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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故 原因 다 밝혀졌고 兪炳彦 죽었는데 뭘 더?”|新東亞

“事故 原因 다 밝혀졌고 兪炳彦 죽었는데 뭘 더?”

歲月號 特檢 無用論

  • 이정훈 | 編輯委員 hoon@donga.com

    入力 2014-10-23 14: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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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察의 ‘빈손 特檢’ 만들기
    • 웬만한 건 檢察이 다 調査
    • 兪炳彦 海外財産 찾기 쉽지 않아
    • 세월호 事件 直後 構成했어야
    “사고 원인 다 밝혀졌고 유병언 죽었는데 뭘 더?”

    10月 6日 歲月號 慘事 最終 搜査 結果를 發表하는 조은석 大檢 刑事部長. 그러나 歲月號 慘事 事件은 새로 構成될 特檢을 통해 또 한 番 搜査 받아야 한다.

    10月 6日 大檢察廳이 歲月號 慘事 事件에 對한 綜合搜査結果를 發表했다. 歲月號 慘事에 對한 檢察 搜査 終結을 宣言한 것이다. 그러나 歲月號 慘事는 또 한 番 調査받아야 한다. 特檢팀이 꾸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特檢은 歲月號 慘事 直後 構成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歲月號 家族對策委員會 等이 “세월호 特別法을 만들고 그 法에 依해 만들어지는 眞相調査委員會에서 特檢을 推薦해야 한다”고 主張해 構成되지 못했다. 그 사이 檢察은 歲月號 搜査를 마무리했다.

    檢察과 特檢은 競爭 關係일 수밖에 없다. 한발 늦게 構成되는 特檢은 檢察 搜査를 再檢討해 未備한 것과 잘못된 것, 그리고 檢察이 찾아내지 못한 것을 찾아내 追加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檢察 搜査가 허방인 것이 밝혀진다면 檢察은 ‘물 搜査를 했다’는 非難을 받게 된다.

    反對 狀況이 벌어질 수도 있다. 檢察 搜査를 再湯한 것과 같은 結果를 내놓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特檢은 勿論이고 特檢을 推薦한 眞相調査委, 特別法을 만든 政治權 모두가 批判 받는다. 르윈스키 事件을 搜査했으나 이렇다 할 것을 내놓지 못해 ‘特檢 無用論’을 불러일으킨 美國의 스타 特檢을 再現하는 것이다.

    歲月號 特檢은 同一한 刑事事件에 對해서는 두 番 審理하지 않는다는 一事不再理(一事不再理) 原則과 衝突할 수 있다. 歲月號 慘事에 關聯된 사람들은 大部分 被告가 돼 裁判을 받았거나 只今 받고 있다. 特檢은 이 裁判에서 宣告가 이뤄진 後 構成된다.



    따라서 特檢은 檢察이 發見하지 못한 嫌疑를 찾아내야만 이들을 起訴할 수 있다. 檢察은 이를 意識한 듯 特檢을 빈손으로 만들기 위해 ‘싹쓸이 搜査’를 했다. 11個 靑(地檢+支廳)을 動員한 搜査로 399名을 立件하고 158名을 起訴했다.

    ‘빈손 特檢 만들기’는 檢察의 至上目標였던 것 같다. 金鎭台 檢察總長은 “우리는 한다고 했는데 놓친 것이 있어 特檢이 찾아낸다면, 그 責任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며 最善을 다했음을 내비쳤다.

    이 같은 檢察의 意志가 副作用을 낳았다는 視角도 있다. “檢察이 特檢은 勿論이고 歲月號 慘事로 苦痛 받는 靑瓦臺까지 意識해 過剩 搜査를 했다”는 指摘이 그것이다. 이 論難은 特히 淸海鎭海運의 實所有主인 兪炳彦(死亡) 氏 關聯 裁判에서 뜨거워질 展望이다.

    돈 먹는 河馬?

    歲月號 特檢은 高檢長 待遇를 받는 特別檢事 1人에 地檢長 待遇를 받는 特檢補 4人 程度로 構成될 展望이다. 高檢長과 地檢長은 次官級이니 이들에게는 ‘次官에 準하는’ 事務室과 附屬室 職員, 自動車 等이 提供된다. 首腦部인 이들은 指揮만 하고, 實際 搜査는 檢察에서 派遣한 檢査와 搜査官 等이 맡는다. 民間 辯護士도 搜査官으로 參與할 것이지만 過去 特檢의 事例를 보면 檢察 側 人士들이 搜査를 主導할 可能性이 크다.

