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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을 借用한 善 그 異常한 共存|新東亞

惡을 借用한 善 그 異常한 共存

‘新世界’와 仁川 沿岸埠頭

  • 글·오동진 | 映畫評論家 寫眞·김성룡 | 捕討그래퍼

    入力 2014-10-2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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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 創刊 83周年을 맞아 映畫評論家 오동진 氏가 話題의 映畫 撮影地를 紹介하는 글을 連載한다. 單純히 場所를 紹介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 깃든 歷史, 文化, 時代相과 人間 群像을 그리고 우리 社會의 內面을 省察한다. 映畫專門誌 ‘필름 2.0’ 編輯委員과 ‘씨네버스’ 編輯長을 지낸 吳氏는 現在 들꽃映畫賞 運營委員長, 마리 끌레르 映畫祭 執行委員長을 맡고 있다. <편집자>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映畫 ‘新世界’에서 이자성(이정재)李 仁川 沿岸埠頭를 바라보고 있다.

    映畫 ‘新世界’의 題目이 왜 ‘新世界’인지, 映畫를 본 사람들은 다 안다. 映畫 속에서 警察廳長쯤 되는 사람 幹部인 두 사람에게 묻는다. “그러니까 이番 作戰名은 뭐가 되는 거야?” 그의 앞에는 征服을 입은 한 사람이 앉아 있고 그렇지 않은 또 한 사람은 비스듬히, 마치 自己 일이 아니라는 듯한 表情으로 앉아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 江 課長(최민식)은 이 모든 陰謀를 만들어낸 人物이다. 그러나 그는 大槪 입을 다물고 있고 신나게 떠드는 쪽은 正服을 입은 高 局長(주진모)이다. 高 局長이 廳長의 말을 바로 되받아친다.

    “新世界! 身世係니다!”

    그 말을 막상 입 밖에 내는 瞬間, 세 사람 모두 씁쓸한 表情이 된다. ‘新世界’라니. 어쩌면 지나가는 개도 웃을 소리다. 그들이 만들려는 世上이 分明 新世界이긴 하다. 그러나 그 新世界를 만들려는 方式이 ‘新世界스럽지’ 않다. 善을 行할 때 惡을 借用하면 그 線은 結局 線인가, 아니면 惡인가.

    그 場面 하나만으로 映畫 ‘新世界’는 只今의 모든 世上事와 自己 同一化를 이룬다. 大槪 좋은 映畫의 이야기는 특별하게 始作하지만 結局은 普遍性을 띠는 쪽으로 흐른다. 特需는 一般이 되고 一般은 特需가 된다. 그 反對도 된다. 카를 마르크스의 唯物辨證法이다.

    現代 資本主義의 悽絶한 眞實



    映畫 ‘新世界’의 導入部는 한 男子의 발가락을 해머로 짓이기는 極惡한 暴力性으로 始作되지만 곧이어 異常하리만큼 平穩한 한 男子의 뒷모습이 登場한다. 組織에서 3人者로 成長한 이자성(이정재)은 멀끔한 洋服 차림으로 仁川 沿岸埠頭 저 너머를 凝視한다. 그는 곧 담배를 한 대 물고, 조금 前에 있었던 일은 自身과 아무런 相關이 없다는 表情을 짓는다. 그의 마음속에는 狂風이 불고 있을 터다. ‘元來 이러려고 이런 것은 아닌데….’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仁川 沿岸埠頭는 國內 最初 開港地지만 어쩐지 덩그라니 내던져진 느낌이 든다.

    이자성의 實體는 韓國 最大의 마피아 組織 ‘골드門’에 浸透한 언더커버(undercover), 卽 祕密警察이다. 이제 사람 하나를 막 죽인, 或은 部下들이 죽이는 모습을 지켜본 李子晟은 쓸쓸함과 悽然함, 悔恨의 深淵 속으로 빠져든다. 그는 오늘 집에 들어가서 滿朔의 아내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있을까. 自身이 잠을 못 이루면 착한 아내도 그럴 것이다. 아내 때문에라도 이 地獄을 털어내고 가야 한다. 그는 말없이 등을 보인다.

    映畫 ‘新世界’를 곰곰이 復棋하면, 逆說的으로 토마 피케티의 冊 ‘21世紀 資本論’이 떠오른다. 피케티는 一喝한다. 資本主義가 發達할수록 少數 富裕層에게 富가 集中돼 分配 構造가 惡化되는 現象이 發生한다고. 또한 資本主義에서는 勞動 所得보다 資本 所得, 곧 富의 世襲이 더 많은 富를 蓄積한다고.

    한마디로 있는 者가 더 많은 돈을 갖게 된다는 얘기인데, 어렵게 생각할 必要가 없는 것이, 周邊을 둘러보면 단박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은 元來 돈이 돈을 만들지 努力, 貯蓄, 誠實이나 停職 따위가 만들지 않는다. 돈은 ‘元來 버는 놈’李 버는 것이다.

