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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代表가 최경환 副總理 발목 잡아선 안 돼”|신동아

“김무성 代表가 최경환 副總理 발목 잡아선 안 돼”

새누리黨 所長改革派 ‘元祖’ 權泳臻 大邱市長

  • 허만섭 記者 | mshue@donga.com

    入力 2014-10-22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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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民 혼란스러워하고 經濟回復 어려워져
    • 朴 大統領은 ‘正直한 疏通’ 하는 분
    • 새누리당 바꾸려면 ‘嶺南 政治’부터 바꿔야
    • 現場 속으로…‘참여민주제 椄木’ 實驗
    “김무성 대표가 최경환 부총리 발목 잡아선 안 돼”
    2002年 大統領選擧를 앞두고 權泳臻 當時 이회창 한나라당 大統領 候補 補佐役과 서울 신촌에서 저녁을 함께 했다. 그는 “黨이 거꾸로 가고 있다. 守舊保守化하고 있다”고 恨歎하며 연신 盞을 들이켰다. 자리는 子正 너머까지 이어졌다. 얼마 뒤 그가 다리를 놓아줘 李 候補를 單獨 인터뷰했다.

    인터뷰 當日, 李 候補 側에서 ‘候補님 執務室에 들어가선 目禮를 한 次例 한 뒤 候補님 쪽으로 걸어가서 握手할 것, 인터뷰 時間 嚴守할 것, 書面質疑 外에 追加質疑 하지 말 것’이라는 趣旨의 注文이 傳達됐다. 當時 李 候補는 帝王的 候補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卷 補佐役은 나중에 이런 注文이 傳達된 것을 알고는 記者에게 무척 未安해했다.

    以後 그는 2004年, 2008年, 2012年 總選 때 서울 蘆原에서 出馬해 各各 졌고, 이겼고, 졌다. 그 中間에 서울市 副市長을 했다. 非朴系로 알려진 그는 올해 親朴의 牙城 大邱에서 새누리당 市長 候補가 되더니 ‘金富謙 바람’을 잠재우고 當選됐다.

    最近 大邱市長 執務室에서 權 市長을 만났다. 그는 “그間 어떻게 지냈느냐”며 記者를 반갑게 맞았다. 서로 알고 지낸 사이지만 어린 時節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 部分부터 물어봤다.

    社會主義者의 變身



    ▼ 學窓 時節 어떤 學生이었나요.

    “工夫 좀 하는 말썽쟁이?”

    ▼ 成跡은?

    “全校 2等과 200等 사이를 롤러코스터처럼 오갔죠. 工夫 잘하는 親舊, 싸움하는 親舊, 運動하는 親舊 다양하게 사귀었어요. 집이 慶北 安東이었는데 放學 때마다 背囊 메고 親舊 두세 名이랑 全國을 旅行했어요.”

    ▼ 家庭 形便은.

    “아버지는 初等學校에서 敎鞭을 잡으시다 나오셔서 작은 事業을 하셨어요. 세 番 부도난 會社를 맡아 盤石 위에 올려놓으셨죠. 아주 浮遊하진 않았지만 그리 窮乏했던 것 같지도 않아요. ‘長男답게 동생들에게 獻身하라, 우리 집안이 선비집안이다, 社會에서 손가락질 받을 일 하지마라’는 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씀을 귀에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는 고려대 英文學科를 卒業한 뒤 같은 大學 大學院에서 政治學 碩·博士 學位를 받았다.

    ▼ 周邊에 大學 總學生會長 出身 386政治人이 많은데, 權 市場께선 大學院에 가서 學生運動을 한 것 같더군요.

    “學部 時節 所謂 언더에서 北韓 바로 알기 運動, 우리 歷史 바로 알기 運動을 했어요. 그러다 大學院에 進學한 後 學生運動의 前面에 나섰죠. 高麗大 大學院 總學生會를 만들어 初代 會長을 맡았고 서울대, 연세대, 釜山大 이렇게 여러 大學을 돌며 全國大學院總學生會를 組織했어요. 社會主義가 우리의 代案일 수 있다고 여기면서 知識人 社會가 大衆運動을 主導해야 한다고 봤어요.”