    檢察에서 나온 이들이 搜査를 主導한다는 點은 ‘再湯 搜査’ 可能性이 높다는 暗示다. 이들도 事務室을 차지하고 檢察 搜査 資料를 檢討한 後 關聯者들을 불러 搜査할 것이니 여기에 또 적지 않은 稅金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새로운 事實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特檢은 그러잖아도 不足한 國庫를 축낸 ‘돈 먹는 河馬’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빈손 特檢’은 오래前부터 豫想됐다. 그런데도 만들기로 한 것은 朴槿惠 大統領이 受容했기 때문이다. 歲月號 慘事 한 달 뒤인 5月 16日 朴 大統領은 靑瓦臺에서 歲月號 家族對策位 代表 17名을 만난 자리에서 “特別法은 저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檢警 搜査 外에 特檢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歲月號 特別法에 따라 構成될 眞相調査委가 特檢과 別途로 搜査權 等을 갖는 데는 反對했다. 이러한 朴 大統領의 決定이 政府 與黨의 公式 意見이 됐다. 與野는 眞相調査委의 權限에 對해서는 異見이 크지만 特檢 設置에는 뜻을 같이하니 特檢은 ‘얼마를 쓰더라도’ 設置될 수밖에 없다.

    特檢은 果然 무엇을 밝혀낼 것인가. 特檢 搜査는 檢察 搜査를 土臺로 할 것이니 그 答은 檢察의 綜合搜査結果를 보면 어느 程度 豫測할 수 있다. 檢察은 歲月號 慘事를 다양한 角度에서 搜査했다. 첫째가 歲月號 沈沒의 直接 原因 部分인데 整理하면 다음과 같다.

    △淸海鎭海運은 2012年 이 배를 日本에서 輸入한 後 數理와 增築을 통해 239t의 무게를 늘렸다. 左右 不均衡도 發生시켰다. △事故 直前 세월호는 最大 貨物 積載量의 2倍가 넘는 過積을 했다. △過積을 하면 배가 물속으로 많이 가라앉으니, 過積한 무게(1065t)와 비슷한 무게의 平衡數를 빼냄(1376t)으로써 배가 물속에 들어가는 線을 맞췄다. 過積을 하며 平衡數를 줄여 復元力이 더 弱해질 수밖에 없다. △컨테이너와 車輛 等의 貨物을 제대로 高박하지 않았다. △事故가 난 맹골水路에서 操舵할 義務가 있는 船長은 寢室에 있었고, 航海士와 操舵手는 過度하게 變針(變針)을 해 그러잖아도 復元力이 弱한 배를 쓰러지게 했다(자동차 運轉에 比喩하면 무게 中心이 높은 車를 甚한 굽이 길에서 速度를 줄이지 않고 過度하게 핸들을 돌려 전복시켰다는 뜻).

    現場指揮官 任務 안했다

    “사고 원인 다 밝혀졌고 유병언 죽었는데 뭘 더?”

    4月 16日 顚覆된 歲月號. 海警의 123情이 다가가자, 이준석 船長 等 세월호 船員들이 第一 먼저 123梃으로 건너와 救助됐다.

    歲月號 全鰒 沈沒의 直接 原因은 누가 搜査해도 明白하기에 追加할 것이 없어 보인다. 때문에 特檢은 副次的인 要素를 찾는 데 注力할 것 같은데, 檢察은 이를 意識한 듯 事件의 本質이 아닌 副次的인 部分도 파고들어 어느 程度 成果를 냈다.

    청해진해운 關係者가 公務員이나 檢査機關員에게 金品을 건넨 事實을 밝혀내 金品이나 賂物收受 嫌疑로 起訴한 것이다. 그리고 海運 非理 全般으로 搜査를 擴大해 88名의 ‘해피아’를 拘束起訴했다.

    海洋警察廳의 不實한 對應도 따지고 들어갔다. 現場에 出動했던 木浦海警 123梃의 未熟한 對處와 그곳에서 船舶 管制를 擔當하는 珍島 VTS (Vessel Traffic Service)의 잘못된 運營을 擧論했다. 檢察은 123艇에 對해서는 OSC라는 專門 用語를 使用했다. On Scene Commander의 弱者인 OSC는 ‘現場指揮官’으로 飜譯된다.