    그래서 ‘新世界’의 主人公들은 그 ‘버는 놈들’에게서 돈을 奪取하는 方式을 擇한다. ‘버는 놈들’에게 寄生하면서 사는 制度圈의 空腹은 살아남기 위해 ‘버는 놈들’만큼 惡辣하고 用意周到해져야 한다. 속고 속이는 게임에 能해져야 한다. 이쯤 되면 여기엔 룰이 없다. 이 阿修羅場에서 唯一한 正義, 그리고 선(善)이란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오로지 自身과 自身의 家族, 곧 패밀리를 지켜내는 것뿐이다. 그래서 社會의 모든 制度와 法이 公共의 利益이 아니라 私的인 利益을 基盤으로 하고 있다는 眞實을 目睹하게 된다. 그건 그야말로 悽絶한 省察이다. 映畫 ‘新世界’는 마피아의 피가 튀기고 살點이 뜯겨나가는 暴力 얘기를 그리는 척, 事實은 現代 資本主義 社會의 眞實을 迂廻的으로 그리는 作品이다.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映畫 ‘新世界’ 主要 撮影地인 仁川 沿岸埠頭. 四方에는 컨테이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익숙한 他人’ 같은 沿岸埠頭

    모두 여덟 個의 埠頭로 構成돼 있는 仁川 沿岸埠頭는 事實上 觀光地로서의 位相을 갖지 못한다. 어쩌면 仁川 바다가 그렇다. 國內 最初의 開港地이지만 이곳은 奇異하게도 버려지고 落後된 곳이라는 印象을 준다. 寫眞記者와 함께 沿岸埠頭에 다다랐을 때는 해가 中天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四方에는 컨테이너들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땡볕 아래 두 사람 亦是 덩그러니 내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여기 어디쯤, 어느 컨테이너의 숲쯤에서 映畫 ‘新世界’의 屠戮 場面을 찍었겠지만 그 惡의 根源 같은 느낌은 全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낯설고 非現實的인 空間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非現實의 現實性. 現實은 元來 加工된 것이며 現實的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事實은 現實인 狀況. 沿岸埠頭는 익숙한 他人처럼 사람들을 감싸는 곳이다.

    沿岸埠頭의 正式 名稱은 仁川港 沿岸旅客터미널이다. 이른바 西海 5度(白翎島, 延坪島, 大淸島,小靑島, 右島)라 불리는 섬들, 그리고 그 有名한 實尾島나 德積島, 굴업도 같은 甕津郡에 널려 있는 섬들을 가려면 이곳에서 배를 타야 한다. 예컨대 單 일곱 家口만이 살아가는 無人島 같은 섬, 굴업도를 다녀온 사람들은 世上에 그만한 絶景이 없다고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지만 한便으로는 뱃길이 쉽사리 열리지 않아 隨時로 드나들 만한 곳은 아니라고 한다.

    甕津郡의 섬들은 그러니까, 너무나 사랑하는 女人이 있는데 그女와 ‘萬里長城’을 쌓지 못한 男子들이 自身의 허접스러운 欲望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男性들의 陳腐한 辨明이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배가 끊겼네? 오빠 믿지?” 마음속에서 희멀건 웃음이 기어 나온다.

    仁川港 沿岸旅客터미널은 映畫 ‘新世界’에서 唯一하게 코믹한 場面을 演出한 곳이다. 이곳을 통해 ‘옌볜 거지’들이 入國하는데, 그 모습이 그리도 우스꽝스러울 수가 없다. 거지들의 大將(김병옥)은 따라오는 두 사람(郵政局, 박인수)을 向해 연신 소리를 지른다. “두리번게리地 말라우야. 사람들이 다 쳐다보지 않간?”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熾烈한 日常, 戰爭 같은 삶

    똘마니 둘은 터미널에 到着하자마자 粉내를 풍기는 하얀 얼굴의 韓國 女性들을 向해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침을 흘린다. 그러나 大將이라는 者 亦是 女性用 선글라스를 끼고,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깔맞춤’이어서 튀는 모습이기는 매한가지다. 더럽고 냄새나는 이들은 以後 映畫 속에서 가장 極惡한 殺人劇을 벌인다. 特히 李自成을 돕는 또 다른 언더커버 女子警察(송지효)을 죽일 때 殺伐한 活躍을 펼친다. 거의 벌거벗은 狀態로 결박당하고 입에 재갈이 물린 이 女子는 이미 온몸이 피와 땀, 誤물투성이다. 組織의 2人者이자 이자성과 같은 華僑 出身으로, 피보다 더 津한 兄弟愛를 지켜 온 정청(황정민)은 거지들에게 이제 그만 그女를 없애버리라고 말한다. 거지 大將은 바지춤에서 人間 屠戮에 쓰는 칼을 뽑아 들며 그女에게 다가선다.