    ▼ 只今은 社會主義者가 아니겠죠?(웃음)

    “哲學的으로 急旋回한 게, 社會主義 國家들이 秋風落葉처럼 沒落하는 걸 지켜보면서부터였어요. 當時엔 勞動運動이 學生運動을 左之右之했죠. 勞動運動勢力은 늘 大衆, 大衆을 이야기하면서도 내게 내려오는 指示는 大衆의 利益보다 自己 勢力의 利益과 論理를 强壓하는 쪽이었어요. 저는 自由民主主義와 資本主義로 돌아가 工夫를 새로 했죠.”

    “김무성 대표가 최경환 부총리 발목 잡아선 안 돼”
    ▼ 社會主義와 自由民主主義는 뭐가 다르던가요.

    “結局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의 觀點 差異 같아요. 社會主義 人間은 運命이 決定된 人間이죠. 善人과 惡人이 나눠집니다. 어떤 그룹은 絶對 線으로서 이 社會를 支配해야 하고 어떤 그룹은 消滅해야 하죠. 妥協이란 없어요. 敵對的 鬪爭만 存在합니다. 自由民主主義 人間은 理性的이지만 不足한 點을 갖고 있는 人間이죠. 誤謬 可能性이 常存한다는 點을 認定해요. 이에 따라 寬容을 바탕으로 妥協과 讓步를 통해 나아가죠.”

    所長改革派 誕生 産婆

    權 市場은 統一部에서 6年餘 동안 公務員 生活을 했다. 그는 “밖에선 그림만 그렸는데 統一部에선 甓돌을 차근차근 쌓았다”고 말했다. 연형묵 北韓 總理가 왔다 가면서 南北高位級會談이 열리고 南北交流協力에 關한 法律이 만들어지고 南北協力基金이 생기고 統一硏究院이 設立되는 過程에 깊이 參與했다고 한다. 그는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政治論理로 統一政策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서 ‘結局 政治구나’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 누구를 통해 政治權에 들어가게 된 건가요.

    “이홍구 先生을 통해서죠. 正말 人品 있고 能力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政治에 成功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다시 學校로 가서 學生들 가르치고 있는데 이회창 總裁 쪽에서 連絡이 왔어요. 좀 도와달라고. 제가 統一部에 있을 때 統一關係長官會議가 있었거든요. 이곳의 意思 決定이 느리니까 몇몇 사람이 大統領의 論理로 統一政策을 쉽게 주무르기 위해 統一關係長官戰略會議를 따로 만들었어요. 公式 라인은 제쳐두고 빨리 끌고 가려고. 이회창 當時 總理는 法的 틀 內에서 하라며 反旗를 들었죠. 그러면서 김영삼 當時 大統領과 사이가 틀어졌고요. 제가 이 事情을 잘 알기에 ‘아, 이회창은 대쪽이 맞다.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분 곁에 가게 됐어요.”

    ▼ 무엇을 도와달라고 하던가요.

    “2002年 大選에 다시 挑戰할 텐데 한나라당에 젊은 負袋를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게 未來連帶를 만든 일이죠. 제가 未來連帶 初代 事務總長을 맡았고 그때 迎入한 吳世勳, 南景弼, 元喜龍, 임태희, 김부겸 等 6名이 共同代表를 맡았죠.”

    ▼ 所謂 한나라당 所長改革派의 胎動…. 거기에 産婆 노릇을 한 셈이네요?

    “네. 2000年 總選에 未來連帶 이름으로 21名의 候補를 내보냈는데 14名이 當選돼 왔습니다. 이들 所長改革派의 힘을 바탕으로 2002年 大選에서 이회창 大統領을 만들어야겠다고 構想했어요.”

    ▼ 그 構想대로 일이 됐나요.

    “2000年 總選이 지나고 나서부터 黨의 繡毬花가 急激히 進行됐어요. 올드한 분들이 全部 前面에 나서고…. 李 總裁는 ‘7年 大統領’이라는 汚名을 쓰게 됐고 2002年 大選에 失敗했잖아요. 제게도 큰 煩悶과 苦悶의 時間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2004年 總選 때 ‘아는 사람이 두 사람뿐인 洞네’라는 서울 蘆原에 出馬했다. 한나라당의 不毛地에서 革新的 保守의 旗발을 들겠다는 趣旨였다고 한다. 盧武鉉 大統領 彈劾 暴風까지 불었다. 結果는 落選. 1.9%포인트 差異의 아슬아슬한 落選이었다.