    檢察은 123艇 艇長인 金某 警衛가 그날의 OSC였다고 斷定한다. 關聯 法令에 따라 123定은 세월호가 慘事를 當한 ‘震度 沿岸 3區域’에서 海上警備와 海難救助, 海洋汚染 監視, 海洋犯罪 調査, 臺(對)間諜作戰 等 海洋警察이 해야 하는 모든 任務를 責任지는 支署(支署) 格이었기 때문이다.

    歲月號 全鰒은 단원고 學生 崔某 君이 當日 午前 8時 54分 携帶電話로 119에 申告 함으로써 알려졌다. 그리하여 123情이 出動했는데, 그때 木浦海警서와 그 上位 機關인 西海地方海警廳은 ‘海上搜索救助 매뉴얼’에 따라 “金 正裝이 OSC로 指定됐다”고 거듭 通報했다. 그러나 金 正裝은 그 役割을 제대로 遂行하지 않았다는 것이 檢察의 判斷이다.

    現場指揮官이 해야 할 첫 番째 任務는 事故 船舶과 交信해 緊急措置를 取하는 것인데, 그것부터 하지 않았다. 세월호의 姨母 航海士가 隣近에 있는 배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國際遭難周波數(VHF 16番 채널)로 두 番이나 呼出했을 때도 그는 應答하지 않았다. 그리고 9時 46分, 歲月號에 다가가 船長 李某 氏 等이 第一 먼저 123梃으로 건너올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세월호 乘客들을 배 밖으로 나오게 하는 措置는 取하지 않았다.

    9時 48分에는 123梃 要員인 朴某 警長이 歲月號 操舵室(運轉室)에 들어갔으나 金 正裝은 朴 警長에게 세월호의 裝備로 “退船하라”는 放送을 하라고 하지 않았다. 非常벨度 누르게 하지 않았다. 10時 10分頃 배가 더 기울어져 客室 門 等으로 바닷물이 들어오자, 선미 寢室에 있던 金某 君 等 11名이 自己 判斷으로 배 밖으로 나왔는데, 이는 退船이 全혀 어렵지 않았다는 證據다.

    123定은 세월호가 完全히 沈沒할 때까지 對共(對空)마이크나 海警헬기에 달려 있는 마이크 等을 利用해 乘客들에게 “배 밖으로 나오라”는 放送도 하지 않았다. 한 달 後 이것이 問題가 되자 陷穽 日誌를 造作했다는 게 檢察 判斷이다. 對共마이크로 放送했고, 123梃 要員들에게 세월호로 올라가 乘客들을 退船시키는 措置를 했다고 꾸몄다는 것.

    檢察은 海警의 珍島 VTS가 夜間에는 所屬 要員의 折半 人員만으로 運營됐다는 事實도 밝혀냈다. 이들 亦是 交信일지를 造作해 勤務하지 않은 要員들도 夜間에 勤務한 것처럼 꾸몄다.

    副次的인 問題도 찾아내

    檢察은 海洋警察과 救難(救難)業體 言딘 사이의 뒷去來 事實도 찾아냈다. 陸上交通에 比喩하면 言딘은 레커車 業體라고 할 수 있다. 高速道路를 달리다보면 곳곳에 레커車가 待機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交通警察로부터 事故가 났다는 消息을 받으면 달려와 車輛을 牽引해감으로써 먹고산다.

    事故 消息을 남보다 빨리 알려면 平素 交通警察과 親해야 한다. 海洋事故度 비슷하다. 海洋警察로부터 第一 먼저 情報를 받은 救難業體가 돈을 번다. 言딘은 海警 幹部들과 平素 좋은 關係를 維持한 德分에 事業을 잘할 수 있었다.

    海難 事故 處理 費用은 事故를 當한 船社(船社)가 支拂하므로 禪師는 保險會社와 相議해 救難業體를 選定해야 한다. 그러나 세월호 事件이 일어났을 때 海警 側은 淸海鎭海運에 電話를 걸어, “現在 事故 現場에 作業 中인 (救難) 業體로 言딘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 청해진해운과 言딘이 契約을 맺게 誘導했다. 檢察은 이 때문에 淸海鎭海運이 不利한 契約을 맺었다고 判斷한다.