    “내레, 저 쌍년을, 제발 이제 그만 죽여달라고 哀願하게 만들갔어.”

    대낮의 旅客터미널, 그리고 沿岸埠頭는 아직 人跡이 뜸해선지 寂寞하기 그지없다. 延坪島海戰, NLL, 그리고 南北韓의 꽃게잡이…. 漁夫와 兵士가 같이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이런 葛藤에 對해 오히려 입을 다물어야 한다. ‘살아가는 건 戰爭터에 있는 것과 같다’는 말은 정작 이런 곳에서나 어울리는 말이다. 그만큼 이곳에는 日常의 熾烈함이 內在한다. 그래도 밤이 되면 沿岸埠頭의 膾집들이 不夜城을 이룰 것이다. 술과 질펀한 弄談, 비틀거리는 人生살이에 對한 하소연이 이어지겠지.

    仁川 沿岸埠頭를 戰警으로 바라보고 싶으면 月尾島 公園 內에 있는 월미展望臺에 오르면 된다. ‘물범카’라 불리는, 바다에서라면 마치 통통배 같은 느낌의 多少 稚氣 어린 놀이公園 車를 타고 2~3分만 가면 된다. 모든 事物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鄙陋함이 싹 걷힌다. 仁川 沿岸埠頭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꽤나 廣闊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갈한 차림의 큰 밥床처럼 아주 잘 整備돼 있는, 말 그대로 제대로 된 한 나라의 入港 場所라는 생각이 든다.

    百 年이 넘는 歲月 동안, 저 모습을 갖추기 위해 사람들은 악다구니로 살아왔을 것이다. 늘 그렇지만 人生의 眞情性은 그 악다구니에서 나온다. 戰爭 때는 上陸作戰이 벌어졌을 터이다. 이제는 그 傷痕을 찾아보기 어렵다. 요즘 아이들은 ‘이곳’이 ‘그곳’이라는 것을 알까.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現實의 非現實性, 非現實의 現實性

    政廳과 李子晟은 6年 前 麗水에서 만났다. 그들은 숱하게 單身으로 地域 깡牌들과 싸워내며 立地를 다졌다. 政廳은 李子晟이 警察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러나 政廳은 죽기 前까지도 李自成을 믿고 그를 버리지 않는다. 自身과 함께 밑바닥 生活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아주 속된 말을 한番 하자면 사람들은 自身이 ‘X밥’이었을 때를 알아야 한다. 政廳은 李子晟이 自身이 그랬을 때 같이 있어준 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 앞에서 늘 李自成을 이렇게 부른다. “어이, 부라더~”

    온몸에 칼을 맞고 重患者室에서 죽기 前 政廳은 모든 事實을 알지만 모든 事實을 덮으려 한다. 그는 이자성에게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너, 千萬 分의 하나라도 내가 살아나면 堪當할 수 있겄냐?” 그리고 그는 둘만이 통하는 中國語로 속삭이듯 삶을 整理한다.

    “마음 독하게 먹어. 그래야 네가 살아….”

    映畫 속에서는 늘, 깡牌들의 友情이 빛을 發한다. 그건 매우 劇的이기 때문이다. 世上에 저런 義理는 없다. 사람들은 映畫 속에서나마 友情과 兄弟愛, 義理를 느끼고 싶어 한다. 現實에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番, 現實의 非現實性, 非現實의 現實性이다.

    政廳과 李子晟이 映畫 속에서 가장 幸福한 瞬間은 차이나타운에서 中國飮食店을 통째로 빌려 部下들과 會食을 하는 場面으로 그려진다. 마침 이자성의 아내가 아이를 가진 때다. 政廳은 마치 自身이 곧 아빠가 되는 양 으스댄다. 패밀리에게는 子息이 重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情이 넘쳐나면 飮食도 맛있어 보인다. 먹고 싶게 만든다. 政廳은 아주 맛깔스럽게 배갈(高粱酒)을 마신다. 李子晟은 自身의 性格 그대로 조용히, 그러나 그도 餘地없이 원 샷이다. 술은 저렇게 마시는 게 좋다.

    ‘新世界’의 차이나타운 場面은 事實 仁川에서 찍지 않았다. 그건 釜山에서 찍었다. 그러나 映畫의 느낌으로는 영락없이 仁川의 沿岸埠頭 近方 차이나타운이다. 그들은 合法을 假裝한 채 온갖 不法과 脫法을 恣行하면서 서울 江南에 으리으리한 빌딩을 所有하고 있지만 大體로 일은 이곳 仁川 沿岸埠頭에서 벌인다. 政廳이 女子 언더커버를 죽이기 前, 이자성에게 電話를 해 仁川 沿岸埠頭 ‘그곳’으로 오라고 하는 場面이 나온다. 政廳과 通話를 하던 李子晟은 不吉한 表情으로 말한다. “거긴 왜요?”