    그는 “내겐 가장 좋은 藥이었다. 希望을 봤다”고 했다. 그는 9個 棟 中 8個 棟에서 이겼고 1個 棟에서 졌다. 진 洞네는 障礙人 居住地와 賃貸아파트 密集地로 그가 가장 功을 들였던 곳. 그는 “그때 깨달았다. 뭘 해주겠다는 式이 아니라 함께 같이 하자는 式이어야 한다는 事實을”이라고 했다.

    “國會議員은 대기만 하는 자리”

    權 市場은 2006年 서울市長 選擧 때 오세훈 候補의 祕書室長으로 五 候補를 도와 勝利를 이끌었다. 그(1962年生)와 吳 市長(1961年生)은 거의 同年輩에 고려대 同門이고 같은 未來連帶 出身이라는 個人的 因緣도 있다.

    그러나 選擧 後 그는 市場職引受위에 들어가지 않았다. 서울디지털대에서 敎鞭을 잡았다고 한다. 五 當選人은 就任 9日 前 새벽, 夫人과 함께 그의 아파트 入口에 찾아와 政務副市長을 맡아달라고 했다. 그는 “싫다. 內外분이 附近 食堂에서 콩나물국밥이나 드시고 가라”며 拒絶했다고 한다. 以後 五 當選人 補佐官, 노원구廳長 等 周邊 사람들이 採根하고 강재섭 當時 한나라당 代表가 “吳世勳 도와주라”고 해서 맡게 됐다고 한다.

    ▼ 서울市에 出勤해보니 어떻던가요?

    “言論 環境도 好意的이지 않았고, 市議會도 한나라당이 多數였지만 吳 市場을 自己 便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어요. 當時 滿 45歲인 그를 ‘애’라고 보는 雰圍氣였죠. 제가 吳 市長에게 ‘市長은 市政(市政), 나는 바깥 일, 이렇게 나누자’고 했습니다.”

    ▼ 바깥 일이라면….

    “1年 365日 中 술 안 마신 날이 닷새밖에 안 돼요. 360日은 그냥 마신 게 아니라 完全 떡이 되게 마셨죠. 言論 管理 내가 했죠, 國會·市議會 官吏 내가 했죠, 黨員들 管理 내가 했죠, 市民團體 相對 몽땅 내가 했죠. 每日 저녁 約束이 두 탕, 세 탕. 서울市 出入記者가 몇 名쯤 될 것 같아요?”

    ▼ 글쎄요.

    “300名쯤 됐어요. 會食 한 바퀴 돌고 나면 6個月. 그러면 出入記者가 다 바뀌어 있어요. (웃음) 1年 되니까 到底히 못하겠더라고요. 吳 市長에게 ‘나, 할 만큼 했다. 그만두겠다’고 했죠. 吳 市長이 ‘왜?’라고 묻기에 ‘힘들어 못 하겠다’고 했죠. 吳 市長이 ‘조금만 더 있자’고 해 6個月 더 있었어요.”

    ▼ 副市長과 國會議員을 比較하면 어떤가요.

    “國會議員 4年 하면서 입버릇처럼 ‘副市長의 100分의 1의 보람도 없다’고 했어요. 副市長 땐 몸은 고달팠지만 正말 ‘해피’했어요. 제가 計劃을 現實化해나갔으니까. 財産稅 共同課稅, 江南圈 구들이 엄청 反撥했지만 說得해서 했죠. 江南 陽川 麻浦 노원의 資源回收施設을 서울市가 共同으로 活用하게 하는 것, 該當 4個 區가 反對했지만 一一이 調整해 했죠. 노무현 政府가 龍山 美軍基地를 商業用途로 開發해 移轉費用을 充當하려 했을 때 여기에 맞서서 自然生態公園으로 貫徹시켰죠. 落選의 經驗을 살려 障礙人의 政治 參與, 交通便宜 施設 擴充, 福祉增進을 爲해 많은 일을 했고, 德分에 ‘障礙人 副市長’이라는 別稱을 얻기도 했어요. 反面 國會議員은 만날 대기만 해요. 하나도 되는 일이 없어요. 所長改革派니 뭐니 해도 달라지는 게 없죠.”

    ▼ 政爭, 非生産性, 民生 外面…. 우리 政治의 問題點으로 指摘돼온 것들인데요. 그 原因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根本 原因은 政黨에 있어요. 議員 個個人은 政治를 바꿀 수 없습니다. 率直하게 말하면, 韓國 政治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주무르고 있죠. 저는 後者를 바꿀 수 없어요. 새누리黨이라도 바꿔야 더 나은 政治가 可能합니다. 그런데 이 政黨의 基盤이 嶺南이므로 嶺南 政治를 바꿔야 해요. 제가 大邱에 내려오려고 決心한 것도 이 때문이었어요.”