    그때 言딘의 金某 理事는 現場 先占을 통한 ‘알박기’를 했다. 榮山江에서 水門 作業을 하던 協力業體의 바지船 2003錦湖號를 뺏다시피 끌어내 事故 現場으로 가게 한 것. 德分에 2003錦湖號는 犧牲者 屍身을 收拾하는 唯一한 潛水 作業 바지船으로 認定받았다. 한발 늦게 現場에 온 다른 바지船은 言論社의 取材 支援用 等으로 指定됐다.

    그런데 生存 可能者를 搜索하려면 잠搜査를 많이 投入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큰 바지船이 必要하다고 判斷하면서, 狀況이 바뀌었다. 2003錦湖胡虜는 搜索은커녕 맹골水路의 빠른 潮流도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자 言딘은 “慶南 固城郡 淺海地造船所에 依賴해 乾燥 中인 리베로號가 크니 그것을 投入하면 된다”고 主張했다. 그러나 리베로號는 진수만 하고 安全檢査를 받지 못했기에 出港할 수 없는 形便이었다. 適法하게 出港하려면 한 달이 걸릴 터였다.

    맹골水路에서 가까운 全南 海域에는 適法하게 動員할 수 있는 大型 바지船이 22隻 있었다. 그러나 海警 本廳의 崔某 次長은 關聯 法令을 任意로 解釋해 淺海志操禪에 리베로號를 出航시키라고 命令했다. 그러자 淺海志操禪이 反撥했다. 安全檢査를 받지 않은 배는 造船所가 所有權을 行使하므로 不法 出港에 對한 責任도 造船所가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때 失踪者 家族 代表들은 生存者 構造를 위해 優秀한 바지船의 出動을 强力히 要求했으므로 西海地方海警廳은 當場 動員이 可能한 현대保寧號를 提示했다. 그러나 崔 次長은 固執을 꺾지 않았다. 그는 木浦海洋警察署를 통해 千解止造船所에 救難命令을 내렸다. 이에 對해 木浦海警 關係者가 “適法한 命令이 아니다”라고 反撥했으나, 崔 次長은 이를 默殺했다. 그리고 4月 23日, 30時間 먼저 現場에 와 있던 현대保寧號를 빼내고 리베로呼價 投入됐다. 이렇게 詳細한 搜査를 한 것은 檢察이 그만큼 執拗했다는 뜻이다.

    意欲에 불탔던 救援派 搜査

    檢察의 鬪志는 淸海鎭海運의 實所有主인 유병언 氏를 向하면서 頂點에 올랐다. 柳氏는 丈人인 권신찬 牧師(作故)와 함께 救援派를 만들었고, 權 牧師가 他界한 後엔 單獨으로 救援派를 이끌어왔다. 救援派는 敎會 안에서만 信仰하는 것을 否定한다. 예수도 敎會에서만 信仰生活을 하지 않았는데 後代 사람들이 敎會를 만들어 搖亂하게 治粧했다고 批判한다. 敎會를 否定하니 牧師도 認定하지 않는다.

    이들에겐 ‘광야에서든, 집에서든, 熱心히 信仰生活 하는 곳이 곧 敎會다. 重要한 것은 信仰生活을 통해 救援받는 것’이라고 主張했기에 救援派로 불리게 됐다. 이들은 牧師라고 해서 聖經을 가장 잘 풀이한다고 斷定할 수 없기에 모두 熱心히 聖經을 읽어 各自 理解한 것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고 主張한다. 그래서 牧師의 必要性을 認定하지 않고 聖經을 잘 解釋하는 사람을 中心으로 뭉치게 됐다.

    柳氏는 事業家다. 그런데 聖經 理解가 남달랐기에 牧師가 아님에도 救援派의 리더가 된 境遇였다. 하지만 丈人은 救援派를 만들기 前에 牧師가 됐기에 牧師로 불렸다. 柳氏는 그러한 匠人과도 角을 세웠다고 한다. “當身도 結局은 信徒로부터 推仰받으려는 牧師 아니냐”고 批判했던 것. 그러나 訣別은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信徒들은 權 牧師와 柳氏를 同時에 따르다가, 權 牧師가 他界하자 柳氏 周邊으로 모여들었다.

