며 本堂 쪽으로 急히 移動한 焦蘭伊 唯一한 生存者였다.

    內堂 宮女를 모두 잃은 大軍은 火病으로 한 달을 앓아누웠다. 하지만 體統을 重視하던 그로선 그 事實을 世上에 밝히고 兄과 싸울 名分이 窮塞했다. 무엇보다 몰래 薩水를 길렀다는 汚名을 뒤집어쓸까 戰戰兢兢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椒蘭은 大君 곁을 떠나기로 決心했다. 그女는 大軍이 하사한 거문고와 寶劍 한 자루만 지니고 故鄕 같던 ‘수성궁’을 떠났다. 離別에 臨해 嗚咽하던 그女는 懇切한 마음을 담아 大軍에게 이런 말로 下直 人事를 代身했다.

    “부디 玉體 保存하셔서 聖君이 되옵소서. 그 무렵 기억나시거든 少女를 다시 불러주소서. 設令 부르지 않으신다 해도 이 衷心만은 決코 變치 않으리다.”


    #안평대군 #首陽大君 #夢遊桃源圖 #太平聖代 #新東亞

    * 이 作品은 作者 未詳의 ‘雲英傳’ 一部를 모티프로 創作한 것이다.


    윤채근
    ● 1965年 忠北 淸州 出生
    ● 고려대 國語國文學 博士
    ● 檀國大 漢文敎育學科 敎授
    ● 著書 : ‘小說的 主體, 그 誕生과 轉變’ ‘漢文小說과 欲望의 構造’ ‘神話가 된 天才들’ ‘論語 感覺’ ‘每日같이 明心寶鑑’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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