    타운홀미팅, 現場市場실

    ▼ 親朴(親朴)계가 아님에도 새누리당 大邱市長 候補 公薦을 받았는데….

    “親朴은 系派가 아닙니다. 보스 格인 朴槿惠 大統領부터 系派 만들 생각이 없는 분이죠. 系派는 位階構造가 있어야 하고 持續的 動員이 있어야 해요. 이런 系派는 黨에 없습니다. 大選 競選 過程에서 形成된 支持그룹의 모임일 뿐이죠. 特히 大邱市民들은 親朴·비박에 意味를 두지 않아요. ‘變化와 革新, 누가 適任者인가’가 選擇 基準이었죠.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競選에서 勝利할 수 없었죠.”

    ▼ 未來連帶의 價値를 市 行政에 椄木하고 있습니까.

    “疏通과 協治. 未來連帶가 苦悶한 課題이자 우리 保守政黨이 넘어야 할 課題입니다. 民願이 있는 곳에 直接 찾아가 對話를 나누는 現場疏通市長室이라는 새로운 實驗을 하고 있어요. 어제까지 37個 現場을 다녀왔어요. 제가 訪問해서 묵은 民願을 듣고 이해시킬 건 이해시키고 解決할 건 解決하고. 市民들이 直接 參與하는 市民圓卓會議도 열고 있고요. 市民公約評價團이 제 公約을 再調整하고 있습니다.”

    ▼ 直接民主制 乃至 參與民主第 性格 같네요.

    “代議制를 抛棄해선 안 되겠죠. 그러나 只今 代議制는 危機입니다. 補完하지 않으면 안 돼요. 直接民主制와 參與民主第 要素를 끊임없이 加味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튼튼한 代議制를 만드는 길이죠.”

    權 市長의 現場市場室이나 市民圓卓會議는 버락 오바마 美國 大統領의 타운홀미팅(Town Hall Meeting)과 性格이 비슷해 보인다. 美國에선 大統領이나 州知事가 言論과 議會라는 媒介體를 건너뛰어 市民에게 直接 呼訴하고 說得하는 이런 直接民主制 政治 行事가 많은 便이다. 또한 ‘고잉 퍼블릭(Going Public·大衆 속으로)’ 談論처럼 代議制와 直接 民主制의 椄木에 對한 贊反 論議도 活潑하다. 우리 社會의 狀況에서 權 市長의 實驗이 어떤 結果를 가져올지 지켜보게 된다.

    ▼ 최경환 經濟副總理와 두 番 만난 것으로 아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大邱의 懸案을 付託했어요. 崔 副總理도 뿌리가 大邱·慶北이니까 이 고장에 큰 愛情을 갖고 있고. 저희로선 大邱의 經濟發展이 第一 重要해요. 大邱는 産業化 時代에서 知識基盤 時代로 넘어오면서 競爭力을 잃었어요. 1987年을 頂點으로 내리막이었죠.”

    ▼ 얼마 前 大邱市가 三星과 함께 大邱創造經濟團地를 만들기로 했죠? 關聯 行事에 朴槿惠 大統領과 李在鎔 三星電子 副會長도 參席해 言論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는데요.

    “大邱엔 文字 그대로 變化, 革新, 創造가 必要해요. 三星이 參與하는 創造經濟團地가 그 中心 役割을 하게 될 겁니다. 저는 몇 가지 戰略을 實踐하려고 해요. 大邱의 뿌리 産業인 纖維産業과 自動車産業을 尖端化하자, 3個 大企業과 글로벌企業을 誘致하자, 300個 中小企業과 500個 中堅企業을 育成하자, 50萬 個 일자리를 創出하자, 이를 위한 創業基盤을 만들자, 醫療 물 에너지 로봇 같은 未來 産業을 先導瑕疵…이렇게 提示하고 있습니다. 規制? 企業을 위해 確實히 풀려고 해요. 얼마 前 ‘規制改革 1等 都市’로 宣布했어요. 요즘 企業體 任職員들은 子女敎育, 文化· 餘暇生活, 親環境을 매우 重視합니다. 企業이 定住하고 싶은 都市가 되도록 敎育·文化·觀光 서비스의 品格을 劃期的으로 높이려고 합니다. 녹지도 늘려갈 거고요. 大統領 프로젝트로 한番 만들어보고 싶어요.”