    權 牧師의 딸이자 柳氏의 夫人인 權某 氏는 ‘아버지의 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젊은 時節 크게 다투고 別居하게 됐다. 權 牧師 他界 後 權氏는 權 牧師 說敎 錄音집을 들고 海外에 나가 있는 救援派 組織을 찾아가 宣敎했다고 한다. 柳氏가 居處한 安城의 금수원에서는 權氏의 어머니도 生活했다. 서울에서 살아온 權氏는 安城에 가면 男便의 居處는 들르지 않고 親庭어머니만 보고 왔다고 한다.

    一種의 無敎會主義 團體였던 이들은 한때 旋風的인 人氣를 끌었다. 그러자 敎會를 中心으로 하는 旣存의 基督敎 團體들이 ‘異端 是非’를 提起하면서 成長勢가 멈췄다. 그리고 1987年 發生한 五大洋 集團變死 事件의 主犯이라는 疑惑을 받으면서 큰 危機를 맞았다.

    이 事件은 한때 救援派에 몸담았다가 獨立한 박순자 氏가 職員들이 共同 生活하는 五大洋이라는 會社를 만들었으나, 事業에 失敗해 高額의 負債를 갚지 못하게 되자 職員들과 함께 集團 自殺한 事件이다. 五大洋事件에서는 이들이 끌어온 돈이 어디로 갔는지가 問題가 됐다. 五大洋은 高率의 利子를 주고 돈을 끌어왔기에 ‘빌려온 돈이 利子로 거의 다 나갔다’는 計算이 나왔으나, ‘五大洋 뒤에 兪炳彦이 있다’는 所聞이 돌면서 이를 믿지 않게 됐다.

    “政權으로부터 彈壓받았다”

    이 所聞이 擴散되자 檢察이 搜査에 着手했다. 그러나 五大洋의 돈이 劉氏나 救援派로 간 事實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자 檢察은 過去 檢察 搜査에서 無嫌疑 處分을 내린 다른 事件들을 엮어 起訴했다. 그런데도 法院이 이를 有罪로 認定해, 柳氏는 常習詐欺 嫌疑로 4年型을 살았다. 이에 對해 柳氏는 平生 抑鬱해하면서 이런 말을 자주 했다.

    “五大洋과 나는 아무 聯關이 없다. 五大洋 돈이 한 푼이라도 내게 온 적이 없다. 나는 常習詐欺를 한 事實도 없다. 그런데 내 反對派가 만든 異常한 輿論과 그 輿論을 잠재워야 했던 政權에 依해 抑鬱하게 懲役을 살았다. 나는 5共을 비롯한 權力 實勢와 가깝게 지낸 적도 없다. 5共 時節 그들에게 바른말을 했다가 稅務調査와 漢江遊覽船 事業을 뺏기는 彈壓만 當했다. 나는 政治人들과는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秋毫도 없다.”

    “사고 원인 다 밝혀졌고 유병언 죽었는데 뭘 더?”

    淸海鎭海運의 實質 所有主였던 유병언 氏 變死體가 發見된 全南 순천시 書面 신촌리 野山. 柳氏가 客死함으로써 檢察과 特檢은 더 以上 搜査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면서도 그는 五大洋 出身 生存者와 그에게 常習詐欺 嫌疑를 씌우게 한 사람들을 排斥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이 救援派에 들어오려고 했을 때 全혀 反對하지 않았고, 세월호 事件이 나기 前까지 함께 信仰生活을 했다는 것.

    五大洋이라는 巨大한 그림자를 끌고 다니는 救援派 리더가 세월호의 實所有主라는 事實은 많은 사람의 興味를 刺戟했다. 세월호 事故 裏面에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러나 檢察이 調査한 바에 따르면 淸海鎭海運은 海運業界의 나쁜 慣例에 따라 歲月號를 運營했을 뿐이다. 해피아와 癒着하고, 貨物을 過積하고도 제대로 高박하지 않고 不注意하게 運航하다 304名이 死亡·失踪하는 엄청난 事故를 낸 것이다.

    經濟的인 面에서 본 세월호 事件은 한마디로 ‘돈 먹는 河馬’다. 海洋水産部는 歲月號 特別法에 따라 歲月號 慘事를 收拾하는 데 6214億 원假量이 所要될 것 같다는 報告書를 國會에 낸 적이 있다. 그러나 企業體와 民間이 낸 各種 支援金과 海軍과 海警 等이 自體 豫算으로 執行한 構造費用 等을 보태면 1兆 원이 넘을 수도 있다. 여기에 特檢과 眞相調査委의 運營費用 等이 追加될 것이다.