    沿岸埠頭의 땡볕을 避할 料量으로 살살 車를 몰아 到着한 차이나타운은 映畫와 같은 어두운 느낌은 全혀 주지 않는다. 中國 特有의 華麗한 色感의 飮食店이 櫛比하다. 이곳저곳에서 月餠을 파는데, 中國 公安이 이곳에 오면 그 月甁 하나하나를 까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中國에서는 月甁에 돈을 넣어 膳物한다고들 했다. 映畫 속에서 政廳이 江 課長에게 賂物을 줄 때도 그런 方法을 쓴다. 문득 내가 산 月餠 속에 돈이 들어 있으면 좋겠다는 幻想 아닌 幻想을 갖는다. 月餠이 돈이 되는 世上. 그건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惡을 차용한 善 그 이상한 공존

    江 課長(최민식)과 이자성(이정재)李 接線하던 낚시터. 仁川 濟物浦市場 隣近의 허름한 建物이다.

    歷史의 數値를 마주하는 方法

    仁川 차이나타운에는 有名한 中國집이 많다. 공화춘이 그렇고 태화루가 그렇다.휴일이 되면 有名한 中國집 앞에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맛은 맛이 아니라 有名稅가 만든다. 於此彼 짜장면은 후루룩 마시듯 먹는 것이다. 特別할 것은 없다. 그래도 已往 여기까지 왔으니 뭔가 색다른 맛을 느끼고 싶다면 짜장면 代身 백짬뽕을 먹는 것도 좋다.

    中區廳을 마주하고 왼쪽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나와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氣막힌 모습의 敵産家屋들을 만날 수 있다. 日帝强占期 植民 收奪의 現場이 丁寧 이곳에서 始作됐겠구나 하는 歷史的 自覺이 드는 한便, 그래도 그렇게 남아 있는 日本式 家屋이 매우 異國的으로 느껴진다. 저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判斷을 暫時 미루면 歷史의 數値는 때론 保存돼야 한다는 論理가 생겨나게 된다.

    이제는 깔끔한 느낌의 茶집 兼 팥빙수 집으로 變貌한 ‘팥알’같은 곳을 보면 바로 그렇게 된다. 絶對로 植民主義 史觀을 擁護하지 않지만, 100餘 年 前에 지어진 日本 사람들의 家屋 樣式이 꽤나 그럴듯하다는 印象을 준다. 日本 帝國主義의 商人들, 特히 바다를 끼고 海運業을 했던 者들은 오로지 自國의 經濟를 復興하고자 했을 뿐이었을 것이다. 여기가 엄청난 利文이 남는 곳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을 崇仰해서는 決코 안 된다. 다만 記憶해야 할 뿐이다. 資本主義에서 植民主義 經濟가 얼마나 重要했는지를, 社會科學的으로 認識해야 한다. 흔히 ‘나가사키 카스텔라’를 먹은 寫眞을 자랑스레 블로그에 올리는 데 그치는‘몰역사적 意識’은 이제 그만 멈춰야 한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歷史 工夫를 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 社會는 空間을 통해 歷史를 가르치는 것을 잊은 듯하다.

    언젠가 世上은 映畫가 된다

    映畫 때문에 ‘그곳’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事實 천편일륜的인 觀光地를 벗어나, 오로지 映畫의 場所만을 가보는 것이 眞짜 맛이다. ‘新世界’에서는 江 誇張과 李子晟이 主로 接線하는, 이미 廢墟가 된 室內 낚시터가 하나 나온다. 물고기는 全혀 없을 만한 곳이다. 오히려 온갖 汚物과 벌레가 스멀거리고 있을 것 같다.

    그건 세트였을까, 아니면 眞짜 現場이었을까. 놀라운 것은 實際로 그 낚시터가 있다는 것이다. 仁川廣域市 南區 숭의동 26-1이 그 住所지다. 濟物浦市場 近處로 再建築 對象의 建物軍이지만 再建築의 興조차 사라진 곳이다. 近方의 濟物浦市場도 이미 市場으로서의 機能을 잃은 지 오래다. 一種의 빛바랜 ‘올드타운’의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야 오히려 더욱더 映畫 속으로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날엔가 이곳에서 얻게 되는 只今의 느낌은 永遠히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映畫 ‘新世界’가 담아낸 以上 사라진다고 해서, 完全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한 番 非現實이 現實이 되는 瞬間이다.

    그런 것이다. 映畫는 어쩌면, 사라지는 것들을 瞬間瞬間 잡아내고 捕捉하는 일을 한다. 사람들은 種種 世上을 映畫로 記憶한다. “언젠가 世上은 映畫가 될 것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有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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