    “金·崔, 繼續 異見으로 가면…”

    ▼ ‘초이노믹스’에 對해 어떻게 評價합니까(초이노믹스는 최경환 副總理의 經濟政策을 뜻하는 말이다. 內需活性化, 民生安定, 經濟革新을 志向하며 政府 財政支出 擴大, 不動産規制 緩和, 企業 社內留保金 課稅 等을 具體的 政策으로 提示했다).

    “短期的으로 雰圍氣를 바꾸고 經濟를 活性化하는 데 效果가 있다고 봐요. 內需 基盤이 脆弱해 庶民의 삶이 어려워요. 短期 處方을 해줘야 합니다. 그동안 官僚들이 우물쭈물했던 것을 최경환 副總理가 果敢하게 하고 있어요. 經濟에 宏壯히 有用합니다. 只今 政治가 뒷받침 되지 않아서 效果가 極大化하지 않지만요.”

    ▼ 그 部分과 關聯해 崔 副總理와 김무성 새누리당 代表 사이에 舌戰이 있었는데요. 어떻게 봅니까.

    “아니, 黨은 于先 도와줘야 한다고 봐요. 票를 먹고사는 政黨이 一部의 反感을 憂慮하는 건 當然하다고 보지만, 根本的으로 經濟를 살릴 수 있는 일을 表 때문에 발목 잡아선 안 됩니다. 이런 面에서 憂慮와 問題 提起는 하되 黨은 이걸 反對하거나 막는 것이 아니라 市民과 國民과 政府 사이에서 緩衝과 均衡과 調整을 해주는 役割을 해야 해요.”

    ▼ 只今까진 均衡과 朝廷이 조금 未備하다?

    “그 過程이라고 봐요. 김무성 代表가 최경환 副總理의 經濟政策에 憂慮를 表明하는 部分들은 그걸 막고 反對하기 위한 過程이 아니라 國民의 눈높이에서 均衡을 잡아주는 過程이라고 봐요. 그러니 黨政이 큰 틀에서 빨리 調整과 均衡을 잡는 結果가 나와야 합니다. 繼續 서로 異見(異見)으로 가면 國民이 혼란스러워해요. 經濟回復 效果도 안 나타나요.”

    ▼ 朴 大統領에 對해 不通이라는 批判이 繼續 나옵니다.

    “두 가지 面이 있어요. 大統領이 가진 原則이 柔軟性 側面에서 우리 社會의 期待에 못 미치는 側面이 있고, 다른 한便으로는 우리 政治가 大統領의 原則을 못 따라가는 側面이 있어요. 大統領만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제가 본 朴 大統領은 가장 正確한 疏通, 가장 正直한 疏通을 하는 분입니다.”

    ▼ 어떤 理由로 그렇게 評價하나요.

    “朴 大統領은 危機를 謀免하기 위해 臨時方便을 取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通常的으로 우리 政治에서 疏通으로 表現되는 立 서비스를 안 하죠. 朴 大統領을 批判하는 사람들은 이런 걸 두고 ‘疏通이 弱하다’고 해요. 우리 政治人들은 깊이 苦悶하지 않고 지키겠다는 意志도 없이 便하게 立 서비스 하죠. 그게 日常化해 있어요. 政治의 美德이 아니라 弊害죠. 다만 朴 大統領이 조금만 더 柔軟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野黨을 包含한 政治權은 大統領의 疏通 方式을 理解할 必要가 있어요. 大統領만 不通이라고는 안 봐요.”

    ‘未來連帶’ 世代의 꿈

    對句市廳 로비엔 프로野球團 三星 라이온즈가 2016年 시즌부터 홈구장으로 쓸 2萬9000席 大邱野球場 模型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選手와 觀覽客 間 最短距離, 國內 最大 電光板, 八角 다이아몬드 필드의 特色 있는 球場이 될 것이라고 한다.

    權 市場은 “‘大邱’ 하면 떠오르는 否定的 이미지를 걷어내고 싶다. 이 都市를 洗練된 一流都市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權泳臻, 南景弼, 元喜龍…. 時·道知事가 된 이들 未來連帶 世代는 지난 15年間 共有해온 以上을 이제 自身의 行政區域에서 實現해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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