    政府는 一旦 國庫로 費用을 支出한 後 淸海鎭海運에 求償權을 請求해 充當하기로 했다. 淸海鎭海運은 保險金과 自體 資金 等으로 이 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淸海鎭海運은 株式會社라, 株式을 燒却하고 會社를 解體하면 責任을 물을 길이 없다. 그렇다면 이 會社의 實質 所有主인 유병언 氏의 財産이라도 押留해야 한다. 그런데 柳氏는 淸海鎭海運의 株式을 한 週도 갖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檢察은 柳氏가 實質的으로 經營權을 行使한 情況을 찾는 데 注力했다. 이 過程에서 찾아낸 것이 柳氏와 그의 一家가 系列社로부터 商標權料, 顧問料, 經營諮問料, 寫眞 代金 等의 名目으로 가져간 1836億 원이다. 檢察은 이 돈을 柳氏가 不法 喝取한 것으로 보고 全額 還收하기로 했다. 檢察은 還收가 可能한 돈을 1334億 원으로 判斷하고, 5次例 追徵保全 命令을 내려 86%인 1157億 원을 凍結했다.

    檢察은 柳氏와 그 一家, 會社 等에 請求할 求償權 金額이 4031億 원이 될 것으로 推定한다. 1157億 원은 29%밖에 안 된다. 檢察은 나머지 71%에 該當하는 2874億원을 더 찾아내야 한다. 그러려면 柳氏를 잡아 調査해 숨겨놓은 다른 財産을 찾아내야 한다. 檢察이 劉氏 逮捕를 目標로 삼으면서 ‘五大洋 그림자’에 둘러싸인 救援派와 그는 全 國民의 關心을 받게 됐다.

    劉氏 檢擧는 仁川地方檢察廳이 맡았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仁川地檢은 어이없는 失手로 柳氏를 눈앞에 두고도 檢擧에 失敗했다. 檢察이 헛발질을 하는 사이 柳氏는 客舍(客死)해버렸다.

    檢察은 國內에 있는 柳氏와 그 一家의 財産은 다 찾아냈다고 보고 海外財産을 追跡하려 했다. 그런데 柳氏의 죽음으로 일이 어렵게 됐다. 美國檢察이 ‘財産 管理人’으로 보고 强制 送還시켜준 김혜경 氏가 입을 열거나, 프랑스에서 犯罪인 印度 裁判을 받는 柳氏의 長女 섬나 氏가 强制 送還되고, 行方이 杳然한 次男 혁기 氏 等이 들어와야 실마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攻防 豫想되는 追徵金 裁判

    救援派는 自殺을 認定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대로 搜索했다면 仁川地檢은 얼마든지 柳氏를 檢擧할 수 있었다. 그들은 無敎會運動을 할 程度로 革新的인 信仰을 하기에 不法行爲는 꺼렸다고 한다. 海警 本廳으로부터 여러 次例 指示와 命令을 받고서야 리베로號를 出航시킨 淺海志操禪만 봐도 그렇다. 淺海志操禪은 救援派의 系列社다. 淺海地 側은 한 食口가 事故를 當했는데도 海警廳의 指示가 不當하다며 한때 리베로號 差出을 拒否했다.

    檢察은 柳氏와 그 一家의 海外財産 調査는 마무리하지 못한 狀態에서 搜査를 終結한다고 밝혔다. 이는 追徵 可能한 海外財産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海外財産을 追徵하려면 裁判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들이 不法으로 財産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主張할 것이기 때문이다.

    檢察은 柳氏 等이 商標權과 顧問料, 經營諮問料, 寫眞 代金 等으로 系列社의 돈을 가져갔다고 본다. 하지만 一部 法律 專門家들은 이것이 橫領이 아니라 適法한 去來일 수도 있다고 指摘한다. 이들은 적잖은 財閥과 企業人이 이런 方法으로 돈을 가져간다고 말한다.

    “財閥이 支配하는 持株會社는 事業場이 없다. 그런 持株會社가 系列社에 投資한 株式 配當金만으로 收入을 잡는다고 생각하면 큰 誤算이다. 系列社 中에는 赤字를 보는 곳도 많아 配當金 輸入은 意味가 없다. 그래서 商標權 去來를 많이 使用한다. 三星이나 현대車, SK그룹 系列社는 모두 三星, 현대, SK가 들어가는 會社名을 使用한다. 이 이름을 붙이느냐 마느냐에 따라 賣出이 달라지니 持株會社는 이들에게 相當한 商標權料를 要求할 수 있다. 資本主義 國家에서는 奴隸契約이 아니면 모든 契約을 認定한다. 商標權料를 賣出額의 10%로 잡든 50%로 잡든 當事者 間에 合理的인 合意가 이뤄졌다면 認定하는 것이다.

    顧問料, 經營諮問料度 持株會社가 돈을 챙기는 常套的인 方法이다. 系列社는 會長님의 말씀에 따라 投資를 하고 經營 方針을 決定하니, 持株會社는 系列社로부터 顧問料와 經營諮問料를 商標權料처럼 適法하게 챙길 수 있다. 持株會社는 適法性을 保障받기 위해 이 去來를 全部 國稅廳에 申告한다. 그러니 持株會社는 橫領이 아니고 適法한 去來에 따른 收入이라고 主張할 수 있는 것이다.”

    유병언 氏는 ‘아해’라는 이름으로 寫眞을 찍어왔다. 系列社들은 이 寫眞을 高價로 購買했다. 檢察은 救援派 系列社가 巨額을 주고 劉氏 寫眞을 買入한 것은 不法으로 본다. 그러나 一部 法曹人들은 符籍 去來를 例로 들어 檢察의 判斷이 틀릴 수도 있다고 指摘한다.

    “符籍을 만드는 데 들어간 原價는 100원도 안 될 것이다. 글씨를 쓴 空임을 步態도 1萬 원, 10萬 원을 넘기 힘들다. 그런데 이 符籍을 1000萬 원이나 1億 원에 팔았다면 그는 詐欺를 친 것인가, 아닌가? 結論은 ‘아니다’다. 符籍은 原價가 아니라 符籍에 神妙한 힘이 있다고 보는 것이기에, 1億 원으로 評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藝術品에 對한 價値도 類似하게 決定된다. 系列社들이 그만한 價値가 있어 支拂했다고 하면 劉氏 寫眞 去來는 詐欺로 認定하기 어렵다.”

    이런 裁判에서 진다면 檢察은 過剩搜査를 했다는 非難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裁判이 끝난 後 構成될 特檢은 무슨 搜査를 할 수 있을 것인가.

    柳氏가 變死體로 發見된 後 ‘柳氏는 客死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依해 被殺됐다’ ‘順天에서 發見된 死體는 柳氏가 아니다, 그는 살아 있다’ ‘柳氏는 現 政府 實勢와 아주 가까웠다’ 는 等 온갖 所聞이 돌았다. 檢察은 이를 流言蜚語로 判斷했다. 檢察은 ‘柳氏가 政官界 有力人士를 相對로 골프채 로비를 한 적이 없다’ ‘柳氏가 逃避하기 위해 마련한 가방에는 로비 리스트나 祕密帳簿 等이 없었다’라고 分明히 밝혔다.

    “特檢 構成은 失期(失機)했다”

    檢察이 柳氏의 背後가 없다고 밝힌 것은 自信感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特檢이 이를 再調査하려면 柳氏의 身柄 確保가 꼭 必要한데 그는 死亡했다. 그가 살아 있어야 “숨겨놓은 國內外 財産을 내놓으라”고 몰아치고, “當身을 保護하는 勢力을 털어놓으라”고 할 터인데 그럴 수 없게 된 것이다.

    特檢이 할 수 있는 일은 制限的일 수밖에 없다. 靑瓦臺 責任을 묻는 搜査, 이를테면 朴 大統領의 ‘7時間 行跡’ 等에 對한 調査는 事件의 本質도 아닐뿐더러 消耗的인 政治攻防만 일으킬 것이다. 때문에 法曹界 周邊에선 “歲月號 特檢을 선뜻 맡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搜査를 잘하는 사람일수록 特檢을 固辭할 것이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자칫 國庫만 축내고 檢察 搜査 再湯에 그칠 수 있다는 憂慮 때문이다.

    特檢을 하려면, 事故 發生 直後 檢察이 搜査에 들어가기 前에 했어야 옳았다는 指摘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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